200년만에 밝혀진 기린의 비밀, 알고보니 4종

조홍섭 2016. 09.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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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유전자 연구 결과 남부·마사이·그물무늬·북부기린 등 4종으로

4종 중 3종은 멸종위기종 지정 불가피…서식지 감소와 밀렵, 질병 원인


로스차일드_Daryona.JPG » 지구 위에서 가장 키가 큰 기린은 린네 이후 한 종으로 분류돼 왔지만 유전자 분석 결과 4종인 것으로 드러났다. 북아프리카기린으로 분류된 누비아기린(G.c.camelopardalis) 아종. Daryona, 위키미디어 코먼스


스웨덴의 분류학자 카를 린네는 1758년 살아있는 기린은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기린을 생물 종으로 등록했다. 그는 북아프리카에 살던 기린을 이 종의 기준으로 기재했다.


이후 많은 생물학자가 털가죽 무늬, 뿔 구조, 분포 지역이 다른 기린을 발견하고 9개 아종으로 구분했지만 기린이란 종은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뤄진 것 가운데 가장 포괄적인 유전자 분석을 토대로 기린은 이제 4종으로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가설이 인정받는다면 ‘최소 관심종’이던 기린의 상당수는 멸종위기종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6m에 이르는 지구 위에서 가장 키가 큰 동물이 보호대상이 되는 것이다.


gr1_lrg.jpg » 아프리카 기린의 분포도. 확대 지도는 북아프리카 집단을 가리킨다. 피네스 외 <커런트 바이올로지>


줄리언 페니시 기린 보전 재단 박사 등 연구자들은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9개 아종을 포괄하는 190마리의 기린에서 핵과 미토콘드리아 디엔에이를 확보해 집단유전학적으로 분석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 연구결과는 10일 치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렸다.


연구자들은 이제 기린은 남부기린, 마사이기린, 그물무늬기린, 북부기린 등 4종으로 나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유전적으로 아종 수준을 넘어서는 차이를 보였으며 야생에서 서로 교배하지도 않는다.


그물무늬기린.jpg » 별개의 종으로 분류된 그물무늬기린(G. reticulata). 동아프리카가 서식지이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연구자들은 “기린이 매우 이동성이 좋은 데다 동물원에서는 서로 교잡을 이루어 야생에서 유전자 흐름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 뜻밖이었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이들 기린은 40만~200만년 전 공통 조상에서 분화돼 나온 것으로 추정됐다.


이번 연구에서 남부기린은 다시 앙골라기린과 남아프리카기린 등 2개 아종으로, 북부기린은 누비아기린과 서아프리카기린, 코르도프기린 등 3개 아종으로 구분됐다. 과거 별개의 아종으로 분류되던 로스차일드기린은 누비아기린과 동일한 것으로 밝혀졌다. 


마사이_Bjørn Christian Tørrissen.JPG » 이번 연구로 별개 종으로 분류된 마사이기린(G.tippelskirchi). Bjørn Christian Tørrissen, 위키미디어 코먼스.


기린은 30년 전만 해도 15만 마리에 이르렀지만 현재 10만 마리로 줄었다. 지금까지는 분포 지역도 넓고 개체수도 적지 않아 특별한 보호대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이 여러 종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4개 종 가운데 남부기린만 개체수가 늘고 있다. 따라서 남부기린을 제외한다면 나머지 3종의 기린은 갑자기 심각한 멸종위기에 놓이게 된다. 예를 들어 서아프리카기린의 야생 개체는 니제르의 한 지역에 사는 400마리가 전부이다. 아프리카의 기린을 위협하는 요인은 서식지 감소와 분단, 밀렵, 질병 등이 꼽힌다.


앙골라_Steve Jurvetson.jpg » 남부기린의 한 아종으로 분류된 앙골라기린(G.g.angolensis). Steve Jurvetson, 위키미디어 코먼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보도자료를 내어 “이번 연구결과가 받아들여진다면 일부 종은 ‘적색 목록’의 멸종위기종에 오를 만하다”라고 밝혔다.


페니시 박사는 “이제 기린이 4종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아프리카 기린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와 비정부기구를 돕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고 시급해졌다. 야생에 45만 마리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아프리카코끼리의 운명을 걱정하는 것은 옳다. 이에 비하면 기린 네 종 가운데 세 종의 수는 급격히 줄고 있고 두 종은 1만 마리도 안 된다. 너무 늦기 전에 아프리카 기린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나서야 한다.”라고 독일 괴테대학 프랑크푸르트 캠퍼스의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 기린은 어떤 동물?


기린은 지구 위에서 가장 키가 큰 동물이다. 다리 길이만 1.8m에 이른다. 긴 다리와 목으로 포식자에 쫓기면 시속 56㎞의 빠른 속도로 달릴 수도 있다. 혀의 길이도 53㎝나 된다.

 

보통 초원에서 6마리 정도 무리를 지어 다른 동물은 접근하기 힘든 나무 꼭대기 부드럽고 영양가 많은 잎과 싹을 혀로 훑어 먹는다.

 

덩치가 큰 데다 큰 키로 멀리 내다봐 적이 없을 것 같지만 사자의 습격을 받기도 한다. 큰 키의 약점은 물 마시기로 다리를 양옆으로 뉜 엉거주춤한 자세로 물을 마신다. 이런 불편한 일은 며칠에 한 번뿐이고 수분은 주로 잎을 통해 섭취하는 것으로 충당한다.

 

새끼는 서서 낳는데 갓 태어난 새끼는 1.5m 높이에서 지상으로 떨어지는 충격을 받아야 한다. 키는 4~6m, 몸무게 800~1300㎏이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Fennessy et al., Multi-locus Analyses Reveal Four Giraffe Species Instead of One, Current Biology (2016), http://dx.doi.org/10.1016/j.cub.2016.07.036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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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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