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여러분의 여행은 얼마나 녹색이었습니까
쓰지 않는 객실 전등과 냉장고 늘 켜져 있고, 한 번 쓴 수건도 세탁
뉴욕 한 번 갔다 오면 아프리카 사람 3명의 1년치 이산화탄소 배출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 폭염주의보가 발효되었다. 찜통더위, 불볕더위, 가마솥더위 등 여러 말들이 등장하고 있다.
1994년 이래 최악의 폭염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런 더위가 연일 계속 되니 온열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극단적인 기상현상이 증가하고 있는데, 올해의 이 무더위도 기후변화의 징후라고 한다. 이렇게 기온이 올라가 최장의 열대야가 지속되다 보니 냉방수요도 늘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더위를 떠나 어딘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인지상정이다.
형편이 안 되어 아무 곳에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수두룩하지만 그래도 평소보다 많은 이들이 여행을 떠나고 있다. 사실, 휴가철이 아니더라도 갈수록 많은 이들이 국내여행은 물론 해외여행을 떠난다.
<그림 1> 입국 외국인 관광객과 출국 내국인 관광객 추세

주: 외국인 관광객 수는 꾸준히 늘다가 2015년에는 메르스 사태로 감소하였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관광통계를 보면, 2015년에 1931만 430명이 해외여행을 다녀왔고 우리나라를 찾은 사람은 1323만 1651명이었다. 전 세계로 치자면 해외여행을 다닌 여행객 수가 2014년에만 해도 11억 3300만 명에 달하는 걸로 보고되었다.
해외여행객만이 아니라 국내여행객 수도 나날이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2015년 국내여행객 수는 3802만 7500여 명에 달했다. 이 숫자 또한 갈수록 늘고 있다.
필자는 직업상 학술활동으로 여행을 가는 일이 적지 않은데 먼 길을 떠나는 여행을 할 때면 여행을 오가는 길에 평소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고 그 결과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게 되어 에너지 환경정책 전공자로서 늘 마음이 불편하다.
여행을 떠나면 대부분의 사람은 해방감을 느낄 뿐 아니라 직장과 가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또 편하고 쾌적하게 지내고자 한다.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서 숙소를 잡겠지만 더위를 피해 간 여행이니 만큼 더 시원하고 더 쾌적하게 지내고 싶어 한다.
호텔은 대부분 그런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다양한 설비를 갖추고 있다. 이왕 내는 호텔 요금, 집에서 누진제 때문에 제대로 틀지 못했던 에어컨도 빵빵하게 틀면서 지내게 된다. 이렇듯 여행은 이동에 필요한 연료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설비 이용이 전기 소비를 수반하기 때문에 에너지 다소비적 활동이 되기 십상이다.
그 결과, 여행 규모가 늘어나면서 여행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도 상당히 커지고 있다. 환경영향을 줄이기 위한 대안적인 관광으로 녹색관광(green tourism), 자연관광(nature tourism), 농장관광(farm tourism), 연성관광(soft tourism), 모험관광(adventure tourism) 등이 등장했으며, 잘 보전된 생태를 체험하는 여행을 통해 환경인식을 제고하는 환경교육 효과를 높이려는 생태관광도 있다.

‘여행객을 위해서’ 또는 ‘여행객으로부터’ 환경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을 넘어 ‘여행객에 의해서’ 환경을 지키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여행이 생태관광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여행자들이 어떤 형태의 여행을 하든지 좀 더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는 없을까? 환경에 부담을 되도록 덜 주는 방식으로 여행을 할 수는 없을까?
여행을 하면서 필자는 서구적 생활양식이 기후조건과 상관없이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노르웨이에서 묵었던 호텔이나 캄보디아의 호텔, 우리나라의 호텔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번은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와 적응방안을 연구하기 위해 캄보디아 톤레삽 호숫가 수상가옥 마을인 캄퐁플럭을 방문하면서 인근 씨엠립의 한 호텔에서 묵었는데, 그 때 호텔에서 제공한 이불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그 더운 지역 호텔에 두꺼운 솜이불이 비치되어 있었다.
더우니 에어컨을 켜고 자고 에어컨을 계속 틀면 서늘할 수 있으니 그 정도 두께의 이불을 덮어야 한다는 건지…. 그 이불은 언젠가 겨울철에 방문했던 노르웨이의 호텔에서 덮었던 바로 그런 이불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드는 생각은 여행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어느 지역을 방문하건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를 누리기를 원하고, 다양한 기후조건인데도 에너지 투입을 통해 동일한 실내조건을 유지하려 하다 보니 상당량의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거였다.
그리고 그런 활동으로 인해 에너지 소비가 늘고 이산화탄소 배출이 늘어남으로써 전 생애를 통해 에너지 소비를 별로 하지 않는 가난한 이들이 오히려 기후변화의 위험에 훨씬 더 빈번하게 노출되고 기후재난을 겪으면서 재산은 물론 생명까지 잃는 경우도 발생한다.
여행할 때의 에너지 소비로 인해 가난한 이들이 기후재난과 피해를 겪는다는 연결이 억지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가보면 이런 일들은 상당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되도록 불필요한 해외여행은 자제하는 게 좋겠지만 그런 자제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부득이하게 여행을 하게 된다면, 되도록 우리 개개인이 충분히 줄일 수 있는 에너지는 되도록 아껴 써야 하지 않을까?
호텔에 들어서면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이 세상에 하릴 없이 돌아가고 있는 냉장고가 과연 얼마나 될까? 전원을 켜지도 않고 플러그만 꽂아 두는 TV와 셋탑박스는 또 얼마나 될까?
카드 키를 꽂아서 고객이 호텔 객실을 나가면 객실 내 전자제품에 전원이 차단되어 불필요하게 전기가 낭비되는 걸 막는 방식을 대부분의 호텔이 채택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렇지 않은 곳들도 있다.
몇 달 전에 인천 송도에 있는 호텔에서 회의 때문에 하룻밤 묵은 적이 있는데 놀랄 일을 겪었다. 객실에 들어갔더니 절전을 위해 카드 키를 꽂는 장치(키 홀더)를 마련해 두고는 카드 키가 아닌 동일한 모양과 크기의 일반 플라스틱을 키 홀더에 이미 꽂아두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객실에 들어섰을 때 모든 등이 환히 켜져 있었다. 당장 프론트 데스크로 가서 항의하면서 도대체 왜 그런 식으로 영업을 하는지 따지기도 했다.
필자는 외출시 모조 카드 키를 뽑고 나갔지만 아마 그 호텔 고객들 다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불필요하게 허비되는 에너지가 우리나라에, 또 전 세계에 얼마나 많을까?

게다가 객실에는 예외가 있긴 하지만 대개 냉장고가 있다. 이 냉장고는 외출시 카드 키를 뽑아도 여전히 작동한다. 고객이 방에 없다고 냉장고 전원이 꺼져 버리면 냉장고 안에 보관된 식음료가 상하거나 시원하게 보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작은 용량이긴 하지만 이 세상에 이렇게 하릴 없이 전원이 켜진 채 작동하고 있는 객실 냉장고가 몇 대나 될까?
호텔만이 아니다. 요리를 할 수 있는 콘도나 아파트형 호텔에는 더 용량이 큰 냉장고가 있다. 콘도 냉장고엔 호텔 미니바 냉장고와 달리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은데도 전원이 켜진 채 가동되고 있기 일쑤다.
그런 냉장고를 돌리느라 전기를 낭비하고 그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핵발전기를 톨리면서 위험을 재생산하거나 석탄화력발전기를 돌려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기체를 배출하면서 재난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텔레비전과 셋탑박스의 플러그를 뽑아 놓는다. 플러그를 뽑지 않으면 보지 않는 동안에도 대기전력이 여전히 소비되기 때문이다.
2014년 제주도에 있는 한 콘도에 묵은 적이 있는데 그곳에 놓인 양문형 냉장고는 에너지 효율등급이 최저인 5등급이었다. 그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는데 그 큰 5등급 냉장고가 1년 내내 가동되고 있는 거였다. 그래서 그 일 이후론 냉장고도 내부에 음식이 없거나 상할 음식이 없다면 플러그를 뽑아 버린다.
그런데 최근 방문한 일본 나고야의 호텔에는 재미난 안내서가 있었다. 전기 소비 절약을 위해 냉장고를 꺼두었으니 혹시 냉장고에 보관할 음식이 있으면 그 때 켜서 사용하라는 거였다.
호텔 입장에서도 전기요금이 줄어드는 것이니 나쁘지 않은 방법이 된다. 물론 그 냉장고의 플러그 자체가 뽑혀 있지는 않았고 내부 온도조절기가 정지 상태로 되어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모든 호텔에서 이런 방식을 취하게 된다면 전 세계에서 상당량의 전기 소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엔 에너지와 물을 아껴 쓰자는 메시지를 전하는 호텔들이 많아지고 있기는 하다. 필자가 2008년에 노르웨이에 배출권 거래제 관련해서 사회조사를 갔을 때 묵었던 호텔에는 수건을 한 번만 사용하고 세탁하게 되면 물이 얼마나 쓰이고 세제가 얼마나 쓰여서 환경이 파괴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에너지가 얼마나 쓰여서 이산화탄소가 얼마나 배출되는지를 설명하면서 사용 후 세탁을 원하는 경우엔 수건을 바닥에 던져 놓고 다시 사용하길 원하면 벽에 걸어두라는 문구가 적힌 안내서가 있었다.
처음으로 그런 안내서를 봤을 때 상당히 신선했다. 특히 그 호텔의 수건은 가정에서도 그 정도로까지 사용하지는 않을 정도로 오래 사용한 티가 나는 거라서 그 점도 인상적이었다.
요즘엔 그런 안내서를 비치해 두는 호텔들이 늘고 있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호텔을 비롯한 숙박시설에서는 그런 문구를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 문구가 없는 호텔에서는 아예 '방해하지 마시오'(Do not disturb!)란 걸개를 문고리에 걸어서 청소하러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청소하러 들어오기만 하면 수건을 더 쓸 요량으로 벽에 걸어두어도 멀쩡하게 다시 쓸 수 있는 수건을 갈아치우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캄보디아 프놈펜에 기후변화 적응정책에 대한 사회조사를 위해 방문했다가 그곳 호텔에서 인상적인 변화를 보았다. 사실 그 호텔은 친환경 경영을 하는 곳으로 상까지 받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선택해서 투숙한 곳이기는 하다.
캄보디아는 최빈국이지만 오히려 후발 주자인 만큼 먼저 발전한 국가들에서 겪었던 문제를 거치지 않고 도약해서 앞서 나갈 수 있는 이점을 지니고 있다. 일본만 하더라도 지어진 지 오래된 호텔들이 많아서 키 홀더 장치가 없는 곳들도 있고 변기 물 내리는 버튼이 대소변으로 분리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필자가 묵었던 프놈펜의 그 호텔은 친환경상을 받은 호텔이어서 그런지 여러 가지로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키홀더가 있었고 대소변 분리 버튼이 있었으며 환경보호를 위한 수건 사용 안내가 있었고 냉장고를 아예 두지 않았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곳이 있다. 호텔이 아니라서 일반화하긴 어렵지만 최근 통영시 통영 지속가능발전재단(RCE)이 운영하는 세자트라숲에서 만난 숙박시설은 참으로 남달랐다.
일반 숙박시설이 아니라 지속가능 발전 교육을 받기 위해 방문하는 이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었는데, 여러 가지 점에서 환경에 끼치는 부담을 덜기 위한 노력이 엿보였다. 세자트라란 이름은 ‘공존’ ‘균형’이란 뜻의 산스크리트어라고 하는데, 센터가 들어앉은 주변 숲을 보존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산을 깎아서 숙박시설이 들어선 부분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지어진 건물에서 환경적 배려가 느껴졌다. 우선 객실 내부에 텔레비전과 냉장고가 없었다.
대신 냉장 용도로 쓰일 수 있는 항아리를 비치해 두고 있었다. 발코니와 지붕은 흙으로 채워져 있어서 풀과 화초가 자라고 있었고 센터 건물과 건물 옆 공터에 태양광을 설치해서 전기를 생산해서 사용하였다.
화장실 수건걸이와 화장지 걸이는 각각 대나무와 나무로 만든 것이었고 현관에는 분리배출이 가능하도록 6가지 칸으로 나누어진 쓰레기통을 비치해두고 있었다. 앞으로는 이용객들이 사용한 전기와 물 소비량을 측정한 결과를 기초로 평균보다 덜 사용했을 경우엔 그만큼 숙박비를 덜 받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했다.

이제 여행할 때 내가 남기게 될 생태발자국을 줄이는 방법도 함께 고민해 보면 어떨까? 최근 들어 항공기를 신기종으로 바꾸면서 동일한 거리를 날아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어들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비행기 탑승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수반한다.
보잉 747을 타게 되면 1인당 1리터로 7.03㎞를 비행하면서 2.52㎏의 CO2를 배출하게 된다. 비행기로 인천에서 뉴욕을 왕복할 경우 1인당 3.3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셈이다.
이 양은 2013년에 연료 연소로 인한 전 세계 1인당 평균 CO2 배출량(4.52톤)의 73%에 달하고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들의 1인당 평균 CO2 배출량(0.97톤)의 3.4배에 달한다. 인천공항에서 뉴욕까지 단 한 번의 왕복 비행이 아프리카인이 한 해 배출하는 양의 3.4배를 배출하다니!
항공여행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최대한 상쇄하기 위해 평소에 더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나무 심기에 참여하는 건 어떨까? 또 친환경 경영을 하고 있는 호텔을 찾아 호텔에 머무는 기간 동안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체류기간동안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를 자제하는 건 또 어떨까?
우리가 오늘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최소 15%는 1000년 이상 대기 중에 머문다고 한다. 오늘 우리가 조금이라도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애쓰면 바로 우리 아이들이 내일 겪을 위험이 아주 조금이나마 줄어들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내일을 살아갈 아이들을 사랑하는 방법이 아닐까?
윤순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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