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껍아, 두껍아, 너희 집 없애지 않을 게
교과서 나온 '아름다운 타협', 실제론 원흥이 방죽 산란기능 상실
새로 발견된 산란지도 도시공원 일몰제로 위태, 구룡산 지키자
“비가 오면 원흥이 방죽에서 태어난 아기 두꺼비들이 구룡산 숲으로 가거든요. 구룡산을 지키지 않으면 아기 두꺼비들이 살 수 없게 되잖아요.”
21일 오전 충북 청주시 산남동 두꺼비생태공원 뒷편 구룡산 두꺼비 둘레길. “구룡산을 지킵시다”는 구호를 외치며 앞에서 신나게 걸어가던 동생들이 “왜 구룡산을 지켜야 되는데?”라는 질문에 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뒤따르던 산남초등학교 5학년 김선율 어린이가 대신 대답하고 나섰다.
휴일 아침부터 두꺼비생태공원에 모여든 500여명이 넘는 청주의 시민 학생 등은 두꺼비와 사람과의 공존을 염원하며 한 시간여 동안 아파트 단지와 구룡산 사이 둘레길을 함께 걸었다.
이날 구룡산 걷기는 두꺼비생태공원을 위탁 관리하는 환경단체법인 두꺼비친구들과 충북엔지오센터가 함께 주관한 ‘두꺼비 생명 한마당’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사람과 두꺼비의 공존을 지향하는 축제인 두꺼비 생명 한마당은 원흥이 방죽에서 처음 두꺼비들이 발견된 이듬해인 2004년부터 해마다 열리고 있다.
2003년 5월 충북 청주시 산남동 원흥이 방죽에서 변태를 마친 새끼 두꺼비 수 만 마리가 이동을 시작했다. 산란지 물 속을 떠나 인근 구룡산 숲 속 서식지를 찾아 나선 것이다.

수면 면적 3300㎡ 남짓한 원흥이 방죽은 한국토지공사의 택지개발 사업지구에 포함돼 메워질 예정이었다. 숲 속에 들어간 두꺼비들이 자라서 번식을 위해 돌아올 장소가 없어진다는 의미였다. 생존의 위기에 놓인 여린 생명들의 모습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생태교육연구소 ‘터’를 비롯한 청주의 환경·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두꺼비를 보호하기 원흥이시민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택지개발 계획을 수정해 원흥이 방죽을 보전할 것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이 시작됐다. 환경운동가들과 종교인, 두꺼비 보호에 뜻을 모은 시민들은 공사 강행에 맞서 철야단식 농성을 벌이고, 삼보일배를 하고, 촛불을 들었다. 2004년 5월30일 새벽 펼쳐진 ‘원흥이 껴안기’에는 시민 700여명이 손을 맞잡아 원흥이 방죽을 에워싸고 한 목소리로 두꺼비 보존을 외쳤다.

두꺼비를 놓고 펼쳐진 개발과 보전 사이의 첨예한 대립은 2004년 11월 ‘상생의 지역 개발을 위한 합의문’으로 타결됐다. 이 합의에 따라 2006년 12월말 원흥이 방죽과 주변 약 4만㎡에 전국 최초로 두꺼비 생태공원이 조성되면서 원흥이 방죽은 살아 남았다. 하지만 주변이 성토돼 옹벽으로 둘러지고, 아파트 단지와 도로에 갇힌 원흥이 방죽은 두꺼비들이 알을 낳기에는 적당한 장소가 못됐다.
두꺼비친구들의 두꺼비 생태공원 모니터링 결과를 보면 원흥이 방죽에서 알을 낳는 두꺼비는 2011년 이후 발견되지 않고 있다. 21일 두꺼비 생태공원을 안내한 두꺼비친구들의 신경아 사무국장은 “남쪽 사면 옹벽 때문에 하루 중 반나절은 수면에 그늘이 져 알낳을 시기에 수온이 낮아 산란지로 선택 않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두꺼비생태공원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위한 아름다운 타협의 사례로 중학교 교과서에까지 언급되고, 다른 나라에서까지 견학하러 오는 장소가 됐음에도 성공보다는 실패 사례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21일 두꺼비생태공원에서 열린 생명 한마당 개막식에서 만난 허원 녹색청주협의회 상임의장(서원대 역사교육과 교수)은 “시민사회단체쪽에서 많이 양보를 해서 상생의 타협을 했는데, 정권과 공사 지휘부가 바뀌어 약속이 제대로 안 지켜졌다”고 털어놨다. 그는 2004년 당시 원흥이시민대책위원회에서 확대 개편된 원흥이생명평회의의 공동 의장을 맡아 합의를 이끌었다.
원흥이 방죽이 더는 산란지 노릇을 하지 못하지만 구룡산과 생태공원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두꺼비들을 볼 수 있다. 두꺼비들이 원흥이 방죽에서 1.3㎞ 남서쪽에 있는 농촌 방죽을 새로운 산란지로 찾아냈기 때문이다.
두꺼비친구들이 두꺼비들을 상대로 한 발신장치 부착조사를 통해 얻은 결론이다. 두꺼비친구들의 올해 모니터링에서 농촌 방죽에서 발견된 두꺼비는 124마리로 1년 전에 비해 54마리가 늘었다.

원흥이 방죽과 구룡산을 연결하는 생태통로 중간에 대체 산란지로 인공 조성해 둔 생태공원 서쪽 거울못도 산란지로 자리를 잡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거울못에 산란한 두꺼비들은 2014년 3쌍이었다가 지난해는 10쌍, 올해엔 14쌍까지 늘어났다.
이렇게 다시 회복 기미를 보이는 구룡산 두꺼비들의 생존 환경이 다시 위기에 놓이게 됐다. 근린공원으로 지정돼 보호를 받아온 구룡산 일대에서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일몰제와 민간공원 조성 특례제도롤 활용한 개발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일몰제는 도시계획상 공원, 도로로 지정된 터가 일정 기간 개발사업이 진행되지 않을 경우 원칙적으로 공원 지정 효력이 자동으로 해제되게 한 제도다. 이에 따라 2020년 7월까지 시가 토지 소유주들로부터 매입해 공원화하지 못하면 자연녹지로 전환돼 개발이 가능해진다.
허원 녹색청주협의회 상임의장은 “대부분의 양서류가 습지 주변에 사는데 두꺼비는 산란은 습지에서 하고 살기는 숲에서 살아 사람들에게 넓은 영역을 보호하도록 하는 ‘영물’”이라며 “구룡산 서식지가 공원에서 풀리게 되는 것이 원흥이 두꺼비 보존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고 말했다.
13번째인 올해 생명 한마당에 ‘특명, 구룡산을 지켜라!’를 주제가 내걸리고, ‘청주시 도시공원·도시숲 살리기 시민 청원’ 서명 운동이 시작된 이유다.

두꺼비친구들 박완희 사무처장은 “2020년 7월 1일로 다가온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일몰제 시한을 앞두고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한 지자체들은 민간공원 조성 특례제도를 활용해 민간공원개발로 눈을 돌리고 있다. 30을 내주고 70이라도 얻자는 논리인데, 구룡산 근린공원에서 민간공원 개발을 통해 아파트를 짓겠다는 곳이 농촌 방죽과 거울못 산란지 주변이라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구룡산 두 곳 가운데 한 곳이라도 파헤쳐지면 구룡산 두꺼비들은 사실상 끝이고, 두꺼비생태공원도 무의미해지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원흥이 방죽 보전 운동에 함께했던 시민사회단체와 일반 시민,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도시숲·공원 살리기 범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대응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 13일 생태공원안 두꺼비생태문화관에서 위원회 구성과 참여 단체들 사이의 역할 분담을 논의하는 준비회의까지 열었다.
2003년까지 전업 주부였다가 2003년 ‘원흥이 방죽 두꺼비 만큼은 정말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두꺼비 보전 운동에 뛰어들었다는 신경아 사무국장은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으로 예상돼, 어떤 결과에도 실망하지 않고 멀리 장기적으로 내다보며 대응해나갈 준비를 하려한다. 원흥이 방죽을 내려다 보고 서 있는 260~270년 된 느티나무를 100년 뒤 보호수로 지정되도록 하기 위한 서명 운동을 시작한 것이 그런 의미”라고 말했다.
청주/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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