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선택인 진화 역주행시킨 ‘인간선택’

조홍섭 2009. 09. 11
조회수 21162 추천수 0
다른 것이 아름답다 (1)
인공도수로 등으로 뒤섞여 고유종이 잡종으로
자연이 수만년 걸쳐 이룬 다양성 한순간에 ‘꽝’
 
 
Untitled-2 copy.jpg

얼마 전 임진강에 놀러갔다가 어린 돌고기 두 마리를 채집했다. 길쭉한 몸 가운데 짙은 검은색 줄무늬가 선명한 앙증맞은 놈들이었다. 우리 선조는 두툼한 입술에 주목해 이 물고기를 돼지를 닮은 ‘돛고기’라고 불렀다지만, 바닥에 돌이 깔린 곳을 좋아하니 요즘 우리가 부르는 돌고기라는 이름도 어색하지 않다. 서양에선 가운데 줄무늬에 주목해 ‘연필고기’라고 부른다. 어쨌든 집 수족관에 이사한 이 녀석들은 왕성한 식욕을 뽐내며 잘 자랐다. 하지만  이제  귀여운 맛도 사라지고 다 자라 ‘출가’를 시켜야 할 때가 왔다. 마침 금강에 갈 일이 있어 물통에 돌고기들을 넣었다. “자, 이제 자유다!”
 
금강에 도착해 물통 뚜껑을 열었다. 답답한 물통에서 벗어나 개울을 마음껏 헤엄칠 녀석들을 떠올려 봤다. 이곳에 사는 다른 돌고기들이 반갑게 맞아 줄까? 그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의문이 떠올랐다. 임진강 돌고기와 금강 돌고기는 같은 종인가? 적어도 도감엔 같다고 적혀 있다. 그렇다면 두 돌고기는 유전적으로 동일한가? 그건  아닐 것이다. 금강의 돌고기와 임진강의 돌고기가 서로 만나 새끼를 낳을 가능성은 없다. 두 강의 하구는 바다로 가로막혀 있으니까.
 
강마다 천마다 다른 수많은 ‘~종개’들, 유전자 교란 심각
 
Untitled-1 copy.jpg

그렇다면 그 둘이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언제였을까. 아마도 가장 최근의 빙하기였던 1만 2천 년 전 해수면이 낮아져 한강과 금강, 그리고 황하나 섬진강 등이 거대한 고황하의 지류였던 시절이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홍수 때 임진강에서 쓸려나간 돌고기가 금강으로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은 꽤 크다. 제주도 남서쪽에서 바다로 흘러들어가던 이 고황하로 연결됐기 때문에 중국, 한국, 일본 서부에는 붕어, 잉어, 돌고기 등 같은 종의 민물고기가 여럿 있다. 결국 그날 돌고기는 자유를 맛보지 못했다. 1만 년 이상 격리돼 별도의 진화과정을 겪고 있는 두 돌고기 집단의 자연사에 감히 개입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개인적 소심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하천의 생물을 마구 뒤섞는 시도가 벌어지고 있다. 한반도에 대운하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은 그런 단적인 예였다. 사실, 생태에 눈 감은 그런 사업은 꽤 오래전부터 벌어져 왔다. 일제는 호남평야를 대륙침략을 위한 식량창고로 이용했다. 1931년 전북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에 운암발전소를 지은 것도 이런 목적에서였다. 들판이 넓지만 물이 부족한 호남평야에 섬진강 물을 산 속에 3㎞ 길이의 터널을 뚫어 끌어오는  설계였다. 이후 1965년 섬진강 다목적댐이 완공되면서 옥정호에 가둬진 섬진강 물은 해마다 3억 5천 만t이 지하터널을 통해 김제와 계화도 평야의 관개용수로 공급되고 있다. 1만 년 이상 격리돼 온 동진강과 섬진강은 이렇게 서로 만났다. 그로부터 8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 강 생태계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전북 부안이 고향인 이완옥 내수면생태연구소 연구관은 대학원에 다닐 때부터 동진강 상류의 어류상이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껴왔다. 그는  2006년  동진강 상류와 섬진강 옥정호의 어류상을 면밀히 조사한 끝에 유전자 교란이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고유종을 잡종으로 바꾸어 놓은 이 현상은 자연이 수만 년 동안 이룩한 변화를 사람이 한순간에 되돌렸음을 뜻한다. 그 내막을 알아보자.
 
흔히 흙탕물에 사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미꾸릿과의 물고기 가운데는 바닥에 돌이나 모래가 깔린 맑은 여울에 서식하는 ‘종개’로 끝나는 이름을 가진 것들이 적지 않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오래전부터 한반도 곳곳에 고립돼 고유종으로 분화됐다. 하나의 종이 여러 종으로 분화하는 진화의 산 증거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아주 좁은 지역에만 분포하는 종도 적지 않다. 미호종개는 충남 미호천에만, 부안종개는 전북 백천에만, 그리고 좀수수치는  전남  고흥반도에만 산다. 전 세계에서 이 좁은 하천 한 곳에만 사는 특별한 생물들이다. 마찬가지로 남방종개는 영산강과 탐진강 일대, 동방종개는 형산강과 영덕 오십천, 송천천 일대에서만 볼 수 있다. 이 작은 서식지가 사라진다면 이들 한반도 고유종은 절멸된다. 어류학자들이 이들의 미래를 불안하게 지켜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500종이던 빅토리아호 씨클리드, 외래종 탓에 200종 사라져
 
Untitled-4 copy.jpg

다시 이완옥 박사의 조사로 돌아가면, 동진강 상류에서 이상하게 생긴 종개를 채집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가슴지느러미의 모양은 참종개의 것인데 반점과 크기는 왕종개에 가까웠다. 참종개는 황해로 흐르는 한강, 금강, 동진강 등에 분포하는 한국 고유종이다. 노령산맥 이남의 섬진강, 낙동강 등 남해로 흐르는 강에는 참종개에서 분화된 왕종개가 산다. 그런데 이 둘이 뒤섞여 잡종을 형성한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섬진강에만 살던 줄종개가 점줄종개가 사는  동진강에 나타나고 있다. 이들의 잡종화도 진행중이다. 이 박사는 이 수역에서 겉모양은 점줄종개처럼 보여도 유전자는 이미 줄종개의 것과 뒤섞여버려 순종을 찾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탄한다.
 
자연계에서 다른 종끼리는 서로 교배하는 것을 막는 다양한 장치를 해 둔다. 서로 서식장소나 산란시기·장소를 달리하는 등 선택적인 행동을 한다. 그러나 왕종개와 참종개처럼 지리적으로 완벽하게 격리된 종 사이에는 이런 격리 장치가 없다. 따라서 지리적 격리장벽이  인공도수로 설치 등으로 무너지면 어렵게 분화한 두 종은 잡종화해 다양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외국에도 이런 예가 있다. 아프리카 최대 호수인 빅토리아호에는 씨클리드라는 민물고기가 산다. 수족관에서도 인기가 높은 물고기이지만 진화생물학자들에게는 보물과 같은 종이다. 왜냐하면 1만 5천 년이란 ‘짧은’ 기간에 한 종의 물고기가 무려 500여 종으로 분화했다. 호수 어느 곳에서는 거의 암초 하나마다 다른 종이 살 정도로 다양성이 뛰어나다. 식성도 호수의 여건에 맞춰 다채롭게 바뀌었다. 식물 플랑크톤을 먹는 것부터 다른 고기나 다슬기를 먹는 것, 다른  물고기의 비늘을 뜯어 먹는 종, 낳은 알을 입에 보관하는 다른 물고기를 놀라게 해 뱉어낸 알을 전문적으로 빼앗아 먹는 종 등 온갖 방식이 다 있다. 비슷비슷한 이들이 분화하는 비결은 색깔과 무늬의 미묘한 차이로 다른 종과 구분하는 것이다. 이 바람에 모양과 빛깔이 다채로워 관상어로 환영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씨클리드는 70년대부터 사람들이 외래종인 나일농어를 풀어놓아 200여 종이 멸종하는 타격을 입었다. 게다가 수질오염이 심해져  물이 탁해지면서 색깔 차이로 짝을 찾던 씨클리드들의 잡종화가 진행되고 있다. 진화가 거꾸로 진행하게 된 것이다.
 
자연에 맡겨두면 생물은 다양한 모습과 기능 진화
 
Untitled-3 copy.jpg

물고기 말고도 역진화의 사례가 있다. 태평양의 외딴 섬 갈라파고스에는 ‘다윈 핀치’란 작은 새들이 산다.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항해하다 채집한 이 핀치는 진화론 탄생에 기여했다. 섬에 고립된 한 종의 핀치가 무려 13종으로 분화했다. 이들은 비슷한 몸집과 색깔을 지녔지만 사는 곳, 먹이, 짝짓기 시기 등에 따라 부리의 크기와 모양은 천차만별이다. 씨앗만 먹는 것부터 육식성인 것까지 다양하다. 게다가 이들의 진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캐나다 맥길대학의 진화생태학자 앤드류 헨드리는 갈라파고스 산타 크루즈 섬의 핀치에게서 특이한 변화를 발견했다. 이 섬의 핀치는 1960년대 초만 해도 부리가 크거나 작았지 중간 크기는 없었다. 각각 큰 씨앗과 작은 씨앗을 먹기에 적합하도록 진화한 결과였다. 그런데 최근 다시 찾은 이 섬에서 중간 크기 부리가 판을 쳤다. 특히 마을 근처에 이들이 많았다. 그 원인은 사람들이 새 먹이로 쌀을 주기 시작한 데 있었다. 중간 크기의 씨앗인 쌀을 늘 먹을 수 있게 되면서, 크고 작은 크기의 씨앗에 적응하느라 분화된 종들이 점점 중간 크기의 부리로 바뀌어 간 것이었다. 사람이 진화의 방향을 거꾸로 돌려버린 셈이다.
 
진화의 원동력은 자연선택이다. 그러나 이제 ‘인간선택’이 자연을 바꾸고 있다. 인도양에 있는 마다가스카르 섬은 고유 생물이 많기로 유명하다. 이곳 열대림 식물의 60%가 세계 다른 곳에는 없는 특산종이다. 이들 가운데 ‘예언’이란 이름을 가진 난초가 있다. 진화론을 완성한 찰스 다윈이 처음 학계에 발표한 이 식물은, 꽃술이 꽃으로부터 45㎝나 떨어져 있다. 다윈은 언젠가 대롱의 길이가 45㎝나 되는 나방이 발견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예언은 반세기 뒤 다윈의 사후에 정확하게 맞았다.
 
오랜 진화과정을 거치면서 생물은 놀랄 만큼 다양한 모습과 기능을 갖추게 됐다. 다윈의 예언은 생물 다양성에 대한 폭넓은 관찰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는 새 한 마리의 깃털에 붙어있던 씨앗을 꼼꼼하게 떼어내 배양한 결과 모두 82종류의 싹을  틔우기도 했다. <계속>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이 글은 <다름의 아름다움>(고즈윈/2008/1만 원)에 실린 필자의 글 ‘왜 다윈핀치는 서로 비슷해지고 있나’를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태그 :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시베리아서 낙동강까지, 열목어 대이동의 비밀시베리아서 낙동강까지, 열목어 대이동의 비밀

    조홍섭 | 2017. 04. 10

    빙하기 시베리아서 남하, 아무르강 거쳐 2만년 전 한반도로최남단 서식지 낙동강 상류에 고유 집단 잔존 가능성 커북극해서 놀던 ‘시베리아 연어’한강과 낙동강 최상류 찬 개울에는 커다란 육식성 민물고기가 산다. 한여름에도 손이 저릴 만큼 차...

  • 브렉시트, 기후변화 대응에 불똥 튀나?브렉시트, 기후변화 대응에 불똥 튀나?

    조홍섭 | 2016. 07. 01

    파리협정 이행 갈길 먼데, '기후 리더' 영국 빠진 유럽연합 동력 상실 우려기록적 가뭄→시리아 난민사태→브렉시트→기후대응 약화 악순환되나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가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갖는지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공통적인 견...

  • 화학물질 참사 막으려면, 틀린 경보가 묵살보다 낫다화학물질 참사 막으려면, 틀린 경보가 묵살보다 낫다

    조홍섭 | 2016. 06. 03

    `가정 독물'인 살생물질 관리에 특별한 대책 필요…디디티 교훈 잊지 말아야과학적 불확실성 있어도 돌이킬 수 없는 피해 예상되면 조기경보 들어야  아침에 쓴 샴프나 손에 든 휴대전화, 금세 썩지 않는 나무의자에는 모두 화학물질이 들어있다....

  • 차로 치고 새끼 유괴하고…고라니의 잔인한 봄차로 치고 새끼 유괴하고…고라니의 잔인한 봄

    조홍섭 | 2016. 05. 06

    IUCN 취약종 지정, 체계적 조사 없이 우리는 매년 15만마리 죽여세계서 중국과 한국이 자생지, 중국은 멸종위기에 복원 움직임  야생동물을 맞히는 퀴즈. 수컷의 입에는 기다란 송곳니가 삐져나와 “흡혈귀 사슴”이란 별명이 붙어 있다. 가장 원...

  • 똑똑한 식물…때맞춰 꽃피우고 기억하고 속이고똑똑한 식물…때맞춰 꽃피우고 기억하고 속이고

    조홍섭 | 2016. 04. 08

    중추신경계 없지만 잎, 줄기, 뿌리가 네트워크로 연결돼 고등기능 수행 미모사는 30일 뒤까지 기억…공동체 이뤄 햇빛 못 받는 나무에 양분 나누기도     봄은 밀려드는 꽃 물결과 함께 온다. 기후변화로 개나리 물결이 지나기도 전에 벚꽃이 ...

인기글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