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하게 ‘설계된’, 완벽한 자연 진화 실험실

조홍섭 2009. 05. 19
조회수 18271 추천수 0
  세상을 바꾼 섬, 갈라파고스
 20대 풋내기 박물학자 다윈, 처음엔 진가 몰라
   해적, 죄수 등 험악한 방문자에겐 ‘야생 뷔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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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생물학자는 섬을 좋아한다. 섬에 가면 고립된 환경에 적응해 새로운 종이 탄생하는 과정을 확인하기 쉽기 때문이다. 장구한 세월이 걸리는 진화의 증거를 마치 실험실에서처럼 짧은 시간 안에 본다는 건 드문 행운이다.


특히 화산이 폭발해 굳은 화산섬이라면 ‘무’에서 새로운 생물집단이 형성되는 모습을 직접 관찰할 수 있어 최적의 연구대상이 된다.


그런 점에서 갈라파고스 섬한테 저명한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거의 완벽한 자연의 진화 실험실”이란 찬사를 붙인 데는 일리가 있다.


100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갈라파고스는 남미 에콰도르에서 태평양 쪽으로 약 1000㎞ 떨어져 있다. 대륙에서 너무 멀다면 생물이 이주해 들어오기 힘들고, 너무 가까우면 고립이 약해져 진화의 속도가 줄어든다. 본토에서 적당히 먼 갈라파고스는 그래서 정교하게 설계된 실험실이다.


갈라파고스의 자생식물 560종 가운데 180종이 특산종이고, 이들의 절반이 꽃가루받이를 토착 새가 한다는 사실은 이 섬이 얼마나 독특한가를 말해준다.

 
 자생식물 560종 중 180종이 특산종…파충류가 첫 손님

 
갈라파고스가 유명한 것은 진화론의 선구자인 찰스 다윈 덕분이다. 올해로 다윈 탄생 200돌, <종의 기원> 출간 150돌을 맞아 출간된 <갈라파고스>(폴 스튜어트 지음·이성호 옮김/궁리/3만 원)가 “세상을 바꾼 섬”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갈라파고스란 이름은 스페인어로 안장을 뜻하는 ‘갈라파고’에서 유래했다. 특이하게 말안장 모습을 한 이 섬 육지 거북의 등딱지 모양이 그 기원이다.


알프레드 베게너가 ‘대륙이 바다 위를 떠돈다’고 얘기했을 때 아무도 진지하게 듣지 않았지만, 현대의 판구조론은 그 추정이 옳았음을 말해준다.


대양 한가운데에서는 지구 내부의 물질이 솟아올라 새로운 땅을 형성해 대륙 쪽으로 확장한다. 바다와 대륙이 만나는 곳에서 해양판은 무거운 대륙판 밑으로 파고들어 다시 지구 밑 맨틀로 돌아간다. 대륙과 대륙이 부딪치는 거대한 에너지는 일본열도에서처럼 화산과 지진으로 분출된다.


지각판 가운데에서 화산이 분출하기도 한다. 뜨거운 맨틀이 지각으로 뿜어나오는 열점이 그곳이다. 고정된 열점 위로 지각판이 이동하면, 마치 용접용 불꽃 위로 철판이 천천히 움직일 때처럼 점점이 용암이 분출돼 띠 모양의 열도가 형성된다. 하와이와 갈라파고스는 그렇게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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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 부근에서 해양판인 태평양 판과 나스카 판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갈라파고스는 약 2300만 년 동안 열점이 일련의 용암 섬을 뿌려놓았다.


불이 만든 이 섬에 처음 이주한 동물은 파충류였다. 체온을 유지하지 않아도 되는 파충류는 온도변화가 극심하고 먹을 것이 많지 않은 곳에서 포유류보다 살아남기에 유리하다.


차고 영양분이 풍부한 바닷가를 중심으로 고래, 물개, 펭귄, 바다거북, 부비, 바다이구아나가 자리를 잡았고, 건조하고 덥지만 코끼리거북, 육지이구아나, 용암도마뱀 등이 육지에서 선인장 등의 먹이를 찾았다.


진화론의 증거로 유명해진 새인 핀치는 육지에서 이주한 뒤 기후와 먹이에 따라 여러 가지 부리 형태를 지닌 종으로 분화했다.

 
 인간에겐 오랫동안 저주의 섬…제국주의 열강도 못본 체
 
그렇다고 이 섬이 생물들의 낙원은 아니었다. 주기적으로 동태평양 바닷물의 온도가 높아지는 엘니뇨가 오면, 영양가 많은 한류가 차단돼 바다생물은 광범한 기아사태에 허덕였다.


반면에 육지에는 강수량이 늘어 생명이 넘쳤다. 라니냐가 오면 정반대 현상이 벌어졌다. 변덕스런 환경에 맞서 사투를 벌이는 과정은 바로 진화의 발걸음에 내리친 채찍질이었다.


갈라파고스는 인간에게 오랫동안 저주의 섬이었다.


1355년 파나마의 주교 프라이 토마스 데 벨랑가는 갈라파고스에 상륙한 역사에 기록된 첫 인간이다. 표류하다 기착한 그에게 섬은 물이 없고 바람이 센 못쓸 곳이었다. 해변에는 암초가 널려있고 조류도 거셌다.


발견 이후 250년 동안, 이 섬에는 이주자는 없고 방문자만 있었다. 그만큼 살기 힘든 곳이었다.


갈라파고스를 방문한 명사 가운데 하나인 <백경>의 저자 허만 멜빌은 “과연 지구상 어느 곳이 이 섬과 같은 황량함을 제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적었다.


대부분 방문자의 면면은 해적, 포경선 선원, 흉악한 표류자, 죄수 등 자연여건만큼 험악했다. 그들에게 섬은 “야생의 뷔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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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동안 딱딱한 비스킷과 소금에 절인 상한 고기로 연명하던 선원에게 거북은 별미였다. 게다가 이 순한 동물은 창고에 쌓아놓으면 몇 달이고 산 채로 보관할 수 있었다. 갈라파고스의 육지거북 20만 마리 이상이 이렇게 도살됐다.


포유동물을 경험하지 못한 섬의 날개 없는 새들은 사람들의 모자 위에 앉거나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다가 손쉽게 잡혔다. 이런 행운은 사람들이 들여온 돼지와 쥐에게로 이어졌다.


어쨌든 갈라파고스의 명성은 그리 좋지 않아 제국주의 열강 어느 나라도 차지하려고 하지 않았고, 에콰도르는 이곳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한 해 17만 명 발길, 생태관광 명소

 
이 섬의 가장 유명한 방문객은 찰스 다윈이다. 그는 1835년 비글호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는 도중 이 섬에 들렀다.


당시 그는 20대 후반의 풋내기 박물학자였고 불과 5주 동안 이 섬에 머물렀지만, 이 짧은 방문이 진화론 형성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다. 저자는 갈라파고스가 다윈의 “모든 견해의 기원이고 <종의 기원>의 근원이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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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다윈이 갈라파고스의 가치를 당장 알아차렸다는 뜻은 아니다. 자연선택에 의한 종 분화의 유명한 증거인 핀치에 대해 그는 잘 몰랐다. 섬마다 다른 모습의 부리를 가진 변화가 나타났지만 그는 어느 섬에서 채집했는지도 표본에 기록하지 않았다.


항해에서 돌아와 표본을 조류학자 존 굴드에게 보낸 뒤에야 섬 4개에 13종의 다른 핀치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듣고는 비글호 선원과 선장에게 표지를 한 표본이 남아있는지 묻는 편지를 보내는 등 부산을 떨었다.


비글호에는 갈라파고스 거북도 45마리나 실었지만 항해 도중 다 먹어치웠다. 섬마다 등딱지 모양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으련만 등딱지는 모두 바닷속으로 내던졌다.


어쨌든 다윈이 만년에 내놓은 <종의 기원>은 1859년 발매 첫날 1250부가 매진되는 등 대 히트를 쳤다.


아직도 섬과 그 생물의 진화가 진행중인 갈라파고스는 유네스코 자연유산이자 국립공원으로 생태관광의 명소이다.
 

C7.jpg면적 8000㎢의 작은 섬에 지난해에만 17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왔다. 사람들과 함께 외래종 유입도 늘어, 1300종이 넘는 외래종이 고유종을 위협하고 있다.
 

이 책은 최근 인기가 높아지는 갈라파고스의 자연과 자연사에 대한 여행안내를 부록으로 담고 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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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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