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 마리 물고기 하루만에 알아맞힌 ‘집단지성’
조사팀, 남미 정글 현지서 표본 사진 페이스북 올려
전 세계 어류학자들 종 분류 뜨거운 논쟁 끝에 합의
▲데빈 블룸이 남미 가이아나 쿠유니 강에서 채집한 물고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토론토대학 스카보로캠퍼스
남미 가이아나의 열대림에서 채집한 5000여 마리의 이름 모를 민물고기 이름을 하루 안에 모두 알아맞히는 방법이 있을까.
정답은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것이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 스카보로 캠퍼스의 진화생물학자인 데빈 블룸은 페이스북의 열렬한 이용자는 아니다. 하지만 지난 1~2월 가이아나에서 물고기 조사를 하면서 소셜 네트워킹의 위력을 실감했다.
블룸 팀은 미국 스미소니언 연구소의 국립자연사박물관의 지원을 받아 쿠유니 강의 어류조사에 나섰다고 이 대학이 홈페이지에서 밝혔다.
가이아나와 베네수엘라 국경의 빽빽한 정글을 흐르는 이 강은 최근 금광 개발 때문에 심각한 생태학적 압력을 받고 있다. 광산의 흙탕물과 수은이 강의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따라서 이 강이 더 망가지기 전에 어떤 물고기가 사는지 시급히 조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전세계 어류학자에게 긴급 분류 요청을 한 어류 표본의 사진
조사팀은 2주일 동안 밤낮으로 여러 가지 그물을 이용해 어류를 채집해, 5000마리가 넘는 표본을 확보했다.
문제는 출국 수속을 하면서 빚어졌다. 표본을 가지고 나가려면 가이아나 정부에 어떤 종류의 물고기를 몇 마리 채집했는지를 정확히 보고해야 하는데, 연구진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출국까지는 며칠 남지도 않았다.
블룸은 “어류학자는 모든 물고기를 다 알 것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며 “자기가 전공하는 분야의 어류만 정확히 종의 구분(동정)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때 나온 아이디어가 페이스북을 이용해 보자는 것이었다. 조사팀은 물고기의 사진을 일일이 찍은 뒤 페이스북에 올렸다.
세계의 어류학자들이라야 숫자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남미에서 날아온 구조신호를 듣자 소셜 네트워크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종을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를 놓고 바다 건너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고 차츰 합의에 도달했다. 블룸은 “마치 동료학자 평가(피어 리뷰)가 전 세계 차원에서 벌어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쿠유니 강에서 채집한 물고기의 표본 사진
놀랍게도 그 많은 물고기의 동정 작업은 하루만에 끝났다. 페이스북은 지난 3월30일치 ‘금주의 이야기’에 이 사례를 소개했고, 이 기사는 전 세계 9000명이 넘는 사람들로부터 “좋아합니다” 추천을 받았다.
이번 사례는 소셜 네트워킹이 생물학 연구에 쓰일 수 있는 강력한 도구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조사 자체의 결과는 어둡다. 블룸은 “어류의 다양성과 풍부도 모두 과거의 조사에 견줘 매우 낮았다”고 밝혔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