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환경기자들의 수다, 논쟁, 소통
‘기후변화 기사가 왜 안 먹히느냐’ 말문 터
과학-언론, 선진국-개도국 갈등 도마 올라

전세계의 환경기자들이 모여 수다를 떨었다. 요즘 날씨가 왜 이 모양이냐며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건기가 절정이어야 할 8월에 대홍수가 났다며 인도네시아 기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본 언론인은 올여름 더위로 밭의 수박이 다 녹아내렸다며 식탁에 오른 수박을 반가워했다. 화제는 기후변화 기사가 왜 ‘안 먹히느냐’로 이어졌다.
보도 위축 위기감에 ‘기후변화와 언론’ 심포지엄
지난 1~4일 중국 상하이에서 ‘기후변화와 언론’을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 참가했다. 주중 영국문화원이 세계의 중견 환경기자들을 엑스포가 열리고 있는 상하이로 불러모은 것이다. 기후변화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국가간 협상은 지지부진한데도 언론의 보도는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는 위기감이 모임을 연 동기의 하나였다.
실제로 패디 쿨터 옥스퍼드대 미디어전문가는 “세계의 기후변화 보도 건수가 코펜하겐 회의까지 폭발적으로 늘다가 그 직후 그야말로 붕괴해 회복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관련 그래프를 제시했다. 그 배경엔 미국의 소극적 태도, 잇따른 ‘기후 게이트’, 기대를 모았던 코펜하겐 총회의 실패, 지난겨울의 이상한파 등이 놓여 있다.
회의에선 기후변화 문제를 다루는 언론의 관행이 도마에 올랐다. 마크 플러리 세계과학기자연맹 사무총장은 “기후변화 보도는 지난 10년 동안 미국 언론의 최대 실수로 기록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과학적 논의 자체를 부정하는 주장을 과잉 대변하는 ‘균형의 함정’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 결과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자는 여론이 형성되지 않았고 정부가 강력한 정책을 펴도록 압박하지도 못했다.

‘기후 게이트’ 후폭풍…과학인가 여론폭탄인가
기후과학자와 언론인 사이의 소통도 삐걱거렸다. 특히 코펜하겐 총회 직전엔 기후과학의 신뢰를 뒤흔든 이른바 ‘기후 게이트’로 기후변화 보도는 더욱 움츠러들었다.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학의 기후연구소에서 해킹된 전자우편 내용이 공개되면서 “기후과학자들이 기록을 의도적으로 폐기하고, 온도 감소 데이터를 숨겼으며, 비판자의 논문이 게재되지 못하도록 막았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또 비슷한 시기에 히말라야의 빙하가 2035년 이전에 사라질 것이란 기후변화정부간위원회(IPCC)의 2007년 보고서가 잘못됐다는 보도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사태를 보는 언론과 과학계에는 온도차가 있었다. 기후과학자인 데이비드 바이너 영국문화원 기후변화사업 책임자는 “청문회 결과 연구자들이 데이터를 조작했거나 비판적 논문을 가로막은 증거가 없음이 드러났다”며 “기후 게이트에도 기후변화에 관한 결론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물론 연구 부정이나 ‘뻥튀기’를 감시하는 것은 과학기자의 본령에 속한다. ‘히말라야 게이트’를 폭로한 팔라바 바글라 <뉴델리 텔레비전> 과학편집장은 위원회의 라젠드라 파차우리 의장을 인터뷰한 화면을 회의장에서 소개했다. 파차우리 의장은 히말라야의 빙하가 실제론 커지고 있다는 인도 환경산림부의 조사결과를 들이대자 “이건 과학이 아니고 여론 폭탄”이라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명백한 증거 앞에서 정부간위원회는 올 1월 빙하의 후퇴 속도를 잘못 추정했다며 유감의 뜻을 밝혔다. 문제는 파차우리 의장의 태도다. 그는 지난 7월 “과학자들은 언론과 거리를 두라”고 충고했다. 바글라 편집장은 “파차우리는 과학자와 언론인의 소통이 기후변화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고 있다”며 “다음달 부산에서 열리는 기후변화정부간위원회 총회에서 그가 어떻게 개혁과 사임 압력을 견디나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머리 맞대고 서로의 차이와 공통점 확인
이번 심포지엄에는 독일·영국·노르웨이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인도·짐바브웨 등 개도국 기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차이와 공통점을 확인하는 기회였다. 선진국 기자들은 개도국의 어려운 사정을 새삼 실감했다. 이미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강해진 싸이클론 피해가 막심한 인도 순더반드 습지를 취재한 인도 기자는 “주민 열에 아홉은 ‘기후변화’란 말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고 전했다. 유럽에서 여기까지 비행기 여행을 한 번 할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인도인 7명이 1년간 살아가며 배출하는 양과 같다는 계산결과도 제시됐다. 한 중국 기자는 “탄소집약도를 낮추기 위해 광저우에 있는 공장 하나가 문을 닫는데 6천명이 실직한다”며 “선진국에선 이것이 얼마나 힘든 결정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개도국 기자들은 선진국 도시들이 국익을 떠나 기후변화에 전향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음을 인정했다. 필립 로 런던정경대(LSE) 교수는 원격 화상강연을 통해 “녹색 생활방식의 선구자이자 새로운 행동변화와 사고방식에 개방적인 도시야말로 기후변화를 극복할 핵심 주체”라고 강조했다. 그는 런던 시민이 영국인 평균보다 이산화탄소를 40%나 덜 배출한다는 조사결과를 소개하기도 했다.
과학과 언론,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갈등을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소통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이번 심포지엄에서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오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배출전망 대비 30% 감축하기로 한 중기계획에 따라 내년 상반기까지 구체적인 감축량 을 부문별 업종별로 할당하는 작업이 이뤄진다. 기업과 개인, 또는 업종별로 누가 얼마나 많은 감축의 짐을 질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다. 논란과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다. 사회적 합의를 위한 소통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과학-언론, 선진국-개도국 갈등 도마 올라

전세계의 환경기자들이 모여 수다를 떨었다. 요즘 날씨가 왜 이 모양이냐며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건기가 절정이어야 할 8월에 대홍수가 났다며 인도네시아 기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본 언론인은 올여름 더위로 밭의 수박이 다 녹아내렸다며 식탁에 오른 수박을 반가워했다. 화제는 기후변화 기사가 왜 ‘안 먹히느냐’로 이어졌다.
보도 위축 위기감에 ‘기후변화와 언론’ 심포지엄
지난 1~4일 중국 상하이에서 ‘기후변화와 언론’을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 참가했다. 주중 영국문화원이 세계의 중견 환경기자들을 엑스포가 열리고 있는 상하이로 불러모은 것이다. 기후변화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국가간 협상은 지지부진한데도 언론의 보도는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는 위기감이 모임을 연 동기의 하나였다.
실제로 패디 쿨터 옥스퍼드대 미디어전문가는 “세계의 기후변화 보도 건수가 코펜하겐 회의까지 폭발적으로 늘다가 그 직후 그야말로 붕괴해 회복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관련 그래프를 제시했다. 그 배경엔 미국의 소극적 태도, 잇따른 ‘기후 게이트’, 기대를 모았던 코펜하겐 총회의 실패, 지난겨울의 이상한파 등이 놓여 있다.
회의에선 기후변화 문제를 다루는 언론의 관행이 도마에 올랐다. 마크 플러리 세계과학기자연맹 사무총장은 “기후변화 보도는 지난 10년 동안 미국 언론의 최대 실수로 기록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과학적 논의 자체를 부정하는 주장을 과잉 대변하는 ‘균형의 함정’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 결과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자는 여론이 형성되지 않았고 정부가 강력한 정책을 펴도록 압박하지도 못했다.

‘기후 게이트’ 후폭풍…과학인가 여론폭탄인가
기후과학자와 언론인 사이의 소통도 삐걱거렸다. 특히 코펜하겐 총회 직전엔 기후과학의 신뢰를 뒤흔든 이른바 ‘기후 게이트’로 기후변화 보도는 더욱 움츠러들었다.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학의 기후연구소에서 해킹된 전자우편 내용이 공개되면서 “기후과학자들이 기록을 의도적으로 폐기하고, 온도 감소 데이터를 숨겼으며, 비판자의 논문이 게재되지 못하도록 막았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또 비슷한 시기에 히말라야의 빙하가 2035년 이전에 사라질 것이란 기후변화정부간위원회(IPCC)의 2007년 보고서가 잘못됐다는 보도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사태를 보는 언론과 과학계에는 온도차가 있었다. 기후과학자인 데이비드 바이너 영국문화원 기후변화사업 책임자는 “청문회 결과 연구자들이 데이터를 조작했거나 비판적 논문을 가로막은 증거가 없음이 드러났다”며 “기후 게이트에도 기후변화에 관한 결론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물론 연구 부정이나 ‘뻥튀기’를 감시하는 것은 과학기자의 본령에 속한다. ‘히말라야 게이트’를 폭로한 팔라바 바글라 <뉴델리 텔레비전> 과학편집장은 위원회의 라젠드라 파차우리 의장을 인터뷰한 화면을 회의장에서 소개했다. 파차우리 의장은 히말라야의 빙하가 실제론 커지고 있다는 인도 환경산림부의 조사결과를 들이대자 “이건 과학이 아니고 여론 폭탄”이라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명백한 증거 앞에서 정부간위원회는 올 1월 빙하의 후퇴 속도를 잘못 추정했다며 유감의 뜻을 밝혔다. 문제는 파차우리 의장의 태도다. 그는 지난 7월 “과학자들은 언론과 거리를 두라”고 충고했다. 바글라 편집장은 “파차우리는 과학자와 언론인의 소통이 기후변화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고 있다”며 “다음달 부산에서 열리는 기후변화정부간위원회 총회에서 그가 어떻게 개혁과 사임 압력을 견디나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머리 맞대고 서로의 차이와 공통점 확인
이번 심포지엄에는 독일·영국·노르웨이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인도·짐바브웨 등 개도국 기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차이와 공통점을 확인하는 기회였다. 선진국 기자들은 개도국의 어려운 사정을 새삼 실감했다. 이미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강해진 싸이클론 피해가 막심한 인도 순더반드 습지를 취재한 인도 기자는 “주민 열에 아홉은 ‘기후변화’란 말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고 전했다. 유럽에서 여기까지 비행기 여행을 한 번 할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인도인 7명이 1년간 살아가며 배출하는 양과 같다는 계산결과도 제시됐다. 한 중국 기자는 “탄소집약도를 낮추기 위해 광저우에 있는 공장 하나가 문을 닫는데 6천명이 실직한다”며 “선진국에선 이것이 얼마나 힘든 결정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개도국 기자들은 선진국 도시들이 국익을 떠나 기후변화에 전향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음을 인정했다. 필립 로 런던정경대(LSE) 교수는 원격 화상강연을 통해 “녹색 생활방식의 선구자이자 새로운 행동변화와 사고방식에 개방적인 도시야말로 기후변화를 극복할 핵심 주체”라고 강조했다. 그는 런던 시민이 영국인 평균보다 이산화탄소를 40%나 덜 배출한다는 조사결과를 소개하기도 했다.
과학과 언론,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갈등을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소통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이번 심포지엄에서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오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배출전망 대비 30% 감축하기로 한 중기계획에 따라 내년 상반기까지 구체적인 감축량 을 부문별 업종별로 할당하는 작업이 이뤄진다. 기업과 개인, 또는 업종별로 누가 얼마나 많은 감축의 짐을 질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다. 논란과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다. 사회적 합의를 위한 소통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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