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도 모르는 귀신고래 귀신처럼 나타날까
현상금 걸린 유일한 동물…일제가 씨 말려
유독 한국인 모습과 심성 닮아 애착 더 해

현상금이 걸린 동물이라면, 어린 시절 읽은 <시튼 동물기>의 ‘이리 왕’ 로보가 생각난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일은 종종 있었다. 조선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호랑이를 잡는 사람을 조정이나 정부는 늘 상금을 주어 칭찬하고 북돋았다.
이제 멸종위기에 몰린 동물이 늘어나자 이를 목격한 사람에게 상금을 주기도 한다. <동아일보>는 1996년 크낙새, 여우, 늑대를 목격한 사람에게 500만원을 주겠다며 신고를 받았지만, 아무도 돈을 타가지 못했다. 2004년 강원도 양구에서 죽은 여우가 발견된 것이 전부다.
여우는 1960년대까지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동물이지만 대대적인 쥐약살포와 모피를 얻기 위한 남획으로 사라졌다. 양구에선 전문가들이 여우를 찾기 위해 무인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몇 년째 노력했지만 성과는 없다.
봤다는 어민들 제보로 긴급출동
현재 현상금이 걸린 동물은 귀신고래가 유일하다. 국립수산과학원은 2008년 귀신고래를 사진 또는 동영상으로 찍어오면 500만원, 그물에 걸려 죽은 개체를 가져오면 1천 만 원의 포상금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 귀신고래를 봤다는 어민들의 제보가 접수돼 관심을 끌었다.
울산어선 남경호 선장 김상규(60)씨 등 어민 4명은 지난 7월10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10마일 해상에서 귀신고래 2마리가 30여분 동안 헤엄치는 것을 봤다고 울산 방어진수협에 신고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이 고래를 “큰 덩치에 온 몸에 따개비가 붙어 있었다”고 비교적 생생하게 묘사했다. 만일 이 신고가 사실이라면 귀신고래는 1967년 사라진 뒤 40여년 만에 돌아온 셈이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는 즉시 선박을 띄워 이 목격담 확인에 나섰다. 사실, 귀신고래가 나타났을 확률은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귀신고래가 회유할 시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자연에는 이변이 있는 법, 기후변화로 해양환경이 바뀌었을 수도 있으니 조사에 나선 것이다. 조사 결과 목격 해역에서 어떤 고래도 찾을 수 없었다. 어민은 한 번도 귀신고래를 실제로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목격한 고래도 물속에 있어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크기가 큰 두 마리였고 따개비가 피부에 다닥다닥 붙어있었다고 증언했다.
고래연구소는 이들 어민이 본 것은 고래가 맞지만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 내렸다. 혹등고래는 봄철 서귀포 근해에서 지내다 동해를 거쳐 북상한다. 최석관 고래연구소 박사는 “귀신고래가 동해로 회유하는 시기는 11월~3월”이라며 “올 12월 다시 조사선을 내보내 혹시 귀신고래가 찾아왔는지 알아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잡으려 해도 귀신처럼 잘 도망간다고 해서…
귀신고래는 어떤 고래이기에 정부기관이 현상금까지 걸고 출현을 고대하는 걸까. 문교부가 1967년 발간한 한국 동식물 도감의 동물 편을 뒤져보면 귀신고래란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귀신고래의 영어 이름(gray whale)과 학명(Eschrichtius robustus)이 일치하는 고래는 ‘쇠고래’로 되어 있다. 일본 이름 고쿠지라(小鯨)를 그대로 옮긴 이름이다.
그러나 울산지역에서는 ‘돌고래’, 포경선원 사이에서는 ‘귀신고래’란 말이 널리 쓰였다. 전자는 해안의 돌 사이를 누비고 다니거나 몸에 따개비 등이 부착된 것을 가리킨 이름이다. 귀신고래란 이름은 잡으려 해도 귀신처럼 잘 도망간다고 해서 붙었을 것이다. 이 고래는 연안 가까이에서 머리만 빼꼼히 내밀어 동태를 살피는 버릇이 있는데, 물질을 하던 해녀가 기겁을 하고 이렇게 불렀을 수도 있다.
또는 캘리포니아 귀신고래를 ‘악마 고기’(devil fish)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를 옮긴 것일 가능성도 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산호초로 둘러싸인 호수처럼 얕은 바다(라군)에서 귀신고래가 새끼를 낳는데, 이때 포경선이 공격하면 무섭게 반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름과 관련한 이상의 내용은 국립수산과학원 손호선씨가 ‘이재훈의 고래사랑’ 사이트 http://awhale.hihome.com/에 올린 글을 참고했음)
귀신고래는 다 자라면 길이 16m에 무게는 36t이나 나가는 큰 고래이다. 북방긴수염고래나 혹등고래처럼 수염고래에 속하지만 수염은 아주 짧다. 크릴을 먹는 다른 수염고래와 달리 얕은 바다 밑바닥의 펄을 걸러 소형 갑각류를 잡아먹는 습성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거대한 고래가 바다 밑바닥에서 입을 벌린 채 쟁기질을 하듯 바닥을 훑는 모습이 눈에 생생하다.
바닥 근처에서 먹이를 찾는 습성 때문에 귀신고래의 몸에는 굴 껍데기, 삿갓조개, 따개비 등이 잔뜩 부착돼 있다. 또 다른 수염고래와는 달리 턱 아래에 주름 대신 깊고 짧은 홈이 2~5개 있다.
“산모가 미역국을 먹게 된 것은 고래에게서 배워”

귀신고래에는 유독 한국인의 모습과 심성을 닮은 측면이 있어 애착을 갖게 하는지도 모른다. 고래 전문가인 김장근 국립수산과학원 박사는 산모가 미역국을 먹게 된 것은 고래로부터 배웠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고 밝혔다. 당나라의 유서 <초학기>에는 “고래가 새끼를 낳으면 미역을 뜯어먹어 산후의 상처를 낫게 하는 것을 보고 고려 사람들이 산모에게 미역을 먹인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고려인은 고구려인을 가리킨다.
1912년 울산에서 한국계 귀신고래를 처음 연구한 미국의 탐험가이자 박물학자인 로이 채프만 앤드루스(1884-1960)는 한국 귀신고래의 위속에서 미역이 젤라틴처럼 가득 녹아있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계 귀신고래도 미역 등 해조류를 입에 물고 뒹구는 모습이 관찰됐으나 이는 해조류에 붙어있는 갑각류를 먹기 위한 행동이지 해조류 자체를 먹으려는 것은 아니라는 해석도 있다.
귀신고래는 적어도 선사시대부터 한반도 근해에 살았다는 증거가 있다. 바로 반구대 암각화이다. 특히 이 암각화는 그림으로 고래의 종류를 가릴 수 있을 정도로 형태의 특성을 잘 묘사하고 있다. 여기엔 귀신고래를 비롯해 북방긴수염고래, 향고래, 범고래, 들쇠고래 등이 나와 있다.
이렇게 한반도와 오랜 관계를 맺어온 귀신고래는 왜 자취를 감추었을까. 먼저 귀신고래의 분포 실태를 알아보자. 세계의 귀신고래는 태평양의 동쪽인 캘리포니아와 서쪽인 오호츠크 해에 서식하는 두 무리로 나뉜다. 캘리포니아 집단은 멕시코 바하 반도에서 베링 해까지 이동하는 무리로 연간 왕복거리 1만6천~2만2천㎞를 주파하는 장거리 여행자이다. 먹이가 많은 찬 바다에서 지방을 축적한 뒤 따뜻한 바다에서 번식한다. 어린 고래는 지방층이 얇아 추위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따뜻한 바다에는 먹이가 부족해 거의 먹지 않고 버텨야 한다.

대형고래의 마지막 보고였던 동해, 서구 열강 눈독
현재 2만 마리가 있는 캘리포니아 집단은 성공적인 고래관광의 주인공이다. 호기심이 많고 연안에 붙어살며 장거리를 이동하기에 육지에서도 관찰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 고래도 포경산업의 남획으로 한때 멸종위기에 몰렸다. 절정기인 1846~1874년 사이에만 무려 8천 마리가 잡혔다. 멸종 직전인 1936년에야 보호조처가 이뤄졌다.
고래잡이는 17세기부터 대규모로 이뤄졌다. 런던, 파리, 뉴욕 등 세계의 대도시 가로등을 밝힌 것은 모두 고래 기름이었다. 추운 날씨에도 얼지 않는 고래 기름은 윤활유로 쓰였고, 고래수염과 각종 부산물은 마가린, 글리세린, 양초, 비누, 합성수지, 향수, 의약품, 호르몬제, 여성 내의 코르셋 등 500여 가지 공산품의 원료로 쓰였다.
북대서양과 북태평양의 고래를 고갈시킨 서구 열강의 포경선단은 마지막 남은 고래 자원을 찾느라 눈이 벌갰다. 대형고래의 마지막 보고인 동해에 19세기 중반부터 미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그리고 일본의 포경선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김장근 박사에 따르면, 1849년 한반도 연안에서 조업한 미국 포경선은 포경일지에 “어느 쪽을 봐도 고래가 보인다”거나 “셀 수 없이 고래가 많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1899년 일본의 어느 포경선도 “1월13일 강원도 영일만에 들어갔는데, 100두의 귀신고래 떼가 들어와 있었다” “1월18일 영일만 동북동 20마일 정도, 사방팔방에 참고래 득실, 30~40마일에 걸쳐 고래뿐이다. 배가 빨리 갈 때는 고래 등 위로 올라가기도 하고 고래가 배를 향해 오기도 했다. 그 수를 따지면 몇 천 두에 이르러 쉽게 그 두수를 알 수 없었다”고 일지에 적었다.
한국 연안의 대형고래에 마지막 치명타를 가한 것은 일본이었다. 환경운동연합이 국제포경위원회의 통계를 근거로 작성한 자료를 보면, 1911~1945년 동안 일본이 한국에서 잡은 귀신고래는 모두 1306마리에 이르렀다. 1957~1986년 사이에 포획한 귀신고래는 모두 39마리에 불과했다.
그물에 걸려 죽는 고래 90%가 한국과 일본
한국계 귀신고래는 오호츠크 해의 추운 바다와 동해 사이를 이동경로로 삼아 왔다. 앤드루스는 겨울에 울산에서 잡히는 귀신고래가 출산이 임박한 상태임에 비추어 한국 남해안 다도해에서 새끼를 낳아 기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울산에서의 조사를 바탕으로 귀신고래가 캘리포니아 집단뿐 아니라 오호츠크 해 집단이 따로 있음을 처음으로 밝혔고, 서태평양 집단에 ‘한국계 귀신고래’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현재 160여 마리가 살아남아 멸종위기 상태에 놓여있는 서태평양 귀신고래는 동해안으로 오지 않고 일본의 동해안(태평양 쪽)으로 회유하고 있음이 최근 밝혀지고 있다. 일본 학자들 사이에선 이 무리를 더는 ‘한국계’로 부르지 않고 ‘아시아계’로 바꿔 부르고 있다.
이제 귀신고래가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있을까. 희망은 단 하나, 오호츠크 해에서 월동하는 귀신고래의 일부가 예전처럼 동해로 찾아오는 것이다. 귀신고래가 겨울에 동해안으로 회유했음에 비추어 울산 어민의 관찰은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더라도 희망의 끈을 놓을 순 없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오호츠크 해 귀신고래에 대한 조사를 해마다 벌이고 있다.
이 집단에 대해 세계자연보전연맹은 ‘멸종위기’ 판정을 내렸다. 주 서식지가 유전개발 지대이기도 하다. 설사 귀신고래가 한반도까지 남하하더라도 연안이 그들을 받아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연안은 그물로 촘촘하게 둘러쳐 있다. 지난 10년 동안 그물에 걸려 익사한 고래는 4722마리에 이른다. 전 세계에서 그물에 걸려 죽는 고래의 90%가 한국과 일본에서 보고된 것이다.
게다가 고래의 불법포획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정부도 고래를 멸종위기 동물이 아닌 자원으로 보아, 환경부가 아니라 농림수산부가 담당하고 있다. 이런 난관을 뚫고 귀신고래가 다시 한반도 바다를 헤엄칠 수 있을까. 백두산 일대에 몇 마리 남아있는 한국 범이 다시 한반도 남쪽에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유독 한국인 모습과 심성 닮아 애착 더 해

현상금이 걸린 동물이라면, 어린 시절 읽은 <시튼 동물기>의 ‘이리 왕’ 로보가 생각난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일은 종종 있었다. 조선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호랑이를 잡는 사람을 조정이나 정부는 늘 상금을 주어 칭찬하고 북돋았다.
이제 멸종위기에 몰린 동물이 늘어나자 이를 목격한 사람에게 상금을 주기도 한다. <동아일보>는 1996년 크낙새, 여우, 늑대를 목격한 사람에게 500만원을 주겠다며 신고를 받았지만, 아무도 돈을 타가지 못했다. 2004년 강원도 양구에서 죽은 여우가 발견된 것이 전부다.
여우는 1960년대까지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동물이지만 대대적인 쥐약살포와 모피를 얻기 위한 남획으로 사라졌다. 양구에선 전문가들이 여우를 찾기 위해 무인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몇 년째 노력했지만 성과는 없다.

현재 현상금이 걸린 동물은 귀신고래가 유일하다. 국립수산과학원은 2008년 귀신고래를 사진 또는 동영상으로 찍어오면 500만원, 그물에 걸려 죽은 개체를 가져오면 1천 만 원의 포상금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 귀신고래를 봤다는 어민들의 제보가 접수돼 관심을 끌었다.
울산어선 남경호 선장 김상규(60)씨 등 어민 4명은 지난 7월10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10마일 해상에서 귀신고래 2마리가 30여분 동안 헤엄치는 것을 봤다고 울산 방어진수협에 신고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이 고래를 “큰 덩치에 온 몸에 따개비가 붙어 있었다”고 비교적 생생하게 묘사했다. 만일 이 신고가 사실이라면 귀신고래는 1967년 사라진 뒤 40여년 만에 돌아온 셈이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는 즉시 선박을 띄워 이 목격담 확인에 나섰다. 사실, 귀신고래가 나타났을 확률은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귀신고래가 회유할 시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자연에는 이변이 있는 법, 기후변화로 해양환경이 바뀌었을 수도 있으니 조사에 나선 것이다. 조사 결과 목격 해역에서 어떤 고래도 찾을 수 없었다. 어민은 한 번도 귀신고래를 실제로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목격한 고래도 물속에 있어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크기가 큰 두 마리였고 따개비가 피부에 다닥다닥 붙어있었다고 증언했다.
고래연구소는 이들 어민이 본 것은 고래가 맞지만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 내렸다. 혹등고래는 봄철 서귀포 근해에서 지내다 동해를 거쳐 북상한다. 최석관 고래연구소 박사는 “귀신고래가 동해로 회유하는 시기는 11월~3월”이라며 “올 12월 다시 조사선을 내보내 혹시 귀신고래가 찾아왔는지 알아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잡으려 해도 귀신처럼 잘 도망간다고 해서…
귀신고래는 어떤 고래이기에 정부기관이 현상금까지 걸고 출현을 고대하는 걸까. 문교부가 1967년 발간한 한국 동식물 도감의 동물 편을 뒤져보면 귀신고래란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귀신고래의 영어 이름(gray whale)과 학명(Eschrichtius robustus)이 일치하는 고래는 ‘쇠고래’로 되어 있다. 일본 이름 고쿠지라(小鯨)를 그대로 옮긴 이름이다.
그러나 울산지역에서는 ‘돌고래’, 포경선원 사이에서는 ‘귀신고래’란 말이 널리 쓰였다. 전자는 해안의 돌 사이를 누비고 다니거나 몸에 따개비 등이 부착된 것을 가리킨 이름이다. 귀신고래란 이름은 잡으려 해도 귀신처럼 잘 도망간다고 해서 붙었을 것이다. 이 고래는 연안 가까이에서 머리만 빼꼼히 내밀어 동태를 살피는 버릇이 있는데, 물질을 하던 해녀가 기겁을 하고 이렇게 불렀을 수도 있다.
또는 캘리포니아 귀신고래를 ‘악마 고기’(devil fish)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를 옮긴 것일 가능성도 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산호초로 둘러싸인 호수처럼 얕은 바다(라군)에서 귀신고래가 새끼를 낳는데, 이때 포경선이 공격하면 무섭게 반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름과 관련한 이상의 내용은 국립수산과학원 손호선씨가 ‘이재훈의 고래사랑’ 사이트 http://awhale.hihome.com/에 올린 글을 참고했음)
귀신고래는 다 자라면 길이 16m에 무게는 36t이나 나가는 큰 고래이다. 북방긴수염고래나 혹등고래처럼 수염고래에 속하지만 수염은 아주 짧다. 크릴을 먹는 다른 수염고래와 달리 얕은 바다 밑바닥의 펄을 걸러 소형 갑각류를 잡아먹는 습성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거대한 고래가 바다 밑바닥에서 입을 벌린 채 쟁기질을 하듯 바닥을 훑는 모습이 눈에 생생하다.
바닥 근처에서 먹이를 찾는 습성 때문에 귀신고래의 몸에는 굴 껍데기, 삿갓조개, 따개비 등이 잔뜩 부착돼 있다. 또 다른 수염고래와는 달리 턱 아래에 주름 대신 깊고 짧은 홈이 2~5개 있다.
“산모가 미역국을 먹게 된 것은 고래에게서 배워”

귀신고래에는 유독 한국인의 모습과 심성을 닮은 측면이 있어 애착을 갖게 하는지도 모른다. 고래 전문가인 김장근 국립수산과학원 박사는 산모가 미역국을 먹게 된 것은 고래로부터 배웠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고 밝혔다. 당나라의 유서 <초학기>에는 “고래가 새끼를 낳으면 미역을 뜯어먹어 산후의 상처를 낫게 하는 것을 보고 고려 사람들이 산모에게 미역을 먹인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고려인은 고구려인을 가리킨다.
1912년 울산에서 한국계 귀신고래를 처음 연구한 미국의 탐험가이자 박물학자인 로이 채프만 앤드루스(1884-1960)는 한국 귀신고래의 위속에서 미역이 젤라틴처럼 가득 녹아있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계 귀신고래도 미역 등 해조류를 입에 물고 뒹구는 모습이 관찰됐으나 이는 해조류에 붙어있는 갑각류를 먹기 위한 행동이지 해조류 자체를 먹으려는 것은 아니라는 해석도 있다.
귀신고래는 적어도 선사시대부터 한반도 근해에 살았다는 증거가 있다. 바로 반구대 암각화이다. 특히 이 암각화는 그림으로 고래의 종류를 가릴 수 있을 정도로 형태의 특성을 잘 묘사하고 있다. 여기엔 귀신고래를 비롯해 북방긴수염고래, 향고래, 범고래, 들쇠고래 등이 나와 있다.
이렇게 한반도와 오랜 관계를 맺어온 귀신고래는 왜 자취를 감추었을까. 먼저 귀신고래의 분포 실태를 알아보자. 세계의 귀신고래는 태평양의 동쪽인 캘리포니아와 서쪽인 오호츠크 해에 서식하는 두 무리로 나뉜다. 캘리포니아 집단은 멕시코 바하 반도에서 베링 해까지 이동하는 무리로 연간 왕복거리 1만6천~2만2천㎞를 주파하는 장거리 여행자이다. 먹이가 많은 찬 바다에서 지방을 축적한 뒤 따뜻한 바다에서 번식한다. 어린 고래는 지방층이 얇아 추위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따뜻한 바다에는 먹이가 부족해 거의 먹지 않고 버텨야 한다.

대형고래의 마지막 보고였던 동해, 서구 열강 눈독
현재 2만 마리가 있는 캘리포니아 집단은 성공적인 고래관광의 주인공이다. 호기심이 많고 연안에 붙어살며 장거리를 이동하기에 육지에서도 관찰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 고래도 포경산업의 남획으로 한때 멸종위기에 몰렸다. 절정기인 1846~1874년 사이에만 무려 8천 마리가 잡혔다. 멸종 직전인 1936년에야 보호조처가 이뤄졌다.
고래잡이는 17세기부터 대규모로 이뤄졌다. 런던, 파리, 뉴욕 등 세계의 대도시 가로등을 밝힌 것은 모두 고래 기름이었다. 추운 날씨에도 얼지 않는 고래 기름은 윤활유로 쓰였고, 고래수염과 각종 부산물은 마가린, 글리세린, 양초, 비누, 합성수지, 향수, 의약품, 호르몬제, 여성 내의 코르셋 등 500여 가지 공산품의 원료로 쓰였다.
북대서양과 북태평양의 고래를 고갈시킨 서구 열강의 포경선단은 마지막 남은 고래 자원을 찾느라 눈이 벌갰다. 대형고래의 마지막 보고인 동해에 19세기 중반부터 미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그리고 일본의 포경선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김장근 박사에 따르면, 1849년 한반도 연안에서 조업한 미국 포경선은 포경일지에 “어느 쪽을 봐도 고래가 보인다”거나 “셀 수 없이 고래가 많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1899년 일본의 어느 포경선도 “1월13일 강원도 영일만에 들어갔는데, 100두의 귀신고래 떼가 들어와 있었다” “1월18일 영일만 동북동 20마일 정도, 사방팔방에 참고래 득실, 30~40마일에 걸쳐 고래뿐이다. 배가 빨리 갈 때는 고래 등 위로 올라가기도 하고 고래가 배를 향해 오기도 했다. 그 수를 따지면 몇 천 두에 이르러 쉽게 그 두수를 알 수 없었다”고 일지에 적었다.
한국 연안의 대형고래에 마지막 치명타를 가한 것은 일본이었다. 환경운동연합이 국제포경위원회의 통계를 근거로 작성한 자료를 보면, 1911~1945년 동안 일본이 한국에서 잡은 귀신고래는 모두 1306마리에 이르렀다. 1957~1986년 사이에 포획한 귀신고래는 모두 39마리에 불과했다.
그물에 걸려 죽는 고래 90%가 한국과 일본

한국계 귀신고래는 오호츠크 해의 추운 바다와 동해 사이를 이동경로로 삼아 왔다. 앤드루스는 겨울에 울산에서 잡히는 귀신고래가 출산이 임박한 상태임에 비추어 한국 남해안 다도해에서 새끼를 낳아 기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울산에서의 조사를 바탕으로 귀신고래가 캘리포니아 집단뿐 아니라 오호츠크 해 집단이 따로 있음을 처음으로 밝혔고, 서태평양 집단에 ‘한국계 귀신고래’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현재 160여 마리가 살아남아 멸종위기 상태에 놓여있는 서태평양 귀신고래는 동해안으로 오지 않고 일본의 동해안(태평양 쪽)으로 회유하고 있음이 최근 밝혀지고 있다. 일본 학자들 사이에선 이 무리를 더는 ‘한국계’로 부르지 않고 ‘아시아계’로 바꿔 부르고 있다.
이제 귀신고래가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있을까. 희망은 단 하나, 오호츠크 해에서 월동하는 귀신고래의 일부가 예전처럼 동해로 찾아오는 것이다. 귀신고래가 겨울에 동해안으로 회유했음에 비추어 울산 어민의 관찰은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더라도 희망의 끈을 놓을 순 없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오호츠크 해 귀신고래에 대한 조사를 해마다 벌이고 있다.
이 집단에 대해 세계자연보전연맹은 ‘멸종위기’ 판정을 내렸다. 주 서식지가 유전개발 지대이기도 하다. 설사 귀신고래가 한반도까지 남하하더라도 연안이 그들을 받아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연안은 그물로 촘촘하게 둘러쳐 있다. 지난 10년 동안 그물에 걸려 익사한 고래는 4722마리에 이른다. 전 세계에서 그물에 걸려 죽는 고래의 90%가 한국과 일본에서 보고된 것이다.
게다가 고래의 불법포획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정부도 고래를 멸종위기 동물이 아닌 자원으로 보아, 환경부가 아니라 농림수산부가 담당하고 있다. 이런 난관을 뚫고 귀신고래가 다시 한반도 바다를 헤엄칠 수 있을까. 백두산 일대에 몇 마리 남아있는 한국 범이 다시 한반도 남쪽에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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