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운하 망령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홍수도 가뭄도 해결 못하는 대규모의 보 건설
10여년간 구축한 새 치수체계 옛날로 되돌려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대운하 사업의 전 단계가 아니냐는 해묵은 의혹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대통령 입으로 두 번이나 “안 한다”고 했는데도 의심이 가라앉기는커녕 더욱 짙어진다.
특히 <문화방송> ‘피디수첩’의 ‘4대강 수심 6m의 비밀’ 편이 방영 보류되면서 “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이렇게 숨기려 드는가” “운하가 맞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피디수첩 인터넷사이트 게시판에 지난 17일 밤새 오른 2000건이 넘는 시청자 의견에는 시민이 느낀 분노와 허탈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들은 “이건 봐라, 이건 보지 마라고 해야 할 만큼 시청자는 바보가 아니다”라고 분통을 터뜨리는가 하면 “이 나라가 무섭다” “1980년대로 돌아가는 것 같아 눈물이 난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정부는 “비밀 팀은 없었다” “수심 6m 이상인 구간은 전체의 26.5%다”라는 등 해명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논란을 잠재울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4대강을 왜 이렇게 깊이 파고 보로 막아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에 정부는 한 번도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지 못해 왔기 때문이다.
대규모 보와 준설은 애초 4대강 사업의 내용이 아니었다. 2008년 12월15일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국토해양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엔 시민들이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수심 1~2m의 자연형 돌 보를 설치할 계획이었다. 준설은 퇴적이 심한 구간에 한정됐다. 사업의 핵심은 중소규모 댐과 저류지 건설이었고 보와 준설은 보조 수단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듬해 4월 처음 모습을 드러낸 4대강 살리기 마스터플랜에서 4개의 자연형 돌 보는 16개의 댐 규모 보가 됐고, 준설량은 3배로 늘었다. 정부는 사업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변화가 있었던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사업 내용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이다. 밀실에서 벌어진 이 변질 과정에 의심은 갖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왜 강을 이렇게 깊이 팔까. 전문가들은 강바닥을 파는 홍수 대책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말한다. 정부는 기후변화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예상을 뛰어넘는 홍수와 가뭄에 대비하기 위해 ‘물그릇’을 키웠다는 것이다. 이런 해명은 지난 10여년 동안 힘들게 일해 치수정책을 선진화한 동료 공무원에 대한 모독이다. 기후변화 요인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정부 스스로 수자원정책에 반영해 왔다.
우리나라의 치수정책은 1990년대 말 전환기를 맞이했다. 경기 북부지역에서 1996년, 1998년, 1999년 연속으로 일어난 최악의 홍수가 계기였다. 500년 빈도의 큰비가 한해 걸러 와 연천댐이 무너졌다.
정부는 1999년 청와대에 수해방지대책기획단을 설치하고 치수계획의 전면적인 재검토에 나섰다. 그 핵심은 제방에서 유역으로, 선에서 면으로의 전환이었다. 하천 본류에서 제방만으로 홍수를 막는 것이 불가능한 만큼 상류에서부터 치수전용댐이나 강변저류지 등을 지어 유역 차원에서 홍수를 분담하자는 것이다. 홍수와 싸우지 말고 곳에 따라 전략적으로 져 주는 선택적 홍수방어 전략도 채택됐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각종 중장기 치수계획이 최근까지 수립됐다. 4대강 사업은 10여년 동안 구축한 새로운 치수체계를 하루아침에 1990년대 이전으로 되돌리고 있는 것이다.
가뭄 대책도 마찬가지다. 산간농촌과 해안·섬 지역에 드는 가뭄을 4대강 본류에 물을 가둬 어쩌겠다는 것인가. 지난해 국회 입법조사처가 연 토론회에서 4대강 마스터플랜 작성 책임자가 했다는 “(물 부족량에 맞춰 준설한 것이 아니라) 준설해 놓고 보니 10억㎥의 물이 확보되더라”는 말이 정곡을 찌른다.
그렇다면 홍수도 가뭄도 해결해 주지 못하는 대규모 보 건설과 준설을 왜 고집할까. 운하의 망령은 이 지점에 똬리를 틀고 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10여년간 구축한 새 치수체계 옛날로 되돌려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대운하 사업의 전 단계가 아니냐는 해묵은 의혹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대통령 입으로 두 번이나 “안 한다”고 했는데도 의심이 가라앉기는커녕 더욱 짙어진다.
특히 <문화방송> ‘피디수첩’의 ‘4대강 수심 6m의 비밀’ 편이 방영 보류되면서 “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이렇게 숨기려 드는가” “운하가 맞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피디수첩 인터넷사이트 게시판에 지난 17일 밤새 오른 2000건이 넘는 시청자 의견에는 시민이 느낀 분노와 허탈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들은 “이건 봐라, 이건 보지 마라고 해야 할 만큼 시청자는 바보가 아니다”라고 분통을 터뜨리는가 하면 “이 나라가 무섭다” “1980년대로 돌아가는 것 같아 눈물이 난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정부는 “비밀 팀은 없었다” “수심 6m 이상인 구간은 전체의 26.5%다”라는 등 해명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논란을 잠재울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4대강을 왜 이렇게 깊이 파고 보로 막아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에 정부는 한 번도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지 못해 왔기 때문이다.
대규모 보와 준설은 애초 4대강 사업의 내용이 아니었다. 2008년 12월15일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국토해양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엔 시민들이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수심 1~2m의 자연형 돌 보를 설치할 계획이었다. 준설은 퇴적이 심한 구간에 한정됐다. 사업의 핵심은 중소규모 댐과 저류지 건설이었고 보와 준설은 보조 수단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듬해 4월 처음 모습을 드러낸 4대강 살리기 마스터플랜에서 4개의 자연형 돌 보는 16개의 댐 규모 보가 됐고, 준설량은 3배로 늘었다. 정부는 사업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변화가 있었던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사업 내용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이다. 밀실에서 벌어진 이 변질 과정에 의심은 갖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왜 강을 이렇게 깊이 팔까. 전문가들은 강바닥을 파는 홍수 대책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말한다. 정부는 기후변화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예상을 뛰어넘는 홍수와 가뭄에 대비하기 위해 ‘물그릇’을 키웠다는 것이다. 이런 해명은 지난 10여년 동안 힘들게 일해 치수정책을 선진화한 동료 공무원에 대한 모독이다. 기후변화 요인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정부 스스로 수자원정책에 반영해 왔다.
우리나라의 치수정책은 1990년대 말 전환기를 맞이했다. 경기 북부지역에서 1996년, 1998년, 1999년 연속으로 일어난 최악의 홍수가 계기였다. 500년 빈도의 큰비가 한해 걸러 와 연천댐이 무너졌다.
정부는 1999년 청와대에 수해방지대책기획단을 설치하고 치수계획의 전면적인 재검토에 나섰다. 그 핵심은 제방에서 유역으로, 선에서 면으로의 전환이었다. 하천 본류에서 제방만으로 홍수를 막는 것이 불가능한 만큼 상류에서부터 치수전용댐이나 강변저류지 등을 지어 유역 차원에서 홍수를 분담하자는 것이다. 홍수와 싸우지 말고 곳에 따라 전략적으로 져 주는 선택적 홍수방어 전략도 채택됐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각종 중장기 치수계획이 최근까지 수립됐다. 4대강 사업은 10여년 동안 구축한 새로운 치수체계를 하루아침에 1990년대 이전으로 되돌리고 있는 것이다.
가뭄 대책도 마찬가지다. 산간농촌과 해안·섬 지역에 드는 가뭄을 4대강 본류에 물을 가둬 어쩌겠다는 것인가. 지난해 국회 입법조사처가 연 토론회에서 4대강 마스터플랜 작성 책임자가 했다는 “(물 부족량에 맞춰 준설한 것이 아니라) 준설해 놓고 보니 10억㎥의 물이 확보되더라”는 말이 정곡을 찌른다.
그렇다면 홍수도 가뭄도 해결해 주지 못하는 대규모 보 건설과 준설을 왜 고집할까. 운하의 망령은 이 지점에 똬리를 틀고 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관련글
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