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강 살리기’ 질풍노도처럼 흘러 어디로
마스트플랜 막연…운하에도 고스란히 적용 가능
06년에 97% 끝난 하천정비 내세우는 건 ‘꼼수’
국토해양부 권진봉 건설수자원정책실장이 지난 15일 오전 과천정부청사에서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4대 강 살리기 프로젝트’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15일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발표한 이 프로젝트는 애초 ‘4대 강 정비’에서 ‘4대 강 살리기’로 이름을 순화했지만 한반도 대운하 사업의 망령은 한 발짝 더 현실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마스터플랜도 수립하지 않은, 그래서 사업의 목적도 “이상기후에 따른 홍수·가뭄 등에 대한 근원적인 대책을 마련한다”는 막연한 것이기에 불안은 더욱 커진다. 그러면서도 14조 원이란 천문학적 사업비와 당장 올 연말부터 8300억 원을 투입해 선도사업을 시작할 7개 지방도시의 이름은 구체적으로 나왔다.
홍수와 가뭄에 대비한다면서 비밀추진팀을 만들어 매일 청와대에 직보를 할 이유가 있을까. 지난 5월 4대 강 정비사업이 곧 대운하 사업이라고 폭로했던 건설기술연구원 김이태 박사에 대한 징계에 착수한 것은 또 다른 내부 고발을 사전에 막기 위한 조처가 아닐까.
마침내 이런 의문을 씻어줄 시원스런 대답이 나왔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15일 이명박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했다는 발언이 그것이다. 그는 4대 강 정비사업을 “전광석화처럼 착수해서 질풍노도처럼 밀어붙이라”고 대통령에게 촉구했다. “(공사를) 동시다발적으로 착수해 전 국토가 거대한 공사장처럼 느껴지게 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래서 국민이 케이티엑스(KTX)를 탄 것처럼 속도감을 느끼고 전국 곳곳에서 건설의 망치 소리가 들리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마 건설업자들은 이 소리를 듣고 짜릿한 쾌감을 맛보았을 것이다. 30여 년 만에 박정희 개발시대가 다시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발언에 도취해서였을까. 박 대표는 “대통령의 신화적 돌파력에 대해 국민이 엄청난 존경심을 갖고 있는 만큼 대통령이 오늘은 낙동강, 내일은 영산강 다음은 금강과 한강에서 지휘봉을 들고 땀흘리는 모습을 보이면 국민이 큰 감동을 받을 것”이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박 대표의 이런 발언은 4대 강 정비가 대운하와는 별개라는 전제에서 나온 것이다. 정부도 강 정비와 대운하는 무관하다고 강조한다. 현재의 계획대로 강을 정비해도 수심이 얕고 보가 건설되지 않아 배가 다니지 못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 대통령은 대운하를 안 한다고 천명해 달라는 박 대표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불신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정부의 강 정비 사업계획을 뜯어보면 장차 이 사업이 운하로 연결될 개연성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운하가 되려면 수로, 운하용수, 갑문이 있어야 한다. 배가 다닐 수 있는 수심을 확보하기 위해 하천 바닥을 쳐내고 주운보를 막아야 한다. 또 선박운항에 의한 파도로부터 호안을 보호하기 위한 호안정비와 운하 주변환경을 복원하는 일도 필요하다. 정부의 ‘4대 강 살리기 프로젝트’가 대운하를 위한 기반사업으로 의심받는 이유는 사업내용이 운하에도 고스란히 적용되기 때문이다.
먼저, 낡은 제방을 보강하고 하천바닥의 토사를 쳐내는 등 하도를 정비하는 데 4조4천억 원 가량의 사업비를 쓸 예정이다. 홍수 대책으로 당연해 보이지만, 실은 제방 위주의 치수정책은 정부 스스로 버린 옛 발상이다.
2003년 태풍 루사 이후 정부는 제방을 강화해 홍수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집중호우가 잦아진데다 보호할 하천변 농경지 가치보다 제방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높았다. 윗마을을 제방으로 보호하면 물이 더 빠르게 아랫마을을 때리는 부작용도 속출했다. 그 결과 물과 맞서지 말고 전략적 후퇴를 하는 새로운 치수전략이 나왔다. 과거 홍수터였던 제방 주변 농경지 등을 습지형 저류지로 복원한다는 것이 그런 예이다.
그러나 정부는 2009년 예산안에서 예산항목에도 없던 ‘하도 정비’를 넣고 제방을 강화한다는 ‘과거 회귀’ 치수책을 내놓았다.
강바닥을 쳐내는 일은 이번 4대 강 정비사업에서도 우선순위가 높다. 전문가들은 오염물질이나 토사가 퇴적된 곳은 유속이 느린 곳이나 지천이 유입되는 일부 구간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너무 강바닥을 파내서 문제인 곳이 더 많다.
지난해 감사원 자료를 보면, 낙동강 본류에서 지난 10년간 강바닥은 평균 9m나 낮아졌다. 지자체들이 앞다퉈 골재를 파냈기 때문이다. 그런 구간은 전체의 95%에 이른다. ‘뭘 더 파내겠다는 거냐’는 질문이 당연히 나온다. 강을 더 파 ‘물그릇’을 키우는 것은 바로 운하의 핵심 공사이다.
4대 강 정비 사업비 14조 1천억 원 가운데 농업용 저수지와 댐·홍수조절지 건설에는 각각 3조 5천억 원과 3조 2천억 원이 잡혀있다. 국토해양부는 이들이 홍수대책용이라고 하지만, 설계를 변경하면 운하의 유지용수 공급용이 될 수 있다.
5600여 억 원이 잡혀있는 배수갑문 증설과 소수력발전을 위해 건설한다는 자연형 보도 주운용 보로 설계를 바꿀 수 있다.
결국, 4대 강 정비 사업비는 대부분 운하를 짓는 데에도 필요한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이런 항목의 예산을 주고 나보고 운하를 건설하라고 해도 공사를 시작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바닥을 파는 깊이가 얕고, 보, 갑문, 화물터미널 등이 계획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운하와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반대론자들은 결국 운하로 가기 위한 얕은꾀로 본다. 실제로 홍수 대책의 일환으로 시작된 방수로 건설이 경인운하로 탈바꿈한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4대 강의 하천정비 작업이 2006년에 이미 97% 이상 끝났는데도 대대적인 하천정비를 하겠다는 것은, 세금으로 강바닥을 파고 둑을 높이는 공사를 해 나중에 민자로 참여할 건설업체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사업의 경제성을 높이려는 꼼수”라고 꼬집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06년에 97% 끝난 하천정비 내세우는 건 ‘꼼수’

정부의 ‘4대 강 살리기 프로젝트’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15일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발표한 이 프로젝트는 애초 ‘4대 강 정비’에서 ‘4대 강 살리기’로 이름을 순화했지만 한반도 대운하 사업의 망령은 한 발짝 더 현실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마스터플랜도 수립하지 않은, 그래서 사업의 목적도 “이상기후에 따른 홍수·가뭄 등에 대한 근원적인 대책을 마련한다”는 막연한 것이기에 불안은 더욱 커진다. 그러면서도 14조 원이란 천문학적 사업비와 당장 올 연말부터 8300억 원을 투입해 선도사업을 시작할 7개 지방도시의 이름은 구체적으로 나왔다.
홍수와 가뭄에 대비한다면서 비밀추진팀을 만들어 매일 청와대에 직보를 할 이유가 있을까. 지난 5월 4대 강 정비사업이 곧 대운하 사업이라고 폭로했던 건설기술연구원 김이태 박사에 대한 징계에 착수한 것은 또 다른 내부 고발을 사전에 막기 위한 조처가 아닐까.
마침내 이런 의문을 씻어줄 시원스런 대답이 나왔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15일 이명박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했다는 발언이 그것이다. 그는 4대 강 정비사업을 “전광석화처럼 착수해서 질풍노도처럼 밀어붙이라”고 대통령에게 촉구했다. “(공사를) 동시다발적으로 착수해 전 국토가 거대한 공사장처럼 느껴지게 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래서 국민이 케이티엑스(KTX)를 탄 것처럼 속도감을 느끼고 전국 곳곳에서 건설의 망치 소리가 들리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마 건설업자들은 이 소리를 듣고 짜릿한 쾌감을 맛보았을 것이다. 30여 년 만에 박정희 개발시대가 다시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발언에 도취해서였을까. 박 대표는 “대통령의 신화적 돌파력에 대해 국민이 엄청난 존경심을 갖고 있는 만큼 대통령이 오늘은 낙동강, 내일은 영산강 다음은 금강과 한강에서 지휘봉을 들고 땀흘리는 모습을 보이면 국민이 큰 감동을 받을 것”이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박 대표의 이런 발언은 4대 강 정비가 대운하와는 별개라는 전제에서 나온 것이다. 정부도 강 정비와 대운하는 무관하다고 강조한다. 현재의 계획대로 강을 정비해도 수심이 얕고 보가 건설되지 않아 배가 다니지 못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 대통령은 대운하를 안 한다고 천명해 달라는 박 대표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불신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정부의 강 정비 사업계획을 뜯어보면 장차 이 사업이 운하로 연결될 개연성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운하가 되려면 수로, 운하용수, 갑문이 있어야 한다. 배가 다닐 수 있는 수심을 확보하기 위해 하천 바닥을 쳐내고 주운보를 막아야 한다. 또 선박운항에 의한 파도로부터 호안을 보호하기 위한 호안정비와 운하 주변환경을 복원하는 일도 필요하다. 정부의 ‘4대 강 살리기 프로젝트’가 대운하를 위한 기반사업으로 의심받는 이유는 사업내용이 운하에도 고스란히 적용되기 때문이다.
먼저, 낡은 제방을 보강하고 하천바닥의 토사를 쳐내는 등 하도를 정비하는 데 4조4천억 원 가량의 사업비를 쓸 예정이다. 홍수 대책으로 당연해 보이지만, 실은 제방 위주의 치수정책은 정부 스스로 버린 옛 발상이다.
2003년 태풍 루사 이후 정부는 제방을 강화해 홍수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집중호우가 잦아진데다 보호할 하천변 농경지 가치보다 제방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높았다. 윗마을을 제방으로 보호하면 물이 더 빠르게 아랫마을을 때리는 부작용도 속출했다. 그 결과 물과 맞서지 말고 전략적 후퇴를 하는 새로운 치수전략이 나왔다. 과거 홍수터였던 제방 주변 농경지 등을 습지형 저류지로 복원한다는 것이 그런 예이다.
그러나 정부는 2009년 예산안에서 예산항목에도 없던 ‘하도 정비’를 넣고 제방을 강화한다는 ‘과거 회귀’ 치수책을 내놓았다.
강바닥을 쳐내는 일은 이번 4대 강 정비사업에서도 우선순위가 높다. 전문가들은 오염물질이나 토사가 퇴적된 곳은 유속이 느린 곳이나 지천이 유입되는 일부 구간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너무 강바닥을 파내서 문제인 곳이 더 많다.
지난해 감사원 자료를 보면, 낙동강 본류에서 지난 10년간 강바닥은 평균 9m나 낮아졌다. 지자체들이 앞다퉈 골재를 파냈기 때문이다. 그런 구간은 전체의 95%에 이른다. ‘뭘 더 파내겠다는 거냐’는 질문이 당연히 나온다. 강을 더 파 ‘물그릇’을 키우는 것은 바로 운하의 핵심 공사이다.
4대 강 정비 사업비 14조 1천억 원 가운데 농업용 저수지와 댐·홍수조절지 건설에는 각각 3조 5천억 원과 3조 2천억 원이 잡혀있다. 국토해양부는 이들이 홍수대책용이라고 하지만, 설계를 변경하면 운하의 유지용수 공급용이 될 수 있다.
5600여 억 원이 잡혀있는 배수갑문 증설과 소수력발전을 위해 건설한다는 자연형 보도 주운용 보로 설계를 바꿀 수 있다.
결국, 4대 강 정비 사업비는 대부분 운하를 짓는 데에도 필요한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이런 항목의 예산을 주고 나보고 운하를 건설하라고 해도 공사를 시작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바닥을 파는 깊이가 얕고, 보, 갑문, 화물터미널 등이 계획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운하와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반대론자들은 결국 운하로 가기 위한 얕은꾀로 본다. 실제로 홍수 대책의 일환으로 시작된 방수로 건설이 경인운하로 탈바꿈한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4대 강의 하천정비 작업이 2006년에 이미 97% 이상 끝났는데도 대대적인 하천정비를 하겠다는 것은, 세금으로 강바닥을 파고 둑을 높이는 공사를 해 나중에 민자로 참여할 건설업체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사업의 경제성을 높이려는 꼼수”라고 꼬집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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