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알고보니 생태계의 ‘미네르바’?

조홍섭 2008. 12. 22
조회수 31016 추천수 0
필수영양소 질소 투자법칙
여름 활황 광합성 투자, 가을엔 낙엽 손절매 뒤 저축
산불 등 대공황땐 땅속 장기예금이나 연금으로 재기
 
 
순환과 탄력성 copy.jpg나무가 살아가자면 여러 가지 자원이 필요하다. 영양소는 그 자원의 일부가 된다. 나무의 영양소에는 탄소, 수소, 산소, 질소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질소 하나를 들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질소는 생물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핵산과 단백질의 구성원소이다. 그래서 필수영양원소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무가 본질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광합성이다. 광합성은 일련의 생화학 반응으로 이루어진다. 효소는 생화학 반응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촉매 작용을 하는 단백질 분자다. 효소 단백질을 만들자면 반드시 질소가 필요하다. 이것이 질소가 필수영양원소가 되는 한 가지 이유다.
 
죽으면 ‘자연의 연금’으로 서서히 환원
 
햇볕이 쨍쨍한 여름이면 나무는 광합성을 한다. 이때 질소는 효소에 포함되어 광합성의 일꾼이 된다. 날이 좋으면 어제도 오늘도 그 질소는 일꾼이 된다. 나무는 질소 원소를 하루 주기로 재이용하는 셈이다.
 
가을이 깊어지면 나무의 광합성 효율은 떨어진다. 추위가 심해져 광합성으로 만드는 유기물보다 더 많은 양의 유기물이 소비되면 나무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춘다. ‘수지가 맞지 않는 사업을 잠시 접어둘 필요가 있겠다. 이제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던 잎을 떨어뜨려야지. 잎에 있는 질소 일꾼을 어떻게 하지? 그냥 내보내면 다시 불러오기 쉽지 않은데….’
 
나무는 잎에 있던 질소를 한껏 줄기로 불러오기로 한다. 그 과정을 흔히 재흡수 또는 재이동이라고 한다. 그렇게 줄기에서 겨울을 보낸 질소는 봄이 오면 다시 잎으로 보내진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광합성 일꾼이 된다. 그 질소는 일 년 주기로 나무에 의해 재이용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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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낙엽에 포함된 질소는 어떻게 될까? 낙엽이 서서히 썩으면 질소는 분비된다. 그 질소를 나무의 실뿌리는 빨아들이고, 줄기를 거쳐 잎으로 옮겨져 광합성의 일꾼이 된다. 그러나 낙엽에 있던 질소가 모두 나무로 되돌아가려면 수년 또는 수 십 년이 걸린다. 꽤 긴 세월의 주기로 재이용되는 것이다. 때로는 나뭇가지도 말라죽고, 나무가 노쇠하고 험난한 시기가 오면 줄기도 죽어 넘어진다. 이런 나뭇가지와 큰 줄기는 미생물에게 썩 좋은 먹을거리가 아니다. 낙엽에 비해서 질소 함유량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목질부가 있는 줄기가 썩는 데는 수십 년 또는 백 년이 걸린다. 그 속에 포함된 영양소는 그만큼 긴 세월 주기로 재이용되는 셈이다.
 
땅속 유기물에 함유되어 있는 질소는 더 긴 세월 동안 생태계에 저장된다. 흔히 부식질이라고 부르는 유기물은 아주 특수한 미생물들만이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잘 썩지 않아 거기에 갇힌 질소는 오래오래 간직된다. 이 물질에 포함된 질소는 목질부 안에서 오래 버티는 만큼 자연의 연금과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다양한 순환 고리, 생태계와 사회의 ‘안전망’
 
숲에 작은 어려움이 닥치면 하루 주기로 일어나던 광합성이 가장 민감하게 타격을 받는다. 더 큰 어려움이 닥치면 나무가 쓰러지기도 한다. 대형 산불이 일어나면 긴 세월 축적된 많은 질소가 허공으로 사라지고 또 흐르는 물에 쉽게 씻겨간다. 그래도 토양 유기물에 저장되어 있던 질소는 땅속에 남아 있다. 고난의 시기가 지나가면 나무는 땅속 유기물에 있던 질소를 이용하여 재기를 꿈꾼다. 그렇게 토양 유기물의 질소는 무너진 생태계가 새로운 활력을 일으키는 데 찾아 써야 할 장기예금이나 연금과 같은 존재다.
 
나는 내 삶에 필요한 자원을 어떻게 관리하는가? 하루하루 써야 할 비용은 현금으로 지갑에 챙겨둔다. 나머지 일부는 보통예금으로 맡겨둔다. 신용카드를 이용한 다음 한 달 단위로 결제한다. 어려운 때를 대비하여 일부는 정기예금 또는 연금으로 남겨둔다. 예기치 않았던 교란의 시기가 닥치면 정기예금을 찾아 재기를 도모하고, 연금은 노후에 사용할 계획이다. 내 삶에 다가오는 교란의 정도에 따라 사용주기가 다른 비용들의 쓰임새가 다르다.
 
이렇게 자원의 다양한 순환 고리는 나무와 사람이 역경을 헤쳐 가는 탄력성의 근본이다. 짧은 순환 고리는 짧은대로, 긴 순환 고리는 긴대로, 예견할 수 없는 교란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쓸모 있는 도구가 된다. 마찬가지로 다양한 순환 고리를 지닌 사회는 어려운 국면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버티는 탄력성을 지닌다.
 
그러나 나무가 사람에게 자원관리 전략을 배운 것 같지는 않다. 살아오며 자연스럽게 익힌 나무와 사람, 그리고 사회의 공통점인 듯하다. 태평양 건너 큰 나라의 금융위기로 휘몰아치는 바람 앞에 놓인 우리 사회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순환 고리를 준비했을까? 지금이라도 어려운 시절을 제대로 헤쳐가자면 나무의 전략을 배워 봄 직하다.  어느 누가 식물과 개인, 그리고 생태계와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이치를 모형으로 묘사할 수 있다면 더 큰 교훈을 얻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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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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