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더위를 이기는 뾰족한 방법, 부리

조홍섭 2012. 08. 07
조회수 35616 추천수 0

혈관 많아 체온보다 5~10도 높아, 깃털 없어 열 방출 쉬워

물 적고 더운 염습지 참새 부리 더 커 …먹이뿐 아니라 열이 부리 진화에 작용

 

bird bill.jpg » 울참새의 적외선 사진. 혈관이 몰려있는 부리가 주변보다 10도쯤 높다. 사진=러셀 그린버그 외, <진화>

 

찰스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갈라파고스에 들렀을 때 섬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의 핀치가 사는 것을 관찰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미처 몰랐다. 영국에 돌아와서야 중요성을 깨닫고 이 새의 표본을 찾아 허둥댔다.
 

한 종의 갈라파고스 핀치는 먹이의 크기와 종류에 따라 다양한 부리를 가진 새로운 종으로 진화했다. 크고 단단한 열매를 깨뜨리는 큰 부리와 작은 씨앗을 쪼아먹는 작은 부리, 그리고 중간 부리의 핀치가 자연선택을 받아 분화했다.
 

그런데 새의 부리가 먹이의 크기와 형태뿐 아니라 체온 조절과 수분 절약을 위한 적응의 결과이기도 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다시 말해 부리는 무더운 날 수분의 손실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에어컨의 방열기처럼 열을 밖으로 내보내는 중요한 기관이란 것이다.
 

부리는 계속 자라는 부위여서 혈관이 밀집한 곳이다. 또 새의 몸에서 깃털로 덮이지 않은 드문 부위인데다 표면이 키틴질로 싸여있기 때문에 수분이 날아가지 않는다. 이 때문에 부리는 작은 부위이면서도 열을 식히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
 

Toco_toucan_whipsnade.jpg » 토코큰부리새. 부리는 주요한 방열통로이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열대 아메리카에 사는 거대한 부리를 가진 토코큰부리새는 몸속 열의 60%까지를 부리를 통해 방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미국 스미스소니언 보전생물학 연구소의 조류학자인 러셀 그린버그는 작은 새에게도 부리는 중요한 열 방출구라는 심증을 갖고 있었다.
 

작은 새들은 몸집에 비해 표면적이 크기 때문에 수분 손실에 매우 취약하다. 따라서 큰 새보다도 수분을 잃지 않고 열을 내보내는 ‘부리 방열기’가 중요할 터이다. 그는 북아메리카 동부 대도시와 근교에 널리 서식하는 울참새에 견줘 그 아종으로서 대서양 해안의 사구 덤불과 염습지에 서식하는 대서양 울참새가 큰 부리를 갖고 있다는 데 착안했다. 담수가 귀하고 뜨거운 곳에서는 열과 수분 스트레스를 겪기 마련이고 이것이 부리를 크게 진화시킬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란 생각이었다.

Ken Thomas_640px-Song_Sparrow-27527-2.jpg » 북아메리카 동부에 흔한 울참새. 물이 부족하고 열파가 심한 곳에 사는 아종은 부리가 더 크다. 사진=켄 토마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는 울참새의 두 아종을 놓고 이런 질문을 했다. 작은 새의 부리 온도는 주변보다 높은가? 그렇다면 다른 부위에서보다 많은 열이 부리에서 방출되나? 열과 수분 스트레스가 큰 곳에 사는 참새 아종은 더 많은 열을 부리에서 방출하나?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부리의 표면적이 몸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서양 울참새가 2.38%, 울참새가 2.05%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를 통한 열 손실량은 전체의 5.5~10%에 이르렀다. 부리가 큰 대서양 울참새는 도시의 친척보다 29~33%나 많은 열을 부리로 방출했다.
 

bill temp.jpg » 다양한 주변 기온일 때의 부리 온도. A는 울참새, B~D는 대서양 울참새. 기온은 각각 15, 21, 29, 37도. 사진=러셀 그린버그 외, <플로스 원>

 

적외선 카메라로 이 새를 촬영하면 부리, 특히 부리의 뿌리 부근에서 온도가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부리의 온도는 주변보다 4.7~9.8도 높았다.
 

사실 무더위 때 체온을 식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일을 열고 헐떡이는 것이다. 비행을 하기 때문에 대사량이 많고 또 체온도 높은 새에게 과열을 막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헐떡이면 호흡과 함께 수분이 증발한다. 물을 쉽게 마실 수 있는 곳이라면 좋겠지만, 물이 드문 환경이라면 헐떡이는 것은 치명일 수 있다. 부리를 키워 ‘마른 방열’을 하는 방법이 나온 것은 이 때문이다.

sosp-habitat-prime-hook.jpg » 대서양 울참새의 서식지인 사구. 물이 적고 뜨겁다. 사진=러셀 그린버그

 

그린버그는 이 연구결과를 발표한 논문에서 “부리 크기가 좀 작다고 사망률 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더운 날에도 활동을 계속하고 활동시간을 늦추는 효과는 종의 번식에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더운 번식기 때 더위를 먹어 꼼짝 못하는 경쟁자와 달리 늦게까지 노래하고, 둥지를 지키고, 먹이를 더 많이 물어올 수 있다면 엄청난 이점을 갖게 되는 것이다.
 

부리가 열을 방출하는 효과적인 통로이지만 반대로 겨울엔 열이 새어나가는 곳이 될 것이다. 다리라면 열 손실을 차단하는 회로를 갖추고 있지만 부리는 먹이를 먹어야 하는 근육 때문에 혈류를 늦출 수 없다. 그린버그는 이 때문에 일정 온도 이하가 되면 새들은 따뜻한 곳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Greenberg R, Cadena V, Danner RM, Tattersall G

(2012) Heat Loss May Explain Bill Size Differences between Birds Occupying Different Habitats.

PLoS ONE 7(7): e40933. doi:10.1371/journal.pone.0040933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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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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