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 레저 위해 ‘팔당’ 버릴 건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72년 여름 방학 때 친구와 남한강에 낚시를 갔다. 경기도 남양주시 양수리(두물머리) 근처였던 것 같다. 팔당댐이 완공을 앞두고 수위가 일정하지 않았지만 맑은 물속에서 자라와 납자루 등을 신나게 건져올린 기억이 난다. 철없던 때여서, 문전옥답을 버리고 떠난 수몰민의 처지는 생각도 못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는 선사시대 때부터 사람이 많이 살던 곳이다. 1973년 팔당댐이 준공되면서 물에 잠긴 논·밭만도 1224만㎡(371만평)이고 철거한 비닐하우스의 길이는 1만m에 이르렀다.
수도권 주민에게 맑은 물을 공급하기 위한 팔당 상수원 주민들의 고통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이미 1971년 그린벨트로 지정된 데 이어 1975년 상수원보호구역, 1982년 자연보전권역, 1990년 특별대책지역으로 4중의 규제를 받았다. 1994년 준농림지 개발로 숨통을 틔었지만 위락시설이 대거 들어서는 등 난개발과 수질악화가 이어지자 1999년부터 수변구역이 지정돼 규제가 강화됐다. 이 모든 과정에서 제대로 된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고 주민의 불만은 쌓여갔다.
두물머리는 우리나라 유기농업의 발원지이다. 수몰민과 전국에서 유기농민이 모여들어 유기농업 단지를 일궜다. 200여 농가가 연 1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수도권 친환경농산물의 60~70%를 공급하고 있다.
팔당물을 마시는 수도권 시민들이 이들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건 유기농산물 때문만이 아니다. 이들은 지난 20여년 동안 지역의 규제철폐 반대여론과 맞서면서 팔당 상수원 보전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물도 살리고 지역도 살리는’ 상생의 전략을 설득해 왔다. 팔당 특별대책지역의 인구밀도는 경기도 평균보다 3분 1밖에 안 된다. 서울 턱밑에서 수십년 동안 집도 못 고치고 살면서도 규제를 견딘 게 서울 사람들이 수돗물값에서 몇 푼씩 떼주는 보조금 때문이 아니란 얘기다.
환경부를 처음 출입하는 기자라면 팔당호 공부부터 시작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드물게 강 중·하류에 댐을 막아 인구의 절반인 수도권 2300만 인구가 마시고 쓸 물을 대며, 물이 닷새 쯤밖에 머물지 않아 유입수 수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 등을 알아둬야 큰 기사가 터질 때 허둥대지 않게 된다.
새로 부임한 환경부 장관의 첫 시찰지도 대개 팔당호였다. 상수원수에 독성물질이 들어올까 물벼룩 경보장치를 가동하고 을지연습 때는 페놀을 실은 탱크로리가 팔당댐에 빠지는 사고가 났을 때 수문을 어떻게 관리할지 따위를 점검하기도 한다.
수도권 상수원은 물관리 정책에서도 우선순위가 가장 높고, 당연히 막대한 투자를 해 왔다. 1996년부터 2008년까지 13년 동안 팔당호 수질개선을 위해 들어간 돈은 11조원에 이른다. 해마다 수천억원이 들어간 셈이다. 2007년 특별대책지역 안인 경기도 이천에 하이닉스 공장을 증설하는 문제가 논란이 됐을 때 “정부가 나서 당장 눈앞의 이익을 위해 정책의 일관성을 깨뜨리며 팔당 상수원 관리체계를 허물 수는 없다”고 일간신문 기고문에서 일갈한 사람은 다름아닌 환경부 수질국장이었다.
이처럼 지역주민의 희생과 막대한 세금을 들여 그럭저럭 수질을 유지해 오던 팔당호가 한순간에 무너지게 생겼다. 4대강 사업 탓이다. 팔당을호 주변은 물 확보나 홍수 대비와 아무 관련이 없는데도 사업구간에 포함됐다. 강변의 유기농단지를 철거하고 야외공연장, 피크닉장, 전시장, 생태교육장, 잔디공원 따위를 만든다는 것이다.
정부는 유기농단지가 마치 팔당호 오염의 주범이나 되는 것처럼 몰아대고 있지만, 팔당호 오염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생활하수이고, 그 다음인 토지 가운데 팔당호 유기농지의 비중은 미미하다. 팔당호에 인접해 있어 오염효과가 클 수는 있겠지만 ‘오염의 주범’은 당치않다.
유기농지의 제거는 오히려 팔당호 난개발의 본격적인 신호탄이라고 보인다. 환경부의 자료를 보더라도 체육용지, 유원지, 도로 등은 농지보다 30~50배 오염효과가 높다. 사람들이 몰리는 공연장이나 전시장은 말할 것도 없다. 새로 들어서는 시설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늘어나던 팔당호 주변의 음식점과 위락시설들은 새로운 친수시설을 즐기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고 더욱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지역개발 압력으로 오염관리가 한계에 부닥치면, 지난번 한반도대운하 논란 때 나왔다가 실효성 없다는 판명을 받은 취수원 이전이나 간접취수 방법을 다시 들고 나올 것인가.
6·2 지방선거에서 팔당호 주변에서는 4대강 사업에 찬성하는 단체장이 많이 당선됐다. 4대강 사업이 그동안의 규제를 풀어줄 통로임을 주민들이 꿰뚫어 본 것이다. 지난 20여년 쌓은 물관리 정책의 공든 탑이 무너지게 생겼는데도 요지부동 4대강 찬가만 부르는 환경부나, 다른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에선 그토록 민감한 서울시민들이 수도권 상수원이 위태로운데도 가만히 있는 것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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