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돌아 굽이치는 생명의 여울, 침묵의 강으로
상투비리, 된꼬까리, 으시시비비미, 맛바우여울…
‘천상의 화음’ 4대강, 로봇물고기와 조경업자 손에

‘떼돈 번다’는 말의 고향은 남한강이다. 정선·영월 등 강원도 산골에서 벌채한 나무를 뗏목으로 묶어 서울로 나르면 큰돈을 만질 수 있었던 데서 왔다.
그러나 뗏사공 일은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했다. 물이 불어야 뗏목을 띄울 수 있는데, 영월에서 충북 충주 사이에도 큰 여울만 80곳이나 됐다. 상투비리, 황새여울, 된꼬까리, 맛바우여울, 누릅꾸지여울, 꽃바위여울, 너푼쟁이여울 등 토속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 있는가 하면, 청풍에 있는 으시시비비미여울처럼 사공의 두려움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곳도 적지 않았다.
‘떼돈 번다’는 말의 고향…하수 처리장이 본뜬 원형
경희대 민속학연구소가 펴낸 <남한강 수운의 전통>을 보면, 심심한 남한강변 아이들은 뗏목이 나타나면 “영월 뗏강아지, 돼지울 지어라”고 놀려댔다. 센 물살과 암초에 뗏목이 잘못 들어서면 돼지우리처럼 말려 산산조각이 난다. 아이들은 신경이 곤두선 사공이 길길이 뛰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을 것이다.
여울목은 어른에게도 쏠쏠한 재미를 안겼다. 경기 양평 모래여울, 여주 앙암, 충주 목계의 제비여울 등에서는 주민들이 갈수기에 가래 등 농기구로 여울에 너비 10~15m, 깊이 3m가량의 물골을 파 이곳을 통과하는 뗏사공으로부터 ‘골세’를 받았다.
충주댐 건설을 앞둔 1981년 <한국일보>는 전문가와 함께 남한강을 답사해 ‘남한강 뱃길 천리’를 연재했다. 남한강의 ‘마지막 뱃사공’ 우도봉, 한상철 옹이 조사단의 배를 저었다. 바쁜 일정을 알리는 단장에게 도사공이 말한다. “배는 떠나는 시간만 정할 수 있을 뿐 도착시간은 누구도 모릅니다.” 기사를 보면, 몇 백m 간격으로 암반과 여울목이 깔려 있어 50년 경력의 뱃사공도 땀을 뻘뻘 흘리며 고역을 치렀다. 배가 가재여울, 터준뎅이여울을 쏜살같이 지나는 데만도 4분이나 걸렸다.
남한강은 여울의 강이었다. 비탈에서 모래와 자갈을 굴리고 바위를 휘감아 세차게 흐르던 강물은 널찍한 모래밭과 절벽을 사이에 둔 소에서 느긋하게 다음 여울을 준비했다. 충주댐과 팔당댐이 건설되고 나서도 강은 이런 원형을 어느 정도 간직했다. 4대강 사업이 벌어지는 곳은 바로 그런 강의 원래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됐던 곳이다.
폐수나 하수 처리장이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원리는 여울을 본뜬 것이다. 돌이나 모래 표면에 사는 미생물에 산소를 공급해 오염물질을 먹어치우도록 하는 것이다. 여울은 없애지 않는 한, 전기나 화학약품, 관리자 하나 없이도 이 일을 한다. 이른바 자정작용이다.
자정작용의 핵심은 생물이다. 산소가 풍부한 여울은 미생물, 물속벌레, 조개와 다슬기, 물고기 등 다양한 생물의 삶터이다. 4대강 사업을 시작하기 전, 환경부는 여울에 사는 물고기의 다양성을 하천의 생태적 건강성을 평가하는 잣대의 하나로 삼았다.
‘어항’으로 전락한 청계천과 쉬리가 헤엄치는 전주천
똑같이 복원한 하천이지만 단조로운 청계천은 외부에서 물고기를 공급해서 겨우 구색을 맞추는 ‘어항’으로 전락했지만, 여울과 소가 반복하도록 생태하천을 제대로 만든 전주천에서는 도심에까지 쉬리가 헤엄친다. 전주 도심인 다가교~서신교 구간의 전주천에는 공사 이전 5종이던 물고기가 현재 쉬리를 비롯해 흰줄납줄개, 각시붕어, 버들치, 참갈겨니 등 22종으로 늘어났다.

4대강 전체를, 성공한 생태하천이란 말을 듣는 전북 전주천이나 서울 양재천처럼 만들 수 있을까. 도심을 지나는 일부 구간이나 오염된 지천이 흘러드는 곳을 빼면 4대강의 대부분에는 자연성이 살아있다. 4대강 사업은 수천년 동안 강을 공짜로 관리해 주던 자연을 내쫓고 로봇물고기와 조경업자와 가난한 지자체에 강을 내맡기자는 것과 다름없다.
파도소리가 거슬린다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여울목에서 나는 강물 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시끄럽지도 지겹지도 않다. 여울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크고 작은 물방울이 터지면서 배음진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런 천상의 하모니가 중단된 침묵의 강은 죽은 강이다.
방학을 맞은 대학생을 비롯해 일반 시민과 지식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4대강 현장답사에 나서고 있다. 놀랍게도 강변에 처음 온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현장에서 이들은 유럽의 템스, 라인, 센, 다뉴브강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금모래, 은모래밭이 사라지는 모습을 본다. 늘 벙벙하게 물이 차 있는 유럽의 큰 강과 달리 철마다 표정이 바뀌는 우리 강을 실감하기도 한다. 그리고 보 건설과 준설로 사라지는 것이 여울과 모래밭뿐 아니라 우리 정서의 기반임을 아프게 깨닫는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천상의 화음’ 4대강, 로봇물고기와 조경업자 손에

‘떼돈 번다’는 말의 고향은 남한강이다. 정선·영월 등 강원도 산골에서 벌채한 나무를 뗏목으로 묶어 서울로 나르면 큰돈을 만질 수 있었던 데서 왔다.
그러나 뗏사공 일은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했다. 물이 불어야 뗏목을 띄울 수 있는데, 영월에서 충북 충주 사이에도 큰 여울만 80곳이나 됐다. 상투비리, 황새여울, 된꼬까리, 맛바우여울, 누릅꾸지여울, 꽃바위여울, 너푼쟁이여울 등 토속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 있는가 하면, 청풍에 있는 으시시비비미여울처럼 사공의 두려움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곳도 적지 않았다.

‘떼돈 번다’는 말의 고향…하수 처리장이 본뜬 원형

여울목은 어른에게도 쏠쏠한 재미를 안겼다. 경기 양평 모래여울, 여주 앙암, 충주 목계의 제비여울 등에서는 주민들이 갈수기에 가래 등 농기구로 여울에 너비 10~15m, 깊이 3m가량의 물골을 파 이곳을 통과하는 뗏사공으로부터 ‘골세’를 받았다.
충주댐 건설을 앞둔 1981년 <한국일보>는 전문가와 함께 남한강을 답사해 ‘남한강 뱃길 천리’를 연재했다. 남한강의 ‘마지막 뱃사공’ 우도봉, 한상철 옹이 조사단의 배를 저었다. 바쁜 일정을 알리는 단장에게 도사공이 말한다. “배는 떠나는 시간만 정할 수 있을 뿐 도착시간은 누구도 모릅니다.” 기사를 보면, 몇 백m 간격으로 암반과 여울목이 깔려 있어 50년 경력의 뱃사공도 땀을 뻘뻘 흘리며 고역을 치렀다. 배가 가재여울, 터준뎅이여울을 쏜살같이 지나는 데만도 4분이나 걸렸다.
남한강은 여울의 강이었다. 비탈에서 모래와 자갈을 굴리고 바위를 휘감아 세차게 흐르던 강물은 널찍한 모래밭과 절벽을 사이에 둔 소에서 느긋하게 다음 여울을 준비했다. 충주댐과 팔당댐이 건설되고 나서도 강은 이런 원형을 어느 정도 간직했다. 4대강 사업이 벌어지는 곳은 바로 그런 강의 원래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됐던 곳이다.
폐수나 하수 처리장이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원리는 여울을 본뜬 것이다. 돌이나 모래 표면에 사는 미생물에 산소를 공급해 오염물질을 먹어치우도록 하는 것이다. 여울은 없애지 않는 한, 전기나 화학약품, 관리자 하나 없이도 이 일을 한다. 이른바 자정작용이다.
자정작용의 핵심은 생물이다. 산소가 풍부한 여울은 미생물, 물속벌레, 조개와 다슬기, 물고기 등 다양한 생물의 삶터이다. 4대강 사업을 시작하기 전, 환경부는 여울에 사는 물고기의 다양성을 하천의 생태적 건강성을 평가하는 잣대의 하나로 삼았다.
‘어항’으로 전락한 청계천과 쉬리가 헤엄치는 전주천
똑같이 복원한 하천이지만 단조로운 청계천은 외부에서 물고기를 공급해서 겨우 구색을 맞추는 ‘어항’으로 전락했지만, 여울과 소가 반복하도록 생태하천을 제대로 만든 전주천에서는 도심에까지 쉬리가 헤엄친다. 전주 도심인 다가교~서신교 구간의 전주천에는 공사 이전 5종이던 물고기가 현재 쉬리를 비롯해 흰줄납줄개, 각시붕어, 버들치, 참갈겨니 등 22종으로 늘어났다.

4대강 전체를, 성공한 생태하천이란 말을 듣는 전북 전주천이나 서울 양재천처럼 만들 수 있을까. 도심을 지나는 일부 구간이나 오염된 지천이 흘러드는 곳을 빼면 4대강의 대부분에는 자연성이 살아있다. 4대강 사업은 수천년 동안 강을 공짜로 관리해 주던 자연을 내쫓고 로봇물고기와 조경업자와 가난한 지자체에 강을 내맡기자는 것과 다름없다.
파도소리가 거슬린다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여울목에서 나는 강물 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시끄럽지도 지겹지도 않다. 여울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크고 작은 물방울이 터지면서 배음진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런 천상의 하모니가 중단된 침묵의 강은 죽은 강이다.
방학을 맞은 대학생을 비롯해 일반 시민과 지식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4대강 현장답사에 나서고 있다. 놀랍게도 강변에 처음 온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현장에서 이들은 유럽의 템스, 라인, 센, 다뉴브강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금모래, 은모래밭이 사라지는 모습을 본다. 늘 벙벙하게 물이 차 있는 유럽의 큰 강과 달리 철마다 표정이 바뀌는 우리 강을 실감하기도 한다. 그리고 보 건설과 준설로 사라지는 것이 여울과 모래밭뿐 아니라 우리 정서의 기반임을 아프게 깨닫는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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