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안팎 1천 종 고산식물 보금자리
③ 경기 포천 평강식물원
애기석남 왕백산차 시로미 만병초 월귤…
백두에서 히말라야까지 ‘다문화’ 꽃 피워

고산식물의 삶은 힘겹다. 토양이 척박하고 건조해 겨울이면 영하 30도 이하로 떨어지다가도 한여름엔 땡볕이 내리쬔다. 1년에 불과 3달인 생육기간 안에 싹트고 꽃 피워 결실까지 마쳐야 한다. 이 독특한 식물들은 더워지는 지구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다.
평강식물원(원장 이환용)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산식물의 피난처가 있다. 지난 7일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의 산정호수와 명성산 자락에 위치한 이 식물원의 암석원을 찾았다.
6000㎡ 바위동산 곳곳에 보물
크고 작은 바위들 사이에 땅에 붙어 있는 듯한 작은 식물과 관목이 심겨져 있어 화려하지도 눈길을 끌지도 않는다. ‘암석원인데 바위 종류가 다양하지 않다’고 불평하는 탐방객을 탓할 것만도 아니다.
그러나 이 바위동산에는 보물이 숨겨져 있다. 아시아 최대 규모인 약 6000㎡의 이 암석원엔 우리나라의 백두산, 한라산, 설악산은 물론이고 로키, 히말라야, 알프스산맥의 고산식물 1천 종이 자라고 있다.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영구동토에 주로 자라는 월귤은 흰 꽃을 피우고 있었고, 일부는 곧 붉어질 열매를 매달고 있었다. 설악산 대청봉과 강원도 홍천에 극소수가 분포하는 멸종위기종이다.
월귤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한라산 시로미도 암석원에 잔디처럼 깔려 있다. 9년 자란 월귤의 키가 손가락 만했다. 알프스에서 온 에델바이스는 샛노란 알프스민들레 사이에서 만개했다. 설악산 중청봉 원산인 5년산 산솜다리는 고산식물 전용 온실인 알파인하우스 안에서 곱게 씨앗을 맺었다.
암석원 한쪽은 석회암지대를 본떴다. 건조하고 알칼리성인 토질에 잘 사는 갈기조팝, 회양목, 구슬댕댕이, 정선바위솔 같은 토종과 유럽의 고산식물이 이곳에 자리잡았다. 반대로 토탄이끼층은 산성 토양 토질인데, 이곳에선 애기석남, 넌출월귤, 왕백산차, 진퍼리꽃나무, 노랑만병초 같은 백두산 일대의 식물 20여종을 볼 수 있다.

‘만가지 병에 좋다’는 만병초도 400종이나
강인하지만 환경변화에 예민한 고산식물을 기르기는 여간 힘든 게 아니다. 38도선에 위치해 연평균 기온이 10.3도인 포천의 겨울은 몹시 추워 다행이지만 여름의 더위와 습기가 문제다. 평강식물원은 풍혈(얼음골)의 원리를 이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지하에 바위조각을 너덜처럼 깔고 관을 통해 공기가 드나들게 해 땅속의 온도를 낮추고 습기를 제거한 것이다. 이런 ‘인공 풍혈’로 지하온도를 7~8도 낮춘다고 식물원 쪽은 밝혔다.
이 식물원은 재배가 힘들기로 유명한 고산식물 만병초를 400종이나 보유하고 있다. 식물원에서도 가장 서늘한 산등성이에 자리잡은 만병초원에는 150여 종이 심겨져 있다. 우리나라엔 태백산 등 고산지대와 울릉도에 모두 2종이 분포하지만 약재로 마구 채집한 데다 기후변화로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 ‘만가지 병에 좋다’는 속설을 입증할 응용 잠재력도 크다.
식물원을 둘러보던 정순덕(경기도 일산시·55)씨는 “다른 식물원에 비해 잔잔한 느낌이 좋다”고 말했다. 평강식물원에 키 작은 나무가 유독 많은 데는 까닭이 있다. 묘목을 사다가 쉽게 조성하지 않고 일일이 씨앗을 심어 길러냈기 때문이다.
이 식물원 원창오 식물부 차장은 “시간과 관리비용이 들어 모두 묘목을 선호하지만 우리 식물원에선 나무의 99%가 씨앗을 뿌려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식물원 문을 연 지 11년이 됐지만 아직 어린 나무가 많고 아직 꽃 핀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식물도 적지 않다.
그러나 씨앗 증식엔 장점도 있다. 원씨는 “월귤과 솜다리처럼 한꺼번에 많은 개체를 얻을 수 있고 새로운 품종을 개발할 기회도 생긴다”고 설명했다.
평강식물원은 고산식물 종다양성의 강점을 유지하기 위해 연변과학기술대와 양해각서를 체결하는가 하면, 세계 120개 식물원과 잉여종자 교환사업도 벌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환경부로부터 멸종위기동식물 서식지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돼 가시오갈피나무, 개병풍, 노랑만병초, 독미나리 등 10종의 증식과 복원을 맡고 있다. 식물원 쪽은 우선 발왕산 등 몇 안 되는 자생지만 남아있는 가시오갈피와 개병풍의 자생지 환경을 조사한 뒤 종자 채집과 증식, 복원사업에 나설 예정이다.
■ 평강식물원 이모저모
평강식물원이 산림청으로부터 수목원으로 정식 등록을 하고 일반에 개장한 뒤 반년쯤 지난 2006년 11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식물원을 갑자기 방문했다.
방명록에 “새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보았습니다”란 글을 남긴 노 대통령은 아마도 봉하에 귀향해 조성하겠다고 한 마을숲의 미래상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이때부터 평강식물원은 유명해져 해마다 탐방객이 곱절로 늘어났다. 지난해엔 모두 9만여 명이 찾았고, 올해엔 탐방객이 15만 명에 이를 것으로 식물원 쪽은 예상하고 있다.
12개 테마가든 가운데 습지원은 가장 인기가 높다. 요즘 습지원엔 노랑꽃창포와 보랏빛 부채붓꽃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다. 애초 계단식 논이던 곳에 계류를 연결해 조성했다. 참개구리와 무당개구리의 짝짓기 노래가 들리는 등 자연성이 살아있다.
고층습지원은 백두산의 장지연못을 재현한 곳이다. 고층습지는 미처 썩지 못한 유기물이 쌓인 토탄층에 물이끼가 덮인 독특한 생태계이다. 식물원은 이를 위해 지하 4m를 파 토탄과 이탄을 채워넣어 수천~수만년의 퇴적역사를 복원했다. 두만강에 자생하는 부레옥잠과 비슷한 형태의 수생식물인 삼부채를 비롯해 진퍼리사초, 해오라기난, 방울새난 등 희귀식물이 자란다.
애기석남 왕백산차 시로미 만병초 월귤…
백두에서 히말라야까지 ‘다문화’ 꽃 피워

고산식물의 삶은 힘겹다. 토양이 척박하고 건조해 겨울이면 영하 30도 이하로 떨어지다가도 한여름엔 땡볕이 내리쬔다. 1년에 불과 3달인 생육기간 안에 싹트고 꽃 피워 결실까지 마쳐야 한다. 이 독특한 식물들은 더워지는 지구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다.
평강식물원(원장 이환용)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산식물의 피난처가 있다. 지난 7일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의 산정호수와 명성산 자락에 위치한 이 식물원의 암석원을 찾았다.
6000㎡ 바위동산 곳곳에 보물
크고 작은 바위들 사이에 땅에 붙어 있는 듯한 작은 식물과 관목이 심겨져 있어 화려하지도 눈길을 끌지도 않는다. ‘암석원인데 바위 종류가 다양하지 않다’고 불평하는 탐방객을 탓할 것만도 아니다.
그러나 이 바위동산에는 보물이 숨겨져 있다. 아시아 최대 규모인 약 6000㎡의 이 암석원엔 우리나라의 백두산, 한라산, 설악산은 물론이고 로키, 히말라야, 알프스산맥의 고산식물 1천 종이 자라고 있다.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영구동토에 주로 자라는 월귤은 흰 꽃을 피우고 있었고, 일부는 곧 붉어질 열매를 매달고 있었다. 설악산 대청봉과 강원도 홍천에 극소수가 분포하는 멸종위기종이다.
월귤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한라산 시로미도 암석원에 잔디처럼 깔려 있다. 9년 자란 월귤의 키가 손가락 만했다. 알프스에서 온 에델바이스는 샛노란 알프스민들레 사이에서 만개했다. 설악산 중청봉 원산인 5년산 산솜다리는 고산식물 전용 온실인 알파인하우스 안에서 곱게 씨앗을 맺었다.
암석원 한쪽은 석회암지대를 본떴다. 건조하고 알칼리성인 토질에 잘 사는 갈기조팝, 회양목, 구슬댕댕이, 정선바위솔 같은 토종과 유럽의 고산식물이 이곳에 자리잡았다. 반대로 토탄이끼층은 산성 토양 토질인데, 이곳에선 애기석남, 넌출월귤, 왕백산차, 진퍼리꽃나무, 노랑만병초 같은 백두산 일대의 식물 20여종을 볼 수 있다.

‘만가지 병에 좋다’는 만병초도 400종이나
강인하지만 환경변화에 예민한 고산식물을 기르기는 여간 힘든 게 아니다. 38도선에 위치해 연평균 기온이 10.3도인 포천의 겨울은 몹시 추워 다행이지만 여름의 더위와 습기가 문제다. 평강식물원은 풍혈(얼음골)의 원리를 이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지하에 바위조각을 너덜처럼 깔고 관을 통해 공기가 드나들게 해 땅속의 온도를 낮추고 습기를 제거한 것이다. 이런 ‘인공 풍혈’로 지하온도를 7~8도 낮춘다고 식물원 쪽은 밝혔다.
이 식물원은 재배가 힘들기로 유명한 고산식물 만병초를 400종이나 보유하고 있다. 식물원에서도 가장 서늘한 산등성이에 자리잡은 만병초원에는 150여 종이 심겨져 있다. 우리나라엔 태백산 등 고산지대와 울릉도에 모두 2종이 분포하지만 약재로 마구 채집한 데다 기후변화로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 ‘만가지 병에 좋다’는 속설을 입증할 응용 잠재력도 크다.


이 식물원 원창오 식물부 차장은 “시간과 관리비용이 들어 모두 묘목을 선호하지만 우리 식물원에선 나무의 99%가 씨앗을 뿌려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식물원 문을 연 지 11년이 됐지만 아직 어린 나무가 많고 아직 꽃 핀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식물도 적지 않다.
그러나 씨앗 증식엔 장점도 있다. 원씨는 “월귤과 솜다리처럼 한꺼번에 많은 개체를 얻을 수 있고 새로운 품종을 개발할 기회도 생긴다”고 설명했다.
평강식물원은 고산식물 종다양성의 강점을 유지하기 위해 연변과학기술대와 양해각서를 체결하는가 하면, 세계 120개 식물원과 잉여종자 교환사업도 벌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환경부로부터 멸종위기동식물 서식지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돼 가시오갈피나무, 개병풍, 노랑만병초, 독미나리 등 10종의 증식과 복원을 맡고 있다. 식물원 쪽은 우선 발왕산 등 몇 안 되는 자생지만 남아있는 가시오갈피와 개병풍의 자생지 환경을 조사한 뒤 종자 채집과 증식, 복원사업에 나설 예정이다.
원창오 차장은 “기후변화로 가장 먼저 사라질 고산식물의 피난처를 마련하고 이들의 종자 보전과 기후적응에 기여하려 한다”고 말했다.
포천/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포천/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미국 원산의 만병초. 평강식물원에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400여 종이 있다.
■ 평강식물원 이모저모
평강식물원이 산림청으로부터 수목원으로 정식 등록을 하고 일반에 개장한 뒤 반년쯤 지난 2006년 11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식물원을 갑자기 방문했다.
방명록에 “새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보았습니다”란 글을 남긴 노 대통령은 아마도 봉하에 귀향해 조성하겠다고 한 마을숲의 미래상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이때부터 평강식물원은 유명해져 해마다 탐방객이 곱절로 늘어났다. 지난해엔 모두 9만여 명이 찾았고, 올해엔 탐방객이 15만 명에 이를 것으로 식물원 쪽은 예상하고 있다.
12개 테마가든 가운데 습지원은 가장 인기가 높다. 요즘 습지원엔 노랑꽃창포와 보랏빛 부채붓꽃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다. 애초 계단식 논이던 곳에 계류를 연결해 조성했다. 참개구리와 무당개구리의 짝짓기 노래가 들리는 등 자연성이 살아있다.
고층습지원은 백두산의 장지연못을 재현한 곳이다. 고층습지는 미처 썩지 못한 유기물이 쌓인 토탄층에 물이끼가 덮인 독특한 생태계이다. 식물원은 이를 위해 지하 4m를 파 토탄과 이탄을 채워넣어 수천~수만년의 퇴적역사를 복원했다. 두만강에 자생하는 부레옥잠과 비슷한 형태의 수생식물인 삼부채를 비롯해 진퍼리사초, 해오라기난, 방울새난 등 희귀식물이 자란다.
들꽃동산에는 국내·외 야생화를 섞어 심어 계절마다 다른 색깔을 내도록 연출한 공간이다. 현재 붓꽃과 대나물이 들판을 푸른빛과 붉은빛으로 물들이고 있지만 한달 전 주인공은 매발톱과 할미꽃이었고, 다음달엔 노란 마타리와 각종 나리가 들판을 차지할 것이다.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산정리에 자리잡은 평강식물원은 면적이 약 60만㎡이며, 1997년 터를 구입해 1999년부터 식물원 조성을 시작했다. 이환용 원장은 한의학 박사로 서울 강남에서 알레르기 비염과 축농증 치료로 유명한 평강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 원장은 해마다 성서식물 특별전시회를 열고 있다.
포천/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포천/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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