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진화’ 어긴 물벼룩 3천만년 생존 비밀

조홍섭 2010. 02. 01
조회수 53758 추천수 0
몸을 말려 바람과 함께 휙 사라지는 기술로
‘유전자 무기’ 무장한 유성생식 천적 따돌려
 
 
연못에 많이 사는 동물플랑크톤인 물벼룩이 세계적 과학전문지 <사이언스> 29일치의 표지를 장식했다. 섹스를 하지 않는 생식방법으로 3천만년을 이어온 물벼룩의 비밀을 밝힌 논문이 나왔기 때문이다.
 
35억 년 동안 1천여만 종 불어난 생물다양성의 기원
 
__.jpg생물은 단 한 종의 미생물로부터 35억년 동안 1천만종 이상으로 불어났다. 이런 생물다양성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는 과학계의 큰 수수께끼이다.
 
과학자들은 그 한 비밀을 유성생식(섹스)에서 찾았다. 섹스가 진화를 재촉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의 하나가 ‘붉은 여왕 가설’이다. 한자리에 머물기 위해 끊임없이 달려야 하는 사람을 그린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 따왔다. 멸종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진화의 발길을 재촉해야 하는데, 섹스가 그 동력이라는 것이다.
 
암수가 때로는 위험을 무릅쓰고 짝을 찾아야 하는 유성생식은 자기와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생명체를 단순히 복제해 내는 무성생식에 견줘 비효율적이다. 섹스의 강점은 바람직한 새로운 형질을 집단 안에 퍼뜨리는 속도가 무성생식에 비해 빠르다는 것이다.
 
무성생식을 하는 어떤 생물에 유성생식을 하는 천적이나 기생자가 생기면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유전자를 뒤섞는 유성생식을 통해 방어수단을 개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유성생식을 하는 공격자는 방어무기가 나와도 재빨리 새로운 공격수단을 개발할 수 있다.
 
진화 게임에서 술래잡기 놀이…천적 없는 곳 선점
 
논문을 쓴 폴 셔먼 미국 코넬대 신경생리학 및 행동학 교수와 그의 박사과정 학생인 크리스 윌슨은 무성생식을 하면서 3천만년 동안 450종이 번성하고 있는 물벼룩(윤충, 델로이드 로티퍼)의 비밀을 실험을 통해 조사했다.
 
이 물벼룩은 몸 안쪽에서부터 먹어 들어오는 한 곰팡이에게 취약하다. 이 곰팡이에 감염되는 물벼룩 집단이 종종 몰살한다. 그런데도 이 물벼룩이 살아남는 데는 몸을 말려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기술이 있었다.
 
연구자는 유전적으로 동일한 물벼룩 집단 7개를 만들어 6개에 치명적 곰팡이를 접종했고, 이 가운데 5개를 7~35일 동안 바싹 말린 뒤 수분을 공급했다. 그랬더니 14일 이하 동안 말린 것에서 물벼룩은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다. 그러나 21일 말린 것의 60%에서 전혀 곰팡이에 감염되지 않은 물벼룩이 살아났다. 이 물벼룩은 물 없는 곳에서도 몇 년씩 생존한다.
 
건조와 함께 바람도 생존에 기여했다. 곰팡이에 잔뜩 감염된 시험접시를 풍동에 넣어 바람을 불게 한 뒤 바람받이에 24개의 접시를 놓았더니 17개에서 물벼룩이 살아났고, 그 가운데 10개에서는 곰팡이가 전혀 없었다. 이 실험은 물벼룩이 섹스로 무장한 포식자인 곰팡이를 떼어내는 기술을 습득했음을 보여준다.
 
셔먼은 “물벼룩은 진화의 게임에서 술래잡기 놀이를 하고 있는 셈”이라며 “바람을 이용해 천적이 없는 곳을 선점해 빠르게 번식한 뒤 적이 따라오면 효과적으로 이를 따돌리는, 어떤 동물도 시도하지 않은 능력을 지녔다”고 말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태그 :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얼굴에 손이 가는 이유 있다…자기 냄새 맡으려얼굴에 손이 가는 이유 있다…자기 냄새 맡으려

    조홍섭 | 2020. 04. 29

    시간당 20회, 영장류 공통…사회적 소통과 ‘자아 확인’ 수단 코로나19와 마스크 쓰기로 얼굴 만지기에 어느 때보다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이 행동이 사람과 침팬지 등 영장류의 뿌리깊은 소통 방식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침팬지 등 영장류와 ...

  • 쥐라기 바다악어는 돌고래처럼 생겼다쥐라기 바다악어는 돌고래처럼 생겼다

    조홍섭 | 2020. 04. 28

    고래보다 1억년 일찍 바다 진출, ’수렴 진화’ 사례 공룡 시대부터 지구에 살아온 가장 오랜 파충류인 악어는 대개 육지의 습지에 산다. 6m까지 자라는 지상 최대의 바다악어가 호주와 인도 등 동남아 기수역에 서식하지만, 담수 악어인 나일악어...

  • ‘과일 향 추파’ 던져 암컷 유혹하는 여우원숭이‘과일 향 추파’ 던져 암컷 유혹하는 여우원숭이

    조홍섭 | 2020. 04. 27

    손목서 성호르몬 분비, 긴 꼬리에 묻혀 공중에 퍼뜨려 손목에 향수를 뿌리고 데이트에 나서는 남성처럼 알락꼬리여우원숭이 수컷도 짝짓기철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과일 향을 내뿜는다. 사람이 손목의 체온으로 향기를 풍긴다면, 여우원숭이는 손목 분...

  • 뱀을 향한 뿌리 깊은 공포, 새들도 그러하다뱀을 향한 뿌리 깊은 공포, 새들도 그러하다

    조홍섭 | 2020. 04. 23

    어미 박새, 뱀 침입에 탈출 경보에 새끼들 둥지 밖으로 탈출서울대 연구진 관악산서 9년째 조사 “영장류처럼 뱀에 특별 반응” 6달 된 아기 48명을 부모 무릎 위에 앉히고 화면으로 여러 가지 물체를 보여주었다. 꽃이나 물고기에서 평온하던 아기...

  • 금강산 기암 절경은 산악빙하가 깎아낸 ‘작품'금강산 기암 절경은 산악빙하가 깎아낸 ‘작품'

    조홍섭 | 2020. 04. 22

    북한 과학자, 국제학술지 발표…권곡·U자형 계곡·마찰 흔적 등 25곳 제시 금강산의 비경이 형성된 것은 2만8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 때 쌓인 두꺼운 얼음이 계곡을 깎아낸 결과라는 북한 과학자들의 연구결과가 나왔다. 북한의 이번 연구는 금강산을...

인기글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