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이 깎고 모래가 키워 신도 탐내는 절경

조홍섭 2010. 05. 19
조회수 55741 추천수 0
<3부> ⑤ 원형의 섬, 인천 굴업도
20m 높이 절벽 3~5m 깊이 파낸 120m ‘터널’
비밀은 섬 동쪽 커다란 바다 밑 골짜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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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 파시가 열려 불야성을 이루던 곳, 땅콩농사와 목축으로 근근이 살아가던 외딴 섬, 핵폐기장 후보지로 사회적 논란이 불붙던 곳, 그리고 이번엔 대기업의 골프장 예정지로 시민단체가 꼭 지켜야 할 자연유산으로 선정한 곳….
 
인천 앞바다의 작은섬 굴업도는 서로 연결이 쉽지않은 이런 굴곡진 역사를 안고 있다. 우리나라 유인도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섬으로 꼽히는 굴업도는 최근 섬의 일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예고되면서 거센 조류와 파도, 바람이 빚어낸 독특한 해안지형이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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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활 모양으로 파고든 거대한 ‘해식와’ 눈길 압도

 
지난 12~13일 지형학자 이상영 박사(관동대 지리교육과 교수)와 함께 인천 옹진군 덕적면 굴업도의 해안지형을 둘러봤다.
 
굴업도 남쪽의 딸린섬인 토끼섬에 들어서자 절벽을 활 모양으로 파고든 거대한 ‘해식와’가 눈길을 압도했다. 문화재청이 ‘국내 어디서도 보기 힘든 해안지형의 백미’라고 평가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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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재와 암석조각이 굳어 생긴 약 20m 높이의 절벽을 3~5m 깊이로 우묵하게 파낸 ‘터널’이 약 120m 길이로 펼쳐져 있다. 중장비를 동원해야 만들 수 있는‘ 이런 지형을 깎아낸 주인공은 놀랍게도 소금이다.
 
궁금증을 풀 단서는 굴업도로 향하는 여객선에서 얻을 수 있었다. 백성만 해양호 선장은 “10~15m이던 수심이 굴업도 동쪽에 가면 갑자기 80~90m로 떨어지는 커다란 해저 골짜기가 있다”고 말했다.
 
서해에서 이런 수심은 외해인 홍도나 흑산도에 나가야 나온다. 인천에서 85㎞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굴업도 인근에 이런 깊은 골짜기가 있는 것은 거대한 단층이 2~4개 지나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 섬을 어렵게 핵폐기물 처분장 후보지로 정했다가 포기한 까닭이기도 하다.

이상영 박사는 “해저 골짜기는 여름철 주변보다 찬 물이 조류를 타고 흘러들어오는 통로 구실을 한다”며 “찬 바닷물이 더운 공기와 만나 짙은 안개를 발생시키고 바닷물의 소금기와 어울려 바위를 그야말로 녹여낸다”고 말했다.

 
마치 태백산맥이 영동과 영서의 기후차 빚어낸 것과 비슷
 
이 박사는 찬 조류 말고도 굴업도가 주풍향인 서풍과 남동풍을 병풍처럼 가로막는 남북방향으로 위치해, 섬의 중앙을 기준으로 동쪽에서는 화학적 침식이, 서쪽에서는 물리적 침식이 우세한 독특한 지형을 낳았다고 설명했다. 마치 태백산맥이 영동과 영서의 기후차를 빚어낸 것과 비슷하다.
 
섬의 서쪽 사면은 동쪽보다 건조하고 온도가 높은데다 파도가 두드리는 힘을 받아 바위가 절리를 따라 무너져 내려 절벽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서쪽을 향한 목기미 해안에는 계절마다 온도차가 커 금이 간 바위가 파도에 맞아 떨어져 나가면서 코끼리바위 같은 절경을 이루거나, 절벽에서 떨어진 응회암 덩어리가 거대한 너덜처럼 해안을 메꾸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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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파도의 영향을 덜 받는 대신 습도와 소금기의 영향을 크게 받는 동쪽 해안에선 바위가 부식돼 빵껍질처럼 부풀어오르고 벌집모양으로 구멍이 숭숭 뚫린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파도와 소금 중 어느 쪽이 힘이 셀까. 이 박사는 “토끼섬에서는 침식된 지형의 규모로 볼 때 바닷물 속이나 공기속의 소금이 우위”라며 “햇빛이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굴업도는 깎여 사라지는 바위보다 훨씬 많은 모래를 얻는다. 한강 하구에서 공급돼 덕적군도 일대에 방대한 양이 쌓여있는 모래가 바람을 타고 날아들어, 곳에 따라서는 사막화 현상을 빚기도 하다. 덕분에 민어 어장이 붕괴된 뒤 땅콩농사가 주민을 먹여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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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모래가 날려 쌓인 목기미 해안의 사구는 소사나무와 찰피나무 숲을 잠식하며 확장하고 있었다. 이상영 박사가 측정한 결과 사구 경계 부근의 모래깊이는 지난 5달 동안 26㎝ 높아졌고, 사구는 숲쪽으로 2m 전진했다. 사구가 만 안쪽 바람 통로에 자리잡았고, 바깥 바다에서 모래가 무제한 공급되기 때문이다.
 
 
 “천혜의 해안경관 잘 간직해 학술적 가치가 높아”
 
모래밭이 바다를 가른 목기미 해안의 연륙사빈에서는 모래가 불과 2~3년만에 전봇대 꼭대기 2m 밑까지 쌓이는 가공할 퇴적량을 보이기도 한다. 1998년에 만든 콘크리트 방파제가 모래 퇴적을 가속시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해안에서 드러났듯이, 무분별하게 들어선 해안시설은 모래밭이 씻겨나가고 시설이 붕괴하는 침식을 피하지 못했다. 굴업도 큰마을해변은 자연해안의 가치를 잘 보여준다. 폭 300m의 완만한 모래해변은 아무리 큰 풍랑이라도 잠재우는 자연방파제 구실을 하고 있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굴업도는 약 8천만~9천만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 말 격렬한 화산활동의 산물이다. 거대한 땅덩어리가 밀치고 부딪치면서 한반도를 형성했지만 아직 봉합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고운 화산재가 쌓이다가 돌연 직경 10m에 이르는 암석들이 콘크리트 반죽처럼 버무려진 화산쇄설암이 쌓이는 등 거듭된 화산활동의 자취와, 바위가 갈라져 부서지고 녹아내린 침식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박종관 건국대 지리학과 교수는 2008년 문화재청의 의뢰로 굴업도 해안지형을 조사한 보고서에서 “섬 전체가 천혜의 해안경관을 잘 간직하고 있다”며 보전과 학술적·교육적 활용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다.
 
 
굴업도/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파란만장한 굴업도 역사
 
아는 사람만 호젓하게 바닷가 정취를 즐기던 굴업도가 요즘 주말에 가려면 한 달 전에는 배표를 예약해야 하는 곳이 됐다. 대기업의 골프장 건설계획으로 인한 환경훼손 논란이 계속되면서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굴업도에서 발견된 패총(조개무더기)은 신석기 시대 선사인들이 거주해 왔음을 증언한다. 수심이 얕고 조수간만의 차이가 커 어패류 등 먹을거리를 확보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1920년대 초까지 굴업도는 해마다 백령도에 이어 민어 파시가 형성되던 어업전진기지였다. 그럴 때면 수천명이 북적였고 부천경찰서에서 일본인 순사를 파견해 치안을 담당했을 정도였다. 육지에선 땅콩을 재배하고 소를 쳤다.
 
한국전쟁 뒤에도 적지 않은 주민이 살았지만 1980년대 말부터 인구가 급격히 줄었다. 주민들은 자녀교육과 일자리 여건이 좋은 인천 등지로 떠났고 계단식 밭이 사라지면서 흑염소와 꽃사슴을 방목하기도 했다. 민박을 뺀 경제활동이 없고 모래채취 등 개발활동이 없어 해안지형은 큰 손상을 받지 않고 보전될 수 있었다.
 
1994년 정부가 굴업도를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터로 선정한 이유도 주민이 적고 외진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굴업도에는 12가구 21명이 거주하며, 겨울철에는 2가구만이 섬에 남는다.
 
굴업도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시제이(CJ) 그룹의 시앤아이(C&I)레저산업은 2006년 섬 전체를 깎아 골프장과 레저단지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해 이 섬은 또다시 논란의 대상이 됐다.
 
 이 섬은 2009년 이 섬을 제 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대상, 꼭 지켜야 할 자연유산 환경부 장관 상 등을 받으며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굴업도의 골프장 개발과 토끼섬의 천연기념물 지정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 희귀곤충 살리는 방목 염소
 
img_08.jpg방목한 염소는 대부분의 섬에서 생태계를 파괴하는 골칫덩이다. 그러나 굴업도에선 야생화한 염소와 꽃사슴이 없으면 왕은점표범나비와 애기뿔소똥구리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1970년대까지 소를 방목했던 서쪽 섬(느다시)의 꼭대기에는 나무가 거의 없다.  소는 없어졌지만 놓아 기른 염소와 꽃사슴은 중요한 생태기능을 한다. 억새 초원에 길을 만들고 키 큰  억새군락을 억제함으로써 햇빛이 잘 들게 돼  엉겅퀴, 금방망이나무 등 꿀이 많은 식물이 잘 자라게 해 준다. 염소와 꽃사슴은 결국 탐식성이 강한 왕은점표범나비에게 꿀을 충분히 공급하는 구실을 한다. 나아가 소들이 사라진 초원에서 애기뿔소똥구리의 산란 장소이자 먹이인 소똥이 사라지자 대체식량으로 흑염소와 꽃사슴 똥을 다량 제공하는 혜택을 베풀고 있다.

 
느다시엔 멸종위기야생동식물 2급인 왕은점표범나비 애벌레의 먹이인 금방망이와 엉겅퀴가 많이 자란다. 이상영 관동대 지리교육과 교수는 “왕은점표범나비는 1년에 전국에서 채집되는 개체수가 10여 마리에 불과할 정도로 희귀하지만 이곳에선 하루에 300마리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나비는 육지에선 초지가 숲으로 바뀌거나 개발로 사라지면서 드물어졌다.그러나 느다시의 ‘빈약한’ 초원은 골프장 개발이 타당하다는 근거로만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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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업도에는 이밖에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 1급인 매와 검은머리물떼새가 번식하고 있고 먹구렁이도 다수 서식한다. 쇠똥 대신 염소똥과 사슴똥을 먹는 애기뿔쇠똥구리와 개미귀신의 국내 최대 서식지이기도 하다.
 
또 해발 138m의 산이 있을 뿐인데도 지형과 미 기후의 영향으로 동백나무, 보리밥나무, 큰천남성 같은 난대식물과 홀아비바람꽃, 두루미천남성 등 한대식물이 공존하는 특이한 식생을 보이기도 한다.
 
1년 중 절반 동안 물이 마르는 묵기미연못 해안사구습지에는 미꾸리를 비롯해 물방게 등 50여 종의 물벌레가 서식하는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음이 최근 밝혀지기도 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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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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