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2400살 무게는 605t ‘괴물’ 땅속에 산다

조홍섭 2009. 04. 14
조회수 117785 추천수 0
아밀라리아, 여의도 3배 크기…지구 밑은 ‘외계’
알려진 흙속 동물 5%뿐, 그나마 토양 65%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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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고래(흰수염고래)는 지구에 현존하는 동물 가운데 가장 크다. 길이 32m에 무게는 190t에 이른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생물이 땅속에 산다.
 
한 개체인지 논란이 있긴 하지만, 2003년 미국 오리건 주에서 발견된 뿌리 썩음 균류인 아밀라리아는 여의도 면적의 약 3배인 8.9㎢의 걸쳐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 나이 2400살에 무게는 605t이었다.
 
내게도, 네게도, 나무에도 선충이…“이세상은 선충의 것”
 
동물과 식물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 균류는 유기물을 분해하는 중요한 땅속 생물이다. 곰팡이, 버섯, 효모가  대표적인 균류이다.
 
인류는 달 표면보다 바다에 관해 더 모른다. 땅속세계는 바다보다 더 낯설다. 흙속 동물 종의 5%만이, 바다 밑 침전층 동물의 0.1%만이 과학계에 밝혀져 있을 뿐이다.
 
이본느 배스킨은 <땅속 생태계>(최세민 옮김/창조문화/1만 8천 원)에서 “흙은 가난한 자의 열대우림”이라고 했다. 기름진 정원의 흙 한 삽에는 아마존 우림에 사는 생물종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종이 산다는 것이다.
 
Untitled-2 copy.jpg코넬대 생태학자 데이빗 피멘텔에 따르면, 비옥한 흙 1㏊(가로세로 100m)에는 지렁이와 절지동물 각 1000㎏, 원생동물 150㎏, 조류 150㎏, 박테리아 1700㎏, 균류 2700㎏가 들어있다. 워낙 작은 생물이라 마릿수가 아닌 무게를 따진 것이다.
 
다윈은 40년 동안이나 지렁이를 연구했다. 우리의 인식도 기껏 땅속의 거대 생물인 지렁이가 토양환경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수준에 머문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는 <흙에도 뭇 생명이>(지성사/1만 3천 원)에서 은사인 고 최기철 박사의 동물분류학 수업시간을 회고했다. 교실에 서 있는 교수나 학생 몸속에 있는 기생충도 선충이고 나무마다 다른 선충이 사니, “이 세상은 선충의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땅 위의 호랑이처럼 선충은 땅속 세상의 포식자이다. 그런 선충이 목장 흙 1㎡에 1천만 마리가 산다.
 
광합성 없는 밤엔 토양 속 미생물이 오염물질 흡수
 
흙은 생태계의 기초이다. 그 위력은 실내에서도 느낄 수 있다. 화분으로 실내공기오염을 줄이는 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그 주역이 식물이라기보다 화분의 흙속 생물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김광진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박사는 <미국 원예학회지>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화분에 심은 팔손이와 벤자민의 지상부와 뿌리부가 휘발성 오염물질 제거에 각각 어떤 기여를 하는지를 측정했다.
 
밤과 낮 동안의 제거량은 비슷했다. 그런데 낮 동안 식물의 지상부와 지하부가 거의 비슷한 제거능력을 보인데 비해 밤에는 지하부에서 제거되는 오염물질이 96%를 차지했다. 광합성을 하지 않는 밤 동안 오염물질을 흡수한 것은 화분 속 토양에 들어있는 미생물이었다. 따라서 실내에 화초를 길러 오염물질을 제거할 때, 그 공의 절반 가까이는 흙에 돌려야 한다.
 
식물과 토양생물의 관계도 범상치 않다. 식물은 광합성으로 합성한 영양분을 뿌리를 통해 땅속으로 흘려보낸다. 이 먹이를 먹고 미생물이 번창해 유기물을 식물이 흡수할 수 있는 영양염으로 바꾸어 놓는다. 식물마다 좋아하는 토양생물이 따로 있고, 이들을 위한 음식을 제공한다. 뿌리는 일방적인 수탈의 통로가 아니라 식물과 토양생물이 공생하는 소통의 광장이다.
 
침식, 사막화, 염분 증가로 정점에 이른 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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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초지에서 초식동물에 잎을 뜯긴 식물이 그렇지 않은 식물보다 빨리 자란다는 역설도 토양생물로 설명할 수 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의 연구를 보면, 풀을 뜯긴 식물은 땅속으로 평소보다 많은 당분 등을 분비한다. 땅속 미생물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질소 등 식물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을 만들어낸다. 그런 다음 식물은 갑자기 뿌리를 통한 ‘비료 살포’를 중단한다. 굶어 죽은 미생물 또한 식물에 소중한 질소비료가 된다. 식물이 종종 잎보다 뿌리를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이다.
 
토양은 가치가 제대로 알려지기도 전에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전 세계의 토양 중 65%가 침식, 사막화, 염분 증가로 훼손돼 있다. 이 때문에 해마다 1천만 ㏊의 농경지가 버려지고 있으며, 이미 3억㏊ 이상의 농지가 못 쓰게 됐다. ‘기름 정점’에 이어 ‘토양 정점’이란 말도 나오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석유 공급은 아직 정점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토양은 이미 넘어섰다는 점이다.
 
권 교수는 호미로 텃밭을 맬 때 나는 흙 냄새를 ‘토향’이라며 예찬했다. 그 냄새는 방선균이 내는 지오스민이란 물질이 낸다. 구수한 흙냄새가 더는 나지 않을 때 생명의 기반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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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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