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90도 '흰 사막', 수백만 년 생존 비법

조홍섭 2014. 0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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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 균류, 선충 등 남극 토착 생물이 빙하기 거쳐 생존 비결은 활화산

얼음 녹은 땅, 분기공, 동굴 등에서 적응해 진화…다른 곳에서도 '피난처' 가능성

 

a1_A man stands in a cloud of volcanic steam in the Antarctic South Sandwich Islands_pete convey.jpg » 남극에도 맨땅이 드러난 곳이 있다. 활화산 주변의 이런 땅은 토종 생물이 빙하기를 버티는 피난처가 된다. 사진은 남극 사우스 샌드위치 섬이다. 사진=피트 콘베이

 
펭귄, 고래, 물개, 크릴 등 남극 하면 떠오르는 동물이 남극을 생명이 풍성한 곳으로 여기게 한다. 하지만 이들은 남극 해안이나 바다에 기대어 사는 동물이어서 남극 대륙의 주인을 자처하기엔 좀 부족해 보인다.
 

내륙에선 영하 80~90도의 혹한이 오고, 1년 내내 눈에 덮여 있지만 극점 근처의 강수량은 연간 100㎜에 불과해 ‘흰 사막’이라고도 불린다. 강렬한 자외선이 내리쪼이는데다 햇빛 없는 겨울이 6개월이나 계속된다.
 

이런 곳에서도 생물이 산다. 그것도 우연히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수백만년 동안 이곳에 터잡고 살고 있는 생물이다. 이끼와 균류, 선충, 미소 절지동물 등이 그들이다.
 

지금도 춥지만 빙하기에 남극은 더 추웠고 얼음은 더 넓고 깊게 쌓였다. 그런데 화석과 유전자 자료를 보면 남극의 생물은 이런 빙하기를 여러 차례 극복해 살아남아 진화한 것으로 나타난다.

a2_Volcanic steam hovers over fields of mosses on the Antarctic South Sandwich Islands_pete convey.jpg » 남극에도 화산의 수중기가 뿜어나오는 곳에는 이끼가 돋아난다. 사진=피트 콘베이

 

세리드웬 프레이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 진화생물학자 등 국제연구진은 과학저널 <미 국립과학원회보> 11일치에 실린 논문에서 남극에 분포하는 화산이 생물이 생존할 피난처 구실을 했다는 주장을 폈다. 이 연구는 남극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지열이 나오는 곳이 생물진화에 중요한 구실을 할지 모른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연구진은 10곳의 활화산 지역을 포함해 43곳에서 지금까지 이뤄진 생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공간 모델링 기법을 이용해 생물다양성과 화산지대의 관련성을 분석했다. 남극에서 화산활동이 활발한 곳은 북부의 남극 반도 등 3곳으로, 여기엔 눈이 녹아 드러난 땅, 연못, 증기가 뿜어나오는 분기공, 지열의 증기로 생긴 동굴 등이 분포한다.
 

분석 결과 화산활동으로 지열이 나오는 곳에서 그렇지 않은 곳보다 생물다양성이 훨씬 높았다. 지열 지대로 가까이 갈수록 생물종이 많아지는 양상도 분명했다.
 

a3_Volcanic steam rises out of a fumarole, surrounded by lush mosses and other lifeforms, on the Antarctic South Sandwich Islands_pete convey.jpg » 남극 사우스 샌드위치 섬의 화산 분기공 주변에 이끼 등 생물이 번창하고 있다. 사진=피트 콘베이

 

특히, 식물인 이끼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제까지는 이끼의 분포를 미소 기후조건이나 위도로 설명했을 뿐이다. 또 가벼운 이끼의 포자가 어딘가 다른 곳에서 날아왔을 것으로 여겼지만 실은 지열 지대에서 꿋꿋하게 빙하기를 견딘 것이었다.
 

남극에는 지의류를 이루는 균류가 많은데, 이들은 기후에 적응해 수백년 동안 느리게 자라고 영하 196도에도 죽은 듯이 말라붙었다가 살아나는 강인한 면모를 보인다. 이끼만큼은 아니지만 지열 지대는 이들에게도 피난처 구실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빙하가 몰려오면 생물은 깡그리 사라지는 게 아니라 피난처에서 간빙기를 기다린다. 이 과정에서 생물은 다양한 형태로 진화해 다양성이 높아진다. 유전적 증거를 보면, 어딘지는 몰라도 ‘숨겨진 피난처’가 있음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번 연구는 화산활동에 의해 지열이 높은 곳이 그 유력한 후보일 가능성을 제시한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Ceridwen I. Fraser et. al., Geothermal activity helps life survive glacial cycles, PNAS, www.pnas.org/cgi/doi/10.1073/pnas.1321437111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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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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