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기원지에서 외계 생명체를 꿈꾸다

조홍섭 2016. 09. 23
조회수 72985 추천수 0
내비가 "7시간 직진 후 좌회전" 안내하는 오지이자 생명 기원한 오랜 땅덩이
지구에 산소와 철 선사한 남세균이 남긴 화석 찾으며 화성 탐사 준비하는 곳

a8.jpg » 끝없이 펼쳐진 서호주의 붉은 땅은 화성을 떠오르게 한다.
 
지구는 46억년 전 탄생 직후 외계 행성과 대충돌을 일으켜 달이 떨어져 나갔다. 그 충격으로 지구는 그야말로 녹아버렸고 뜨거운 마그마로 뒤덮였다. 

지구가 차츰 식어 첫 암석이 생긴 건 42억년 전이었다. 놀랍게도 35억년 전에는 벌써 생물이 살았다. 그로부터 10억년 동안 시생대 바다를 지배했던 생물은 남세균(시아노박테리아)이었다. 광합성을 하는 이 단세포생물 덕분에 우리는 산소를 호흡하고, 또 철광석을 캐 집을 짓고 차를 만든다.
 
원시생물에게 지구 환경은 혹독했다. 황량한 육지와 바다에는 산소가 한 톨도 없었고, 오존층이 없는 대기를 강력한 자외선이 내리쪼였다. 

바닷가 조간대에 끈적한 덩어리를 이룬 남세균은 얇은 광물층을 뒤집어써 자외선을 차단했다. 이렇게 남세균과 광물이 층을 이뤄 자란 퇴적물이 스트로마톨라이트로서 수십억년 전 원시생물이 살았다는 유력한 증거이다.
 
1512.jpg
35억년 전 세상 그대로
문경수 지음/ 마음산책·1만4000원

이 책은 그런 태초의 생물 화석이 남아있는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서 호주)를 지질학자들과 함께 탐사한 기록이자 여행 안내서이다. 지은이는 여행사 직원에서 과학기자를 거쳐 ‘과학 탐험가’라는 직함을 내걸기까지 독특한 이력을 지닌다. 그동안 몽골, 고비사막, 알래스카, 하와이 등 외지고 과학적 궁금증이 가득한 곳을 누볐지만 서호주는 30여 차례나 찾았다.
 
그 이유는 서 호주에 자동차 내비게이션이 “일곱 시간 직진 후 좌회전”이라고 안내하는 광활한 오지가 펼쳐져 있기도 하지만, 그곳이 생명 탄생의 기원을 담은 오랜 땅이면서 동시에 화성 등 외계 행성의 생물 탐사를 위한 출발지이기 때문이다.

a2.jpg » 서호주 탐사대가 탄 특별 수송차량. 대형 트럭을 개조해 승객과 다량의 보급품을 실을 수 있도록 했다.

a1.jpg » 바오밥나무와 유칼립투스나무가 군락을 이룬 서호주의 풍경.
 
문씨는 “과학자들과 교류해 방문을 거듭하면서 지질학, 생물학, 천문학, 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의 과학적 호기심을 풀고 여행 도중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곳이 무궁무진하다는 걸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온통 붉은 황무지를 뚫고 호주의 서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샤크 만에 가면 살아있는 현생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볼 수 있다. 맑고 염도가 높은 바닷물에 살짝 잠긴 바위 표면에 남세균이 끈적거리는 매트를 이룬 채 작은 산소 공기방울을 만들어 내고 있다. 

물론 이 스트로마톨라이트가 태초의 생물이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생대 화석이 발견되는 곳에서 현생의 후손이 산다는 건 기막힌 우연이자 볼거리가 아닐 수 없다. 

a3.jpg » 샤크 만의 살아있는 스트로마톨라이트. 수십억년 전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 산출지에 현생 종이 분포하는 건 순전히 우연이다.

지은이는 “남세균이 없었다면 인간을 포함한 지구의 생명도 없었을 것이고, 이 미생물이 장차 화성의 대기를 생물이 살 만한 곳으로 바꾸는 데도 큰 구실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화성 표면 같은 붉은 경관이 펼쳐진 서 호주 필바라는 약 20억년 전 남세균이 바다에서 대규모로 번창해 바닷물에 녹아있던 철을 붉은 산화철로 침전시킨 곳이다. 산소가 풍부하면 붉은 퇴적층, 고갈되면 회색 퇴적층이 줄무늬처럼 쌓여 60% 순도의 철광석을 이뤘다. 해마다 1억t을 노천 채굴하는 이 철광석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 가운데 우리나라가 들어있다.
 
a4.jpg »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이 산출되는 덕 크릭의 모습.

a5.jpg »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 남세균과 광물질이 차례로 쌓인 퇴적층 모습이다. 우리나라에는 소청도에 10억년 전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이 있다.

a6.jpg »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이 있는 필바라의 퇴적층 절벽 모습.

지은이는 2010년 호주 퍼스에서 열린 국제 시생대 심포지엄의 현장답사에 과학자들과 참가했다. 이 책은 그 충실한 기록이기도 하다. 

a7.jpg » 대규모 철광이 분포하는 서큘러 풀.

참가자 가운데는 미항공우주국(NASA) 과학자들도 포함됐는데, 이들의 관심사는 외계 생명체였다. 수십억년의 지각변동을 거치며 살아남은 태초 생물의 흔적은 화성 등 외계 행성에서 생명의 흔적을 찾는 유력한 단서가 된다. 지구에서 가장 오랜 땅인 서 호주에서 우주생물학이 떠오르는 이유다.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 문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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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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