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저에도 미스터리 서클? 복어에게 물어봐

조홍섭 2013. 07. 04
조회수 63228 추천수 0

일본 남부 아마미-오시마 섬 해저에 지름 2m '비행접시 무늬' 조형물 잇따라

복어 일종 수컷이 만든 산란장 드러나, 둥지용 미세 모래 공급받을 정교한 장치

 

puffer0-1.jpg » 일본 남부 해저 모래밭에서 발견되는 '미스터리 써클'. 사진=요지 오카타, <사이언티픽 레포츠>  

 

일본 남쪽의 아마미-오시마 섬이 있는 아열대 바다에서 다이버들은 1995년부터 신기한 모습을 가끔씩 관찰했다. 바다 밑바닥 모래밭에 지름 2m쯤의 원형 무늬가 곳곳에 그려져 있는 것이었다. 가장자리에서 중앙을 향해 방사상으로 빗살 무늬가 선명한 이 무늬는 마치 비행접시를 눌러 찍어놓은 것 같기도 해서 다이버들 사이에서는 ‘미스터리 써클’이라고 불렸다.
 

이 괴상한 무늬의 정체가 일본 연구자들에 의해 밝혀졌는데, 이를 만든 주인공은 작은 복어의 일종이었다. 히로시 가와세 일본 지바 자연사박물관 연구원 등은 이런 내용을 <사이언티픽 레포츠>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사이언티픽 레포츠>는 네이처가 발행하는 온라인 공개학술지이다.

fuffer1.jpg » 지느러미로 '미스터리 써클'을 만드느라 열심인 참복과 복어의 일종. 사진=키미아키 이토, <사이언티픽 레포츠>

 

연구진이 수중에서 관찰했더니, 참복과 토르퀴게너속의 이 신종 복어 수컷은 산란용 둥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런 조형물을 빚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복어는 원의 바깥에서 안쪽으로 헤엄치면서 가슴과 배, 꼬리지느러미를 총동원해 바닥의 모래를 헤집어 고랑을 만들었다. 이렇게 형성된 빗살 모양의 고랑이 가운데 만나는 곳이 신부를 유인할 둥지이다. 둥지에는 조개나 산호 조각을 뿌려 장식했다.

 

해저 '미스터리 써클'을 만드는 과정

 

puffer2-1.jpg

 

pugger2-2-1.jpg

 

puffer2-3-1.jpg

 

puffer2-4.jpg » a. 둥지 제작 초기 b. 중간 단계. 오른쪽에 작은 복어의 모습이 보인다. c. 완성. d. 산란 뒤 골이 무너져 가는 모습. 복어가 알을 지키고 있다. 사진=요지 오카타, <사이언티픽 레포츠>   

 

길이 12㎝인 이 물고기가 지름 2m의 이런 조형물을 만드는 데는 7~9일이나 걸렸다. 암컷이 둥지에 알을 낳은 뒤에도 수컷은 6일을 더 머물며 알을 지켰다. 이러는 사이에 조형물의 고랑은 물살에 차츰 무너져 평평해졌다.
 

복어는 왜 이런 조형물을 만드는 걸까. 연구진은 모래의 미세한 입자가 한가운데 둥지에 쌓이도록 유도하는 구조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복어가 골을 팔 때 일어난 미세 입자는 흩어지지 않고 골 표면에 쌓이는데, 골이 방사상이어서 조류와 무관하게 미세 입자는 중앙에 위치한 둥지로 이동했다. 따라서 복어의 미스터리 써클은 폭신한 둥지의 원자재인 미세 입자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장치라는 것이다.
 

하지만 복어는 이렇게 힘들게 만든 구조물을 재활용하지 않고, 번식 때마다 새로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어렵게 만든 둥지이지만 모래에 포함된 미세 입자를 모두 써 버린 상태여서 다시 쓰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Role of Huge Geometric Circular Structures in the Reproduction of a Marine Pufferfish
Hiroshi Kawase, Yoji Okata & Kimiaki Ito
SCIENTIFIC REPORTS | 3 : 2106 | DOI: 10.1038/srep02106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얼굴에 손이 가는 이유 있다…자기 냄새 맡으려얼굴에 손이 가는 이유 있다…자기 냄새 맡으려

    조홍섭 | 2020. 04. 29

    시간당 20회, 영장류 공통…사회적 소통과 ‘자아 확인’ 수단 코로나19와 마스크 쓰기로 얼굴 만지기에 어느 때보다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이 행동이 사람과 침팬지 등 영장류의 뿌리깊은 소통 방식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침팬지 등 영장류와 ...

  • 쥐라기 바다악어는 돌고래처럼 생겼다쥐라기 바다악어는 돌고래처럼 생겼다

    조홍섭 | 2020. 04. 28

    고래보다 1억년 일찍 바다 진출, ’수렴 진화’ 사례 공룡 시대부터 지구에 살아온 가장 오랜 파충류인 악어는 대개 육지의 습지에 산다. 6m까지 자라는 지상 최대의 바다악어가 호주와 인도 등 동남아 기수역에 서식하지만, 담수 악어인 나일악어...

  • ‘과일 향 추파’ 던져 암컷 유혹하는 여우원숭이‘과일 향 추파’ 던져 암컷 유혹하는 여우원숭이

    조홍섭 | 2020. 04. 27

    손목서 성호르몬 분비, 긴 꼬리에 묻혀 공중에 퍼뜨려 손목에 향수를 뿌리고 데이트에 나서는 남성처럼 알락꼬리여우원숭이 수컷도 짝짓기철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과일 향을 내뿜는다. 사람이 손목의 체온으로 향기를 풍긴다면, 여우원숭이는 손목 분...

  • 뱀을 향한 뿌리 깊은 공포, 새들도 그러하다뱀을 향한 뿌리 깊은 공포, 새들도 그러하다

    조홍섭 | 2020. 04. 23

    어미 박새, 뱀 침입에 탈출 경보에 새끼들 둥지 밖으로 탈출서울대 연구진 관악산서 9년째 조사 “영장류처럼 뱀에 특별 반응” 6달 된 아기 48명을 부모 무릎 위에 앉히고 화면으로 여러 가지 물체를 보여주었다. 꽃이나 물고기에서 평온하던 아기...

  • 금강산 기암 절경은 산악빙하가 깎아낸 ‘작품'금강산 기암 절경은 산악빙하가 깎아낸 ‘작품'

    조홍섭 | 2020. 04. 22

    북한 과학자, 국제학술지 발표…권곡·U자형 계곡·마찰 흔적 등 25곳 제시 금강산의 비경이 형성된 것은 2만8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 때 쌓인 두꺼운 얼음이 계곡을 깎아낸 결과라는 북한 과학자들의 연구결과가 나왔다. 북한의 이번 연구는 금강산을...

인기글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