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긴자' 주민 매일 불안한 기도
“핵 없는 미래로 가자”-피스 앤 그린 보트 현장 취재기 ① 일본 유일 가동 오이 원전
활성단층 논란에도 일본 유일 가동…후쿠시마 인근 강진에 '술렁'
지역경제 무너질라 반대도 마음대로 못하고, 이중 불안에 시달려
2012 피스 & 그린보트가 `탈 원전'을 주제로 한국과 일본의 시민 920여 명이 대형 크루즈 선에 탑승한 가운데 12월 2~9일 동안 열렸다. 두 나라 시민들은 선상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고 고리원전, 일본 오키나와, 오이 원전, 하카타 등을 방문해 지역주민과 교류 프로그램을 벌이기도 했다.
» 지난 7일 바다에서 바라본 오이 원전 전경. 왼쪽 2기가 일본에서 가동중인 유일한 원전이다.
» 오이 원전의 위치
일본 후쿠이 현 오바마 시 주민 니시노 히카루는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서쪽 바다를 향해 합장을 한다. 집에서 10㎞ 떨어진 오이 원전이 후쿠시마 원전처럼 사고를 일으켜 대대로 살아온 그의 고향과 가족을 앗아가지 말게 해달라고 비는 것이다. 대대로 고기잡이를 해 와 날씨의 변화에 민감한데,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오이 원전의 영향은 30분이면 그의 집에 도달한다.
‘피스 앤 그린 보트’는 지난 7일 니시노의 안내로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에서 유일하게 가동 중인 오이 원전을 찾았다. 오이 원전 단지에는 고리에서 본 낯익은 둥근 돔 모양의 격납용기 4개가 바닷가에 서 있었다. 이 가운데 2기가 꺼져가는 일본 원전 산업의 마지막 불씨인 셈이다.
모처럼 날씨가 화창했고 파도도 그리 심하지 않아 참가자들을 태운 지역의 소형 유람선을 오이원전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다. 유람선 선장 가와고에 히로시는 몰려든 손님 때문에 표정이 밝았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로 손님이 곱절로 늘었어요. 원전의 전경을 보려면 유람선을 타고 바다에서 보는 수밖에 없거든요. 오이 원전이 관광 명소가 된 셈입니다." 그러나 선장 말고 이 지역에서 후쿠시마 사고가 행운을 가져온 이는 없는 것 같았다.
» 쓰루가 시 부시장과 만나 오이 원전 가동의 문제점을 질문하는 최열 환경재단 대표(오른쪽에서 두번째)와 요시오카 일본 피스보트 공동대표(오른쪽 끝). 사진=조홍섭 기자
이 원전단지 한 가운데에서 지층이 띠 모양으로 깨진 파쇄대가 발견돼 이것이 활성단층인지 아니면 단순한 산사태의 흔적인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바로 옆 쓰루가 원전 아래에서도 활성단층이 발견됐다.
이날 최열 환경재단 대표와 요시오카 타츠야 피스보트 공동대표는 양국 시민의 항의의 뜻을 전하기 위해 쓰루가 시를 방문했다. 최 대표는 “한국에서는 활성단층이 발견되자 어렵게 확보한 굴업도 핵폐기물 처분장 터를 포기한 적이 있는데, 큰 사고를 겪은 나라가 원전 가동을 강행한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따졌다.
이에 대해 키무라 마나부 부시장은 “현재 조사 중이지만 발전소 쪽은 활성단층이 아니라고 한다. 또 우리에게 가동을 중단시킬 권한은 없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쓰루가의 원전 대부분이 가동을 중단하면서 고용 등 경제적 타격이 크고 중소기업이 경제적 곤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쓰루가 시에서 인구 7명에 1명꼴로 원전과 관련이 있는 일을 한다고 시 당국은 밝혔다.
그러나 미쓰비시에서 원자로 격납용기를 설계했던 고토 마사시 박사는 “불확실성이 있다면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 원전 가동을 멈추는 것이 제대로 된 안전철학이자 후쿠시마 사고에서 얻은 교훈이다. 만일 오이 원전에서 사고가 난다면 100㎞ 안쪽에 위치한 교토 등 관서지방 대도시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유람선에서 오이 원전을 바라보는 일본쪽 참가자. 가동을 재개한 유일한 원전이어서 시위대가 찾아오는 등 유명세를 톡톡이 치르고 있다.
오이 원전을 둘러보던 사람들이 술렁였다. 후쿠시마에서 가까운 일본 동북지방에서 규모 7.3의 강진이 일어나 쓰나미 경보가 발령됐다는 소식이 전혀졌다. 뜻밖에 현지 주민은 담담했고, 한국 참가자들의 안부를 묻는 전화가 잇달았다.
오이 원전이 위치한 와카사 만은 ‘원전 긴자’란 별명을 갖고 있다. 고속증식로 몬주를 비롯해 일본에서 가장 많은 15기의 원전이 1970년대 초부터 여기에 몰려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내색은 안 해도 주민들의 원전에 대한 불안감은 높다.
» 오이 원전 주변 주민들과 탈원전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심포지엄이 7일 열렸다.
와카사 정 주민 후지모토 토요시코는 “이런 곳에 ‘탈 원전’을 내건 대형 크루즈 선이 입항하고 탈 원전과 지역의 미래를 논의하는 심포지엄이 열리는 것 자체가 사건”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주최쪽은 원전 반대 단체에 임대를 꺼리는 지역 관광버스 회사를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만큼 이 지역에서 원전의 위치는 절대적이다.
정부의 보조금(교부금)과 세금뿐 아니라 기부 등 다양한 형태의 원전 자금이 지역사회에 들어온다. 쓰루가 시의 원전 교부금은 연간 약 23억엔(약 300억원에 해당)으로 시 수입의 10%를 차지한다.
고용과 인간관계에는 더 큰 영향을 끼친다. 이날 저녁 열린 심포지엄에서 나온 주민들의 말을 들어 보았다.
오바마 시에서 결혼식 전통예복 대여업을 하는 사카모토 카즈야(41)는 착잡한 주민의 심정을 이렇게 말했다.
주민만을 상대로 한 기업이라 이 지역이 잘 돼야 생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이 원전 재가동 이후) 가도 괜찮냐는 문의를 하는 사람이 많아졌지요. 관광업이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관광객이 30-40%나 줄었어요. 오바마 시의 노동인력 중 절반 정도가 원전과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젊은이가 주 고객인데,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원전이 있었어요. 후쿠시마 사고 때까지 원전 안전성을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 위험한 원전이 없어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보지만 그래도 경제는 중요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30년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요. 리모컨 없는 텔레비전을 볼 수는 없어요."
» 7일 와카사 만의 천년 고찰 메이츠 절에서 나카츠다 제츠엔 주지가 참가자들에게 원전과 지역사회를 설명하고 있다.
탈 원전 운동가이자 오바마 시 주민인 니시노 히카루는 운동을 하면서 겪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이 크다고 털어놓았다.
오이 원전이 재가동하자 큰 시위가 벌어지던 곳 옆 홍보센터에 갔더니 언니의 동창생이 센터 관장이었습니다. 복잡한 심정이 들었지요. 시위가 있던 밤 오징어 배 선장도 잘 아는 사람인데 홍보센터 관장의 남동생이었습니다. 시위 뉴스를 보았을 때 아는 사람이 그 안에 있나 살펴 보았지요. 간사이 전력 관계자는 없는지. 막는 경찰 속에 아는 이는 없나. 아는 경비회사 직원은 없는지 보게 되더군요.…오래 전 원전을 도입할 때부터 찬반 논란으로 친구와 가족 사이도 멀어지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원전 관련 얘기를 꺼립니다. 시끌벅적하다가도 이 화제 꺼내면 싸늘해지지요. 전력업계 종사자가 많아, 결국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후쿠시마 사고 이후엔 얘기하지 않을 수 없게 돼 고통이 커요."
» 지역주민이 연 오이 물산전에서 피스 앤 그린 보트 참가자들이 물건을 사고 있다.
원전 지역 주민이라도 사고에 대한 불안은 똑같다. 이 지역 반핵운동가인 마쓰시타 테루유키 '숲과 함께 살아가는 도토리 클럽' 대표는 말한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불안이 확산됐습니다. 동시에 원전 가동이 중단되자 일자리와 경기에 대한 불안도 커졌지요. 민의는 탈 원전이지만 이를 대신할 눈에 띄는 정책은 없습니다. 어느 쪽으로 보나 위험은 큰데 길은 보이지 않고…."
이날 심포지엄에 참가한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원전 지역에 대한 지원을 원전의 폐로 시점까지 연장하고 그 부담을 소비자와 전력회사가 지는 것이 옳다. 그 기간 동안 지역 주민은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지역발전의 대안을 마련하도록 노력하는 것은 어떨까"라는 의견을 냈다.
쓰루가-오바마(일본)/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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