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코끼리 코식이는 ‘외로움’ 때문에 말을 하기 시작했다

조홍섭 2012. 1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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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랜드 22살 인도코끼리 2004년부터 사육사 말 흉내 시작

사회적 유대 중요한 시기 홀로 지내, "음성 학습으로 종 장벽 뛰어넘은 사례"

 

ko5.jpg » 에버랜드에서 말을 흉내내는 코식이를 녹음하는 오스트리아와 독일 연구진. 사진=앙겔라 스퇴거 외, <커런트 바이올로지>  

 

에버랜드 동물원의 22살 난 수컷 인도코끼리 ‘코식이’는 ‘말하는 코끼리’로 유명하다. ‘좋아’ 등 몇 가지 단어를 사람처럼 말해 외신을 통해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코식이의 이런 특별한 능력에 주목해 학술적으로 연구한 논문이 저명한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 1일치에 실렸다.
 

앙겔라 스퇴거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 인지 생물학자 등 연구자들은 이 논문에서 코식이의 ‘말’을 음성학적으로 분석하는가 하면 한국인이 그 말을 얼마나 알아듣는지, 어떻게 말을 시작하게 됐는지 등을 알아봤다.
 

ko3-1.jpg » 조련사와 함께 있는 에버랜드 동물원의 `말하는 코끼리' 코식이. 말을 흉내 낼 뿐 이해하는 건 아니다. 사진=박미향 기자

 

연구자들은 코식이가 흉내 낼 수 있다고 사육사가 주장한 6개의 단어를 녹음해 16명의 한국인에게 들려 주고 소리 나는 대로 적어 보라고 요청했다(이밖에 ‘예’ ‘발’‘아직’ 등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연구는 6개 단어에 국한했다). 그랬더니 ‘안녕’ ‘앉아’ ‘아니야’ ‘누워’ ‘좋아’ 등 5개를 성공적으로 흉내 낸다는 것을 확인했다.
 

코식이는 자음보다는 모음을 정확히 발음했는데, 모음을 제대로 흉내 낸 비율은 67%였다. 예를 들어 코식이가 ‘좋아’라고 흉내 낸 말을 들을 한국인의 38%는 ‘보아’로 23%는 ‘모아’로 들었다. 정답률은 ‘안녕’이 56%, ‘아니야’가 44%, ‘누워’가 31%, ‘앉아’가 15%였다.
 

ko2.jpg » '누워'라는 말의 주파수 특성. 코식이와 사육사의 것이 외부인의 것보다 매우 유사하다. 사진=앙겔라 스퇴거 외, <커런트 바이올로지>

 

연구진은 특히 코식이가 사람 특히 사육사 김종갑씨 목소리의 음색과 높이를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는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자연상태에서 성대가 긴 코끼리는 사람보다 훨씬 주파수가 낮은 소리를 낸다.
 

코식이는 코를 말아 입속에 넣어 성대에 바람을 불어넣고 입술로 바람 세기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말을 흉내 낸다. 연구진은 이것을 “학계에 보고된 바 없는 전혀 새로운 발성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ko1.jpg » 코식이의 독특한 음성 흉내 모습. 코를 입 안 깊숙이 넣어 형태적 한계를 극복했다. 사진=앙겔라 스퇴거 외, <커런트 바이올로지>

 

코끼리는 윗입술이 코와 합쳐져 긴 코가 됐기 때문에 ‘우’와 같이 입술을 둥글게 모아야 내는 모음을 발음할 수 없는데, 이런 형태적 한계를 극복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오랑우탄은 나뭇잎이나 자신의 손으로 소리를 조절하는 예는 보고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코식이는 단지 말을 흉내 낼 뿐 말을 이해한다는 증거는 없다고 논문은 밝혔다.
 

그렇다면 코식이는 왜 ‘말’을 하기 시작했을까. 연구진은 이 코끼리의 생애사에서 그 단서를 찾았다. 코식이는 1990년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나 1993년 에버랜드로 옮겨졌다. 그로부터 2년 뒤까지 코식이는 두 마리의 암컷 인도코끼리와 함께 지냈다.
 

하지만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코식이는 홀로 지냈는데, 사육사 등 사람이 유일한 동료였다. 사육사는 2004년 코식이가 말을 중얼거리는 것을 발견해, 아마 그 이전부터 코식이는 말을 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연구진은 이런 배경으로 보아 “코식이가 말을 흉내 낸 결정적인 요인은 유대와 발달이 중요한 시기에 동료 코끼리 없이 인간과만 접촉할 수 있었던 사회적 결핍 때문”일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또 “코식이가 이런 사회적 환경 속에서 말을 흉내 내는 능력을 개발했다는 것은 음성 학습이 특수한 상황에선 종의 벽을 넘어선 사회적 유대를 강화하는 기능이 있을 수 있음을 가리킨다”고 덧붙였다.
 

한편, 카자흐스탄 동물원에서도 인도코끼리가 러시아어와 코자크어를 중얼거린다고 알려져 있으나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은 없다고 논문은 밝혔다.
 

코식이는 현재 열 살짜리 암컷 코끼리와 함께 살고 있다. 코끼리는 매우 지적이며 사회성이 강해 무리의 유대를 유지하는 것이 동물복지의 핵심 과제로 알려져 있다.
 

미국 동물원 및 수족관 협회는 번식을 위한 코끼리는 6~12마리 무리를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고 영국 동물원 수족관 협회는 2살 이상의 암컷을 적어도 4마리 이상 함께 둘 것을 권하고 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Stoeger et al., An Asian Elephant Imitates Human Speech, Current Biology (2012), http://dx.doi.org/ 10.1016/j.cub.2012.09.022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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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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