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새와 시골 새, 이솝우화를 쓴다면?

조홍섭 2012. 11. 16
조회수 30457 추천수 1

도시는 소음, 스트레스, 위험과 함께 풍부한 먹이, 따뜻한 시선 교차하는 곳

잘만 적응하면 도시도 새들에게 살 만한 곳…소리 바꾸고, 성질 죽이고, 고양이 발톱 피하면

 

김진수.jpg » 도시는 새들에게 위험과 스트레스로 가득 찬 곳이지만 수도꼭지에서 물을 먹는 법을 배운 참새처럼 적응한 개체에겐 뜻밖의 좋은 서식지가 될 수 있다. 사진=김진수 기자
 
잘 알려진 ‘시골 쥐와 서울 쥐’ 동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시골 쥐가 먹는 초라하고 거친 음식을 불쌍하게 여긴 서울 쥐는 시골 쥐를 서울로 초대한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은 널렸어도 사람과 고양이 등쌀에 시골 쥐는 맘 놓고 먹을 수가 없었다. 시골 쥐는 ‘물질적 풍요보다는 마음 편한 삶이 낫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고 귀향한다. 정말 시골 쥐는 서울 쥐보다 살기가 나을까. 쥐는 어떤지 몰라도 새를 가지고 한 연구는 세계적으로 많다.
 

도시의 소음은 새들의 노랫소리를 바꾸어 놓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참새 노랫소리를 1969년부터 현재까지 비교한 연구 결과를 보면, 도시의 소음이 늘어남에 따라 새들의 노래에서 저음부가 사라지는 변화가 일어났다. 자동차 등 인위적 소음은 대개 저주파 형태를 띤다.
 

이곳의 참새 노래에는 3개의 사투리가 있다고 저명한 조류학자 루이스 뱁티스타가 1969년 밝힌 바 있는데, 30년 뒤에는 2가지로 줄었고 특히 시끄러운 도심에선 고음의 사투리로 노래하는 참새만 살고 있다. 새들이 주로 노래하는 아침 시간이 출근 러시아워와 겹친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 런던, 파리 등 유럽의 10개 대도시 안과 주변 숲에 사는 박새의 노래를 비교한 연구도 있는데, 소음에 적응해 도시 박새는 숲 박새보다 노래가 짧고 빠르며 높은 특징을 보였다.
 

blackbird.jpg » 유럽 도시에 널리 분포하는 검정지빠귀. 약 200년 전에는 숲에만 살았던 종이다. 사진=J.D. 이바네스 알라모

 

새에게 도시는 각종 스트레스로 가득 찬 곳이다. 소음뿐 아니라 사람과 개, 고양이의 간섭이 심하고 공기도 탁하다. 독일 연구자들은 숲과 도시에서 각각 태어난 검정지빠귀가 스트레스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조사했다. 그랬더니 도시 검정지빠귀는 숲 친구에 비해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이 둔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도시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인데, 만일 스트레스 호르몬이 계속 분비된다면 생식과 면역, 두뇌기능에 손상을 입게 된다.
 

그렇다고 도시가 새에게 해로운 곳만은 아니다. 도시는 시골보다 온화하고 먹이가 많으며, 사람들의 시선도 농촌보다 따뜻하다. 미국에서의 연구를 보면, 농촌과 달리 도시에선 포식자가 많아지더라도 새의 둥지가 털리는 피해가 늘지 않았다. 도시엔 고양이, 까마귀, 너구리 등 포식자가 득실거리지만 이들의 주 먹이는 새보다는 인간이 남긴 음식이었다.

뉴시스.jpg » 최근 우리나라 대도시에 부쩍 많아진 직박구리. 열매를 많이 맺는 조경수를 심은 환경변화에 적응했다. 사진=뉴시스

 

스페인 과학자들은 최근 도시 새와 시골 새는 포식자를 회피하는 행동에서 일관된 차이를 보인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연구자들은 잡은 새를 손에 올려놓고 출신별로 반응이 어떻게 다른지 살폈다. 그랬더니 도시 새는 손가락을 쪼고 몸부림을 치는 등 포식자 대항행동이 시골 새보다 약했다. 도시가 농촌보다 포식압력이 낮다는 반증인데, 실제로 도시 새는 시골 새보다 사람이 2배나 가깝게 접근하는 것을 허용한다.
 

도시 새는 덜 공격적이지만 잡혔을 때 비명을 지르고 풀려날 때 경계음을 내는 비율은 높았다. 친척이 몰려 사는 도시 새들은 위험을 주변에 알리려 하기 때문이라고 연구자들은 설명했다.

 

또 도시 새는 잡혔을 때 기절해 뻣뻣해지거나 깃털이 뽑히는 비율이 높았는데, 이는 주요 포식자가 시골에선 맹금류이지만 도시에선 고양이이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죽은 척하거나 깃털만 몇 개 내어 주고 도망치는 자질을 가진 개체들만 도시에서 살아남은 결과이다. 결국 잘만 적응하면 도시는 새들에게 그리 나쁜 곳만은 아닌 셈이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Escape behaviour of birds provides evidence of predation being involved in urbanization
A. P. Møller a, J. D. Ibáñez-Álamo

Animal Behaviour. doi:10.1016/j.anbehav.2012.04.030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시베리아서 낙동강까지, 열목어 대이동의 비밀시베리아서 낙동강까지, 열목어 대이동의 비밀

    조홍섭 | 2017. 04. 10

    빙하기 시베리아서 남하, 아무르강 거쳐 2만년 전 한반도로최남단 서식지 낙동강 상류에 고유 집단 잔존 가능성 커북극해서 놀던 ‘시베리아 연어’한강과 낙동강 최상류 찬 개울에는 커다란 육식성 민물고기가 산다. 한여름에도 손이 저릴 만큼 차...

  • 브렉시트, 기후변화 대응에 불똥 튀나?브렉시트, 기후변화 대응에 불똥 튀나?

    조홍섭 | 2016. 07. 01

    파리협정 이행 갈길 먼데, '기후 리더' 영국 빠진 유럽연합 동력 상실 우려기록적 가뭄→시리아 난민사태→브렉시트→기후대응 약화 악순환되나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가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갖는지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공통적인 견...

  • 화학물질 참사 막으려면, 틀린 경보가 묵살보다 낫다화학물질 참사 막으려면, 틀린 경보가 묵살보다 낫다

    조홍섭 | 2016. 06. 03

    `가정 독물'인 살생물질 관리에 특별한 대책 필요…디디티 교훈 잊지 말아야과학적 불확실성 있어도 돌이킬 수 없는 피해 예상되면 조기경보 들어야  아침에 쓴 샴프나 손에 든 휴대전화, 금세 썩지 않는 나무의자에는 모두 화학물질이 들어있다....

  • 차로 치고 새끼 유괴하고…고라니의 잔인한 봄차로 치고 새끼 유괴하고…고라니의 잔인한 봄

    조홍섭 | 2016. 05. 06

    IUCN 취약종 지정, 체계적 조사 없이 우리는 매년 15만마리 죽여세계서 중국과 한국이 자생지, 중국은 멸종위기에 복원 움직임  야생동물을 맞히는 퀴즈. 수컷의 입에는 기다란 송곳니가 삐져나와 “흡혈귀 사슴”이란 별명이 붙어 있다. 가장 원...

  • 똑똑한 식물…때맞춰 꽃피우고 기억하고 속이고똑똑한 식물…때맞춰 꽃피우고 기억하고 속이고

    조홍섭 | 2016. 04. 08

    중추신경계 없지만 잎, 줄기, 뿌리가 네트워크로 연결돼 고등기능 수행 미모사는 30일 뒤까지 기억…공동체 이뤄 햇빛 못 받는 나무에 양분 나누기도     봄은 밀려드는 꽃 물결과 함께 온다. 기후변화로 개나리 물결이 지나기도 전에 벚꽃이 ...

인기글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