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두드리면 지렁이 나온다”, 호랑지빠귀 춤의 비밀

조홍섭 2018. 07. 10
조회수 14557 추천수 0
“두더지가 내는 진동과 비슷” “빗방울 진동, 질식 피해 대피” 논란
유럽과 북미선 농민들 미끼잡이나 스포츠로 각광…동물 흉내낸 듯

e1.jpg » 양쪽 발로 몸의 무게중심을 번갈아 옮기면서 ‘춤’을 추는 호랑지빠귀. 곧 지렁이가 땅위로 올라왔다. 도연 스님 페이스북 동영상 갈무리.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도연 암에서 자연학교를 운영하는 도연 스님은 몇 년 전 특이한 관찰을 했다. 여름 철새인 호랑지빠귀가 풀밭에서 춤을 추는 것 같은 행동을 했다. 무게중심을 양쪽 발에 번갈아 옮기며 엉덩이춤을 추면서 꼬리 날개를 활짝 펴 바닥을 쳤다. 하지만 머리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주위를 살폈다. 그러자 지렁이 한 마리가 땅 위로 나왔고 재빨리 부리로 잡았다. 춤은 계속됐다(호랑지빠귀 ‘춤’ 페이스북 동영상).

도연 스님은 호랑지빠귀의 이런 행동을 “빗방울 소리를 흉내 내서 지렁이가 땅속에서 나오게 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호랑지빠귀는 둥지에 있는 새끼에게 입 가득히 지렁이를 물어 오곤 한다. 이런 방식으로 지렁이 여러 마리를 땅 위로 꼬여낼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과연 빗방울 소리로 지렁이를 유인할 수 있을까. 다른 동물도 이런 방식으로 지렁이를 잡을까. 소리가 아닌 진동이 아닐까. 궁금증이 이어진다.

Graham Shaw_Willaston_-_Worm_Charming.jpg » 영국 체셔에서 1980년 처음 열린 세계 지렁이 유인 대회 모습. 쇠스랑을 박고 앞뒤로 움직이거나 두드러 진동을 땅속으로 전파해 지렁이가 나오게 하고 있다. 그래험 쇼,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지렁이를 땅 위로 유인하는 기법은 유럽과 북미 일부에서는 낚시 미끼를 잡거나 스포츠 종목이 되기도 한 오랜 전통이다. 영국 체셔에서는 1980년부터 해마다 ‘세계 지렁이 유인 대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달 23일 열린 올해 대회에는 144팀이 참가해 가로세로 3m의 잔디밭에 쇠스랑을 꽂고 앞뒤로 흔드는 등으로 땅속에 진동을 일으켜 지렁이를 잡는 기량을 겨루기도 했다. 미국 플로리다 주에도 전국적인 ‘지렁이 잡기 축제’가 해마다 비슷한 방식으로 열린다.

미국 남동부 지역에는 긴 나무 막대를 땅속에 박고 그 표면을 작은 쇠막대로 문질러 땅속에 진동을 일으켜 지렁이를 잡는 전통이 있다. 플로리다에서는 몇 시간 동안 수천 마리의 낚시 미끼용 지렁이를 잡아 농가의 쏠쏠한 부수입원이 된다(미국 플로리다 농민의 지렁이 채집 위키미디어 코먼스 동영상). 찰스 다윈은 1881년 낸 지렁이의 부엽토 형성에 관한 책에서 “땅을 두드리거나 울리게 하면 지렁이는 두더지가 추격해 오는 줄 알고 구멍을 빠져나온다고 흔히 말한다”라고 적기도 했다.

e2.jpg » 땅속에 진동을 가하자 서둘러 굴에서 빠져나와 땅위로 도망치는 지렁이. 케네스 카타니아 (2008) ‘플로스 원’ 제공.

케네스 카타니아 미국 밴더빌트대 생물학자는 농민들이 전통 방식으로 지렁이잡이를 하는 플로리다 주 애팔래치콜라 국유림에서 다윈의 가설을 검증했다. 그는 실험을 통해 농민의 방식으로 땅속에 진동을 전파하면 10m 반지름 안의 지렁이들이 신속하게 굴을 빠져나와 땅 위로 올라온 뒤 재빨리 반대편으로 이동해 다시 땅속으로 숨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두더지는 도망치는 지렁이를 추격해 땅 위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지렁이의 이런 행동을 “물속에서 포식자에 쫓긴 날치가 물 밖으로 뛰쳐나와 비행한 뒤 다시 물속으로 돌아가는 행동과 유사하다”고 적었다.

g-1.jpg » 플로리다 농민이 막대를 두 번 옮겨 진동을 가하면서 지표에 나온 지렁이 500여 마리를 잡은 모습. 케네스 카타니아 (2008) ‘플로스 원’ 제공.

그는 지렁이가 빗물에 질식하지 않기 위해 땅 위로 대피하는지도 실험했다. 빗방울이 떨어지자 일부 지렁이는 땅 위로 나왔지만, 대부분은 흙이 물에 포화됐는데도 24시간 동안 땅속에 머물렀고 별 탈이 없었다. 그는 2008년 과학저널 ‘플로스원’에 실린 논문에서 “진동을 느낀 지렁이가 허겁지겁 안전한 굴을 떠나 땅 위로 대피하는 것은 이 지역 포식자 두더지를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며 “농부의 지렁이 포획법은 이런 두더지의 행동을 부지불식간에 흉내 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g4.jpg » 미국 동부 두더지. 두더지가 땅을 파는 진동이나 토양 압력의 차이가 지렁이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케네스 카타니아 (2008) ‘플로스 원’ 제공.

물론 그는 비 올 때 지렁이가 땅 위로 나오는 것은 장기간 물이 차 질식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빗방울에 얼마나 민감한가는 종에 따라 다르다고 덧붙였다.

이 실험으로 논란이 종식된 것은 아니다. 캐나다와 미국 연구자는 2009년 과학저널 ‘바이올로지 레터스’에 실린 논문에서 “농부들이 일으키는 진동이 500㎐의 저주파”라며 “이런 저주파는 두더지와 빗방울 모두가 일으킬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어쨌든 땅속에 진동을 일으켜 지렁이를 나오게 하는 기술은 농부의 것만은 아니다. 꽤 다양한 조류가 이런 방식으로 지렁이를 사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의 재갈매기는 땅 위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지렁이를 잡아내며, 북미 동부의 고유종 육지거북은 강변에서 앞발로 땅을 교대로 밟아 출현하는 지렁이를 잡아먹는다.

1024px-WoodTurtle.jpg » 앞발을 교대로 땅을 밟아 진동을 일으켜 지렁이를 잡는 북미 육지거북.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우리나라에선 호랑지빠귀 말고 농민이 이런 방식으로 지렁이를 잡는다는 보고는 없다. 지렁이 연구자는 혹시 이렇게 채집하지 않을까. 지렁이 연구자인 홍용 전북대 생물산업연구소 박사는 “진동을 이용해 지렁이를 채집하지는 않는다”며 “우리나라는 보통 토양이 딱딱해 직접 땅을 파헤치는 편이 더 쉽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메콩강 유역에서 지렁이를 채집할 때 현지 아이들한테 부탁했더니 강가에 일렬로 줄을 서서 동시에 발로 모래와 진흙을 세게 두들긴 뒤 지표면 바로 아래까지 올라온 메콩지렁이를 손쉽게 잡아내는 걸 본 일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지렁이는 마디마다 강모(센털)가 있어 진동을 민감하게 느낀다”고 덧붙였다.

e3.jpg » 홍용 박사가 라오스 북부 퐁 살리에서 동네 아이들에게 메콩지렁이 채집을 부탁하자 강가에 나란히 섰다. 홍용 박사 제공.

e4.jpg » 아이들은 동시에 강가 모래와 진흙을 세게 발로 두드린 뒤 진동에 따라 지표면 근처까지 올라온 지렁이를 손으로 채집했다. 홍용 박사 제공.

e5.jpg » 채집한 메콩지렁이를 들어 보이는 아이들.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왕지렁이와 같은 그룹에 속한다. 홍용 박사 제공.

e6.jpg » 왕지렁이의 마디에 나 있는 강모 모습. 강모는 진동을 감지할 뿐 아니라 이동과 방향 전환 때 지지대 구실을 한다. 홍용 박사 제공.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Catania KC (2008) Worm Grunting, Fiddling, and Charming—Humans Unknowingly Mimic a Predator to Harvest Bait. PLoS ONE 3(10): e3472. doi:10.1371/journal.pone.0003472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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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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