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타는 꿩, 들꿩을 아십니까

윤순영 2018. 04.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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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봄 귀룽나무 새싹 뜯으러 나무 오른 ‘숲 속의 은둔자’

암·수 모두 머리 깃 나고 다리에 깃털 돋은 ‘원시적’ 모습 


크기변환_YSY_7006.jpg » 나뭇가지에 앉은 들꿩. 들꿩의 검은 멱은 수컷의 상징이다. 


3월16일 경기도 남양주시 예봉산 중턱에서 들꿩을 관찰했다. 비교적 몸집이 큰 편이지만 깊은 숲에 은둔해 사는 데다 보호색이 뛰어나 좀처럼 보기 힘든 꿩과의 새다. 

 

다른 나무들이 새싹을 틔우기 전, 계곡 주변의 귀룽나무에 일찌감치 새싹이 돋았다. 온종일 땅에서 생활하던 들꿩이 오후 5시30분이 되면 귀룽나무 가지에 올라앉아 새싹을 뜯어 먹는다.

 

등산객들이 산에서 내려가 번잡했던 주변이 조용해질 시간이다. 들꿩은 서식지의 모든 일상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암컷이 ‘휘~삐삐비’하고 긴 휘파람 소리를 내면 수컷이 강하게 반응하고, 귀룽나무 근처에 나타나 함께 나무 위로 올라갈 준비를 한다. 암컷보다 수컷이 더 경계심을 나타낸다.


크기변환_YSY_5775.jpg » 나뭇가지에 숨어 수컷 들꿩을 부르는 암컷 들꿩.


크기변환_YSY_6537.jpg » 숨어 있던 수컷 들꿩이 암컷 소리에 반응을 보인다.


귀룽나무가 있는 계곡은 등산객들이 항상 오가는 길목이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들꿩이 매일 같은 시간에 정확히 귀룽나무를 찾아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귀룽나무는 물가의 계곡 근처에서 잘 자란다. 들꿩의 서식지와 비슷한 환경 조건이다.


크기변환_YSY_6673.jpg » 은밀하게 암컷 들꿩 곁으로 다가가는 수컷 들꿩. 닭이나 꿩의 밋밋한 다리와 달리 다리 바깥쪽에 돋은 깃털이 인상적이다.


크기변환_YSY_6596.jpg » 암컷 들꿩이 앞장서 걸어간다. 암컷 들꿩도 다리 바깥쪽에도 깃털이 나 있다.


귀룽나무는 사람에게 신경통, 근육통, 근육마비 등의 통증을 없애주고 설사에 잘 듣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혹시 귀룽나무의 새싹과 열매의 약효가 들꿩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먹이원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크기변환_YSY_6784.jpg » 들꿩 부부가 만났다.


들꿩은 걸어서 이동하고 주로 땅에서 생활하지만 나무에서 지내는 것도 즐긴다. 나무 위에서도 나뭇가지를 움켜쥐고 익숙한 솜씨로 땅에서처럼 움직인다. 나무타기 재능이 뛰어나다. 위협을 느끼면 꿩처럼 멀리 날아 도망가지 않고 근처 나무에 올라가 피한다. 위장 색이 발달하여 잘 보이지도 않고 은밀하게 나무 가까이 접근하여 수직으로 날아 소리 없이 나무 위에 앉는다.


크기변환_DSC_7807.jpg » 귀룽나무의 새싹이 들꿩이 먹기 좋게 적당히 돋아났다.


들꿩은 몸길이 36㎝로 몸집이 큰 편이다. 그런데도 가느다란 가지를 움켜쥐고 조심스레 새싹을 떼어먹는데 나뭇가지가 흔들리지 않는다. 천적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철저한 보호 행동이다. 관찰하는 동안에도 어느 틈에 나무 위로 날아와 있는지 모르는 때가 많았다.


크기변환_DSC_8356.jpg » 수컷 들꿩이 먼저 날아 귀룽나무 위로 올라간다. 날 때 날갯짓 소리가 나지 않는다.


크기변환_DSC_8590.jpg » 암컷 들꿩도 뒤따라 귀룽나무 위로 올라왔다.


일부일처제인 들꿩 부부는 서로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함께 행동한다. 나무 위에서 수컷이 구애 행동으로 깃털을 부풀리고 꼬리를 치켜세워 부채 모양으로 펼친다. 암컷은 무관심한 척 곁을 주지 않는다. 성공적인 번식을 위해 수컷의 마음을 애타게 만드는 전략일지 모른다.


크기변환_DSC_8710.jpg » 암컷 들꿩이 슬며시 외면하지만 수컷은 꼬리를 부채 모양으로 펼치고 애정을 표시한다.


1시간 남짓 귀룽나무 새싹을 먹던 암컷이 땅으로 내려오자 수컷 들꿩도 곧바로 따라 내려와 숲 속으로 사라진다. 매일 반복되는 행동이다. 움직이는 동선과 생활이 규칙적인 것이 인상적이다.

 

먹이 먹는 장소와 잠자리를 포함해서 물 마시는 장소, 이동하는 데 필요한 이동로, 갑작스러운 포식자로부터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피난처, 월동을 위한 장소, 번식을 위한 장소, 새끼들을 키울 수 있는 장소 등이 이미 정해져 있다. 들꿩 부부가 예봉산 계곡에서 터를 잡아 살아온 기간은 한두 해가 아닌 것 같다.


크기변환_DSC_8349.jpg »  1시간 남짓 귀룽나무 새싹을 먹던 암컷이 땅으로 내려오자 수컷 들꿩도 곧바로 따라 내려와 숲 속으로 사라진다. 매일 반복되는 행동이다. 움직이는 동선과 생활이 규칙적인 것이 인상적이다.  먹이 먹는 장소와 잠자리를 포함해서 물 마시는 장소, 이동하는 데 필요한 이동로, 갑작스러운 포식자로부터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피난처, 월동을 위한 장소, 번식을 위한 장소, 새끼들을 키울 수 있는 장소 등이 이미 정해져 있다. 들꿩 부부가 예봉산 계곡에서 터를 잡아 살아온 기간은 한두 해가 아닌 것 같다.


크기변환_DSC_8185.jpg » 가느다란 나뭇가지 위에서도 균형 감각이 뛰어나 외줄 타기를 하듯 마음대로 행동한다. 


들꿩은 닭목, 꿩과, 들꿩속에 속한다. 꿩은 일반인들이 잘 알고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친숙한 조류이다. 그러나 들꿩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들꿩은 스칸디나비아와 중·동유럽, 시베리아, 동아시아 등 유라시아에 걸쳐 널리 분포한다. 이 가운데 동아시아의 들꿩 아종은 중국 동북부와 러시아 아무르, 사할린, 홋카이도 등지에 산다. 한반도에서는 도서지역을 제외한 산지에 두루 서식하지만 일정한 지역에 한정된 경기·강원 지역에 많은 수가 분포하고 남부 지역으로 갈수록 수가 적어지는 흔하지 않은 텃새이다.


크기변환_YSY_7321.jpg » 새싹을 바로 당겨서 따지 않고 비틀어서 따먹는다. 아마도 나뭇가지가 휘청여 눈에 띄는 것을 막기 위해서일 것이다.


크기변환_YSY_7316.jpg » 신선하고 알찬 새싹만 골라 먹는다.


들꿩은 이른 봄에 귀룽나무, 버드나무, 오리나무 등의 새싹, 나무열매, 풀씨 등을 즐겨 먹지만 때로는 곤충도 잡아먹는다. 수도권에서 들꿩을 관찰하기 좋은 곳은 천마산, 예봉산, 검단산, 남한산성이다. 텃새이지만 사계절 관찰하기는 어렵고 숲이 무성하지 않은 12월부터 3월에 비교적 관찰이 쉽다.

 

들꿩은 생각보다 사람을 덜 경계하기 때문에 들꿩이 나올 만한 장소를 찾아가 조용히 기다린다면 관찰이 가능하다. 특히 들꿩이 움직일 때 들리는 낙엽 밟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면 들꿩을 만날 수 있다.


크기변환_YSY_7426.jpg » 주변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는 들꿩 암컷.


기변환_YSY_7389.jpg » 주변이 안전한 것을 확인하고 귀룽나무 새싹을 따먹는다.


크기변환_YSY_7437.jpg » 들꿩은 암수 모두 머리 깃이 있다.


몸은 통통하고 꼬리는 짧다. 수컷은 멱에 폭넓은 검은색 반점이 뚜렷하고 암컷의 멱의 반점은 수컷에 비해 색이 불분명하다. 암수 모두 머리 깃이 있다. 다리는 짧으며 바깥쪽에 깃털이 나 있는 특징이 있다. 들꿩을 관찰하다 보니 조류의 원시적인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진행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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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김포의 재두루미 지킴이. 한강 하구 일대의 자연보전을 위해 발로 뛰는 현장 활동가이자 뛰어난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이메일 : crane517@hanmail.net      
블로그 : http://plug.hani.co.kr/cr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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