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잠 자던 박쥐가 깨는 이유, 목말라서
관박쥐 15일마다 깨 이동, 붉은박쥐는 털에 응결한 물방울 핥아

날씨가 추워지고 먹이가 사라지면 일부 동물은 겨울잠으로 힘든 시기를 넘긴다. 가을 동안 비축한 지방이 에너지원이다. 그러나 수분을 공급받지 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까.
우리나라에 널리 분포하는 관박쥐는 12∼3월 사이 동굴이나 폐광 속에서 겨울잠을 잔다. 경기도 안성과 전남 함평에서 조사한 결과 이들은 겨울잠을 자다 수시로 깨어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이유는 ‘목이 말라서’로 추정됐다.
김선숙 국립생태원 박사 등은 함평과 안성의 폐광산에서 월동에 들어가는 관박쥐 각 131마리와 21마리에 색깔이 다른 가락지를 달아 이들의 움직임을 추적했다. 두 지역 모두에서 관박쥐들은 겨울잠 동안 수시로 이동했다. 이동 양상은 지역에 따라 달랐다.
함평 폐광산에서는 가락지를 단 박쥐 97마리가 겨울잠에 들어갔는데, 이 가운데 처음 자리를 고집한 개체는 4마리뿐이었다. 전체의 62%가 잠자리를 2번 옮겼고, 3번 옮긴 박쥐도 14.4%에 이르렀다. 함평의 관박쥐는 동굴 안 동면장소 사이에서뿐 아니라 다른 동굴의 동면장소로도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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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의 폐광산에서는 관박쥐가 동굴 안의 동면장소 사이에서만 이동했다. 두 지역 사이의 이동 양상이 다른 이유에 대해 김 박사는 “안성에는 동굴 안에 지하수가 흐르는 반면 함평 동굴에는 물이 없지만 1㎞ 밖에 겨울에도 얼어붙지 않는 저수지가 있다”며 “박쥐들이 겨울잠을 자다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겨울잠 동안 두 지역 박쥐들의 몸무게는 평균 17∼20% 줄었다. 또 동굴 바닥에 새로운 배설물이 떨어져 있지 않았고, 겨우내 먹이로 삼을 곤충도 없었던 것도 이런 추정을 뒷받침했다.
겨울잠에서 주기적으로 깨어나는 일은 비축한 에너지의 80%를 잡아먹는 큰일이다. 온대 지역 박쥐들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를 둘러싸고 다양한 가설이 나왔다. 환경 변화에 대응해 겨울잠을 자기에 더 적합한 장소를 찾아 이동한다는 주장이 유력하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 온도가 비슷한 함평과 안성에서 박쥐의 움직임을 결정한 것은 온도가 아니라 물의 존재였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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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박사는 “온대 지역 박쥐는 몇 달 동안 계속 겨울잠을 자는 게 아니라 15일 정도마다 깨어나 물을 마시고 먹이를 먹기도 한다”며 “깨어나는 데 따른 에너지 소비는 감당할 수 있지만 수분 부족은 치명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제주의 관박쥐만 겨울잠에서 깨어나 먹이를 먹는다”고 덧붙였다.
동면 중인 박쥐는 여름보다 물 소요량이 10분의 1에 그친다. 또 체지방을 산화해 일부 수분을 보충할 수 있다. 그러나 관박쥐가 서식하는 습도 70∼80%의 환경에서는 체온에 따른 증발이 불가피해 물 없이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은 9∼12일 정도에 불과하다. 이 연구결과는 ‘생태학 및 환경 저널’ 1월호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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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열대지방에서 기원해 따뜻한 환경을 선호하는 붉은박쥐는 물 문제를 색다른 방법으로 해결한다. 2012년 ‘캐나다 동물학 저널’에 실린 김 박사 등의 논문을 보면, 이 박쥐는 10월 초부터 5월 중순까지 무려 220일 동안 겨울잠을 잔다.
이 기간에 좀처럼 깨어나지도 이동하지도 않는데, 가끔 반쯤 깨어나 털에 응결한 수분을 핥아 먹고는 다시 잠에 빠진다. 이 때문에 붉은박쥐는 습도가 95% 이상이고 온도가 12∼14도인 곳에서만 동면한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Sun-Sook Kim, Yu-Seong Choi and Jeong-Chil Yoo, Regional differences in winter activity of hibernating greater horseshoe bats
(Rhinolophus ferrumequinum) from Korea, Journal of Ecology and Environment (2019) 43:2, https://doi.org/10.1186/s41610-018-0097-9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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