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나미브사막 신비의 ‘요정 무늬’는 흰개미 작품

조홍섭 2013. 03. 29
조회수 42162 추천수 1

식물 뿌리 갉아먹고 물 저장해 수백㎢ 걸쳐 규칙적 무늬 만들어

흰개미는 비버 능가하는 '생태계 공학자'…<사이언스> 논문

 

nam2.jpg » 나미브사막에 펼쳐져 있는 '요정의 원'. 사진=노르베르트 위에르겐스

 

아프리카 서남부 해안에 있는 나미브사막에는 오래전부터 미스터리가 있었다. 사막 표면 수백㎢에 걸쳐 지름 10m가량의 원형 무늬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수십 년씩 지속되는 이 규칙적인 무늬는 도대체 누가 만들었을까.
 

‘요정의 원’이라 불리던 이 무늬를 만든 것은 독성을 띤 식물이거나 모래 밑에서 뿜어나오는 유독가스라는 설이 있었지만 수수께끼를 풀지는 못했다.
 

그러나 앙골라부터 남아프리카까지 2000㎞에 이르는 사막을 조사한 노르베르트 위에르겐스 독일 함부르크 대 교수는 한 가지 해답을 내놓았다. 사막의 모래에 사는 흰개미가 그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위에르겐스 교수의 논문은 29일 발간된 과학전문지 <사이언스> 온라인판에 실렸다.
 

nam3.jpg » 가까이에서 본 '요정의 원'. 다년생 풀만이 테두리에 살아있고 원 안엔 식물이 전혀 없다. 사진=노르베르트 위에르겐스

 

nam4.jpg » 완전히 성숙한 '요정의 원'. 사진=노르베르트 위에르겐스

 

신비의 원형 지형은 다년생 풀이 원형 테두리에 자라고 있고 원 가운데는 아무런 식물도 없이 메마른 형태를 하고 있다.
 

위에르겐스 교수는 원이 생기는 초창기부터 언제나 발견되는 생물이 사막 흰개미(Psammotermes allocerus)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또 원 무늬 지형이 연평균 강수량 100㎜대를 따라 나타나며 특이하게도 원안 흙속에는 강수량의 53%가 토심 100㎝ 안에 저장돼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nam1.jpg » '요정의 원' 얼개. 그림= 노르베르트 위에르겐스, <사이언스>

 

그는 이런 사실로부터 흰개미가 미기후와 식생을 조절한 결과가 ‘요정의 원’ 지형이란 결론을 얻었다. 흰개미는 원형 안 일년생 식물의 뿌리를 갉아먹어 죽게 만드는데, 식물이 사라지면서 그로 인한 증산작용도 멈춰 강수량이 흙속에 간직된다는 것이다. 흰개미가 가꾸는 ‘물그릇’ 밖에는 다년생 풀들이 자란다.

 

이런 거대한 지형을 만든 주인공이 흰개미라면 비버를 능가하는 자연개조 능력을 가진 셈이다. 위에르겐스 교수는 “이 흰개미는 ‘생태계 공학자’라 할 만하다.”라고 논문에 적었다. 흰개미 덕분에 몹시 가문 계절에도 원형 지형 주변에선 식물과 동물이 자랄 수 있다.

 

nam5.jpg » 나미비아 마리엔플러스 계곡. 건조기에 가축에 먹일 식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요정의 원' 주변뿐이다. 사진=노르베르트 위에르겐스


<사이언스>의 이번 논문은 ‘요정의 원’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하고 있지만 왜 그 형태가 원인지, 원안에서 식물이 전혀 자라지 못하는 이유는 뭔지 등 앞으로 밝혀야 할 과제도 남겨놓았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The Biological Underpinnings of Namib Desert Fairy Circles
Norbert Juergens
Science doi 10.1126/science.1222999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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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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