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4배, 공룡시대 남극은 얼음 없는 울창한 숲

조홍섭 2020. 04.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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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천만년 전 숲 토양 화석 발견…“고농도 온실가스가 초래”

an1.jpg » 나한송과 나무고사리 아래 초기 꽃식물인 프로테아스과 식물이 자라는 9000만년 전 남극 상상도. 제임스 매케이, 알프레드 베게너 연구소 제공.

한반도 경상도와 남해안 일대에 공룡이 어슬렁거리던 9000만년 전, 남극은 얼음 대신 온대우림 숲으로 뒤덮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남극에서 얼음을 사라지게 한 당시의 극심한 온난화는 대기 속 고농도의 이산화탄소가 일으킨 것으로 나타났다. 

요한 클라게스 독일 알프레드 베게너 연구소 지질학자 등 국제연구진은 2일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서 “서남극 해저 시추조사 중 바다 밑바닥에서 27∼30m 깊이의 지층에서 당시의 환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육상 퇴적층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중생대 백악기(1억4400만∼6600만년 전)는 지구 역사상 가장 더웠던 시기의 하나로, 열대 바다의 표면 온도는 35도에 이르렀고 해수면은 지금보다 170m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당시의 고 기후와 환경이 구체적으로 어땠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연구자들이 발견한 3m 길이의 시추 코어 부위는 잘 보전된 숲 토양이 이암으로 굳은 것인데, 빽빽하게 엉긴 뿌리망과 함께 수많은 꽃가루와 포자를 포함하고 있었다. 연구에 참여한 울리히 잘스만 영국 노섬브리아대 교수는 “수많은 식물 잔해는 9300만∼8300만년 전 서남극 해안에 뉴질랜드 남섬에서 아직도 볼 수 있는 온대우림이 자라는 늪지대 경관이 펼쳐졌음을 가리킨다”라고 이 연구소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연구자들이 시추 코어를 엑스선 컴퓨터단층촬영 해 확인한 식물에 비춰 당시 남극 대륙에는 키 큰 나한송과 남양삼나무 등 침엽수와 나무고사리가 서 있고 늪지대 바닥엔 키 작은 프로테아과 꽃식물이 뒤덮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시추에서 공룡 화석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백악기에 세계적으로 공룡이 분포했고 기후조건이 공룡 서식에 적합해 남극에서도 공룡이 살았을 것으로 연구자들은 보았다. 남극 반도 끄트머리에서는 이 시기 하드로사우루스 등 공룡 화석이 발견된 바 있다.

이 연구는 남극점에서 900㎞밖에 떨어지지 않은 남위 82도의 남극에 어떻게 우림이 형성될 수 있느냐는 수수께끼를 남긴다. 이런 위도라면 남극의 겨울에 넉 달 동안 밤이 계속된다.

an2.jpg » 연구자들이 서남극 해저 퇴적층에서 시추 코어를 채취하고 있다. 토마스 롱에, 알프레드 베게너 연구소 제공.

연구자들은 퇴적층을 정밀 분석해 당시 서부 남극의 연평균 기온이 12도(우리나라는 13도)였고 여름철에는 19도까지 올랐다는 결과를 얻었다. “강과 늪의 수온은 20도까지 올랐고, 연평균 강수량은 현재의 웨일스(2464㎜) 수준이었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이런 조건이라며 비록 1년의 4분의 1이 밤이라도 우림이 형성될 수 있었을 것으로 연구자들은 보았다.

이렇게 얻은 식생, 온도, 강수량 자료를 토대로 백악기 기후모델을 돌려본 결과, 연구자들은 남극 대륙이 빽빽한 숲으로 덮이고, 남극에 빙상이 없거나 미미하며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높아야만 그런 기후조건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공동저자인 게리트 로만 알프레드 베게너 연구소 교수는 “이제까지 백악기 지구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1000ppm 정도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번 연구에서 당시 남극의 평균 기온에 도달하려면 대기 속 이산화탄소 농도가 1120∼1680ppm에 이르러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400ppm을 갓 넘긴 현재 농도보다 3∼4배 수준이다. 그러나 현재 추세대로 온실가스가 늘어난다면, 대기 속 이산화탄소 농도는 앞으로 300년 안에 1000ppm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an3.jpg » 9000만년 전 남극 대륙 주변의 대륙 배치도. 십자 표시는 남극점, 붉은 엑스는 시추 지점을 가리킨다. 요한 클라게스, 알프레드 베게너 연구소 제공.

이번 연구는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구온난화에 이산화탄소가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가와, 기후변화를 막는데 극지방 빙상이 햇볕을 반사해 얼마나 큰 냉각 효과를 내는지를 보여준다.

연구에 참여한 토르스텐 비케르트 독일 브레멘대 박사는 “햇빛 한 줄기 없는 날이 넉 달이나 지속하더라도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아주 높다면 남극점 근처라도 얼음 덩어리가 없는 온대 기후가 된다”고 설명했다.

an4.jpg » 서남극 파인 아일랜드 만의 시추선박 모습. 요한 클라게스, 알프레드 베게너 연구소 제공.

앞으로 남은 연구과제는 이렇게 따뜻했던 남극이 무슨 계기로 식어 수천m 깊이의 얼음으로 뒤덮이게 됐냐는 것이다. 

인용 저널: Nature, DOI: 10.1038/s41586-020-2148-5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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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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