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귀차니즘? 7년 자리 지킨 동굴 도롱뇽

조홍섭 2020. 03. 02
조회수 23411 추천수 0
10년 ‘단식’에 100년 장수…에너지 절약 위해 움직임 최소화

pr1.jpg » 세계 최대의 동굴 척추동물인 동유럽의 올름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기간 꼼짝 않고 먹이를 기다리는 것으로 밝혀졌다. 게이레이 발라스 외, 프로테우스 프로젝트 제공.

유럽 남동부 석회암 동굴에 사는 ‘올름’이란 도롱뇽은 여러모로 특이한 동물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동굴 척추동물로 길이가 40㎝에 이르는 이 양서류는 색소를 잃은 살구색 피부와 겉으로 드러난 나뭇가지 모양의 아가미 등이 독특해, 17세기 처음 발견했을 때는 ‘홍수 때 떠내려온 용 새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동안 밝혀진 이 도롱뇽의 삶은 극단적으로 느린 템포로 진행된다. 암컷은 12년마다 한 번씩 알을 낳고 수명은 100년이 넘는다. 도롱뇽을 위협할 천적도 경쟁자도 없다.

서식지인 캄캄한 동굴 개울에는 평균 수온 10도의 지하수가 연중 흐르는데, 이곳에 도롱뇽의 먹이인 동굴새우와 다슬기가 아주 가끔 나타난다. 물론 도롱뇽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도 10년을 버틸 수 있다.

게이레이 발라스 헝가리 에오트보스 롤란대 행동생태학자 등 헝가리 연구자들은 10년 전부터 동부 헤르체고비나 동굴에서 이 도롱뇽의 생태를 연구했는데, 잠수할 때마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조사 때마다 같은 자리에서 도롱뇽을 목격했다. 이 도롱뇽이 지난번 본 것과 같은 개체일까?

연구자들은 도롱뇽의 이동 행동을 조사하기 위해 특정 액체를 도롱뇽의 지느러미에 주입해 어떤 개체인지 식별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후 주기적으로 어떤 도롱뇽이 어느 곳에 사는지 알아봤다.

연구자들은 ‘동물학 저널’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올름이 자기 자리를 극단적으로 고집하는 행동을 보였다”고 보고했다. 표지를 한 도롱뇽 37마리를 다시 포획해 확인한 결과 100일이 지날 때까지 10m 이상 움직인 개체는 10마리에 그쳤고 20m 이상 이동한 개체는 3마리에 불과했다. 

도롱뇽은 평균적으로 1년에 5m를 이동했는데, 가장 멀리 이동한 개체는 230일 동안 38m를 움직였다. 대부분 여러 해 동안 이동한 거리는 10m 안쪽이었다. 그러나 도롱뇽 한 마리는 극단적으로 한 장소를 고집해, 2569일(7년) 뒤에도 같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pr2.jpg » 울름은 긴 몸을 이용해 뱀장어처럼 빠르게 헤엄칠 수 있지만 실제로 그런 움직임은 극히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게이레이 발라스 외, 프로테우스 프로젝트 제공.

늘 물이 흐르는 개울에 사는 커다란 동물이 이토록 꼼짝하지 않는 것은 이례적이다. 게다가 이 도롱뇽은 긴 몸을 뱀장어처럼 휘두르며 재빨리 헤엄칠 능력도 있다. 시력은 퇴화했지만, 화학물질, 자기장을 감지하고 청각이 발달해 다양한 소통을 하고 방향감각이 뛰어나기도 하다.

혹시 도롱뇽이 평소엔 동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하필 조사가 이뤄질 때만 원래 장소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 발라스는 ‘사이언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만일 동굴 안에 더 좋은 곳이 있고, 더 많은 먹이가 있는 곳이 따로 있다면 올름도 뱀장어처럼 돌아다니겠지만, 동굴은 그렇지가 않다. 도롱뇽이 돌아다닐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동굴 지형은 단조롭고 먹이 분포도 균일하게 희박해 도롱뇽이 여기저기 움직여 봤자 큰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다. 연구자들은 “도롱뇽은 에너지 낭비를 줄이기 위해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도롱뇽은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멸종위기종 목록에 ‘취약’ 종으로 올라 있다. 연구자들은 “낮은 번식률에 더해 극단적인 장소 집착이 동굴 수계의 최상위 포식자인 이 도롱뇽을 매우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논문에 적었다.

인용 저널: Journal of Zoology, DOI: 10.1111/jzo.12760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얼굴에 손이 가는 이유 있다…자기 냄새 맡으려얼굴에 손이 가는 이유 있다…자기 냄새 맡으려

    조홍섭 | 2020. 04. 29

    시간당 20회, 영장류 공통…사회적 소통과 ‘자아 확인’ 수단 코로나19와 마스크 쓰기로 얼굴 만지기에 어느 때보다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이 행동이 사람과 침팬지 등 영장류의 뿌리깊은 소통 방식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침팬지 등 영장류와 ...

  • 쥐라기 바다악어는 돌고래처럼 생겼다쥐라기 바다악어는 돌고래처럼 생겼다

    조홍섭 | 2020. 04. 28

    고래보다 1억년 일찍 바다 진출, ’수렴 진화’ 사례 공룡 시대부터 지구에 살아온 가장 오랜 파충류인 악어는 대개 육지의 습지에 산다. 6m까지 자라는 지상 최대의 바다악어가 호주와 인도 등 동남아 기수역에 서식하지만, 담수 악어인 나일악어...

  • ‘과일 향 추파’ 던져 암컷 유혹하는 여우원숭이‘과일 향 추파’ 던져 암컷 유혹하는 여우원숭이

    조홍섭 | 2020. 04. 27

    손목서 성호르몬 분비, 긴 꼬리에 묻혀 공중에 퍼뜨려 손목에 향수를 뿌리고 데이트에 나서는 남성처럼 알락꼬리여우원숭이 수컷도 짝짓기철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과일 향을 내뿜는다. 사람이 손목의 체온으로 향기를 풍긴다면, 여우원숭이는 손목 분...

  • 뱀을 향한 뿌리 깊은 공포, 새들도 그러하다뱀을 향한 뿌리 깊은 공포, 새들도 그러하다

    조홍섭 | 2020. 04. 23

    어미 박새, 뱀 침입에 탈출 경보에 새끼들 둥지 밖으로 탈출서울대 연구진 관악산서 9년째 조사 “영장류처럼 뱀에 특별 반응” 6달 된 아기 48명을 부모 무릎 위에 앉히고 화면으로 여러 가지 물체를 보여주었다. 꽃이나 물고기에서 평온하던 아기...

  • 금강산 기암 절경은 산악빙하가 깎아낸 ‘작품'금강산 기암 절경은 산악빙하가 깎아낸 ‘작품'

    조홍섭 | 2020. 04. 22

    북한 과학자, 국제학술지 발표…권곡·U자형 계곡·마찰 흔적 등 25곳 제시 금강산의 비경이 형성된 것은 2만8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 때 쌓인 두꺼운 얼음이 계곡을 깎아낸 결과라는 북한 과학자들의 연구결과가 나왔다. 북한의 이번 연구는 금강산을...

인기글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