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살리기로 기후변화 재앙 맞선다

김정수 2015. 03.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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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은 유엔 `흙의 해', 공기·물 못잖게 중요한 흙의 가치 국제사회 무관심 끝 뒤늦은 조명
지구 육지 3분의1 토질 계속 악화, 토양유실 막고 잘 가꾸면 생산성 증대에 온실가스 감축까지

 

soil3.jpg » 유엔이 올해를 의 해'로 정하면서 제작한 엠블렘. 사진=식량농업기구(FAO)


올해는 유엔이 정한 ‘흙의 해’다. 유엔은 2년 전 매년 12월5일을 ‘흙의 날’로 지정했다.

 

유엔이 기념일을 지정한 대상은 난민·과부·항해자 등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서부터 암·에이즈·금연 등 건강 문제, 언론자유, 빈곤퇴치, 우편, 통계에 이르기까지 100가지가 넘는다. 1년에 하루만이라도 그 가치와 중요성을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다.

 

지구 환경과 관련해선 물, 바다, 오존층 보호, 사막화 방지, 생물다양성 등이 이미 20여년 전 자신의 날을 헌정받았다. 뒤늦은 ‘흙의 날’ 지정은 흙에 대한 인류의 무관심을 방증하는 셈이다.
 

흙은 때로 더러운 오염물질 취급까지 받지만 지구 생태계에 공기나 물 못지않게 중요하다. 산소를 만드는 식물은 흙이 뿌리를 단단히 잡아주고 양분을 공급해주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인간이 먹는 식량의 95%가 직간접적으로 토양에 의존한다고 평가한다. 흙은 생태계에서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처가 될 뿐만 아니라 빗물을 머금어 홍수와 가뭄 피해를 줄이고, 오염물질을 걸러 깨끗한 수자원을 보충해주며, 폐기물을 받아들여 처리하는 구실을 한다.
 

이처럼 지구 생태계를 떠받치고 있는 흙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식량농업기구가 지난달 펴낸 ‘흙의 해’ 홍보 자료를 보면, 지구 육지 3분의 1가량에서 토양의 질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과도한 개발과 집중호우 등에 따른 유실, 양분 결핍, 산성화, 토양에 염분이 누적되는 염류화, 화학물질에 의한 오염 등이 토양질 악화의 주범이다. 공기나 물과 달리 흙은 상태가 나빠져도 쉽게 인식되지 않는다. 유엔이 ‘흙의 날’과 ‘흙의 해’를 지정해 흙에 대한 인류의 관심을 촉구하고 나선 것도 그 때문이다.

 

soil1.jpg » 한국의 대표적 고랭지농업 단지인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안반데기의 채소밭 모습. 밭 곳곳에 집중호우로 흙이 쓸려나간 흔적이 보인다. 사진=국립농업과학원 장용선 연구관
 

흙은 풍화 작용에 의해 계속 만들어지고는 있지만, 생성 속도가 느려 사실상 유한한 자원이다. 생태적으로 중요한 표토는 더욱 그렇다. 지표면에서 20~30㎝ 깊이까지의 표토는 유기물과 미생물이 풍부해 지구 생태계 유지와 물질 순환에 핵심적 구실을 하는 흙이다.
 

장용선 국립농업과학원 토양비료과 연구관은 “몬순기후에서 암석이 풍화해 1㎝ 깊이의 토양을 형성하는 데 200년 이상, 이 토양이 식물 생육에 알맞은 비옥한 표토로 바뀌기까지 100~125년이 추가로 소요된다”며 “농경지 1㎝는 최소 300년 이상의 역사가 담긴 그릇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처럼 흙의 상태가 계속 나빠지면 2050년까지 세계 인구가 90억명으로 늘어나는 데 따른 인류의 식량 확보도 위험하게 된다는 게 식량농업기구의 경고다. 흙은 지구촌의 화두가 된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서도 주목해야 할 대상이다. 수분의 흡수와 방출을 통해 직접 기후를 조절할 뿐 아니라, 온실가스를 만드는 탄소 순환에도 깊이 간여하고 있어서다.
 

지구의 흙 속에 함유돼 있는 탄소량은 이산화탄소와 메탄 등의 형태로 대기 중에 존재하는 탄소량의 두 배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학자들은 여기서 해마다 세계 화석연료 연소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9.1Pg(페타그램·1000조그램)의 7~9배인 60~80Pg의 이산화탄소가 빠져나오고, 그 자리를 식물 잔여물 형태로 흙 속에 흡수되는 탄소가 보충해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유기물이 풍부한 표토의 유실을 막고 표토 속의 탄소 함유량을 높이는 일은, 토양을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를 낮추는 흡수원으로 바꾸는 일이 된다.

 

soil2.jpg » 토양이 심하게 유실된 안반데기 지역의 한 고랭지 채소밭. 토양 유실은 농지의 생산성과 탄소 저장 능력을 함께 떨어뜨린다. 사진=국립농업과학원 장용선 연구관
 

영국 옥스퍼드대의 ‘스미스 기업과 환경 스쿨’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농경지 흙 속의 유기탄소 함량을 증가시키는 토양 개량을 통해서만 2050년까지 지구 대기에서 해마다 이산화탄소 1.4~3.9Gt(기가톤·10억톤)을 추가로 제거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0.18~0.50ppm가량 떨어뜨릴 수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2020년부터 2100년까지 제거 가능한 이산화탄소량은 토양 속 탄소가 포화 상태에 도달하게 되는 시나리오에서도 104Gt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인류가 이번 세기말까지 지구 기온 상승폭을 산업혁명 이전 대비 2℃ 이내에서 억제하려고 할 경우 추가로 배출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 총량 900Gt의 10% 이상을 제거하며 토양의 생산성까지 높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3%가 경사지에 분포해 여름철 집중 강우에 따른 토양 유실에 취약하다. 농촌진흥청은 우리나라 국토에서 해마다 5200만t의 흙이 유실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토양 유실은 기후변화에 따라 더욱 심각해지리라 예상된다. 장 연구관은 “우리나라 토양은 오래도록 몬순기후와 평형을 유지했으나 앞으로 기온 상승, 폭염일수 증가, 폭우의 빈도와 강도 증가 등으로 침식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토양은 양분 함량 면에서는 다른 차원의 문제를 안고 있다. 과도한 비료 사용으로 영양분이 너무 많은 데 따른 부작용이다. 농경지에 과도하게 누적된 질소와 같은 영양분은 수질오염의 원인이 될 뿐 아니라 온실가스인 아산화질소의 발생원이 된다.

 

농촌진흥청이 1999년부터 4년 간격으로 해온 농경지 양분 변화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밭 토양과 과수원, 시설재배지 등에서 유기물 함량이 적정 수준보다 부족한 토양 비율은 줄고 있으나 적정 수준보다 과다한 토양 비율도 증가하는 추세다. 이덕배 국립농업과학원 토양비료과장은 “농지에 영양분이 부족해도 문제지만 과다해도 문제”라며 “생산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비만’의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흙의 가치에 대한 재조명과 보전을 위한 노력은 정부에 앞서 정치권에서 먼저 시작되고 있다. 국회에는 3월3일을 흙의 날로 지정하는 법안이 통과를 앞두고 있고, ‘2015 세계 흙의 해’를 맞아 범정부 차원의 흙 살리기 활동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제출돼 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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