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 구멍’ 속 물고기, 기후변화와 생존투쟁

조홍섭 2014. 09. 07
조회수 34318 추천수 0

미국 네바다 데스밸리에 있는 수심 152m, 수온 33도 '악마의 구멍'에 서식

최근 감소 일로, 92마리 남아…기후변화로 사망률 증가해 멸종 위기

 

Olin Feuerbacher_2.jpg »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 네바다 모하비 사막의 대수층 지하수 웅덩이에 서식하는 '악마 구멍 펍피시'. 사진=Olin Feuerbacher

 

미국 네바다주의 모하비 사막이 펼쳐진 데스밸리 국립공원 동쪽에는 매우 특이한 웅덩이가 있다. 표면은 가로 2m 세로 5m의 길쭉한 형태로, 물이 고여 있는 평범한 동굴처럼 보인다.
 

그러나 수심은 무려 152m에 이르며 바닥 지형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웅덩이에 ‘악마의 구멍’(데빌스 홀)이란 이름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dh_location.jpg » 데빌스 홀의 위치. 미국 남서부 네바다주에서 데스밸리 국립공원과 라스베이거스 사이에 위치한다. 그림=데스밸리 국립공원국

 

약 50만년 전에 형성된 석회암 동굴에 지열대수층의 물이 고여 웅덩이가 형성됐다. 데빌스 홀은 데스밸리의 방대한 대수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문이어서 지질학자의 큰 관심을 모았다.
 

지하수 속에 만들어진 종유석 같은 동굴생성물을 통해 과거 기후변화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간빙기가 얼마나 지속될지 등을 추정할 수도 있다. 미 지질조사국은 이곳에 고여있는 지하수의 나이를 2000살로 계산했다.
 

Ray Hoffman, USGS.jpg » 데빌스 홀 내부의 모습. 깊은 절벽에 동굴생성물이 보인다. 사진=미 지질조사국(USGS)

 

무엇보다 이 웅덩이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길이 2㎝가량의 작은 민물고기이다. 이 웅덩이에만 살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물고기의 하나이다. ‘악마 구멍에 사는 물고기’(데빌스 홀 펍피시, 학명 Cyprinodon diabolis)란 이름의 이 사막 담수어는 이름과 달리 매우 온순하고 수컷의 푸른 혼인색이 아름답다. 또 아주 취약해 세계적 멸종위기종이기도 하다.
 

물고기가 사는 깊은 웅덩이는 사막 한가운데 있어 수온이 늘 33도나 되고 염도가 높고 산소도 희박하다. 다른 물고기에게는 거의 치명적인 이런 수질 조건 말고도 사방이 거의 수직 절벽인데다 수심이 깊어 먹이도 거의 없다.
 

Devils-Hole-shelf-2.jpg » 웅덩이 표면 가까운 곳에 튀어나온 선반 모양의 바위턱이 이 물고기에게 가장 중요한 터전이다. 그림=데스밸리 국립공원국

 

이 물고기가 찾아낸 생존전략은 웅덩이 표면에 선반처럼 튀어나온 2m X 4m 크기의 바위 턱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곳엔 햇빛이 비쳐 조류와 식물 플랑크톤인 규조류가 자라 물고기의 먹이가 된다. 알을 낳고 새끼가 자라는 곳도 여기다.
 

이 바위 턱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은 이 지역에 사는 올빼미이다. 올빼미는 소화되고 남은 뼈와 털 같은 찌꺼기 덩어리인 펠릿을 이 웅덩이에 떨어뜨린다.
 

Olin Feuerbacher_s.jpg » 바위턱에서 먹이를 찾는 데빌스 홀 펍피시. 사진=Olin Feuerbacher

 

약 1만~2만년 전에 홍수로 이곳에 떠밀려와 독특한 환경에 적응해 진화한 이 ‘악마 구멍 고기’의 개체수는 겨울엔 100~200마리, 여름엔 300~500마리로 한 해 동안에도 변한다. 그 이유는 물고기가 1년생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 해라도 이상이 생겨 번식에 실패하면 무리 전체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웅덩이 표면의 바위 턱도 중요하다. 먹이 터이자 산란장인 이 바위 턱이 사라지거나 환경이 달라지면 이 물고기는 속절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바위 턱을 노리는 먼 위협은 지진이다. 깊은 지하의 대수층과 연결돼 있어 일본이나 칠레에서 지진이 나면 그 충이 지하수층을 타고 전달돼 물이 출렁이면서 바위 턱을 쓸어가기도 한다.
 

Ken Lund_View_of_Ash_Meadows_Wildlife_Refuge_from_Devils_Hole_(5628775853).jpg » 웅덩이 주변의 애쉬 초원. 이곳 개발이 웅덩이를 위협하자 정부가 사유지를 사들여 보호구역을 설정했다. 사진=킨 룬트, 위키미디어 코먼스

 

가깝지만 더 심각한 위협은 인근 애쉬 초원의 개발이다. 이 사막 물고기는 1967년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됐는데 이듬해부터 이곳에서 대규모 농사가 시작돼 관개용수를 퍼내면서 지하수위가 내려갔다.
 

시민들이 보호운동에 나섰다. 이들의 끈질긴 노력 끝에 1976년 연방 대법원은 시민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1984년엔 농사에 이어 택지 개발을 하려는 애쉬 초원의 사유지를 연방정부가 모두 사들여 국립야생보호구역을 만들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보호당국은 웅덩이 안에 인공 선반을 설치했지만 물고기의 외면을 받았고, 사막의 다른 웅덩이에 피난처를 만들어 물고기 일부를 옮겨놓기도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Olin Feuerbacher2_s.jpg » 데빌스 홀 펍피시의 치어. 기후변화로 새끼가 자랄 시간이 줄고 있다. 사진=Olin Feuerbacher

 

그런데 1990년대 들어 이 모든 노력을 비웃듯 물고기의 개체수가 빠르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부화율이 감소했고 어린 고기의 사망률은 늘어났다.
 

2013년 초 개체수는 역사상 가장 적은 35마리까지 떨어졌다. 현재 이 물고기는 모두 92마리가 살아 있다. 이 물고기가 장기적으로 생존하려면 개체수가 200마리는 유지해야 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Scott Tyler, University of Nevada, Reno_s.jpg » 웅덩이 속 물고기를 연구하기 위해 잠수해 조사하는 연구자들. 사진=Scott Tyler, University of Nevada

 

최근 이런 감소 추세의 원인이 기후변화에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마크 하우스너 네바다주 사막연구소 수문학자 등은 과학저널 <수자원연구>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유체역학 모델링과 생태분석을 통해 이런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 기후변화로 수온이 상승하면서 웅덩이의 바위 턱에서 이 물고기가 번식할 수 있는 기간이 과거보다 1주일 줄어들었고 앞으로 2050년이 되면 감축 기간은 2주일에 이를 것으로 나타났다.
 

하우스너는 “기후변화가 데빌 홀 펍피시의 생존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또 최근의 감소추세를 설명하는 가장 그럴 듯한 이유는 기후변화임이 드러났다.”라고 네바다 대학의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연구의 공저자인 스코트 타일러 네바다대 교수는 “이 물고기는 어항에서 사는 셈이다. 그 어항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험하며 어항을 움직일 수도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종은 지난 1만년 이상의 진화 기간 동안 엄청난 유전적 병목을 헤쳐 살아남았지만 이제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더 나은 환경으로 떠날 수도 없다.”라고 말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Mark B. Hausner et. al., Life in a fishbowl: Prospects for the endangered Devils Hole pupfish (Cyprinodon diabolis) in a changing climate, Water Resources Research, Article first published online: 27 AUG 2014 | DOI: 10.1002/2014WR015511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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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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