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가 고압선 철탑 꼭대기라니!

도연 2014. 0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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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하마을 황새 ‘봉순이’ <2>
 깜쪽같이 사라졌다 나타나곤 했는데 ‘등잔 밑’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 하지 않기 위해

<1>그분의 환생처럼 홀로 그 멀리서 고고하게 왔다  http://ecotopia.hani.co.kr/205372

012.JPG » 아슬아슬하게 전봇대 꼭대기에 착지하고 있는 봉순이. 
4월16일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던 세월호가 침몰해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등학교 학생을 포함해 300명이 넘게 목숨을 잃은 사고가 났어. 사고 후 안산 단원고에 갔는데 교문에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더구나. 
 노무현 대통령 5주기 때 봉하마을에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어. 문득 네 생각이 났어. 네가 날아온 지 한 달이 지난 때였구나.

 며칠 간격으로 350㎞ 먼 길 달려오다가 아예 근처로

 그때까지 누군가 너를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어. 세상에 이런 일이! 나는 혹시라도 너에게도 나쁜 일이 생겨 또다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싶었어. 나는 생각 끝에 너를 지켜주기로 작정했단다. 내가 사는 곳에서부터 네가 있는 화포천까지는 약 350㎞. 먼 거리야. 그러나 너는 나보다 두 배나 먼 곳에서 왔다는 사실에 조금 위안이 되었어. 며칠 간격으로 먼 거리를 오가던 나는 아예 네가 있는 근처에서 먹고 자기로 했단다. 

023.JPG » 작은 곤충을 잡아먹고 있는 봉순이.
 너는 화포천을 가운데 두고 봉하들판과 퇴래들판을 오가면서 먹이활동을 하더구나. 하지만 날개가 없는 나는 너를 따라다니기가 거의 불가능했어. 그래서 자전거를 준비했어. 자전거를 타고 네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면서  네가 무엇을 얼마나 먹으며 어디로 이동하고 어디서 쉬고 자는지도 알고 싶었어.
 그러면서 네가 나를 볼 때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존재일까를 생각했어. 왜냐하면 너는 커다란 날개로 훌쩍 날아오르면 금세 까마득히 상승할 수 있었고 봉하마을에서 퇴래뜰까지 단숨에 건너갈 수 있는데 반해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자전거를 타고 달려야 했으니까. 때로는 내가 너를 따라잡았을 때 너는 다시 온 곳으로 날아가며 나를 놀려먹기도 했어. 그래도 나는 너를 가까이 볼 수 있다는 즐거움 때문에 결코 불평하지 않았어.

 접시 모양 인공 둥지 만들어 주기 위해 모금 나서

 그런데 네가 가끔 며칠씩 사라지는 거야. 사람들은 궁금해 했어.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일본으로 간 건가? 그러다가 다시 나타나 사람들을 안도하게 했는데 나는 네가 어딜 갔다가 오는 건지 정말 궁금했어. 
 그러던 어느 날, 봉하마을 입구 논에서 쉬고 있던 네가 갑자기 비상하기 시작했어. 때마침 상승기류가 만들어지고 하늘도 높아 놀이를 시작했구나 했는데 내 생각이 틀린 거였어. 너는 마치 내 생각을 비웃듯 쌍안경으로도 관찰이 어려울 만큼 높이 뜬 채 부산 낙동강 방향으로 사라지는 거야. 거긴 바다가 보이는 곳이고. 아아, 나는 네가 고향으로 영영 돌아간 것으로 판단했어. 그리고 봉하마을 앞 원두막에 앉아 너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어. 

002.JPG » 물고기가 많은 농수로를 독차지하고 먹이를 찾는 봉순이.
 그리고 잠시 더위를 식히다가 깜빡 졸았는데 봉순이 네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듯 사뿐히 내려오는 거야. 세상에 다시 왔구나! 2시간 반 만에 다시 온 거야! 나는 너무 반가워 마구 소리쳤어. 하지만 너는 쳐다보지도 않고 먹이를 찾고 있더구나. 일본에서 태어났으니 한국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지, 하고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단다. 

q1.jpg » 복잡하고 위험한 고압선 철탑 위에 앉아 쉬고 있는 봉순이. 
073.JPG » 일본 도요오카 황새마을 인공 둥지에서 황새가 새끼를 키우는 모습. 멀잖아 우리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너의 쉼터도 알아냈어. 너는 화포천 둑 위로 난 케이티엑스 고압선 철탑 위에서 쉬더구나. 높은 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는 건 이미 알았지만 위험천만한 곳에서 쉬고 있다니. 그때부터 나는 너에게 인공 둥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자료를 찾아보니까 중국이나 일본에서 인공 둥지는 전봇대를 세우고 꼭대기에 지름 2m가량의 접시모양으로 만들어주었더구나. 

026.JPG » 봉순이를 지키기 위해 모인 자연보전활동가들.
 너의 위태롭게 쉬는 사진을 인터넷에 소개하고 봉순이 인공 둥지 만들어주기 모금을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십시일반하겠다고 연락이 왔구나. 그러나 인공 둥지를 세울 비용만 있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어. 부지도 준비해야 하고 네가 좋아할 위치도 연구해야 하니까.

 너를 찾는다는 핑계로 대통령길 따라 왔다갔다
 
 그 후에도 너는 며칠에 한번꼴로 모습을 감추었어. 얘가 도대체 어딜 다니는 거지? 두루미는 늘 뚜루룩거리며 울기 때문에 오가는 걸 알 수 있지만 과묵한 너는 소리 한 마디 없이 오가는 바람에 조금만 한눈을 팔면 사라지고 없었어. 가만히 기다리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날 텐데 나는 네가 어디를 다니는지 여간 궁금한 게 아니었어. 그래서 네가 사라질 때마다 자전거를 타고 때론 걸으며 ‘수색작전’을 펼쳤어.

050.JPG » 생전의 노무현 대통령이 자전거를 타고 다녔던 길.
 그러다가 ‘대통령길’이라는 오솔길을 발견했어. 아아! 그제서야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났어. 나는 봉화산 대통령길도 걸어가 보고 화포천 대통령길도 걸어봤어. 그이가 걸었던 길을 내가 걷고 있다니! 나는 마치 그이가 저만큼 걸어가고 있는 것 같았고 나는 묵묵히 그의 뒤를 따라 걷는 느낌이었어. 정말 감개무량하더구나. 
 그러다가 노무현 대통령 생가 앞에서 자서전을 사서 읽기 시작했어. 자서전을 읽다가 나는 몇 번이고 눈시울을 적셨어. 그가 탄핵으로 청와대에서만 지낼 때 정원에 화려한 꿩(장끼)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는 거야. 대통령은 너무 반가워 ‘쟤가 어디서 왔지? 먹이를 주면 자주 오지 않을까?’ 하며 마치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는 대목에서는 기어이 눈물을 흘리고 말았어. 
 그리고 그가 살아있다면 봉순이 너를 지금처럼 방치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 네가 사라질 때마다 너를 찾는다는 핑계로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걸었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녔음직한 길을 몇 번이고 오갔어. 그리고 그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어. 사실 나는 그의 광팬도 아니었고 그냥 평범한 지지자의 한 사람이었어. 그리고 나는 그가 죽음을 선택한 것에 대해 원망하고 실망했어. 그러나 그를 알아가면서 아아, 이런 죽음도 있었구나 하고 이해하게 되었단다. 

029.JPG » 궁금한 듯 동네 원두막을 기웃거리는 봉순이.
 김연아도 울고 갈 균형감각으로 한 다리 들고 꼼짝없이 자

 그런 의미에서 나는 네가 너무 고마웠어. 그리고 과연 네가 우리 앞에 나타난 이유가 뭘까, 너는 무엇을 말하려고 이 땅에 날아왔을까를 생각했어. 
 어느 날 또 네가 흔적없이 사라졌어. 나는 너를 찾기 위해 창원 주남저수지에서부터 진영 들판, 낙동강 상류 삼랑진으로부터 부산 을숙도에 이르는 농경지, 드넓은 김해평야를 그야말로 이 잡듯 뒤지고 다녔어. 
 결과가 어땠는지 알아? 그런 곳에서 너를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네가 있을 만한 곳은 화포천과 그 주변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어. 
 닷새 뒤 결국 나는 너를 찾아냈는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너는 화포천과 이웃해 있는 낙산뜰 농수로에서 한가롭게 먹이를 찾고 있었어. 헐! 여기 있는 걸 모르고 그렇게 찾아 헤맸다니! 농수로에서 너를 발견했는데 너는 무려 세 시간 반 동안이나 농수로에 머물더구나. 그러니 찾을 수가 없었던 게 당연하지. 

q2.jpg » 노을이 붉게 물드는 해거름이면 한 다리로 서서 꼼짝 않고 잠이 든다.
 그날 나는 너의 잠자리도 알아내고야 말았어. 아아, 너는 고압선 철탑 꼭대기에서 위태롭게 잠을 자는 거였어. 세상에나! 다리 하나를 들고서, 김연아가 울고 갈 균형감각이라니! 그런 모습을 보고 가슴이 뭉클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단다. <한겨레21>에서는 너의 ‘사생활’을 기사화해주었고 또 많은 사람들이 너를 기억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7월17일, 일본에서 제5회 국제황새학회가 열릴 예정이었는데 나는 초대받지 못했지만 꼭 가고 싶었어. 가서 일본의 황새복원 이야기도 듣고 싶었고 너의 친구들이 야생에서 살아가는 모습도 보고 싶었어. 
 한국에서는 교원대학교 황새복원센터의 박시룡 교수, 람사르 습지재단의 이찬우 박사, 화포천습지생태관의 곽승국 관장이 초대 받았고 나는 자비로 따라가기로 했지. 
 글·사진 도연 스님

 도연 스님은 철원 지장산의 ‘도연암’에서 삽니다. 안락한 절집을 떠나 홀로 살며 새를 즐겨 찍습니다. 새는 “날기 위해 뼛속까지 비우”는 자유로운 존재여서 좋아합니다. ‘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그래, 차는 마셨는가’, ‘중이 여자하고 걸어가거나 말거나’, ‘연탄 한 장으로 나는 행복하네’ 등의 책을 냈습니다. 누리집 ‘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http://www.hellonetizen.com/)에 가면 그의 글과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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