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확산 거미, 항해도 능숙…다리는 돛, 거미줄은 닻

조홍섭 2015. 07. 07
조회수 28630 추천수 0

공중 장거리 이동 거미에 항해 능력은 필수, 일부 거미 세계 전역 분포 배경

다리나 배 세워 돛으로, 거미줄 늘어뜨려 속도 줄여…세찬 물, 짠물서도 가능

 

s1.jpg » 배의 돛처럼 앞다리를 번쩍 들어올려 바람을 받아 물 표면을 미끄러지듯 이동하는 접시거미의 일종. 사진=알렉산더 헤이드

 

알에서 깨어난 어린 거미가 실 같은 거미줄을 타고 멀리 날아가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몸집이 작다면 어른 거미도 이런 방식으로 먼 거리를 이동한다.
 
찰스 다윈은 1832년 비글호를 타고 항해하다 아르헨티나 해안에서 100㎞쯤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서 특이한 경험을 했다고 그의 항해기에 적었다. 하늘에서 수천 마리의 붉은 거미가 배 위로 떨어져 내렸던 것이다. 이 경험은 동물이 어떻게 멀리 떨어진 곳에 분포하게 됐는지를 이주로 설명하는 유력한 근거가 됐다.
 
실제로 많은 거미가 이런 방식으로 퍼져나가 날개가 없는데도 세계 전역에 분포한다. 새로 생긴 화산섬이나 간척지를 가장 먼저 개척하는 동물의 하나도 거미다.

 

Rothamsted Research_060712_erigone_spiders_02.jpg » 나뭇가지 끄트머리에서 비행을 막 시작하려는 거미(오른쪽). 들어올린 배에서 가는 거미줄을 뿜어낸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Rothamsted Research
 
거미는 공중비행을 위해 먼저 나뭇잎 등 높은 곳으로 오른다. 이어 다리를 들고 배를 공중으로 향한 다음 아주 가는 거미줄을 내뿜는다.
 
바람 또는 상승 기류가 불어오면 이 거미줄은 삼각형의 낙하산 형태를 이뤄 거미를 공중으로 들어올린다. 거미는 보통 한 번에 평균 500m, 하루에 최고 30㎞를 이렇게 이동할 수 있다.
 
거미줄을 탄 거미는 상승기류를 타고 고공의 제트기류에 올라 장거리를 이동하기도 한다. 육지에서 1600㎞나 떨어진 대양의 선박이나 고층 기상관측기구에서 이동중인 거미를 발견한 건 이상할 것도 없다.

 

Ballooning_spider.jpg » 바람을 타고 이동한 거미들이 잔디밭에 가득 붙어있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런데 이렇게 수백~수천㎞를 이동하려면 반드시 겪어야 할 난관이 바로 물이다. 강, 호수, 늪, 그리고 방대한 바다는 지구 표면의 70% 이상을 덮고 있다. 공중 확산에 성공한 거미라면 당연히 물 표면에서 살아남는 전략이 있어야 한다.
 
영국 노팅엄대 하야시 모리토 등 연구자들은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접시거미 21종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접시거미는 전체 거미 종의 11%를 차지할 만큼 성공적으로 진화했다. 그 배경의 하나가 뛰어난 확산능력이다.
 
쟁반에 물을 담고 모터를 돌려 바람을 일으키는 방식의 실험에서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거미줄 비행을 하는 거미들이 모두 항해에도 능숙했던 것이다.

 

s2.jpg » 앞다리를 돛으로 이용해 물위를 미끄러지는 거미. 사진=알렉산더 하이드

 

s3.jpg » 배를 들어올려 바람을 받아 물위를 미끌어지는 거미. 사진=알렉산더 하이드

 
거미들은 5가지 항해술을 썼다. 앞다리를 돛처럼 하늘로 들어올리거나 물구나무 자세에서 배를 돛처럼 들어올려 물 표면을 미끄러지듯 이동하는 것이 대표적인 동작이었다.
 
거미 다리에 있는 물에 젖지 않는 센털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었다. 물 표면에서 다리를 이용해 재빨리 걷거나 아예 몸을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은 채 바람에 밀려가기도 했다.

 

s4.jpg » 물위에 떠있는 물체에 거미줄을 뿜어 그 위에 올라가 쉬려는 거미. 사진=알렉산더 하이드
 
물에서도 거미줄은 유용했다. 물 표면에 거미줄을 뿜어 늘어뜨려 이동속도를 줄였다. 물에 떠있는 물체가 있으면 거미줄로 고정한 뒤 그 위에 올라가 쉬기도 했다. 거미줄은 항해에서 닻 구실을 했다.
 
연구자들은 “거미의 항해가 잔잔한 물이거나 거친 물, 민물이나 짠물 모두에서 가능했다”며 “항해 능력이 거미의 공중확산을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라고 밝혔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Morito Hayashi et. al., Sail or sink: novel behavioural adaptations on water in aerially dispersing species, BMC Evolutionary Biology 2015, 15:118  doi:10.1186/s12862-015-0402-5. http://www.biomedcentral.com/1471-2148/15/118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골칫덩이 등검은말벌, ‘치명적 유혹’으로 퇴치한다골칫덩이 등검은말벌, ‘치명적 유혹’으로 퇴치한다

    조홍섭 | 2017. 10. 19

    성호르몬으로 수컷 유인 성공분비량 1천분의 1에도 민감 반응등검은말벌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유럽 등 세계적으로 가장 문제가 되는 침입종 가운데 하나다. 우리나라에선 2000년대 영남지역을 시작으로 전국에 퍼지면서 꿀벌과 사람에 대한 피해가 커...

  • 3천m 잠수 부리고래의 비밀 밝혀져3천m 잠수 부리고래의 비밀 밝혀져

    조홍섭 | 2017. 10. 13

    작은 몸집, 산소 고갈되면 무산소호흡으로 버텨수면 돌아와 1시간 이상 휴식, 해군 소나 피해도허파로 숨을 쉬어야만 살아가는 동물 가운데 깊은 바다를 잠수해 먹이를 찾는 종이 여럿 있다. 코끼리물범, 바다사자, 물개 같은 포유류와 황제펭귄, ...

  • 더워지는 바다 ‘니모’ 찾기 힘들어진다더워지는 바다 ‘니모’ 찾기 힘들어진다

    조홍섭 | 2017. 10. 11

    수온 상승이 말미잘 백화현상 불러 흰동가리는 스트레스로 번식률 73% 격감     태평양과 인도양의 산호가 있는 얕은 바다에 사는 흰동가리는 ‘니모를 찾아서’란 애니메이션으로 명성을 얻은 물고기이다. 노랑이나 주황색 몸통에 선명한 줄무...

  • 홍수 땐 몸으로 뗏목 만들고 탑 쌓는 붉은불개미홍수 땐 몸으로 뗏목 만들고 탑 쌓는 붉은불개미

    조홍섭 | 2017. 10. 10

    수십만 마리가 100초만에 모여 방수 뗏목 만들어 수주일 이주육지 닿으면 끊임없이 무너지고 재건하는 ‘살아있는’ 에펠탑 건조부산 감만부두에서 발견돼 물의를 빚고 있는 외래종 불개미(외래붉은불개미, Solenopsis invicta)는 원산지인 남아메리카...

  • 열매 함부로 따지 마라…동물과 ‘밀당’ 중이다열매 함부로 따지 마라…동물과 ‘밀당’ 중이다

    조홍섭 | 2017. 10. 07

    익은 열매엔 식물 무관한 2차 대사물질 듬뿍먹고 씨앗과 함께 배설만 노리는 건 아냐멀리 보내려면 변비, 손상 피하려면 설사 성분독성물질 넣어 오래 머물지 못하게 하기도야생 열매는 과일 아냐, 함부로 먹었다간 큰 코탐스럽고 먹음직하게 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