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여섯 가축으로 식량위기 넘는다

조홍섭 2013. 06. 04
조회수 39289 추천수 1

유엔식량농업기구, 곤충 식량화 10년 조사 집대성 보고서 발간

이미 20억명이 1900종 먹어… 친환경, 개도국에 유리, 선진국도 눈떠

 

mexico_Meutia Chaerani _Indradi Soemardjan _618px-Chapulines.jpg » 멕시코에서 식용으로 판매되고 있는 메뚜기. 사진=인드라디 쇠마르잔, 위키미디어 코먼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메뚜기를 잡는다.”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의 이 격언은 아무리 잽싼 메뚜기라도 변온동물이어서 선선한 아침 나절엔 둔해 잡기 쉽다는 전통지혜와 함께 곤충을 먹는 문화가 널리 퍼져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도 메뚜기나 누에 번데기를 먹는 오랜 습관이 있었음에도 최근 서구 식생활의 영향을 받아 벌레 먹는 것을 혐오스럽거나 비위생적인 취향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벌레 먹기는 차츰 세계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21세기는 벌레 먹는 시대, 사람이든 가축이든”이란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 ‘식용 곤충-식품과 사료 안보를 위한 전망’은 곤충 식품화에 관한 최신의 자료를 망라한 것으로, 지난 10년 동안 이 기구가 ‘곤충 먹을거리’에 쏟아온 관심을 집대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보고서를 통해 왜 곤충이 떠오르는 식량자원이 됐는지를 알아보자.(▶ 관련 누리집: 유엔식량농업기구 곤충 식량화 포털)
 

insect3.jpg » 국가별 식용 곤충의 종수. 진한 색일수록 다양한 곤충을 먹는 나라임을 나타낸다. 한국의 자료는 언급돼 있지 않다. 그림=FAO

 

2050년 90억에 이를 세계 인구를 먹이려면 현재보다 식량생산은 곱절로 늘어야 한다. 지금도 10억명이 주린 배를 안고 잠자리에 드는데, 앞으로 농지 확대가 쉽지 않고 바다는 비어가는데다 기후변화로 물부족이 심각해지는 상황이다.
 

곤충이 주목받는 건 새로운 식량자원이라서가 아니다. 적어도 전 세계 20억명이 이미 곤충을 먹고 있다. 곤충을 먹지 않는 나라가 오히려 예외일 정도다. 서유럽, 미국, 러시아 그리고 축산 전통이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과 몽골, 아르헨티나 정도가 ‘비 식충 국가’이다.
 

식량으로 쓰이는 곤충은 무려 1900여 종에 이른다. 가장 인기있는 종류는 딱정벌레, 나비나 나방 애벌레, 벌, 개미와 흰개미, 메뚜기, 귀뚜라미, 매미, 잠자리, 파리 등이다. 곤충은 직접 먹거나 가축 사료로 쓰이는데, 영양분이 뛰어나고 환경에 도움을 주며 가난한 나라에서 별다른 기술과 자본 없이도 영양과 소득원이 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insect2-1.jpg » 가로축 왼쪽부터 딱정벌레, 나비와 나방, 벌, 메뚜기, 흰개미, 잠자리, 파리, 흰개미·바퀴·사마귀, 뱀잠자리. 그림=FAO

 

사실 지구에서 알려진 생물의 절반 이상이 곤충이며 기록된 것만 100만 종, 전체는 600만~1000만 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곤충은 5000여 종에 불과하다. 곤충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은 근거가 희박한 것이다.

 

게다가 곤충은 단백질, 지방, 비타민, 섬유질, 미네랄 함량이 높은 건강식에 속한다. 종이나 성장단계에 따라, 또 서식지나 먹이에 따라 다르지만, 예를 들어 갈색거저리 애벌레(밀웜)의 오메가3 지방산 함량은 소나 돼지보다 높고 등푸른 물고기에 견줄 만하다.

 

insect_1280px-Mealworm_01_Pengo.jpg » 애완동물 사료로 널리 쓰이는 갈색거저리 애벌레(밀웜). 가축이나 생선보다 영양가가 뛰어나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무엇보다 곤충은 소·돼지·닭 등 가축 대량사육의 문제점을 극복하게 해 준다. 축산은 세계 온실가스 배출 비중이 18%로 교통 부문보다 높다. 하지만 100만 종의 곤충 가운데 온실가스인 메탄과 아산화질소를 생성하는 종류는 뱃속에서 세균이 발효를 일으키는 바퀴벌레, 흰개미, 소똥구리 정도이다.
 

게다가 곤충은 에너지 변환 효율이 높다. 체중 1㎏ 늘리는데 필요한 사료량은 소 10㎏, 돼지 5㎏, 닭 2.5㎏이지만 귀뚜라미는 1.7㎏이면 된다. 곤충은 변온동물이라 체온 유지에 에너지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또 먹을 수 있는 부위가 귀뚜라미는 80%에 이르는 등 가축보다 많아, 귀뚜라미의 실질 변환효율은 소의 12배에 이른다.

insect2-2.jpg  

 

곤충 식용화가 개도국만의 일은 아니다. 슬로바키아에선 돼지 분뇨로 구더기를 키워 물고기를 양식하는 시험공장이 돌아가고 있다. 네덜란드에선 2008년 곤충농민협회가 만들어져 갈색거저리 애벌레(밀웜)와 메뚜기를 냉동 건조해 사료화했다.
 

새우와 메뚜기는 생물학적으론 가깝지만 식품으로는 상반된 대접을 받는다. 맛이 문화인 것처럼 곤충 혐오감의 뿌리도 문화이기 때문이다. 메뚜기를 즐겨 먹던 아메리카 원주민은 서양인이 준 새우를 처음 맛보고는  “바다 귀뚜라미”라고 했다지 않는가.

 

Alexnevzorov_Ant_pop.jpg » 개미 사탕. 선진국에서는 곤충이 아직 별미나 특별한 먹을거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진=알렉스 네브조로프, 위키미디어 코먼스

 

곤충 먹는 것이 정 내키지 않는다면 이런 사실을 아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곤충을 이미 먹고 있다. 쌀에 든 바구미 애벌레는 쌀에 부족한 비타민을 보충하는 효과를 지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건강에 아무 영향이 없다고 판단하는 식품 속 곤충 조각의 갯수는 밀가루 100g당 150개, 초컬릿 100g당 60개, 국수 225g당 225개 등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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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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