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는 왜 개가 되기로 했나

조홍섭 2013. 03. 14
조회수 36042 추천수 0

늑대 새끼 길들인 것이란 통념 깬 '청소부 가설' 유력해져

야생여우 길들여 애완동물 만든 러시아의 장기 실험…개 기원 설명 못해

 

20038281682_646.jpg » 러시아 세포학 및 유전학 연구소는 1959년부터 은여우에서 온순한 개체를 골라 길러 '애완종'으로 만드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사진은 길든 은여우. 사진=류드밀라 트루트, <아메리칸 사이언티스트>

  
옛소련의 유전학자 드미트리 벨랴예프는 1959년 매우 독특한 실험에 착수했다. 야생동물이 가축이 된 것은 온순함을 기준으로 선택을 계속한 결과라는 가설을 입증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는 1985년 세상을 떴지만 뒤를 이은 과학자가 현재도 진행중인 이 장기 실험은, 늑대로부터 어떻게 개가 탄생했는지를 알아보는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한다.
 

벨랴예프는 은여우 암컷 100마리와 수컷 30마리를 1세대로 삼아 사람에 대한 공격성과 두려움이 작은 새끼만을 골라 번식을 이어갔다. 이런 새끼는 태어난 직후 서너달 동안 사람이 젖을 먹이고 쓰다듬어 주는 등 접촉을 강화했다.
 

불과 4세대 만에 사람이 다가가면 낑낑대고 꼬리를 흔드는 ‘다정한’ 여우가 출현했다. 그 비율은 30세대 만에 49%에 이르렀고, 반세기가 지난 현재 약 70%를 차지한다.
 

멀리서 사람을 보면 달려와 만져달라고 조르고 꼬리를 치는 이 길들어진 여우는 성격뿐 아니라 형태도 달라져, 몸에 반점이 생기고 꼬리가 둥글게 말리는가 하면 귀가 접히고 두개골이 짧고 뭉툭해졌다. 늑대가 개로 바뀐 것처럼 북극에 사는 야생동물인 은여우는 가축이 된 것이다. 실제로 실험을 하고 있는 러시아 세포학 및 유전학 연구소는 이 여우를 애완동물로 판매하기도 한다.

2003828162927_646.jpg » 벨라예프가 실험을 시작할 때 1세대였던 야생 은여우의 모습. 그림=린다 허프, 류드밀라 트루트, <아메리칸 사이언티스트>

 

fox1.jpg » 6대째의 온순한 여우. 사람을 따르고 만져달라고 조른다. 사진=트루트 외, <러시아 유전학>

 

fox2.jpg » 석달 반 된 온순한 여우 새끼. 강아지처럼 귀가 굽은 모습이다. 사진=트루트 외, <러시아 유전학>

 

fox3.jpg » 길든 여우 가운데는 개처럼 꼬리가 위로 말려 올라간 개체가 출현했다. 사진=트루트 외, <러시아 유전학>

 

fox4.jpg » 야생 여우의 두개골(왼쪽)과 여러 대 길든인 온순한 여우의 두개골. 형태가 짧고 넓게 변했다. 사진=트루트 외, <러시아 유전학>    

 

러시아의 여우 실험은 늑대가 개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주는 걸까. 이 실험은 온순함을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동물의 형태와 생리까지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과연 사람이 이런 식으로 늑대를 길들였는지는 논란거리다.
 

개의 가축화를 설명하는 가장 흔한 가설은 신생대 인류가 숲에서 늑대 새끼를 주워 와 애완동물로 키운 데서 비롯한다는 것이다. 늑대 새끼는 놀기 좋아하고 귀여우며 개처럼 짖기도 한다. 늑대는 자라서 사람을 우두머리로 간주해 사냥한 먹이를 인간에게 바쳤고 점점 순한 늑대를 고른 결과 개가 출현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는 여러 허점이 있다. 무엇보다 인류는 한번도 늑대를 부드럽게 대한 적이 없다. 포식자인 사람은 늑대를 늘 경쟁자로 여겨 몰아냈다. 우리나라만 해도 조선총독부의 자료를 보면, 1914년 늑대에 물려 죽은 사람은 113명으로 호랑이에 죽임을 당한 8명을 크게 웃돈다. 그해 늑대 122마리, 이듬해에 106마리를 ‘해수 구제’ 명목으로 잡아 죽였다. 현재는 남한에서 사실상 멸종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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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늑대를 사냥 도우미로 쓰지 않더라도 인류는 이미 매머드 등 대형동물을 무더기로 멸종에 빠뜨린 사냥꾼이었다. 게다가 늑대는 고기를 아주 많이 먹어, 10마리로 이뤄진 무리라면 매일 사슴 한 마리를 해치운다.

Doug Smith_Canis_lupus_pack_surrounding_Bison.jpg » 아메리카들소를 공격하는 늑대 무리. 사진=둑 스미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최근 스웨덴 웁살라대 연구자는 세계의 개와 늑대 유전자를 비교한 결과 개에게는 늑대와 달리 전분을 분해하는 유전자가 활성화돼 있음을 밝혀냈다. 이 연구결과는 이른바 ‘청소부 가설’을 뒷받침한다. 인간이 수렵채취에서 농경으로 전환할 즈음 주거지 주변에서 곡물 등 음식 찌꺼기에 기대 살던 늑대의 일부가 결국 개의 조상이 됐다는 것이다.

João Marcos Martins.jpg » 출발점인 늑대와는 너무나 달라진 개, 아프간 하운드 품종. 개가 언제 어떻게 가축화됐는지는 아직도 논쟁거리다. 사진=조아오 마르코스 마틴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던 온순한 늑대가 사람에게서 기회를 발견했고, 사람은 그런 개가 사람의 의사를 잘 알아채고 사냥과 경계에 쓸모가 있으며 비상시에는 먹을거리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개의 길을 선택한 것은 사람이 아닌 늑대란 얘기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The genomic signature of dog domestication reveals adaptation to a starch-rich diet
Erik Axelsson, Abhirami Ratnakumar, Maja-Louise Arendt, Khurram Maqbool, Matthew T. Webster, Michele Perloski, Olof Liberg, Jon M. Arnemo, Åke Hedhammar & Kerstin Lindblad-Toh
Nature (2013) doi:10.1038/nature11837

 

An Experiment on Fox Domestication and Debatable Issues of Evolution of the Dog
L. N. Trut, I. Z. Plyusnina, and I. N. Oskina
Russian Journal of Genetics, Vol. 40, No. 6, 2004, pp. 644–655. Translated from Genetika, Vol. 40, No. 6, 2004, pp. 794–807.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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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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