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백상어는 고래 주검에 모여 사랑 나누나

조홍섭 2013. 04. 15
조회수 62579 추천수 0

사체 주변 며칠씩 머물며 포식…가장 인기 부위는 꼬리와 지방층

날쌘 물개 잡기 힘든 대형 백상어가 고래 주검 모여…흥분과 접촉 속에 짝짓기 가능성도

 

shark1.jpg » 대형 백상어가 고래 주검에 이빨을 박고 흔들어 살점을 떼어내고 있다. 사진=크리스 팔로우스 외, doi:10.1371/journal.pone.0060797.g004

 

하이에나는 대표적인 청소동물로 꼽히지만 훌륭한 사냥꾼이기도 하다. 반대로 사자, 호랑이, 늑대 등은 빼어난 사냥꾼인 것 같지만 죽은 동물을 마다하지 않는다. 늙거나 외톨이가 되면 더욱 그렇다. 이들보다 왜소해 힘으로 밀리는 치타가 오히려 대형 포식동물 가운데 순수한 사냥꾼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동물의 주검은 유익한 자원이자 새로운 서식지이다. 육상과 달리 바다에서 동물의 주검과 여기에 형성되는 먹이 그물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특히 덩치가 큰 고래는 바다에서 중요한 생태적 의미를 지니지만, 바다 밑에 가라앉은 고래 사체 주변의 생태계가 최근 밝혀지기 시작한 단계이다(■ 관련기사: 심해생물 멸종 막는 고래 주검의 힘).

shark2.jpg » 점박이하이에나. 대표적인 청소동물이지만 사냥도 곧잘 한다. 사진=크리스 팔로우스 외, doi:10.1371/journal.pone.0060797.g004

 

남아프리카 실 섬엔 해마다 5~8월이면 남아프리카물개가 큰 무리를 이루고 백상어도 이들을 사냥하기 위해 몰려든다. 백상어가 남아프리카물개를 사냥하는 자연 다큐멘터리는 대부분 이곳에서 촬영된 것이다.
 

그런데 백상어에게 남아프리카물개 못지않게 죽은 고래가 중요한 먹이이며, 특히 고래 주검은 성숙한 백상어끼리 만나는 드문 기회를 제공해 이들의 짝짓기 장소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미국 연구자들은 백상어의 남아프리카물개 사냥행동을 장기간 조사하는 과정에서 지난 10년간 4차례에 걸쳐 죽은 고래 주변에 몰려든 백상어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하는 드문 기회를 얻었다.
 

백상어는 바다의 최고 포식자로서 개체수도 많지 않으며 외톨이로 살아간다. 그런데 죽은 고래 주변엔 최고 40마리, 대개 5마리 이상의 백상어가 몰려들어, 여러 날이 걸리는 잔치를 즐겼다.
 

shark4.jpg » 특이하게도 백상어는 칼로리 높은 지방층보다 꼬리 부위를 더 좋아했다. 사진=크리스 팔로우스 외, doi:10.1371/journal.pone.0060797.g004

 

백상어는 고래의 지방층을 선호할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정해 왔다. 한 계산을 보면, 길이 4.5m의 백상어가 고래 지방 30㎏을 먹으면 한 달 반 동안 기초대사에 충당할 수 있다.
 

하지만 관찰 결과, 백상어들이 가장 먼저 달려드는 부위는 꼬리였다. 물론 꼬리가 곧 사라지면 지방층이 인기 있는 먹이가 됐다.  
 

백상어는 주검 주위를 서서히 헤엄치면서 이곳저곳에 입을 대 보다가 결국 지방이 많이 포함된 곳에 자리를 잡고 반복해 살점을 뜯어먹었다. 먹이는 6시간 이상 ‘배가 터질 정도로’ 먹었고, 먹은 큰 덩어리를 게워낸 다음 칼로리가 높은 부위만 다시 골라 먹는 행동도 보였다.
 

shark5.jpg » 고래 주검의 지방층을 백상어가 물어뜯은 자국. 사진=크리스 팔로우스 외, doi:10.1371/journal.pone.0060797.g004

 

shark6.jpg » 고래의 턱 부분을 물어뜯는 백상어. 사진=크리스 팔로우스 외, doi:10.1371/journal.pone.0060797.g004  

 

특이하게도 백상어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먹이를 떼어낼 때 눈을 돌리는 방어행동을 하지 않았다. 보통 상어는 먹이의 몸부림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공격 순간 눈동자를 돌려 눈이 하얗게 변한다. 연구진은 “백상어가 고래 주검이 움직이지 않으며 위협이 되지 않는 것을 배워서이든 본능적이든 아는 것 같았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또 여러 마리의 상어가 먹이에 덤벼드는데도 서로 다투는 일은 거의 없었다. 백상어 8마리가 먹이를 떼어먹으면서 서로 지느러미가 닿는데도 공격성을 보이지 않았다. 흔히 매체에서 백상어를 묘사하는 ‘흥분한 상어들의 광란’ 같은 행동은 나타나지 않았다.
 

shark7.jpg » 길이 4.5m의 백상어가 한 번에 20㎏의 지방층을 떼어내고 있다. 눈알을 돌리는 보호행동을 하지 않아 검은 눈동자가 보인다. 사진=크리스 팔로우스 외, doi:10.1371/journal.pone.0060797.g004

 

상어 사회에도 위계가 있다. 이번 관찰에서도 크기에 따라 먹이를 먹는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 5m 이상의 가장 큰 개체가 지방이 많은 가장 좋은 부위를 차지했고, 작은 개체는 딱딱한 근육 부위로 밀려났다. 더 작은 3~4m의 개체는 고래 주검에서 떨어져 다른 상어가 물어뜯을 때 흩어지는 지방 덩어리를 주워 먹었다.
 

연구자들은 고래 주검에 유독 대형 상어들이 많이 모이는 점에 주목했다. 남아프리카물개 주변에 모이는 백상어의 길이는 평균 3.5m이며, 4m 이상은 11%에 지나지 않는다. 4m 이상의 대형 백상어는 어디로 갔을까.
 

연구진은 대형 백상어가 잽싼 물개 사냥을 포기하고 죽거나 약한 고래를 찾아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곳은 긴수염고래 등 고래들이 겨울 동안 해안에 근접해 종종 배와 충돌하거나 그물에 걸려 죽는다. 대형 백상어가 마치 무언가 수색하듯이 해안을 무작위로 순찰하는 행동이 이런 가설을 뒷받침했다.
 

 Hermanus Backpackers_640px-Great_white_shark_south_africa.jpg » 남아프리카 해안에 출현한 대형 백상어. 사진=허마누스 백패커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연구진은 나아가 고래의 주검이 성숙한 대형 백상어를 한데 불러모으고, 먹이를 먹는 과정에서의 흥분과 접촉이 짝짓기로 이어질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번 관찰에서 고래 주검 주변에는 24시간 이내에 20마리 이상의 4~5m급 대형 백상어가 몰려들었다.
 

이들은 논문에서 “백상어의 청소 행동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잦으며 중요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성적으로 성숙한 상어에 중요한 만남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Fallows C, Gallagher AJ, Hammerschlag N (2013) White Sharks (Carcharodon carcharias) Scavenging on Whales and Its Potential Role in Further Shaping the Ecology of an Apex Predator. PLoS ONE 8(4): e60797. doi:10.1371/journal.pone.0060797
http://www.plosone.org/article/info%3Adoi%2F10.1371%2Fjournal.pone.0060797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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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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