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시계 째깍째깍 하룻새 생물종 1689종 찾았다

조홍섭 2013. 06. 18
조회수 22981 추천수 0

횡성 청태산서 네번째 바이오블리츠 대회 열려…일반인과 전문가 420명 참가

멸종위기 급박 인식 확산 위해 단시간 '협동 작전'…내년엔 서울과 평창서 동시 열려

 

bio0.jpg » 청태산 바이오블리츠에서 양형호 국립수목원 박사가 "양치류란 잎이 양의 이빨을 닮아 붙은 이름"이라고 설명하자 참가자들이 웃고 있다.

 

지구는 인간에 의한 ‘제6의 대멸종’을 겪고 있다. 자연의 속도보다 1000배 빠르게, 15분에 한 종꼴로 생물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보전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이대로라면 금세기 말까지 우리가 아는 생물종의 절반이 멸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게다가 지구에 사는 생물 10종 가운데 8종은 아직 기록되지 않은 상태이다. 진화가 남긴 보물인 생물종을 뭐가 있는지도 모른 채 잃고 있다. 생물다양성 탐사 대회(바이오블리츠)는 이런 급박함에서 비롯됐다. 전문가에게 한가하게 맡겨둘 시간 여유가 없어 시민과 전문가가 손을 잡고 나선 것이다.

 

bio1.jpg » 청태산 자연휴양림에서 24시간 동안의 네번째 생물다양성 탐사 대회가 시작됐다.
 

지난 14일 오후 2시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청태산 자연휴양림에 국립수목원과 한국식물원수목원협회 주관으로 일반인 288명과 전문가 90명을 포함한 420명이 청태산의 생물다양성 탐사를 위해 모였다. “탐사 시작”을 알리자 단상 위 전광판의 시계가 24시간에서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만 하루 동안의 생물 탐사가 시작된 것이다.
 

가장 인기가 높은 곤충 팀의 일반 참가자들은 포충망, 독병, 삼각지 등 장비를 받아들고 벌써 전문가가 된 듯했다. 모든 참가자에게는 진드기를 막기 위한 계피 향의 진드기 퇴치제와 발목밴드가 지급됐다.
 

bio2.jpg » 포충망에 곤충과 함께 잡힌 진드기. 주최쪽은 진디기 예방을 위해 사전조사와 퇴치제 살포 등 대책을 마련했다.

 

“이 나무가 숲 속의 폭군입니다.” 식물팀 전문가 양형호 국립수목원 박사가 잣나무 꽃가루로 노랗게 덮인 층층나무를 가리켰다. 숲에 공간이 생기면 잎을 층층이 펼쳐 햇빛을 독차지해 이런 별명이 붙었다는 설명에 참가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커다란 잎이 독특한 도깨비부채, 코르크 껍질을 한 황벽나무, 호두나무 비슷한 가래나무, 열매가 한창 열린 산뽕나무 등 산길을 올라가다 만난 식물에 관한 설명을 받아 적기도 하고, ‘나란히 선 소나무와 참나무 가운데 누가 결국 이 숲의 주인이 될까’를 묻는 질문에 답(참나무)을 하면서 참가자들은 식물공부에 빠져들었다.
 

bio3.jpg »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있는 식물탐사팀의 모습.

 

bio4.jpg » '결혼'을 앞두고 곤충을 유인하기 위해 잎을 희게 물들인 쥐다래.  

 

“나무도 결혼 전에 가장 이뻐진답니다.” 쥐다래를 가리키며 황 박사가 말했다. 잎 뒤에 핀 꽃으로 곤충을 유인하기 위해 잎이 하얗게 변했다. “수정이 끝나면 잎 색깔은 다시 녹색으로 돌아간다”는 설명에 참가자들은 신기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초등학교 1년과 3년인 두 자녀를 포함해 가족 5명이 참가한 현보람(29·인천상정고 교사)씨는 지난번 탐사 대회를 겪은 아이들의 태도 변화에 고무돼 이번에 다시 오게 됐다. “집 근처에 난 식물이 무어냐고 질문을 하더라고요. 벌레를 보고도 징그럽거나 무서워하지 않고 호기심을 나타냅니다.”
 

bio5.jpg » 곤충은 작고 식물마다 있다며 손가락 끝의 애벌레를 보여주는 이강운 홀로세 생태보존연구소 소장.

 

곤충탐사에 나선 이들은 나비나 잠자리 같은 우리가 흔히 곤충이라고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작고 다양한 곤충이 산다는 사실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모든 식물마다 곤충이 산다고 생각하면 돼요.” 이강운 홀로세 생태보존연구소장의 조언에 따라 참가자들은 풀잎과 나뭇잎 뒷편을 유심히 살폈다. 놀랍게도 수많은 곤충과 알, 애벌레가 숨어있었다.
 

곤충탐사의 하일라이트는 이날 밤 등불로 유인한 곤충을 채집하는 행사였다. 수은등과 자외선등에 수많은 딱정벌레와 나방이 몰려들었다. 참가자들은 흰 천에 들러붙은 곤충을 종 목록에 올리기 위해 부지런히 독병에 담았다.

 

bio6.jpg » 수은등과 자외선등으로 야행성 곤충을 유인해 채집하는 모습. 이봉우 국립수목원 박사가 왜 밤중에 곤충이 많은지 설명하고 있다.

 

이봉우 국립수목원 박사는 “낮에 숨어있던 야행성 곤충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빛을 보고 거의 무아지경에 빠져 몰려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튿날 오전 6시, 이른 시간이었지만 40여명의 참가자가 새를 보기 위해 모였다. 숲속에서 새를 보기 위한 장비는 스마트폰과 귀였다. 김인규 한국환경생태연구소 박사가 휴대폰에 녹음한 굴뚝새의 울음소리를 틀었다. 이어 숲을 향해 귀를 기울이자 쇠솔새, 숲새, 검은등뻐꾸기, 큰유리새, 동고비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침내 다른 수컷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다고 믿은 굴뚝새가 탐사대 바로 위 나뭇가지로 날아와 울기 시작했다.

 

bio7.jpg » 스마트폰에 녹음된 굴뚝새의 울음소리를 들려줘 새를 부르는 김인규 한국환경생태연구소 박사.

 

bio8.jpg » 나무다리의 쇠 난간 틈에 둥지를 튼 쇠유리새의 새끼들이 인기척에 놀라 이끼 속으로 파고들어 눈만 보인다. 사진=김인규 박사

 

신지영(서울 성북구 돈암동·서울사대부초 교사)씨는 “작고 칙칙한 새가 내는 소리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화려하고 큰 소리였다. 이런 탐사는 놀라운 경험이다”라고 말했다.
 

bio9.jpg » 먹음직해 보이는 넓은솔버섯이 사실은 독버섯이라고 설명하는 조종원 박사.

 

버섯은 포자를 주머니에 보관하는 자낭균과 주름에 담고 있는 담자균으로 나눈다는 등 사전 교육을 받았건만, 버섯을 찾아나선 참가자들의 주 관심사는 “이거 먹는 버섯이에요?”였다. 하지만 버섯을 찾아가면서 독버섯을 가리는 잘못된 상식은 곧 깨졌다.

 

넓은솔버섯은 독버섯이지만 전혀 화려하지 않았다. “벌레가 먹은 버섯은 먹어도 되는 거죠?”라는 질문엔, “달팽이나 딱정벌레는 사람과 달리 간이 없어 대부분 간 독성이 심한 독버섯도 먹을 수 있지만 사람은 전혀 다른 얘기”란 답변이 돌아왔다. 참가자들은 자기 몸을 녹여 먹물처럼 포자를 흘려 방출하는 먹물버섯을 보고는 “엄마 같다”고 공감하기도 했다.
 

bio10.jpg » 전문가의 텐트로 찾아가 곤충 분류법을 배우는 참가자들.

 

bio11.jpg » 조사를 위해 채집한 누룩뱀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한 참가자. 채집한 동물들은 나중에 모두 방사했다.  

 

분류군 별 캠프도 연구자의 연구활동을 엿볼 수 있어 참가자들의 인기를 끌었다. 생물학자들이 표본을 정리하고 종을 확인하는 모습을 곁에서 들여다 보고 이런저런 질문을 해도 귀찮아하지 않았다. 곤충표본을 만들거나 채집한 누룩뱀을 만져보고 “부드럽다”고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이번 행사에는 식물·곤충·연체동물·양서파충류·포유류·조류·토양동물·어류·균류·지의류 등 생물분류학 전문가 90명이 참가해 일반인과 다양한 교류 프로그램에 나섰다.
 

평소 생물에 관심이 많아 체험프로그램에 자주 참여한다는 서숙미(경기 시흥시 하상동·38)씨는 “궁금한 게 있어도 도감을 보는 게 고작이었는데 전문가에게 직접 물어볼 기회가 생겨 갈증이 풀렸다”라고 말했다.
 

bio12.jpg » 청태산에서 이번에 발견된 희귀식물 도깨비부채의 대규모 군락. 사진=양종철 박사

 

여러 분야의 생물학자들이 모이는 기회는 전문가들에게도 소중하다. 김휘 목포대 교수는 “모든 분류학 전문가가 한 장소에 모이던 종합학술조사가 사라져 전문가들끼리 정보를 교환하고 소통할 기회가 부족했는데, 바이오블리츠가 그런 구실을 해 주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조류탐사 때 한 참가자가 “까치가 이렇게 문제가 된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김인규 한국환경생태연구소 박사가 답변하던 중, 양서·파충류 전문가인 이상철 인천대 박사는 1970년대 쥐약 놓기 운동이 까치의 천적인 뱀을 감소시켰던 점을 지적했다. 음식쓰레기와 전봇대 증가에 더해 전에 고려하지 못해던 새로운 요인이 분야간 대화에서 제시되는 장면이었다. 
 

bio13.jpg » 청태산에서 24시간 동안 확인한 생물을 집계해 발표하는 신준환 산림과학원장과 김용식 한국식물원수목원협회장.

 

“10, 9, 8, 7…” 15일 오후 2시가 가까워지자 참가자들은 일제히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만 24시간 동안의 생물 탐사를 마무리한 성적표가 걸렸다. 청태산에서 전문가와 시민이 확인한 종은 모두 1689종으로 관속식물이 747종으로 가장 많았고 곤충이 623종으로 뒤를 이었다. 거미 등 기타 절지동물은 178종, 버섯 등 균류가 47종이었다.
 

이번 조사에서는 특히 희귀 고산식물인 도깨비부채의 큰 집단과 모데미풀이 발견됐고 최근 보기 힘들어진 작은은점선표범나비와 큰수염치레꽃등에가 관찰되는 성과도 냈다.
 

신준환 국립수목원장은 “내년에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가 열리는 평창과 서울 두 곳에서 생물다양성 탐사 대회를 동시에 열 방침이다. 이를 통해 도시의 생물다양성을 새롭게 조명할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횡성/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작은 거인’ 기생벌…국내 1700여 종, 생물방제 활용 가능성


bio1-1.jpg » 미세한 기생벌을 흡충관을 이용해 채집하는 김일권 국립수목원 박사.

 

“포유류 9종, 양서류 6종, 파충류 1종…곤충류 623종, 기타 절지동물 178종”
 

이번 청태산 생물다양성 탐사 대회 성적표를 보면 다양성은 큰 동물이 아니라 곤충 등 작은 동물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곤충류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흔히 벌 하면 꿀벌, 호박벌, 말벌 등을 떠올리지만 벌 가운데 가장 다양하고 성공한 종은 기생벌이다. 다른 곤충 애벌레의 몸속에 알을 낳아 그 벌레를 먹고 자라는 작은 벌이 기생벌이다.
 

기생벌을 전공한 김일권 국립생물자원관 산림생물조사과 박사는 “기생벌에는 맵시벌, 좀벌, 먹좀벌 등 국내에 1700여 종이 있다. 좀벌상과에만 240여 종이 있는데 적어도 500종은 될 걸로 보인다. 기생벌 가운데는 0.5㎜ 샤프심을 찍은 점 만한 것도 있을 정도로 대개 아주 작다.”라고 설명했다.
 

기생벌은 경쟁을 통해 점점 작은 쪽으로 진화하면서 다양해졌다. 김 박사는 “포충망을 두세번 휘두르면 수십마리가 잡힐 정도이다. 보통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실제로는 매우 많다.”라고 말했다.
 

기생벌은 천적을 이용한 생물방제 가능성 때문에 산업계로부터도 주목받는다. 축사의 파리 번데기에 기생하는 금좀벌은 이미 상품화돼 있다. 한때 큰 피해를 낸 미국흰불나방이 잠잠해진 데도 기생벌의 구실이 있었을 것이라고 김 박사는 말한다.
 

그러나 이 분야 국내 연구자는 10명 정도에 그친다. 좀벌상과에만 19개 과가 있는데, 전공자가 없는 과가 즐비하다는 얘기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바이오블리츠란

 

생물다양성 탐사 대회는 1996년 미국에서 ‘바이오블리츠’란 이름으로 처음 시도된 생물종 조사 이벤트로 전문가와 일반인이 24시간 동안 특정 장소의 생물목록을 만드는 행사이다. 블리츠란 미식축구의 수비전략으로 상대방 쿼터백이 패스하지 못하도록 수비진이 일제히 덤벼드는 전략을 가리킨다. 전문가와 일반인이 함께 달려들어 생물을 조사한다는 뜻이다. 24시간이란 짧은 조사기간은 생물다양성 보전의 긴급성을 상징한다. 미국뿐 아니라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뉴질랜드, 스페인, 대만 등에서 국립공원 또는 대도시 공원에서 해마다 벌어지고 있다. 이 행사를 통해 생물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이고 과학자들은 생물다양성의 변화를 밀도 있게 감시할 수 있게 된다. 국내에서 경북 봉화, 경기 연인산, 강원 대관령에 이어 이번까지 4번 열렸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초콜릿의 눈물…‘상아 해안’에 코끼리 대신 카카오 농장초콜릿의 눈물…‘상아 해안’에 코끼리 대신 카카오 농장

    조홍섭 | 2020. 10. 30

    한때 서식 중심지, 이젠 보호구역 25곳 중 21곳서 절멸국립공원 안에도 불법 카카오 농장19세기 말 프랑스가 식민지로 개척한 코트디부아르는 ‘상아 해안’이란 말뜻 그대로 서아프리카에서 코끼리가 가장 많이 살던 곳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조사 ...

  • 어린이집 마당을 잔디로 바꾸자 ‘면역강화 박테리아’ 늘었다어린이집 마당을 잔디로 바꾸자 ‘면역강화 박테리아’ 늘었다

    조홍섭 | 2020. 10. 29

    하루 1시간 반 흙 만지고 자연물 갖고 놀자 피부와 장내 미생물 변화, 면역체계 강화도시민은 과거보다 훨씬 깨끗한 환경에서 사는 데도 아토피와 알레르기 같은 질환은 더 늘어난다. 그 이유를 자연과 접촉이 줄면서 우리 몸의 미생물 다양성이...

  • 모랫둑 쌓아 설탕물 빼내는 개미의 ‘집단 지성’모랫둑 쌓아 설탕물 빼내는 개미의 ‘집단 지성’

    조홍섭 | 2020. 10. 28

    모래로 사이펀 만들어 익사 줄이고 손쉽게 설탕물 확보사람 말고도 도구를 쓰는 동물은 침팬지, 까마귀, 문어, 개미 등 많다. 그러나 고체가 아닌 다루기 까다로운 액체 먹이를 얻는 데 도구를 쓰는 동물은 훨씬 적다. 침팬지는 깊은 구멍 ...

  • 고양이 ‘윙크’는 미소, “대화 시작하자”는 신호고양이 ‘윙크’는 미소, “대화 시작하자”는 신호

    조홍섭 | 2020. 10. 27

    낯선 이도 윙크하면 접근 허용…긍정적 소통수단 확인한 쪽 눈을 살짝 감았다 뜨는 윙크는 사람의 묘한 소통수단이지만 고양이도 비슷한 행동을 한다. 고양이 ‘윙크’는 두 눈을 서서히 감아 실눈 또는 감은 상태를 잠깐 유지하다 뜨는 동작이다...

  • 올해의 ‘뚱보’ 곰, 640킬로 ‘747' 선정올해의 ‘뚱보’ 곰, 640킬로 ‘747' 선정

    조홍섭 | 2020. 10. 26

    브룩스강 연어 잡이 나선 2200여 불곰 대상 온라인 투표 결과점보기에서 이름을 얻은 이 거대한 수컷 불곰이 연어 사냥 명당에 나타나면 다른 불곰은 자리다툼은커녕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기 바쁘다. 미국 알래스카 캐트마이 국립공원 및 보호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