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의 환생처럼 홀로 그 멀리서 고고하게 왔다

도연 2014. 07. 29
조회수 25525 추천수 1
  봉하마을 황새 ‘봉순이’<1>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맑게 가꾼 화포천으로 어느날 짠!
  2005년 자연으로 돌아간 일본 복원종 한 마리 건너와

049.JPG » 화포천 습지에서 먹이 활동하는 봉순이.
“봉순아, 넌 참 대단한 아이였구나!”
 김해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인공섬에 들어선 오사카 간사이 공항으로 향하면서 나는 네가 정말 대단한 녀석이라고 혼잣말을 했단다. 물론 너보다 체구가 훨씬 작은 제비 같은 여름철새도 바다를 건너 고향을 찾아오지만 그들은 대개 무리를 지어 오기 때문에 홀로 바다를 건너온 네가 더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014.JPG » 상승기류가 형성되면 한바탕 날아올랐다가 제자리로 내려앉는 봉순이.
 네가 우리나라에 온 건 3월18일이니까 여름새들이 오는 날짜와 거의 비슷했구나. 두 살밖에 안 된 네가 한국에 오는 여름새들이 어떤 녀석들인지 아직 모르지? 내가 사는 곳에 오는 여름새들을 대략 적어볼까? 가장 먼저 오는 녀석이 호랑지빠귀와 되지빠귀라는 녀석이고 그 뒤를 이어 산솔새, 큰유리새, 소쩍새, 울새, 벙어리뻐꾸기, 흰눈섭황금새, 숲새, 검은등뻐꾸기, 파랑새, 꾀꼬리, 두견이, 쏙독새, 호반새, 청호반새, 팔색조, 휘파람새, 상모솔새, 뻐꾸기 등이란다. 모두 이곳이 고향이야.    
 그런데 너는 이곳 경남 김해시 화포천이 태어난 곳도 아니면서 어느 날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났기 때문에 학자들이나 매스컴 등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된 거야.

 신문에 기사 나가자 찾아가 마지막 황새 수컷 총으로 사냥

 슬픈 옛날 얘기 하나 해줄까? 그러니까 네가 상상도 못할 1971년의 일이야. 그해 <동아일보> 4월1일치(하필이면 만우절이람)에 충북 음성군 대소면에 황새 한 쌍이 살고 있다고 보도했어. 1971년이면 인간에게 그리 긴 세월은 아니야. 글을 쓰는 내가 1953년에 태어났으니까. 그 전까지는 이 땅에 황새가 살고 있었는지조차 모를 만큼 우리는 자연생태에 대해 정말 무지했어. 신문에 황새가 살고 있다고 보도되고 사흘 뒤 더 무지하고 끔찍한 일이 벌어졌어. 포수가 수컷 황새를 총으로 쏘아 죽인 사건이야. 

001.JPG » 황새는 까치처럼 민가 주변에 둥지를 틀고 살았기 때문에 사람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재미삼아 다른 생명을 죽이는 사람들이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생명을 죽이는 것도 끔찍한 일인데 짜릿한 쾌감을 위해 남의 생명을 빼앗는다는 건 정말 비인간적이지 않겠니?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잖아. 그게 무슨 뜻이냐면 인간만이 다른 생명에 대해 배려하고 자비를 베풀 수 있다는 뜻이야. 인간이 비행기와 자동차를 만들고 우주로 날아갔대서 만물의 영장은 아니라고 생각해. 봐봐, 너희들은 두 날개로 가볍게 바다를 건너는데 인간은 어디 그래? 거대한 비행기나 배를 타고 화석연료를 마구 써대면서 다니잖아.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그 후 실수의 연속이었어. 이 땅에 남은 황새 한 쌍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폈다면 포수의 총질에 피해를 입지도 않았을 테지. 거기다가 남은 암컷 황새가 해마다 무정란을 낳을 때도 사람들은 속수무책이었어. 
 그리고 1984년 기어이 암컷 황새가 농약에 오염된 먹이를 먹고 쓰러졌어. 부랴부랴 서울대공원으로 옮겨 치료를 했지. 우리 안에서 살던 황새는 1994년 삶을 마감했단다. 황새가 멸종위기에 몰려있거나 죽어가고 있을 때 국가는 무엇을 했으며 그 많은 생물학자들은 다 뭐하고 있었는지, 황새들은 죽어가면서 인간을 얼마나 원망했을까.

 ‘너 한 마리쯤이야’라고 생각한다면 큰 실수 하는 거야

 그런데 사람들의 생각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달라진 게 없는 거 같아. 왜냐하면 봉순이 네가 나타났을 때만 해도 조금 관심을 보이다가 이내 시들해졌거든. 내가 대통령이라면, 내가 문화재청장이라면 내가 경상남도 도지사나 김해시장이었다면, 내가 조류보호협회장이었다면, 너한테 사람을 붙여 네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기록하고 살피고 혹시라도 변을 당하지는 않는지 관리했을 텐데 사람들은 이상하리만큼 그러지 않았어. 
 우리나라에서도 네가 태어난 일본처럼 황새 복원에 성공했고 2014년 7월 현재 150여 마리로 늘어났어. 그러니까 머잖아 이 땅에서 황새가 너울너울 날아다닐 텐데 봉순이 너 한 마리쯤은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기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그렇다면 그건 사람들이 큰 실수를 하는 거야. 

003.JPG » 다가오는 개도 무서워하지 않고 쫓아버리는 봉순이.
018.JPG » 거미줄에 걸린 곤충을 떼어먹기도 하고 거미를 잡아먹기도 한다.
019.JPG » 가끔씩 홰를 쳐 몸에 붙은 기생충을 털어낸다.
040.JPG » 둥지 재료를 모으는 두 살짜리 암컷 봉순이.
041.JPG » 황새는 목소리로 울지 못하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 부리를 부딪쳐 소리를 내 소통한다.
 네가 어디 보통 녀석이냐? 일본도 우리와 거의 같은 시기에 황새가 멸종하여 바로 복원 작업에 들어갔고 드디어 2005년에 자연으로 날려 보냈어. 너도 그 중 하나였고 유일하게 바다 건너 국외로 건너온 거잖아. 너는 학술적으로도 소중한 존재가 분명하고 한국과 일본, 일본과 한국이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도화선 될 수도 있는 거였어.

 유기농 들판과 깨끗한 강에 물고기도 새도 몰려와

 이렇게 사람들이 너를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지 못하는 게 너무 마음 아프고 미안했어. 그래서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네가 자주 출몰한다는 화포천과 봉하마을과 퇴래뜰을 뒤지고 다녔어. 5월 말이니까 들판은 농부들이 모내기를 하려고 써레질이 한창이었어. 
 며칠 뒤였어. 저만큼에서 하얗고 큰 새가 눈에 띄는 거야. 두루미를 오랫동안 관찰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나는 네가 금방 황새라는 걸 알아챘어. 예로부터 황새, 두루미, 백로처럼 흰 색깔의 새들은 학(鶴)이라고 불렀지. 학의 어원은 ‘희다’는 뜻을 가졌대. 그러니까 시골 사람들은 너도 학으로 불렀다는 거야. 

 017.JPG » 황새의 먹이는 미꾸라지, 뱀, 개구리, 곤충 등 다양하다. 먹이를 발견하고 논으로 뛰어드는 봉순이.
 너를 보는 순간 나는 ‘그가 황새가 되어 돌아왔다’는 생각을 했어. ‘그’는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말해. 생전의 노 대통령은 퇴임 후 고향인 봉하마을에 내려와 살려고 했어. 마을 뒷산 이름이 봉화산이고 봉우리 밑에 있는 마을이라서 봉하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대. 

090.JPG » 7월17일 일본 도요오카 시민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5회 국제황새회의에서 오염된 화포천을 생태공원으로 가꾼 노무현 대통령이 소개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고향 봉하마을에 내려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마을 앞을 흐르는 화포천을 맑게 가꾸는 일이었어. 수백 트럭 분량의 쓰레기와 오염물질을 수거하는 것을 시작으로 깨끗해진 화포천으로 물고기가 돌아오고 새들이 몰려왔어. 화포천은 아름다운 습지공원이 된 거지. 그리고 봉하마을 앞 들판도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으로 바뀌었어.

 하얀 저고리에 검정 치마 즐겨 입던 우리 민족처럼

 그곳을 용케 네가 찾아온 거야. 너희는 오염된 곳에서는 살지 못하는 무척 정갈한 종족이었어. 슬픈 얘기 하나 더 할까? 음성에서 황새가 발견될 당시만 해도 우리는 먹고 사는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할 만큼 가난했어. 1971년 국민소득이 300달러가 안 됐으니까. 국민이 배곯지 않으려면 당연히 식량증산을 해야겠지. 

025.JPG » 제초제를 살포하는 농민. 유기농을 하지 않는 지역이 더 많아 황새는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046.JPG » 함부로 쓰고 버려진 제초제 포장지. 습지에서 사는 생물들에게 치명적이다.
 결국 대량생산을 위해 독한 농약이 개발되고 드넓은 농경지에 농약이 뿌려지기 시작했어. 최근에는 농민의 노령화로 일본, 네덜란드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은 농약을 쓰는 나라가 되었지. 제초제, 살충제를 사용하면 개구리, 미꾸라지, 새우, 땅강아지, 지렁이, 거미 같은 논습지 생물이 살 수가 없어. 그러면 이들을 먹이로 하는 너희 족속들은 굶을 수밖에 없겠지? 결국 이 땅에서 너희들이 사라진 원인은 우리 인간에게 있었던 거야.   

 006.jpg » 논에서 미꾸라지를 잡은 봉순이. 미꾸라지는 황새들의 주식이다.
 하얀 몸통 검은 꽁지. 옛 사람들은 우선 너의 ‘스타일’부터 좋아했어. 왜냐하면 예전에는 우리도 하얀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즐겨 입었거든. 영덕대게처럼 길고 붉은 다리에는 네가 누구인지 어디서 온 아이인지 알 수 있는 가락지가 끼워져 있었고 ‘J0051‘이라는 번호가 선명했어. 그 번호로 우리는 일본 효고현 도요요카 황새마을에서 날아온 녀석이라는 걸 알았지. 
 근데 로봇도 아니고 J0051이 뭐야. 그래서 나는 너에게 ’봉순이’라는, 조금은 촌스럽지만 한국적인 이름을 지어주었어. 봉하마을에 온 여자아이라는 뜻이야. 그 후 사람들도 너를 봉순이로 부르게 되었단다. 
 글·사진 도연 스님
 
 도연 스님은 철원 지장산의 ‘도연암’에서 삽니다. 안락한 절집을 떠나 홀로 살며 새를 즐겨 찍습니다. 새는 “날기 위해 뼛속까지 비우”는 자유로운 존재여서 좋아합니다. ‘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그래, 차는 마셨는가’, ‘중이 여자하고 걸어가거나 말거나’, ‘연탄 한 장으로 나는 행복하네’ 등의 책을 냈습니다. 누리집 ‘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http://www.hellonetizen.com/에 가면 그의 글과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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