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무게 6천톤 지구 최대 생물, 사슴 앞에 무릎 꿇다

조홍섭 2018.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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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만7천그루 나무로 이뤄진 ‘숲 나무’ 수천년째 생존
개발과 늑대 제거로 사슴 급증, 어린 나무 사라져 위기

p1.jpg » 평범한 사시나무류의 숲으로 보이지만 미국 유타주의 이 ‘판도’ 숲은 수만 그루의 나무가 땅밑에서 연결된 하나의 복제 나무로 이뤄진 지구 최대 생물체이다. 폴 로저스

지구에서 가장 큰 동물은 육지에선 아프리카코끼리로 몸무게가 6톤(t)에 이른다. 그러나 바다까지 넓히면 대왕고래의 170톤(t)과 비교가 안 된다. 대왕고래는 지구 역사상 가장 무거운 동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식물로 확장하면 어떻게 될까. 한 개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유전자가 동일하면 한 개체로 본다면 지구에서 가장 큰 생물은 미국 유타주의 ‘판도’란 이름으로 불리는 사시나무류 숲이다.

축구장 약 60개 면적(43㏊)에 4만7000그루 이상이 자라는 숲 전체가 하나의 나무다. 전체 무게는 590만㎏에 이른다. 이 나무는 모두 유전자가 완벽하게 동일한 복제 나무다. 애초 수컷 사시나무류 한 그루가 무성번식으로 증식한 개체여서 땅속에서는 모두가 하나로 이어진 단일한 유기체다.

식물은 종종 씨앗을 통한 유성생식으로 새로운 유전자 조합의 후속세대를 이어가기도 하지만 단순히 싹을 틔어 무성생식으로 번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판도’처럼 수천년에 걸쳐 거대한 ‘한 그루 숲’을 이룬 예는 없어 자연사적 가치를 지닌다.

1970년대 처음 판도의 생태적 비밀이 밝혀졌지만, 이후 가치에 걸맞은 보전이 이뤄진 건 아니다. 이미 오래 전에 숲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가 뚫렸고 건물과 캠핑장이 들어섰으며, 무엇보다 나무의 새순을 갉아먹는 초식동물이 크게 늘었다. 100살 가까운 큰 나무는 많지만 어린 나무는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1990년대부터는 숲이 눈에 띄게 성글게 바뀌었다.

p2.jpg » 1939∼2011년 사이 판도 숲(노란 테두리)의 변화를 보여주는 항공사진. 애초 고속도로가 관통하지만 개발과 초식동물 때문에 숲에 빈터가 생기고 성겨지는 양상이 분명하다. 미국농무부 항공사진 현장사무소

판도 숲의 현 상태와 보전 대책을 위한 첫 종합 연구를 유타대 생태학자들이 수행해, 그 결과를 과학저널 ‘플로스 원’ 17일치에 보고했다. 이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아마도 지구 위에 살아있는 가장 큰 생물체가 통제받지 않은 초식동물의 위협에 놓여있다”고 경고했다.

연구자들이 논문에 소개한 지난 72년 동안 이 숲을 촬영한 항공사진을 보면, 숲의 밀도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다. 개발로 일부 지역이 송두리째 사라지는가 하면 지난 수십년 동안 나무에서 어린 나무가 돋아나지 못한 탓이다. 그 주원인은 나무의 새순이 돋자마자 잘라먹는 노새사슴 등 이 지역 초식동물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p3.jpg » 두 차례에 걸쳐 사슴 방지용 울타리를 쳤지만 전체 면적의 절반에 그치고 그나마 완벽하지 않다. 폴 로저스 외 (2018) ‘플로스 원’

연구자들은 철책으로 둘러싼 구역과 그렇지 않은 구역으로 나눠 조사한 결과 “다른 아무런 관리를 하지 않더라도 단지 울타리를 둘러쳐 사슴의 접근을 막는 것만으로도 숲이 재생하는 효과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숲에는 2013년과 2014년 울타리를 쳤지만 그 면적은 전체의 절반 정도에 그치고 그나마 사슴의 침입을 막는데는 역부족이다. 주 저자인 폴 로저스 서부 사시나무 연맹 대표는 “(방대한 울타리를 쳤어도) 노새사슴은 울타리의 허술한 지점을 귀신같이 찾아내거나 2.4m가 넘는 장애물을 뛰어넘는다”고 유타대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이처럼 사슴이 숲을 위협하게 된 배경에 사람이 있다. 이 지역을 개발하면서 사람들은 사슴 사냥을 금지했고 사슴의 주요 포식자인 늑대를 제거했다. 사슴은 조절자가 사라진 숲에서 급격히 늘었다. 방해 요인으로부터 안전한 울타리 속 숲은 사슴에게는 최고의 피난처가 됐다.

p4.jpg » 앞과 중간(노란 숲 앞)의 녹색 부분이 판도 숲이다. 중간 부분에는 어린 나무가 나오지 않아 숲에 빈틈이 생겼다. Lance Oditt, Studio 47.60° North

복제를 통한 증식 방법은 자신의 유전자를 온전히 후손에 물려주는 장점이 있지만, 새로운 질병과 포식자 등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수천년 동안 유전적 교류 없이 유지돼 온 판도 숲은 초식동물을 물리칠 신무기를 개발하지 못한다. 식물은 잎을 씹는 초식동물에게 역겨운 맛을 선사하는 페놀 글리코사이드 같은 억제물질을 분비해 대응한다. 초식동물의 압력이 심해지면 그 농도가 짙은 식물이 출현할 것이다. 그러나 판도 숲은 “전체가 모두 낮은 수준의 억제물질을 분비한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그런데도 수천년 동안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은 초식 압력을 빠른 생장으로 이겼기 때문”이라고 연구자들은 설명했다. 그런데 늘어난 사슴 개체 수 앞에 새로운 어린 나무가 출현하지 못하는 것은 이런 균형이 깨졌음을 보여준다. 

p5.jpg » 판도를 위협하는 노새사슴. 그러나 이들의 자연적인 조절능력을 앗아간 것은 인위적 포식자 제거였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연구자들은 사슴의 개체수 조절과 울타리 보강 등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개별 나무의 수명인 100∼130년이 지나면 새로운 후속세대가 보충되지 못해 이 놀라운 거대 나무는 목숨을 다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Rogers PC, McAvoy DJ (2018) Mule deer impede Pando's recovery: Implications for aspen resilience from a single-genotype forest. PLoS ONE 13(10): e0203619.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203619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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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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