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에서 깨 17일 만에 알 낳는 물고기

조홍섭 2013. 09. 10
조회수 38051 추천수 0

동아프리카 사바나 일시적 웅덩이 사는 송사리 일종, 2주일까지 성숙 마치고 번식 돌입

사망 위험 큰 곳에 적응해 빨리 자라…우리나라 굴업도, 대청도 사구습지에도 비슷한 생태계

 

 _69627477_male.jpg » 동아프리카 사바나의 일시적 웅덩이에서 초고속 생장을 하는 송사리과 물고기(Nothobranchius kadleci) 수컷의 모습. 사진=라딤 블라제크, <에보데보>

 
사망 위험이 큰 곳의 동물은 일찍 성숙한다. 남획으로 어장이 붕괴한 북대서양 대구나 우리나라의 조기에서 드러나는 조숙 현상은 그런 것이다. 성장을 재촉해 죽기 전에 자손을 남기는 유전자가 선택을 받는다.
 

반대로 환경이 안정되고 천적이 없는 동굴에서 사는 도롱뇽 가운데는 성적으로 성숙하는 데 16년이나 걸리는 종류가 있다. 그런 도롱뇽은 100년 이상을 산다.
 

변덕스럽고 예측할 수 없는 환경의 대표적인 예가 우기에 일시적으로 물이 고이는 건조지역의 웅덩이이다. 비가 언제 올지 알 수 없고 오더라도 한 달도 안 돼 말라버리는 웅덩이에도 물고기가 산다. 그런 곳에서 어떻게 대를 이어 살아갈까.
 

fast1.jpg » 1년생 송사리과 어류가 자라는 동아프리카 사바나의 일시적 웅덩이 모습. 사진=라딤 블라제크, <에보데보>

 

동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의 일시적 웅덩이에 송사리의 일종인 작은 물고기가 산다. 체코의 동물학자들은 이 물고기를 실험실에서 기르면서 이들의 놀라운 성장 속도와 빠른 성적 성숙을 확인했다.
 

빗물이 마른 땅을 적시면 휴면 중이던 알에서 깨어나는 이 물고기는 엄청난 속도로 자라기 시작한다. 태어난 지 둘째 주에 성장률은 최고를 기록하는데, 하루에 전체 길이의 4분의 1가량을 자라기도 한다.
 

fast3.jpg » 동아프리카 사바나의 일시적 웅덩이에서 번식하는 송사리과의 물고기 다른 종(Nothobranchius furzeri) 수컷. 사진=라딤 블라제크, <에보 데보>

 

하지만 둘째 주가 지나면서 이 물고기의 성장률은 떨어지기 시작한다. 성장보다는 번식에 모든 에너지를 쏟을 때가 된 것이다. 암컷은 17일쯤 지나 몸길이가 31㎜로 크면 성적으로 성숙해 알을 낳기 시작한다. 수컷은 11~13일만 돼도 벌써 몸에 혼인색을 띤다. 태어난 지 3주일째에 암컷의 76%가 산란을 했다.
 

연구진은 “이 물고기의 한 세대는 한 달로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짧다. 실험실 생쥐의 한 세대는 70~80일이다”라고 밝혔다.
 

언제 마를지 모르는 웅덩이에서 재빨리 자라 번식에 성공한 물고기는 바로 죽는다. 그러나 이들의 수정란은 흙속에서 휴면 상태로 다음 우기가 올 때를 기다린다. 이 연구는 최근 온라인 공개학술지 <에보데보>에 실렸다.
 

04755017_P_0.jpg » 굴업도 묵기미 해안의 사구 습지. 7~11월 동안만 물이 고여있고 나머지 기간에 마르지만 미꾸라지 등 다양한 생물이 모래속에서 이듬해를 기다린다. 사진=정용일

 

아프리카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서식지가 있다. 모래 언덕에 일시적으로 생기는 웅덩이가 그것이다. 신두리, 대청도, 굴업도 등의 서해안과 섬에 그런 사구 습지가 있다(■ 관련 기사: 물 마른 모래 습지 밑에 생물도시 있다).
 

장마철에 형성된 웅덩이는 늦가을이 되면 모두 말라버린다. 하지만 그 사이를 틈타 이 덧없는 웅덩이에는 개구리와 물고기, 곤충 등이 살아간다.

 

굴업도 묵기미 사구습지에는 7~12월 동안만 물이 고이는데, 이곳엔 미꾸리, 미꾸라지를 비롯해 물방개, 물맴이, 물땡땡이, 반딧불이 등 딱정벌레와 먹줄왕잠자리, 밀잠자리, 하루살이 등의 애벌레, 게아재비, 소금쟁이 등 수서 곤충만 50종이 넘게 산다. 신두리 사구습지에도 금개구리, 맹꽁이가 많이 살고 이들을 노리는 물방개 등 육식성 곤충도 모여든다.
 

이들은 아프리카의 송사리와 마찬가지로 모두 빨리 자라고 일찍 번식하며 물이 사라지면 바닥을 파고들어 휴면에 들어간다. 또 빠른 성장을 위해 미꾸라지가 작은 동료를 잡아먹는 등 일반 환경에선 볼 수 없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사구습지는 독특한 생태학적 가치를 지니지만 이에 대한 연구와 보존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Radim Blazek et. al., Rapid growth, early maturation and short generation time in African annual fishes, EvoDevo 2013, 4:24 doi:10.1186/2041-9139-4-24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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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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