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훼손의 역설, 산불이 나자 희귀나비가 돌아왔다

조홍섭 2013. 08. 28
조회수 25151 추천수 1

큰 산불 울진에 희귀 북방계 초지나비 귀환, 반달곰도 숲에 '숨통'

국립공원 주변 주민들, "숲 너무 우거져 짐승 없어졌다"

 

eco3.jpg » 우리나라에서 급속히 줄어들고 있는 북방계 초지성 나비인 왕은점표범나비가 굴업도에서 금방망이의 꿀을 빨고 있다. 숲이 너무 우거지면 살 수 없는 나비이다. 사진=김성수 동아시아환경생물연구소장   

나무가 가득 들어찬 외국의 숲 모습이 낯설던 때가 있었다. 1950년대만 해도 난방과 취사 등 에너지의 거의 대부분은 나무를 태워 얻었고, 1960년대에도 그 비중은 절반을 넘었다. 산에 나무가 자랄 틈도 없이 베어 썼다.

 

1973년 본격적으로 산림녹화를 시작한 지 40년 만에 숲에 서 있는 나무의 양은 10배로 늘었다. 우거진 숲은 물을 많이 머금고 토양침식을 막으며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생물이 깃들고 사람이 즐길 공간을 제공한다. 숲의 공익기능은 연간 110조원이 넘는다고 산림청은 주장한다. 그러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숲이 울창해지면 사라지는 생물도 있다. 그들은 숲이 훼손될 때 비로소 돌아온다.
 
산불의 ‘선물’

 

eco2_강릉 산불 10년_강재훈.jpg » 큰 산불이 난 지 10년이 지났어도 나무가 자라지 않아 황량한 강원도 강릉의 산지. 그러나 이런 환경이 초지성 생물에겐 드문 기회가 된다. 사진=강재훈 기자

 

권태성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연구과 박사팀은 2007년 4월 1000㏊의 숲을 태운 울진 산불 직후부터 5년 동안 산불 피해지역에서 다달이 출현하는 나비를 조사했다. 산불지역에서 나비의 애벌레는 모두 불에 타 죽었지만 인근 숲에서 나비들이 날아들었다.
 

산불이 난 이듬해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숲이 빽빽하게 들어서면서 자취를 감춘 초지성 나비들이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애벌레가 제비꽃이나 억새의 잎을 먹고 자라는 왕은점표범나비, 지리산팔랑나비, 큰흰줄표범나비, 파리팔랑나비, 흰줄표범나비 등이 그들이었다.
 

권 박사는 “나비는 다양한 식물을 먹고 여러 차례 발생하는 일반종과 특정한 식물만 먹고 한 번 발생하는 특수종으로 나눌 수 있는데, 숲이 울창해지면 특수종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는 산림녹화의 성공과 지구온난화 때문에 특히 북방계 초지성 나비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데, 대규모 산불로 큰 초지가 형성되자 이들이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eco5.jpg » 북방계 초지성 나비인 굴뚝나비. 사진=김성수 동아시아환경생물연구소장

 

eco1.jpg » 굴업도에 우점종인 왕은점표범나비. 사진=이상영 강릉대 교수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왕은점표범나비는 그런 대표적인 예이다. 울진 산불지역에서 이 나비는 산불 이듬해부터 몇 마리씩 출현하기 시작했다.
 

왕은점표범나비는 티베트 동부, 중국, 우수리, 아무르, 한국 , 일본 등 동아시아 고유종인데, 최근 주 분포지인 한국과 일본에서 급격히 감소해 종 보존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이다. 일본에선 이 나비의 채집이 거의 불가능해 나비 애호가들 사이에선  ‘꿈의 나비’라고 불린다.
 

우리나라에서 나비는 예외적으로 1930년대부터 80여년 동안 지속적으로 분포현황을 조사한 기록이 남아있는 곤충이다. 세계적 나비 연구자인 석주명이 1938~1955년 사이 한반도의 나비 자연사를 완성했고, 이어 김창환·박규택·김성수 등의 나비 연구자들이 조사자료를 정리했다. 덕분에 다른 어느 생물보다도 나비 분포가 한반도에서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왕은점표범나비는 1938년부터 1996년까지 3차례에 걸친 조사에서 모두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 동안 전국 395곳에서 이뤄진 조사에서 이 나비가 발견된 곳은 강원도 계방산과 경북 울진 두 곳밖에 없었다.
 
굴업도가 희귀 나비의 보고가 된 사연
 
eco4.jpg » 굴업도 서쪽 개머리초지의 사슴떼. 사슴과 흑염소는 숲을 억제하고 초지를 유지하는 구실을 한다. 사진=조홍섭 기자

 

그런데 서식지인 계방산과 울진의 고산 초지에서 온종일 다녀봐야 몇 마리 볼 수 없는 왕은점표범나비를 하루에 수백마리까지 관찰할 수 있는 곳이 있다. 한때 핵폐기장 건설 후보지로 또 현재 시제이 계열사가 골프장 등 관광개발을 하려 해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서해의 섬 굴업도가 그곳이다.
 

인천시 옹진군 덕적면에 속하는 굴업도는 인천에서 90㎞ 떨어진 면적 1.71㎢의 작은 섬이지만 최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해식와와 사구, 사빈 등 다양한 해안 퇴적 및 침식 지형을 간직하고 있으며 구렁이, 매, 흑두루미 등 다수의 희귀동물이 서식하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섬 서쪽 개머리초지는 왕은점표범나비의 국내 최대 서식지로 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김성수 동아시아환경생물연구소장 등 연구진은 2011년 <한국응용곤충학회지>에 실린 논문에서 왕은점표범나비가 굴업도 전체 나비 개체수의 32%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연구진이 추정한 이 나비의 개체수는 약 1000마리이며, 유충은 4000~7000마리에 이른다.
 

개머리초지는 1970년대까지 소를 방목해 길렀으며 현재는 방목한 흑염소와 꽃사슴이 어린나무를 뜯어먹어 초지가 숲으로 바뀌는 것을 막고 있다. 이처럼 희귀나비가 대량 서식하는 이유로 연구진은 이들 초식동물이 지속적으로 풀을 뜯어 이 나비 애벌레의 먹이인 키 작은 제비꽃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고, 성체가 꿀을 빠는 금방망이와 엉겅퀴가 많은 점을 들었다.(■ 관련 기사: 굴업도는 '꿈의 나비' 왕은점표범나비 천국)
 
권태성 박사는 “비무장지대에서 군부대가 시야를 트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는 사계청소를 한 곳에 희귀나비가 많다. 방목이나 산불 같은 교란이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희귀나비를 위한 맞춤형 보전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달가슴곰은 ‘숲의 농부’
 
eco6.jpg » 지리산의 반달가슴곰이 나무 위에서 가지를 꺾어 먹이를 찾고 있다. 사진=국립공원관리공단

 

국립공원 주변에 오래 산 주민들은 한결같이 ‘숲이 너무 울창해져 멧토끼 같은 짐승이 없어졌다’고 말한다.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가 햇빛을 가려 숲 바닥에 풀이 돋아나지 않자 이를 먹는 초식동물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훼손이 아니라도 산불이나 폭풍 같은 자연적인 교란은 생태계를 역동적으로 변화시킨다. 바람에 나무가 쓰러지면 나뭇가지와 잎으로 하늘을 가리던 ‘숲 지붕’이 뚫리면서 햇빛이 바닥에 도달하게 되고, 그러면 땅속에 묻혀있던 씨앗이 싹을 터 경쟁수종이 자라나게 된다. 그런데 최근 반달가슴곰이 폭풍보다 6배 이상 효과적으로 숲에 빛이 들어올 틈을 만든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일본 나가노 대학 연구자들은 최근 온라인 공개 학술지 <비엠시 에콜로지>에 실린 논문에 나가노현 나가쿠라야마 국립공원에서 반달가슴곰이 숲에 얼마나 틈을 만드는지 실증적으로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반달가슴곰은 주로 열매가 달린 나무에 올라가 가지를 꺾어 열매를 따 먹는다.
 

연구지역의 곰은 계절을 따라 주로 산등성이에서 벚나무, 참나무, 너도밤나무의 가지를 꺾었는데, 곰 한 마리가 연간 1㏊의 숲에서 내는 ‘숲 틈’은 나무 2.2개가 하늘을 가리는 면적에 해당하는 141.3㎡에 이르렀다. 이는 해마다 1㏊의 숲에서 폭풍에 의해 나무가 쓰러져 생기는 숲 틈 21.4㎡의 6.6배에 해당한다.

 

eco7.jpg » 일본 나가노 지역 나가쿠라야마 국립공원에서 반달가슴곰이 나뭇가지를 꺾어 생긴 '숲 틈'. 이곳엔 지리산 면적에 1600~1900마리 꼴로 많은 반달가슴곰이 산다. 사진=다카하시 외, <비엠시 에콜로지>  

 

곰이 만드는 숲 틈은 크기는 작지만 수가 많고 다양한 높이에 형성된다. 또 주로 산의 사면이나 골짜기에서 나무가 폭풍에 쓰러지는 데 비해 곰은 이동과 접근이 쉬운 산등성이에서, 열매가 떨어질 때까지 한 곳에 머물면서 가지를 꺾는 습성이 있다. 곰은 바람과는 다른 독특한 형태의 교란을 숲 생태계에 일으키는 것이다.
 

연구지역은 ㎢당 3.3~3.9마리의 반달가슴곰이 사는 등 일본에서도 곰 밀도가 높은 곳이다. 지리산으로 친다면 1600~1900마리의 곰이 사는 셈이다. 따라서 이들이 숲 지붕을 허물어 빛이 들어오게 함으로써 불러일으키는 변화는 식물의 성장과 번식, 새로운 종의 유입 등 매우 클 것으로 연구진은 보았다.

 

나무 위 반달가슴곰_디비에 큰 해상도.jpg » 지리산 반달가슴곰의 개체수가 충분히 많아진다면 지나치게 우거진 숲에 빛이 들어오도록 하는 생태계 변화를 일으키는 주역이 될 가능성도 있다. 사진=국립공원관리공단

 

현재 지리산에는 증식·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방사된 반달가슴곰 27마리가 살고 있다. 이들이 지리산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하겠지만 앞으로 더욱 늘어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이배근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동물복원부장은 “곰은 ‘숲의 관리자’ ‘숲의 농부’로 불릴 정도로 숲 생태계 변화에 큰 구실을 한다. 나무를 꺾어 빛이 들어오게 하고 씨앗을 퍼뜨리는 능력이 탁월하다. 우리나라에서 복원한 반달가슴곰이 지리산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논하긴 이르지만 바로 이것이 반달가슴곰을 복원한 이유의 하나”라고 말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Tae-Sung Kwon et. al., Changes of butterfly communities after forest fire, Journal of Asia-Pacific Entomology 16 (2013) 361–367

 

Kazuaki Takahashi, Spatial distribution and size of small canopy gaps created by Japanese black bears: estimating gap size using dropped branch measurements, BMC Ecology 2013, 13:23 doi:10.1186/1472-6785-13-23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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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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