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자주 만난 생쥐는 가축이 된다

조홍섭 2018. 0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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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털무늬, 짧은 주둥이 등 ‘셀프 가축화’ 증거 확인
온순한 개체 늘면서 부산물로 가축화 형질 변화

m1.jpg » 사람과 주기적 접촉만으로 가축화의 표시인 흰 털무늬가 나타난 생쥐. 린다 히브 제공.

농경을 위해 정착한 사람은 지난 1만5000년 동안 개, 소, 말, 돼지, 닭, 양, 염소 등 10여 종의 동물을 가축화했다. 종마다 그 방식은 다르겠지만 초기 가축화는 대개 이런 식으로 이뤄졌을 것이다. 개를 예로 들면, 먹잇감이나 폐기물에 끌려 늑대가 사람 정착지 주변에 다가왔다. 이 가운데 사람을 덜 무서워하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 늑대가 더욱 자주 가까이 다가왔고, 마침내 가장 온순한 늑대는 개가 됐다.

야생동물 가운데 온순한 성격의 개체가 가축이 되면서 행동뿐 아니라 외모도 달라진다. 이른바 ‘가축화 신드롬’이 나타난다. 개, 토끼, 돼지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야생의 친척에 견줘 가축화한 동물은 귀가 부드럽게 눕고, 가죽에 흰 무늬가 생기며, 뇌가 작아지고 주둥이가 짧아진다.

실제로 야생동물을 장기간 기르면서 가축화를 실험한 연구가 있다. 옛 소련 유전학자 드미트리 벨라예프가 1959년 시작해, 그 후예가 아직도 진행 중인 은여우 육종 실험은 유명하다(▶관련 기사: 늑대는 왜 개가 되기로 했나). 야생 은여우 가운데 가장 온순하고 사람을 잘 따르는 개체를 선택해 육종했더니 불과 몇 세대 만에 사람이 다가가면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여우가 탄생했다. 이들의 몸에는 흰 무늬가 나타났고 주둥이가 짧아졌으며 귀가 접혔고 꼬리는 위로 치켜올려졌다.

fox3.jpg » 러시아 세포학 및 유전학 연구소에서 온순한 은여우를 골라 여러 세대 육종하면서 출현한 꼬리가 위로 말린 형태 변이. 트루트 외 ‘러시아 유전학’ 제공.

m2.jpg » 러시아 세포학 및 유전학 연구소가 온순한 야생 은여우를 계대 배양하여 애완동물로 개발한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그런데 사람이 육종 등으로 적극 개입하지 않았는데도 주기적인 접촉만으로도 가축화의 형질이 나타난다는 사실이 장기간의 실험에서 확인됐다. 스위스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왕립학회 공개 과학’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생쥐를 장기간 기른 실험 결과 사람과의 간접적인 접촉만으로 가축화의 초기 단계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2002년 스위스 일나우에서 면적 72㎡인 헛간에 인근 농장 축사에서 포획한 생쥐 12마리를 넣는 것으로 실험을 시작했다. 건물에는 쥐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통로가 있었고 규칙적으로 먹이와 물을 제공했다. 생쥐는 250∼430마리를 불어났는데, 연구자들은 10∼13일마다 헛간에 들어와 둥지 등을 조사해 새끼의 성별과 무게, 머리 길이 등을 측정했다. 7주에 한 번씩은 모든 생쥐를 포획해 조사한 뒤 놓아줬다. 이런 주기적 접촉은 14년, 생쥐가 20세대를 거치는 동안 계속됐다.

m3.jpg » 야생 생쥐의 모습. 먹이를 찾아 1만5천년 전 농경 집단 근처로 이주한 야생 생쥐는 사람을 덜 겁내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 개체가 많아지면서 스스로 가축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10년도 되기 전에 생쥐집단에서 두 가지 두드러진 형태 변화가 나타났다. 갈색 피부에 흰 무늬가 늘어났고 주둥이 길이가 짧아졌다. 연구자의 하나인 안나 린홀름 스위스 취리히대 진화생물학자는 “생쥐들은 점차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잊고 가축화의 표시를 나타냈다. 이런 일은 사람의 어떤 선택도 없이 오로지 주기적으로 사람의 존재를 노출한 결과였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흰 무늬가 나타난 생쥐의 빈도는 2010년 2.5%에서 2016년 5.4%로 2배 이상 증가했다. 몸길이 대비 코끝에서 머리 뒤까지의 길이 비율도 2007∼2016년 동안 현저히 커졌다고 논문은 밝혔다. 연구자들은 “생쥐들이 주기적으로 사람과 접하고 포획과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사람을 무서워하는 개체는 차츰 사라지고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을 지닌 생쥐들은 늘어난 결과로 보인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가축화 과정에서 행동의 변화가 형질의 변화로 이어지는 데는 초기 배아의 '신경 능선'이라 불리는 줄기세포 일부와 관련이 있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이 줄기세포가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하는 부신은 물론 귀의 연골, 이의 상아질, 피부 색깔을 모두 결정한다. 온순한 동물을 선택할수록 부신의 크기는 작아지고, 그런 동물은 더 온순해진다. 그런데 단지 여기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의도하지 않은 부산물로 피부의 무늬와 머리 크기도 달라진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m4.jpg » 생쥐는 이보다 덩치가 큰 집쥐와 함께 사람 주변에 살면서 늑대가 개가 되는 초기 단계와 비슷한 적응을 한 것으로 보인다. 조지 슈클린,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결국 생쥐는 먹이에 이끌려 사람 주변에 살게 되면서 사람에 익숙해지고 점점 온순해졌음을 이 연구는 보여준다. 주 저자인 마델라이네 가이거 취리히대 동물학자는 “생쥐는 스스로 가축화하면서 차츰 형태를 바꾸었다”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늑대도 사람의 적극적인 개입 이전에 스스로 사람 근처에서 먹이를 찾으며 가축화의 첫걸음을 걸었을 수 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Geiger M, Sánchez-Villagra MR, Lindholm AK. 2018 A longitudinal study of phenotypic changes in early domestication of house mice. R. Soc. open sci. 5: 172099. http://dx.doi.org/10.1098/rsos.172099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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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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