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을 보며 자라니 벼들도 행복하겠다

윤주옥 2011. 06. 02
조회수 16711 추천수 0

[지리산 통신] ② 지리산만인보,남원 매동~함양 금계 순례길


자꾸 뒤돌아보게 하는 지리산둘레길에 봄이 익었다

풀과 나무에 눈길 주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걸었더니 어느새 어스름


_1330555.jpg  

지리산 자락에 사는 주민들은 4월 말부터 벼농사를 준비한다.

4월 말이 되면 주민들은 마을회관이나 공터에 모여 싹 틔운 볍씨를 모판상자에 파종한다.

모판상자에서 자란 벼는 5월말부터 논에 심는다.

지리산 북쪽인 남원, 함양은 5월 말, 지리산 남쪽인 하동, 구례는 6월 중순 모내기를 한다.

5월 말 지리산둘레길을 걷는다는 건, 지리산 자락에서 모내기하는 걸 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3504D104C0F001F426E40

 

1827A2434DE5EBD93351CB

 

18786B404DE5FFBD2FFBF1

 

206165434DE5FFB824003D

 

1760B3434DE5FFB723F1D1

 

모판을 옮기고, 모내기를 하고, 이제 막 뿌리를 내린 벼들이 잘 자라고 있는지 살피는 농부의 걸음이 잦아지는 때,

봄과 여름의 경계인 계절,

지리산만인보는 남원 매동에서 함양 금계를 걸었다.

 

남원 매동에서 함양 금계로 가는 길은 '사단법인 숲길'이 지리산둘레길을 개척하며 가장 먼저 개방한 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만큼 걷는 사람도 많고, 하루 이틀 쉬어갈 곳도 많다.

 

173BAB434DE5EBDB1762A5

 

1334FA434DE5EBDF2BD9B5

 

곽판개 이장은 마을 모양이 매화꽃을 닮은 명당이라서 매동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매동은 고사리, 취나물 등 산나물 맛이 일품이고, 지리산둘레길에 오는 분들을 위한 민박도 넉넉하다고 자랑했다.

 

204FE30F4C0EA8371991DF

↑ 매동마을 곽판개 이장

 

매동마을회관을 출발하여 언덕길을 오르면 밭길이 나온다.

지리산둘레길 1호인 이 길은 주민들이 고사리, 고추 등을 농사짓는 곳인데

길을 걷는 사람들이 별 생각 없이 농작물에 손을 대어 주민들과 갈등이 생긴 곳이기도 하다.  

지리산만인보 걷는 이의 약속, '주변의 농작물과 열매는 주민과 야생동물의 것으로 손대지 않습니다.'는 상생을 위해 꼭 지켜져야 할 것이다. 

 

1932D9414DE5F8B40C8DA9

 

191FF5414DE5F8B73AB5A1

 

180261424DE5FD5C1A63DD

 

언덕길을 오르며 숨이 목까지 차오를 즈음 밭에서 만난 아주머니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손에 흙이 가득했다.

저 손이 흙을 만나 씨앗을 뿌리고, 김을 매고, 물을 준다.

저 손이 흙을 만나 먹을거리를 만든다.

저 손과 저 흙은 세상을 살리고 세상을 바꾼다.

 

14504D104C0F001F43BC4E

 

이곳에서 중황까지 가는 길은 밭과 숲이 자연스레 연결되고, 생각을 내려놓고 걷기 좋은 숲길이다.

길을 걷다보면 아름드리 개서어나무를 만난다.

개서어나무는 서어나무 사촌쯤 되는 나무로 오래 된 숲에서 볼 수 있는 나무다.

개서어나무, 서어나무가 어우러진 숲은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편해진다.

 

193313414DE5F8B80C6DB6

 

111F92414DE5F8BA358D5B

↑ 개서어나무

 

1545423D4DE5F8C027F6E2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5월을 오디 따먹는 달, 옥수수 김매 주는 달, 구멍에 씨앗 심는 달, 밭가는 달 등으로 다양하게 불렀다 한다.

아메리카 인디언과 마찬가지로 지리산 자락의 5월도 복잡하고 다양하다.

5월 말 지리산 자락에서는 새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힌다. 

 

지리산만인보는 매동에서 금계까지 걸으며 숲과 논밭가에 살고 있는 풀과 나무의 다양한 모습에 신기해 했다.

숲과 논밭가에는 한 가지 색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밝고 오묘한 꽃들이 피어 있었다.

 

흰빛을 띤 쇠별꽃, 큰꽃으아리, 토끼풀, 꽃마리, 참꽃마리, 둥글레, 망초, 은대난초 등과

노랑색인 산괴불주머니, 젓가락나물, 애기똥풀, 꽃다지, 돌나물, 뱀딸기, 괭이밥, 뽀리뱅이, 씀바귀, 고들빼기 등과  

붉은 빛의 금낭화, 갈퀴나물, 자운영, 엉컹퀴, 조뱅이, 꿀풀, 쥐오줌풀 등과

보라빛으로 빛나는 으름덩굴, 제비꽃, 붓꽃 등과 꽃인지 잎인지 구분하기 힘든 초록색의 뚝새풀 등이 피고 지는 때가 5월 말이다. 

풀만이 아니라 보리수나무, 산딸나무, 때죽나무, 찔레꽃, 층층나무, 노린재, 국수나무, 아까시나무, 죽단화, 오동나무 등의 꽃도 피고 진다.

이 꽃들은 지리산 자락에서만 볼 수 있는 꽃들이 아니다.

한반도 어디에나 있는 꽃들이다. 그러니 더 정겹고 마음이 간다.

 

193F1C414DE6010C18924E

↑ 자운영꽃

 

143EF6434DE5EBE51006D6

↑ 때죽나무 꽃

 

5월 말엔 숲에서 열매를 맺으며 다음해를 준비하는 

팽나무, 벚나무, 딱총나무, 신나무, 뽕나무, 감나무, 탱자나무, 쇠물푸레나무, 호두나무 등을 볼 수 있는데

앙증스럽게 달려있는 열매들은 '이게 뭐야, 세상에 귀여워라!'란 감탄사를 반복하게 한다.

 

11416F434DE5EBD508D1CE

↑ 탱자나무 열매

 

숲의 변화무쌍함은 꽃과 열매만이 아니라 소리로도 느낄 수 있다. 

숲속에 서 있으면 멀리서 달려오는 바람소리가 세차게 들린다.

소리로는 북풍한설이나 살갗에 닿는 바람은 부드럽고 포근하다.

햇살은 따가워지고 바람은 부드러우니 숲으로 향하게 되는 때가 5월이다.  

 

밭길, 숲길을 걸어 중황으로 가다보면 산인지 밭인지 분명치 않은 곳에 하황댁 아주머니가 하는 쉼터가 있다.

주말이든, 평일이든 이 쉼터엔 사람들이 많다.

아주머니는 도토리묵을 시키면 밭에서 상추를 뜯어다 무쳐 주시고, 수수떡을 시키면 토종꿀을 찍어 먹으라고 내놓는다. 

딸처럼, 손자처럼 그렇게 대해 주신다.

아주머니는 하황에서 태어나 같은 마을 총각과 혼인하여 지금은 중황에 산단다.

 

평생 농사만 짓던 아주머니는 2년 6개월 전에 쉼터 사장이 되었다.   

'어느 날 고사리밭에서 고사리를 끊고 있는데 사람들이 내려와.

좋은 꽃도 없는 곳에서 어쩐 일로 사람들이 내려오는가 했더니, 사람들 말이 둘레길이 생겨 이제 많이 올 거라고.

혹시나 해서 꿀을 팔려고 꿀단지를 놓고 앉아 있는데, ' 한 잔 합시다.' 이러는 거야.

술 아닌디요 꿀이요, 산에서 내려오는 물에 꿀을 타주니 맛있게 먹으며 막걸리와 파전을 팔면 잘 될 거라지.

내가 술장사 안 좋게 생각했는데 자꾸 하라 해서 시작하게 되었어.

이름도 없었지. 다녀간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고 싶은데 이름이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이러지.

자주 오는 분이 지어준 거라, '정을 담은 다랭이쉼터'라고'

 

157FDE424DE5FD5D219547

 

150849424DE5FD5E0E8BAC

↑ 정을 담은 다랭이쉼터 하황댁 아주머니

 

예전에 매동에서 금계까지 걸어본 사람이 이 길을 다시 걷게 된다면 많아진 쉼터와 매점에 놀랄 것이다. 

지리산 자락에서 토종벌을 키우던 농민들이 토종벌 집단폐사 후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니 쉼터를 냈다고 한다.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던 쉼터가 지금은 20개도 넘는다.

지리산둘레길이 티브프로그램에 나온 후 반짝 장사가 되었지만

지금은 그때와 달라 장사도 안 된다니 농촌에서는 농사를 지어도, 장사를 해도 걱정스런 일만 많아지는가 보다. 

 

중황에 들어서자 멀리 등구재가 보였다.

등구재는 전북 산내 상황과 경남 마천 창원이 경계를 이루는 고개로 거북이가 기어 올라가는 지형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등구 마천 큰애기는 곶감 까기로 다 나가고,

효성 가성 큰애기는 산수 따러 다 나간다.'는 민요가 구전될 만큼 감나무가 많은 곳이다.

옛 사람들은 창원에서 인월장을 보기 위해 등구재를 넘어 다녔다고 한다. 등구재는 삶의 내력이 묻어나는 고개이다.

 

등구재로 올라가는 길에는 지리산을 바라보는 논과 밭들이 층층이 펼쳐져 있다.

벼도 지리산을 바라보고, 고추도 지리산을 바라보고, 고사리도 지리산을 바라보며 자란다.

지리산에서 불어오는 바람 맞고, 지리산에 걸렸던 비구름이 내려주는 비 맞고, 지리산이 뿜어내는 기운 받고 자라니

여기서 자라는 벼, 고추, 고사리는 신명날 것이다. 

 

1303B2404DE5FFBE13C85D

 

1868C5434DE5FFBB136D17

↑ 천왕봉을 바라보며 있는 논들

 

167A73404DE5FFC12347BD

 

등구재를 내려와 창원까지 가는 길은 산을 흉하게 동강낸 길이다.

숲과 나무를 관리할 목적으로 만든 임도일 것이다.

숲을 동강내고, 나무를 잘라내고, 이 길은 누구를 위한 길일까?

 

146FB8434DE5FFB0021EB2

 

시끄런 마음을 길가에 핀 층층나무 꽃이 달래줬다.

 

165663114C0F53291D14B5

↑ 층층나무 꽃

 

길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한다.

저 길의 시작과 끝이 어디일까 궁금하게 하고

저 길로는 어떤 동물들이 다니는지 엿보고 싶게 하고

이 길은 누구와 함께 가야 제격일까 싶어 이 사람, 저 사람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길을 걸으면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내가 걸은 길의 뒷모습을 보고 싶고

내가 걸은 길을 따라 또 누군가가 오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

걷는 길도, 삶의 길도

뒤돌아보고, 생각하고, 천천히, 함께 걸을 때 더 풍부해진다.

 

 

창원은 지리산둘레길 옆에 있는 마을이며, 천왕봉이 앞산인 마을이다.

창원은 돌담은 돌담대로, 돌담 안 감나무는 감나무대로, 구불구불 마을길은 마을길대로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곳이다.  

 

143961414DE6010D273CD2

 

김동현 이장은 창원이 해발 450m에 위치해 있으며, 벼농사를 주로 하며 곶감, 호두, 꿀 등이 많이 난다고 했다.

조선시대 마천에서 각종 세로 거둔 물품들을 보관한 창고가 있었다 하여 '창말(창고마을)'이라 했다가

이웃 원정과 합쳐져 창원이 되었다고 한다.

 

183784244C0FF5602E792F

↑ 창원마을 김동현 이장

 

창원에는 진주에서 오랫 동안 환경운동을 하다 4년 전 창원으로 들어온 김석봉 님(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가 산다.

김석봉 님은 지리산만인보와의 만남에서 삶의 양식을 바꾸지 않으면 대규모 개발 사업은 필연적이라고

우리 모두 성장, 물질, 1등 중심 사회에서 소외될까봐 삶의 진정한 가치를 찾지 못하는 건 아닌지 되돌아봤으면 한다 하였다.

 

그는 지리산자락의 촌부이고 싶어 했다.

고사리가 나는 철에는 고사리를 끊고, 돌배가 익는 계절엔 돌배를 따러 다니고,

고추와 수박 농사를 잘 지어서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그렇게 살고 싶어 했다.

그를 집회와 강연회 장이 아닌 밭과 산에서 보고 싶은 건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173784244C0FF5602D61D7

↑ 4년전 창원마을로 내려온 김석봉 님

 

창원마을회관을 출발하여 숲길, 밭길, 논길을 걸으면 금계마을이 나온다. 

매동에서 하루를 시작하여

풀과 나무에 눈길을 주고, 이분, 저분과 이야기하며 걸었다면 금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스름 저녁일 것이다.

 

133C2F414DE6010F1BA11E

 

1936E1414DE6010F2BF6CA

 

금계에 있는 마천 초교 의탄 분교 터에는 지리산둘레길 함양 안내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화장실이 세워지고, 주차도 할 수 있어 걷는 이들은 편해졌으나 이런저런 건물이 들어서며 정감어린 모습을 잃어버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매동부터 중황을 거쳐 등구재를 넘어 창원, 금계까지 오는 길은 지리산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이 길을 비 온 뒤에 걸으면 구름과 노니는 지리산을 볼 수도 있다.

이 길은 지리산을 바라볼 수 있어 사는 사람도 행복하고 걷는 사람도 행복한 길이다.

사람만이 아니라 풀과 나무도 행복한 길이다. 

 

163784244C0FF55F2B9307

 

146B341A4C118FD36F87AC

 

146B341A4C118FD470747E

 

156B341A4C118FD471222F

 

글 윤주옥/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처장, 사진 허명구, 윤주옥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윤주옥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현장 감시와 정책 개발을 통한 국립공원의 대표적 파수꾼이다. 현재 전남 구례에 거주하며 지리산과 섬진강 일대의 자연을 섬세한 감성으로 그려낸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windjuok@hanmail.net      
블로그 : http://plug.hani.co.kr/windjirisan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설악산이 뚫리면, 국립공원은 모두 무너진다설악산이 뚫리면, 국립공원은 모두 무너진다

    윤주옥 | 2015. 07. 27

    설악산은 5중 보호구역, 이곳 허용하고 다른 국립공원 케이블카 못 막아 대청봉 연계 등반 뻔한데 양양군은 다른 코스 등반객 하산 이용도 추진   지난 6월24일부터 한 달 넘게 세종시 환경부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나는 ...

  • 겨우 6km 떨어진 곳 또 케이블카라니겨우 6km 떨어진 곳 또 케이블카라니

    윤주옥 | 2015. 01. 29

    얼음골케이블카 상부정류장 옆 6㎞ 지점, 환경성 경제성 때문에 반려 뒤 3번째 시도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에 돌풍 심한 곳…머리 맞대고 다른 방법 찾아볼 수 없나   도대체 자연공원은 무엇인가? 이미 케이블카를 건설한 경남 밀양에 이어 건...

  • 등산객 교통수단 전락한 케이블카, 사자평 훼손 가속등산객 교통수단 전락한 케이블카, 사자평 훼손 가속

    윤주옥 | 2014. 11. 06

    등산객들 케이블카 타고 상부 승강장과 전망대 오른 뒤 등산로로 옮겨 가 등산객 폭주로 사자평 등 생태계 파괴 벌어져…7일 도립공원위서 양성화 심의    내일(11월7일) ‘경상남도 도립공원위원회’가 가지산 도립공원의 얼음골 케이블카와 ...

  • 지리산 선교사 별장 얽히고 설킨 논란지리산 선교사 별장 얽히고 설킨 논란

    윤주옥 | 2014. 06. 26

    반달가슴곰 서식하는 국립공원 핵심 지역, 등록문화재 지정하면 지리산 훼손 불 보듯 내셔널트러스트는 문화유산상 줘, 생태적 가치와 지역사회 아픈 기억 고려해야     2004년쯤으로 기억된다. 한 대학 교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리산...

  • 우주인을 꿈꿨던 뱀사골 토박이의 삶과 한우주인을 꿈꿨던 뱀사골 토박이의 삶과 한

    윤주옥 | 2013. 01. 03

    야생벌 쳐 결혼하고, 부족하지만 행복했던 50년 산속 생활 이도저도 못하게 하는 국립공원 규제…주민도 자연도 사는 방안 없나   춥고 눈 많은 겨울날, 지리산 북쪽에 있는 남원 산내 부운마을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가을 ‘지리산 국립공원...

인기글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