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수 척추동물 그린란드상어, 150살 성숙 400년 살아
찬 북극해 서식 7m까지 자라는 느린 최상위 포식자
수정체 단백질 탄소연대측정으로 나이 미스테리 풀려
» 그린란드 북부에서 연구선 산나가 방류한 그린란드상어가 물속으로 헤엄쳐 들어가고 있다. Julius Nielsen
차가운 북극해에서 암컷 상어가 태어난 것은 아마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나고 광해군이 즉위한 17세기 초였을 것이다. 그로부터 150년쯤 지나 정조가 즉위하고 미국에서 독립혁명이 일어났을 무렵 이 상어는 성숙해 첫 짝짓기를 했을 것이다. 다시 250년쯤 지난 뒤 북대서양 어선의 그물에 걸리면서 이 장수 물고기의 운은 다했다.
율리우스 닐센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 해양생물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2010~2013년 동안 북대서양에서 부수 어획으로 잡힌 그린란드상어 28마리를 대상으로 나이를 추정했다. 이들이 밝힌 그린란드상어가 ‘지구에서 가장 오래 사는 척추동물’이란 이 연구 결과는 12일 치 과학저널 <사이언스>의 표지 논문으로 실렸다.
» 북극해의 찬 바다에 서식하는 최상위 포식자 그린란드상어. Julius Nielsen
상어 가운데 가장 큰 축으로 7m까지 자라는 그린란드상어는 가장 추운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로 주로 물고기와 물범 등을 잡아먹는다. 느린 동작과 뚱뚱한 몸집, 그리고 독이 있는 살 등 여러 면에서 독특한 이 상어의 최대 미스터리는 나이였다.
해양 연구자들은 1936년 이 상어를 잡아 표지를 한 뒤 1952년 다시 붙잡았는데 길이는 연간 0.5~1㎝밖에 늘지 않았다. 성체로 자라려면 200년은 걸린다는 추정이 나왔지만 정확한 나이는 수수께끼로 남았다.
보통 물고기의 나이는 머리에 들어있는 이석으로 측정한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연륜이 들어있다. 그러나 상어에는 이석도, 축적된 석회질 조직도 없다.
연구자들은 상어 눈의 수정체를 정밀하게 조사하는 방식을 이번 연구에 적용했다. 일차적인 잣대 구실을 한 것은 냉전기 대기권 핵실험이었다.
» 그린란드에서 태그를 붙인 뒤 방류한 그린란드상어가 깊은 바다로 향하고 있다. Julius Nielsen
1950년대 불붙은 대기권 핵실험은 방사성물질이 생태계 먹이사슬을 타고 농축됐다. 북대서양에서 그 농도는 1960년대 초 피크를 이뤘다.
연구자들은 방사성동위원소인 탄소-14의 농도가 가장 높게 나타난 그린란드상어 2마리는 1960년대 초 이후에 태어났고 이들보다 약간 낮지만 다른 상어들보다 높은 한 마리는 1960년대 초에 태어난 것으로 보았다.
나머지 25마리는 적어도 50년 이상 된 셈이다. 그 나이를 측정하는 데는 탄소연대측정 방법을 동원했다.
수정체에는 태어난 뒤부터 단백질이 켜켜이 쌓이는데 단백질을 이루는 탄소 동위원소의 비율을 통해 연대를 측정하는 것이다. 단백질에 들어있는 탄소의 방사성 붕괴를 측정해 연대를 추정했다.
그 결과 가장 큰 502㎝ 길이의 상어는 적어도 272살 많게는 512살(대표값 392살)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493㎝ 길이의 상어 나이는 335~392살인 것으로 추정했다.
» 한 연구선이 그린란드에서 다른 어종을 잡기 위해 친 그물에 걸린 그린란드상어. 번식률이 낮은 이 상어에게 부수 어획은 큰 위협이다. Julius Nielsen
그린란드상어는 길이가 4m는 돼야 성적으로 성숙하므로 나이가 적어도 156살이 돼야 번식에 나선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이런 결과를 통해 그린란드상어는 알려진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장수동물임을 알 수 있다”며 “또 (이렇게 늦게 번식을 하고 또 종종 부수 어획되기 때문에) 이 종의 보전에 우려를 낳는다”라고 밝혔다.
그린란드상어는 국제자연보호연맹(IUCN) 적색목록에 `준 위협 종'으로 지정돼 있다. 성장이 느려 남획에 취약하지만 정확한 정보가 부족해 멸종위기종에 미처 넣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상어는 과거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그린란드가 간유 채취를 위해 대량으로 잡았고, 최근엔 새우, 넙치 등을 잡는 어선에 부수 어획으로 잡히고 있다. 적색목록은 과거 남획과 최근의 부수 어획 피래가 상어 집단에 끼친 영향에 대한 연구가 시급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번 연구로 그린란드상어는 척추동물 가운데 최장수 타이틀을 얻게 됐지만 대상을 ‘동물’로 넓히면 챔피언은 다른 데 있다. 아이슬란드의 대합조개 일종인 ‘밍’은 건져 올린 뒤 확인한 나이가 507살이었다.
» 아이슬란드 북부 해안에서 2006년 잡아올린 대합조개의 일종. 중국 명 왕조부터 살았다고 해서 `밍'이란 이름이 붙였다. 조개껍질의 나이테를 세어본 결과 507살로 추정됐다.
다른 장수동물로는 마찬가지로 찬 바다에서 느린 삶을 사는 북극고래가 야생에서 211살까지 살았고, 세인트 헬레나 섬에는 180살 이상인 세이셸큰거북 한 마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최장수 인간 기록은 프랑스 여성 잔 칼망(1875~1997)으로 122살의 천수를 누렸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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