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한국표범 가죽서 복원 가능성 확인

조홍섭 2020. 06.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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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르표범과 유전자 동일 판명…포식자 복원하면 감염병 막아


l1.jpg » 지리산에서 1935년 잡힌 한국표범의 가죽. 여기서 채취한 디엔에이를 분석한 결과가 나왔다. 몸길이 112㎝, 꼬리 길이 80㎝이다. 우두성 지리산 자연 환경생태 보존회 회장 제공.

1935년 전북 남원군 산내마을 주민들은 인월장을 보고 돌아오던 길에 지리산 바래봉과 백운산 사이 계곡에서 호랑이를 만났다. 인월읍에서 양조장을 운영하던 최 씨는 이 소식을 듣고 몰이꾼과 사냥개를 동원해 호랑이 사냥에 나섰다. 목을 지키던 최 씨 눈앞에 불쑥 나온 것은 호랑이가 아닌 표범이었다. 최 씨가 쏘아 잡은 이 표범은 남한에서 가죽을 남긴 유일한 표범이다.


이 표범 가죽에서 채취한 디엔에이(DNA)를 분석한 결과 러시아 연해주에 서식하는 아무르표범과 동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다시 말해, 1970년 이후 한반도 남쪽에서 사라진 표범 일부는 여전히 살아 있고, 이들을 통해 남한에 표범을 복원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한국범보전기금(대표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은 우두성 지리산 자연 환경생태 보존회 회장이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최 씨 집안과 접촉해 2014년 지리산 표범의 표본을 구입해 이번 연구에 사용했다.


가죽 달린 발톱서 유전자 추출


이 교수팀은 과학저널 ‘피어 제이’ 5월 12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지리산 표범에서 추출한 디엔에이를 바탕으로 계통 유전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한국표범은 아무르표범과 동일한 아종으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이제까지 남한의 표범은 지리적 분포나 형태에 비추어 아무르표범과 동일한 아종일 것으로 추정됐지만, 유전적 증거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l2.jpg » 한국표범은 세계 표범 9개 아종 가운데 가장 심각한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한반도는 일제강점기인 1919∼1942년 사이 주민에게 해를 끼친다는 이유로 포획한 수만도 624마리에 이를 정도로 표범의 밀도가 높은 곳이었다. 그러나 고기와 뼈까지 한약재로 쓰여 표범의 표본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한국 마지막 표범 뱀 가게에 팔렸다). 이 교수는 “오래된 가죽에서는 디엔에이가 잘 안 나오지만, 이 표본의 발톱과 이어진 뼈 부위에서 추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표범은 세계의 9가지 표범 아종 가운데 가장 심각한 멸종위기에 놓여 있으며, 현재 북한과 접경지역인 러시아 연해주 ‘표범의 땅 국립공원’의 서식지를 중심으로 중국 북동부와 북한 등에 100마리 미만이 분포하고 있다.


이 교수팀은 2012년 한반도의 호랑이가 아무르호랑이(시베리아호랑이, 백두산호랑이, 한국호랑이)와 유전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이 교수는 “이번 연구로 한반도의 범(표범과 호랑이)이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동북부의 범과 하나라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일제강점기의 사람처럼) 한반도의 범이 연해주와 만주로 쫓겨가 망명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l3.jpg » 세계의 표범 서식지. 초록은 현 서식지, 연두색은 서식 가능, 노랑은 절종 우려, 회색은 과거 서식지. 현지연. 현 서식지, 연두색은 서식 가능, 노랑은 절종 우려, 회색은 과거 서식지. 이항 외 ‘피어 제이’(2020) 제공

한국표범 복원 첫 단추


세계보전연맹(IUCN)은 지역적으로 절멸한 동물을 재도입하기 위한 지침에서 “유전적으로 동일한 집단에서 들여와야 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이번 연구는 한반도에서 절멸한 호랑이와 표범의 복원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 교수는 “한국표범 복원의 첫 단추를 끼운 셈”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 첫걸음으로 연해주 표범이 두만강을 건너 북한으로 확산하는 것을 꼽았다. 현재 표범의 땅 국립공원 표범은 30마리이던 개체수가 80마리로 느는 등 개체수가 빠르게 늘어 중국 쪽으로 퍼지고 있다. 북한 쪽에 생태통로가 마련된다면 두만강과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이동이 가능해진다.


야생 표범이 아니라도 복원할 방법은 있다. 한국표범은 야생에서보다 2배나 많은 개체가 동물원 등에 살고 있다. 세계 88개 시설에서 209마리가 철저한 혈통관리를 받으며 인공증식되고 있다.


실제로 북한을 통하지 않고 인공증식한 한국표범을 비무장지대 동쪽 산악지역에 복원하는 방안이 연구되기도 했다(한국표범 복원이 두만강과 DMZ 수호신 될까). 그러나 이 교수는 “대형 포식자의 복원은 다뤄본 경험이 없어 당장 실현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오히려 연해주의 한국표범 보전에 신경 쓰고, 러시아와 표범 보전을 위한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것이다.


l4.jpg » 한국표범의 마지막 번식지인 러시아 연해주 ‘표범의 땅 국립공원’ 시설과 전경.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포식자가 감염병 막아 준다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를 복원하는 것은 코로나19 같은 인수공통감염병을 막는 근본대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교수는 “호랑이와 표범이 사는 연해주에는 남한보다 멧돼지 밀도가 훨씬 낮고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돌지 않는다”며 “최상위 포식자가 사람이 깨뜨린 생태계 균형을 되살리는 조절자 구실을 해 대규모 감염병을 막아 준다”고 말했다.


인용 저널: PeerJ, DOI: 10.7717/peerj.8900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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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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