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개나무는 산양이 ‘낳아’ 기른다
국립공원종복원센터, 월악산에 방사한 산양의 배설물 연구에서 드러나
단단한 씨앗이 소화관 거치면서 싹트기 좋은 상태로 바뀌어

월악산에 방사해 증식한 산양 암컷. 국립공원종복원센터 제공
월악산국립공원에 산양 16마리(2마리는 회수)를 방사해 복원을 추진중인 국립공원종복원센터 연구원들은 산양의 목에 발신기를 부착하고 그들의 먹이에서 배설물까지 빠짐없이 관찰하고 기록한다. 현재 산양은 26마리로 불었고, 관찰기록도 두툼하게 쌓였다.
그 가운데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다. 겨울철 산양의 똥 자리에서 배설물을 분석했더니 헛개나무의 씨가 잔뜩 들어있었고, 봄철에는 거기서 많은 헛개나무 싹이 돋아났다는 것이다.

산양 배설물에서 돋아나고 있는 헛개나무. 산양의 소화과정에서 헛개나무의 발아가 촉진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국립공원종복원센터 제공

산양 배설물. 단단한 껍질에 둘러싸인 헛개나무 씨앗이 소화과정에서 손상되지 않은 채 배설된다. 국립공원종보존센터 제공
이용욱 국립공원종복원센터 산양복원팀장은 산양과 헛개나무 씨앗의 발아 사이엔 뭔가 관련이 있다고 판단하고 실험에 나섰다.
모판에 배설물 속 헛개나무 씨앗을 600개 심고, 다른 모판엔 같은 월악산에서 수집한 산양이 먹지 않은 씨앗 600개를 심어 비교했다. 그랬더니 산양의 소화관을 거쳐 배설된 헛개나무 씨앗의 32.5%에서 싹이 튼 반면 산양이 먹지 않은 씨앗의 발아율은 0.8%에 그쳤다. 발아율 차이가 무려 40배에 이르렀다.
배설물에서 추려낸 씨앗을 따로 심는 실험 모습. 국립공원종복원센터 제공.
헛개나무의 씨앗은 껍질이 두꺼워 발아율이 낮기로 유명하다. 최근 알코올성 간 손상을 개선하는 약용식물로 인기가 높은 이 나무를 발아시키기 위해 황산으로 씨앗 껍질을 부식시키는 방법을 쓰고 있다.
이 팀장은 “산양이 헛개나무 열매를 먹고 되새김질을 하는 동안 씨앗의 두꺼운 껍질이 산양의 위산 등에 의해 소화돼 종자발아를 촉진시켰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산양 똥은 헛개나무에겐 '자궁'
이번 실험에서 흥미로운 것은, 산양의 배설물에 들어있는 째로 헛개나무 씨앗을 심었을 때 발아율이 48.3%로 배설물에서 씨앗만 끄집어 내 심었을 때의 발아율 16.6%보다 월등히 높았다는 사실이다.
이 팀장은 그 이유로 배설물 속에 영양분과 함께 어떤 분해 세균이 있는데, 이것이 헛개나무 씨앗 껍질을 더 빠르게 분해시켰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 실험에서 배설물이 수분을 오래 간직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결국 배설물은 헛개나무 씨앗이 싹을 터 자랄 모든 조건을 잘 갖춘 어머니 태아와 비슷한 여건을 제공하는 셈이다.
헛개나무는 중부지방 계곡이나 산 사면의 비교적 높은 곳의 돌 틈에서 드물게 자라며 월악산과 설악산에 특히 많다. 헛개나무가 많은 곳은 우리나라에서 산양이 비교적 많이 사는 곳이기도 하다.

이용욱 팀장이 월악산에서 산양의 생태를 조사하기 위해 무인 사진기를 설치하고 있다. 국립공원종복원센터 제공.
헛개나무 열매는 향긋하고 단 맛이 강해 산양뿐 아니라 너구리, 담비 등도 즐겨 먹는다.
이 팀장은 산양과 헛개나무의 이런 관계는 공진화 이론에 맞는 사례로 포유동물에선 우리나라에서 처음 밝혀졌다고 말했다. 산양이 자신의 먹이를 번성하게 하고 퍼뜨려 결국 산양 자신에게도 이익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산양은 겨울철 양지 바른 절벽이나 능선에서 되새김질을 하면서 한 곳에 배설을 하는데, 이런 곳에서 헛개나무가 집중적으로 자라난다.

산양의 똥 자리. 겨울철 양지 바른 곳에서 되새김질을 하며 한 곳에서 배설을 한다. 국립공원종복원센터 제공.
산양이 헛개나무 종자 발아율에 끼치는 영향에 관한 이번 조사결과는 <한국환경생태학회지> 최근호에 실렸다.
이 팀장은 “이번 연구로 종 복원이 단순히 멸종위기종을 늘리는 것 뿐 아니라 식물 등 자연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주어 생태계 안정에 기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연의 섭리란 인간의 기술보다 효율적이며 과학적"임을 이번 연구를 하면서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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