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움직이는 연어의 섹스’, 산란 행동이 경관 바꿔

조홍섭 2017.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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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란장이 하천바닥 침식 가속해
수백만년 지속하면 지형이 달라져

y1.jpg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샤스타 산 계곡에 연어가 번식을 위해 돌아왔다. 이곳 경관을 만드는 데 수백만년 동안 계속된 연어의 산란행동이 큰 구실을 했다. 칼슨 제프리스 제공.

물리환경의 변화는 생물의 분화를 촉진한다. 높은 산이 솟아 강을 둘로 나누면 양쪽의 물고기는 고립돼 오랜 세월 뒤 서로 다른 종으로 진화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물은 주변의 물리환경을 어떻게 바꿀까. 강에 비버가 살게 되면 쓰러진 나무가 댐을 이뤄 유속이 느려지고 습지가 생긴다.
 
3억년 전 나무가 지구에 처음 등장했을 때 더 큰 규모의 변화가 일어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강물은 강둑을 자유자재로 허물며 넓고 얕게 흘렀다. 그러나 나무가 강둑에 뿌리를 내려 토양을 움켜쥐자 상황이 달라졌다. 강둑이 단단해져 강물은 바닥을 팔 수밖에 없었고 강물의 흐름은 좁게 고정됐다. 강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강물 속에 사는 연어는 해마다 산란기 때 땅을 파 둥지를 만든다. 태곳적부터 이어져 온 이 행동이 산간 계곡의 경관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미국 연구자들이 모델링을 통해 얻은 결론은 과학저널 <지형학> 최근호에 실린 논문 제목처럼 놀랍다. “산을 움직인 섹스: 물고기의 산란이 지질학적 시간 규모로 강의 형태에 끼친 영향”. 

y2.jpg » 연구 책임자인 알렉스 프레미어 미국 워싱턴주립대 교수가 낚시로 잡은 무지개송어를 들어 보이고 있다. 송어도 연어와 마찬가지로 하천 상류에 둥지를 틀면서 지형을 변화시킨다. 칼슨 제프리스 제공.

신생대 마이오세 중기부터 플라이오세 초기 사이(약 1500만∼500만년 전) 북아메리카 태평양 해안에는 조산운동이 일어났다. 해안을 따라 산맥이 솟아오르면서 강물의 물고기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때까지 유럽과 같은 대서양 연어가 살았지만 고립된 하천에 적응하면서 5종의 새로운 연어가 생겨났다. 연구자들은 새롭게 등장한 연어가 강변 경관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봤다.
 
알을 낳기 위해 바다에서 모천으로 회귀한 연어 암컷은 잔자갈과 모래가 깔린 계류의 적당한 장소를 고른 뒤 꼬리지느러미를 쳐 바닥을 파낸다. 움푹 팬 둥지에 알을 낳고 수컷이 방정한 뒤 암컷은 파낸 모래와 자갈을 지느러미를 이용해 덮는다. 수많은 연어가 산란하고 나면 강바닥은 고운 퇴적물이 줄어들고 거친 모래와 자갈이 느슨하게 쌓인 형태로 바뀐다. 연구 책임자인 알렉스 프레미어 미국 워싱턴주립대 교수는 “연어는 단지 퇴적물을 옮겨놓을 뿐 아니라 강바닥의 특성을 바꿔놓아 홍수가 나면 모래와 자갈이 훨씬 쉽게 이동하게 한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s1.jpg » 강철머리연어 암컷이 꼬리 지느러미로 산란터를 파는 모습. 존 요르옌센 제공.

s2.jpg » 왕연어가 최근 만든 산란터. 밝게 보이는 부분이다. 제이 디 리치 제공.

연어의 산란 과정에서 퇴적물 사이의 결합이 느슨해져 기반암을 보호하던 기능이 사라진다. 강바닥의 침식이 가속되어 장기적으로 계곡의 경관 전체가 바뀌게 된다. 홍수 때 씻겨내려 가는 퇴적물의 55%가 연어의 산란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연어 종에 따라 강바닥 침식의 양상도 달라진다. 연어 가운데 덩치가 가장 큰 왕연어는 더 큰 자갈을 파헤치고, 은연어는 훨씬 잔자갈과 모래를 주로 움직인다. 프레미어 교수는 이런 차이가 침식률의 차이를 불러 장기적으로 전혀 다른 경관을 낳는다고 밝혔다.

s3.jpg » 연어가 없는 하천 바닥(A). 잘 다져진 퇴적물의 빈틈에는 고운 퇴적물이 쌓여 있다. 연어 산란터의 하천 바닥 구조(B). 미세한 퇴적물이 떠내려 가고 거친 입자만 남아 바닥의 기반암을 보호하지 못한다. 알렉스 프레미어 외(2017)

연구자들은 다양한 연어의 산란이 500만년 동안 계속되는 상황을 컴퓨터를 이용해 모의 조작한 결과 실제로 경관에 커다란 변화를 부르는 것을 확인했다. 둥지를 만드는 작은 교란은 하천의 침식을 늘리고 이 변화가 오랫동안 쌓여 유로 자체를 바꿔놓는다는 것이다. 모델링 결과 연어가 산란하는 하천의 경사와 해발고도가 차츰 낮아졌다. 그 결과 강변을 따라 강둑은 더욱 가팔라졌고, 이는 침식을 가속했다. 연어가 산란하는 곳의 하상이 침식으로 깎여나가면, 4대강 사업에서 보는 ‘역행침식’처럼 그 여파는 하천 상류로 퍼져나갔다. 결국 연어의 산란은 산을 움직이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지형을 바꾸는 습성을 지닌 생물의 존재는 장기적으로 대규모 침식과 경관 변화를 낳게 된다”며 “여러 종이 다양한 크기의 입자를 움직이면 지형변화는 더 커진다”라고 논문에서 설명했다. 지질변화가 새로운 종을 낳고, 생물종은 다시 물리환경을 변화시키면서 새로운 종의 서식지를 만들어낸다. 연구자들은 이런 점에서 연어를 ‘생태계 엔지니어’라고 불렀다. 물론 하천 경관을 결정하는 것은 연어만이 아니라 지반 융기, 빙하기와 간빙기 등 다른 지질학적 요인도 작용한다.
 
만일 연어가 없던 하천에 이들을 풀어놓거나, 반대로 댐 건설이나 서식지 파괴 등으로 서식하던 연어가 사라진다면 지질학적 시간이 흐른 뒤 그곳의 경관은 전혀 다른 것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라고 연구자들은 지적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Alexander K. Fremier, Brian Yanites, Elowyn M. Yager, Sex that moves mountains: The influence of spawning fish on river profiles over geologic timescales, Geomorphology (2017), doi:10.1016/j.geomorph.2017.09.033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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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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