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 홍어는 열수분출구를 부화기로 쓴다

조홍섭 2018. 03. 13
조회수 12432 추천수 1
수온 3도 갈라파고스 심해, 알집 157개 발견
4년 걸리는 부화 기간 단축 위해 열수 이용

태평양흰홍어-Bathyraja-1.jpg » 알집을 열수분출구 근처에 낳아 부화에 도움을 받는 사실이 밝혀진 태평양흰홍어.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1977년 해양학자들은 동태평양의 갈라파고스 제도 북쪽 심해에서 역사적인 발견을 했다. 유인잠수정 앨빈호를 타고 해저 2000m까지 잠수한 이들은 해저 지층이 갈라진 틈에서 분화물질이 뿜어나오는 열수분출구와 그 주변에 펼쳐진 독특한 생태계를 발견했다. 지층의 균열을 통해 뜨거운 물과 각종 미네랄로 이뤄진 분화물질이 검은 연기처럼 뿜어나왔고, 햇빛 한 줄기 비치지 않는 찬 바다에서 이 화학물질을 기반으로 거대한 관벌레와 조개, 눈 없는 새우, 게 등이 번성하고 있었다. 심해저 열수분출구는 지구에 생명이 처음 탄생한 후보의 하나로 꼽힌다.

Riftia_tube_worm_colony_Galapagos_2011-1.jpg » 1977년 처음 발견된 갈라파고스 리프트의 열수분출구에 발달한 생태계. 거대 관벌레 등이 보인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첫 발견 이후 40년이 지났지만 심해 열수분출구 생태계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고 새로운 발견이 잇따른다. 열수분출구가 황량한 심해저에 드문드문 생명의 불을 켠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로 알려졌지만, 주변 해양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맺기도 한다는 발견이 최근 이뤄졌다. 심해 홍어인 태평양흰홍어가 열수분출구를 천연 인큐베이터로 이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41598_2018_20046_Fig1_HTML.jpg » 동태평양 갈라파고스 제도 북쪽에서 두 개의 해양지층 벌어지는 갈라파고스 리프트(녹색 선)와 열수분출구 위치(붉은 점). 살리나스 데 레옹 외, 사이언티픽 리포츠(2018) 제공.

펠라요 살리나스 데 레옹 에콰도르 찰스다윈연구소 연구원 등 국제 연구진은 갈라파고스 리프트 해역을 무인잠수정으로 조사해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고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츠’ 2월 8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연구자들은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나오듯이 격렬하게 활동하는 수심 1660m 열수분출구 근처에서 157개의 심해 홍어 알집을 발견했다. 알집은 대부분 분출구에서 20m 안쪽에 있었는데, 갓 낳은 신선한 것과 함께 오랜 기간이 지난 듯 부착물질이 붙은 것들도 눈에 띄었다.

41598_2018_20046_Fig3_HTML-3.jpg » 심해 열수분출구에 집단 산란한 심해 홍어의 알집(왼쪽)과 무인잠수정으로 채집하는 모습. 살리나스 데 레옹 외, 사이언티픽 리포츠(2018) 제공.

태평양흰홍어는 수심 800∼2938m에 사는 대표적인 심해 홍어로 1.5m 크기로 자라며 수정된 알을 주머니 상태로 낳는다. 이 알은 부화 기간이 길기로 유명한데, 이 홍어의 가까운 친척인 베링 해 심해 홍어의 알은 수온 4.4도에서 1290일(3.5년)이 지나야 부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자들은 심해의 수온이 2.76도인 갈라파고스에서 홍어 알이 깨는 데는 1500일(4.1년)이 걸릴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자들은 “찬 바다에서 장기간의 부화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주변보다 온도가 높은 열수분출구 근처에 심해 홍어가 산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잠수정이 알집이 있는 바닥에서 3.5m 위에서 측정한 수온은 주변보다 1도가량 높았다. 분출구 1m 이내의 알주머니의 경우 주변보다 4.5도 수온이 높았다. 연구자들은 “알집이 있는 지점의 수온은 측정한 것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열수분출구의 수온은 60∼464도에 이르러 너무 접근하면 치명적일 수 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Pelayo Salinas-de-León et al, Deep-sea hydrothermal vents as natural egg-case incubators at the Galapagos Rift, Scientific Reports volume 8, Article number: 1788 (2018)
doi:10.1038/s41598-018-20046-4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요즘 같은 기후변화가 사상 최악 멸종사태 불렀다요즘 같은 기후변화가 사상 최악 멸종사태 불렀다

    조홍섭 | 2018. 12. 07

    수온 10도 상승, 신진대사 빨라지는데 산소농도는 낮아져 떼죽음적도보다 고위도 지역 멸종률 커…현재 지구온난화와 같은 메커니즘적도 바다의 수온이 10도나 높아졌다. 바닷속의 산소농도는 80%나 줄었다. 삼엽충 등 바다 생물들은 숨을 헐떡이며 ...

  • 쥐라기 어룡, 온혈동물로 위장 색 띠었다쥐라기 어룡, 온혈동물로 위장 색 띠었다

    조홍섭 | 2018. 12. 06

    피부 화석 정밀분석 결과 지방층·색소 분자 확인깊고 찬물서 사냥, 태생…피부는 고래처럼 매끈원시 포유류 일부는 육지를 버리고 바다로 가 돌고래로 진화했다. 포유류가 출현하기 훨씬 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파충류의 조상 중 일부가 바...

  • 물고기는 왜 낚시를 못 피하나, 구석기 때부터 쭉물고기는 왜 낚시를 못 피하나, 구석기 때부터 쭉

    조홍섭 | 2018. 12. 04

    낚시·그물·함정 등 어구는 감지·인식·학습 불허하는 ‘슈퍼 포식자’진화시킨 포식자 회피법 무력화…“물고기가 회피·학습하는 어업 필요”인류는 구석기 시대부터 물고기를 주요 식량으로 삼았다. 수 오코너 오스트레일리아 고고학자 등은 2011년 동남...

  • 젖 먹여 새끼 키우는 거미가 발견됐다젖 먹여 새끼 키우는 거미가 발견됐다

    조홍섭 | 2018. 12. 03

    중국서 포유동물 비견되는 깡충거미 육아 행동 발견젖에 우유보다 단백질 4배…수유가 생존율 높여‘포유류’는 새끼가 자라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젖을 먹여 기르는 동물을 가리킨다. 특히 사람처럼 오래 사는 사회성 포유류는 이런 육아 ...

  • 혹등고래 거대한 입을 함정으로, 새 사냥법 확산혹등고래 거대한 입을 함정으로, 새 사냥법 확산

    조홍섭 | 2018. 11. 30

    물새에 쫓긴 물고기떼 입속을 피난처로 착각캐나다 밴쿠버 집단서 4년 새 20여 마리가 학습혹등고래는 길고 독창적인 노래와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행동으로 유명한 수염고래이지만, 사냥 방법 또한 다양하고 독창적이다. 여러 마리가 바닷속에서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