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킬로 고향 하천 돌아와, 먹지도 않고 사랑 몰두 

황선도 2015.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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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도 박사의 연어 이야기 ① 알래스카서 돌아온 방랑자

 

자기장 감지해 회귀한 뒤 냄새로 고향 하천 찾아가, 귀향 날짜까지 정확해

바다서 비축한 체력으로 산란에 매진, 입벌리고 파르르 떨면서 절정 맞은 뒤 죽어

 

16335492972_b5bb57dbf2_z.jpg » 산란장에 도착한 은연어 수컷이 구부러진 턱과 붉게 물든 몸 빛깔로 짝짓기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사진=미국 내무부 토지관리국, 오레곤-워싱턴
 
젊은 시절 잘나갈 때 노래방에서 내 18번은 강산에의 <라구요>였다. 술이 취해 올라가지도 않는 목청을 온몸으로 끌어올려 부르던 노래. 고향을 가고 싶어도 못가는 실향민인 아버지와 어머니를 그리는 그 노래가 왜 이리도 구슬펐던지.
 
그러다 같은 가수의 노래 목록에서 발견한 노래가 있었으니,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이었다. 명색이 물고기 박사라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강박관념으로 이 노래를 불렀다.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신비한 이유처럼…”,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를 부르다 보면 왠지 힘이 불끈 솟아오른다.
 
그냥 노래만 부르고 즐기면 되지, 여기서도 직업병이 발동한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의 습성은 소상(강 오름)이지?, 강하(강 내림)하는 뱀장어와는 반대 방향의 회유 습성을 가졌구나. 그럼 삼투압 조절은 어떻게 다를까? 강산에가 본 저 연어는 어떤 종일까?

sa1.jpg » 우리나라 동해안 하천에서 산란하기 위해 회유하고 있는 연어. 사진=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FIRA) 양양연어사업소

  
아마도 강산에가 본 연어는 태백준령의 어느 강에서 태어난 어린 새끼가 동해바다로 내려가 2~5년 동안 멀리 북태평양을 여행하다가 어른이 되어서는 자기가 태어난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는 실향민이었을 것이다. 그 연어는 자기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아빠를 만나 사랑을 하고 꼭 자기를 닮은 자식을 낳는 왕복성 어류로 모천회귀를 하였던 것이다.
 
연어는 한번 산란하면 죽는다. 그것을 모를 리 없을진대, 이렇게 일생에 한번 산란을 하기 위해 거센 물살을 치열하게 거슬러 올라오는 광경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이 정도면 강산에의 질문에는 답을 한 셈이다. 그러나 아직도 바다에서 모천으로 산란회유할 때 어떠한 요인들에 의해 정확히 목표지점을 찾아가는가는 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연어의 생태에서 가장 큰 특징은 자기가 태어난 하천으로 산란하러 되돌아온다는 것과 한번 산란한 다음에는 죽는다는 것이다. 길고 긴 바다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모천회귀하는 능력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01212360_R_0.JPG » 강원도 양양 남대천에서 양양연어사업소 관계자가 회유해 온 연어를 인공증식하기 위해 포획하고 있다. 사진=양양/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이러한 의문은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흥미있는 문제로 제기되어 왔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이 있는데, 첫째로 제기된 설은 연어의 회귀능력이 환경자극에 대한 유전적인 반응이라는 것으로 어떤 회로가 염색체에 내포되어 있다는 학설이다.
 
이는 연어가 하천으로 돌아오는 날짜를 비행스케줄처럼 정확하게 예견할 수 있다는데 근거를 두었다. 즉, 같은 계군의 연어가 모천으로 회귀하는 날짜는 앞 세대가 회귀한 날짜와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태양의 위치나 천체의 특징을 이용한다는 설을 들 수 있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연어를 북태평양의 여러 지점에 방류하여도 몇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모천으로 돌아오는 것을 볼 때 나침반과 같은 탐지 능력을 몸속에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태양 콤파스 설 역시 연어가 야간에도 이동을 계속하는 것으로 봐서는 정설이 될 수는 없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연어는 모천을 찾아올 수 있는 후각이 발달해 있다는 설이 있는데, 이 설은 연어의 코를 막는 실험을 통하여 과학자들은 연어가 태어났던 하천 가까이에 오면 헤엄치는 방향을 결정하기 위하여 후각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01212355_R_0.JPG » 강원도 양양 남대천에 돌아온 연어들. 알래스카에서 먼 여행을 했다. 양양/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일단 모천수의 영향권 안에 진입하면 어린 시기 하천에 살 때 인지했던 모천수의 독특한 냄새를 찾아 회귀 연어 중 90% 이상이 모천으로 거슬러 오른다고 한다. 하천마다 각각의 독특한 화학 성분을 가지고 있고, 모천의 냄새를 기억하고 있는 연어는 개가 주인의 냄새를 잊지 않듯이 자기가 태어난 모천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회귀 본능은 연어의 종류에 따라 다른데, 어떤 놈은 돌아온 하천에서도 일정한 장소에만 산란하려고 하는 매우 강한 집착을 하기도 한다. 이것은 강의 지류마다 각각의 생물학적 특성이 있는 독립된 계군으로 번성하고 있는 사실로 미루어 알 수 있다. 그 원인으로는 우수한 종족이 번식을 위하여 종족 특유의 조건에 알맞은 산란장을 찾는 습성이 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일반적으로 어류는 해류의 움직임에 따라 일정한 회유경로가 정해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한류와 냉수성 연어의 회유에는 깊은 관계가 있는 것 같으나 해류만으로는 회유의 신비를 풀 수는 없는 것 같다. 그 밖에도 지구 자기의 흐름을 감지하여 이동한다는 자기 설이나 해수의 온도 또는 염분 차이를 감지하여 회유한다는 설들이 있으나, 아직 완전하게 설명을 하고 있지는 않다.

Dmitry Azovtsev_Grizzly_Bear_Fishing_Brooks_Falls_(flipped).jpg » 연어가 산란지로 거슬러 오르는 길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회색곰이 연어를 사냥하고 있다. 사진=Dmitry Azovtsev

  
이렇게 해서 모천으로 돌아온 어미 연어는 일단 강어귀 민물로 들어서게 되면 먹이를 먹지 않는다. 대신 그동안 연어 스스로 비축해 놓은 지방과 근육을 써서 산란 둥지를 만들고 경쟁자와 우열싸움을 하고 산란하는 데 매진한다.
 
암컷 연어는 모천에 도달하게 되면 깨끗한 모래와 자갈이 있는 수심 3m 이내의 알에 산소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초속 20㎝ 정도로 유속이 빠른 살여울을 찾는다. 산란하기에 적합한 장소를 찾아내면 꼬리가 다 헤지도록 자갈과 모래를 파내 50㎝ 깊이의 홈을 만들고 주변을 깨끗이 치운 뒤 산란 준비를 한다.
 
바다에서 민물로 들어오면서 연어에는 여러 생리적 변화가 생기는데, 밝고 화려한 혼인색을 띠게 된다. 곱사연어의 수컷은 등에 볼록하게 혹부리가 생기며, 위턱 또는 아래턱이 길어지면서 구부러져 갈고리 모양으로 휘고, 날카로운 송곳니가 생긴다.

sa5.jpg » 바다에 있을 때(위)와 하천에 회귀했을 때 홍연어의 변화. 그림=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국

 
수컷은 산란장을 만들고 있는 암컷에게 구애하기 위해 다른 수컷들과 서로 싸우는데, 힘이 센 놈이 암컷의 눈에 들어 첫날밤을 치르게 된다. 짝짓기를 하는 암수 연어들은 절정에 오르면 입을 벌리고 파르르 떨면서 사랑을 나누고는 곧 죽게 되니, 얼마나 격정적이고 아름다운 광경인지 부럽기까지 하다.
  
연어가 바다에서 강으로 모천회귀하는 것은 자손을 퍼뜨려 종족을 유지하려는 진화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어린 연어가 자기가 태어난 하천에서 그냥 살지 않고 그 먼바다로 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sa2.jpg » 연어의 수정란. 사진=김주경 FIRA 양양연어사업소 연구원

 

sa3.jpg » 알에서 깨어난 연어 새끼. 자립할 때까지 먹이가 될 난황주머니를 달고 있다. 사진=김주경 FIRA 양양연어사업소 연구원
 
물론 본능적인 습성이겠지만, 왜 그렇게 진화되었는가 궁금해 하는 것이 과학적 사고일 것이다. 이는 연어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섭취하여 산란을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한 생존전략이다. 좁고 얕은 하천과 강에서는 충분한 먹이를 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연어는 일생의 단 한 번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 광활한 대양으로 나가 평생을 실향민으로 방랑자로 산다.
 
그렇다면 연어는 얼마나 먼 거리를 어디까지 회유할까? 우리나라 연어는 캄차카반도를 지나 베링해에 들어가 살다가 알래스카만까지 회유한다.

 

sa4.jpg » 방류된 연어의 추정 회유 경로. 그림=Urawa et al. (2001)
 
거의 북태평양 가장자리를 왕복한다고 볼 수 있으니 수천 킬로미터나 되는 엄청난 이동거리이다. 이와 같은 회유경로를 밝히기 위해서는 표지작업을 하는데, 2007년 7월에 동해에서 방류한 표지를 붙인 연어가 베링해에서 포획되었다는 결과가 연어 관련 국제위원회 과학자회의에 보고되었다.
 
보통 3∼4년 정도 회유를 하면서 성숙하는데, 여러 학자가 이러한 회유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불철주야 연구에 힘쓰고 있으니 조만간 상세한 회유생태가 밝혀질 것으로 기대해 본다.
 
생활사에 따른 각 해역에서의 성장 정도는 다른데, 기후나 해양환경 변동이 동물플랑크톤이 풍부한 정도를 변화시켰고, 이 먹이생물 변화가 연어 성장과 밀접한 관계를 보인다.

 

황선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 한겨레 <물바람숲> 필자 

 

<다음 기사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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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어류학 박사
고등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어류생태학자.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에서 자원조성 업무를 맡고 있다. 뱀장어, 강하구 보전,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수산자원 회복 등에 관심이 많다.
이메일 : sanisdhw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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